다다미방을 연상시키는 일본풍의 무대. 무대 뒤편 양쪽으로 드리워진 발 뒤쪽에서 스미도부부와 마틴부부가 둘씩 짝을 지어 들어온다. 집주인인 스미도부부는 일본식 정장(기모노)을 입고 있으며 바깥주인 스미도는 한 손에 일본풍의 부채를 들고 있다. 마틴 내외는 검은색 양복 정장을 입고 있는데, 마틴씨는 낡은 여행용 가방을, 마틴부인은 한 손에 작은 손수건을 들고 있다.
무대 뒤편, 발의 양쪽 편에 각각 서 있는 두 사람. 한 동안 그렇게 서 있다. 그러니까 원작 희곡에서 1장과 4장으로 각각 나뉘어진 두 장면이 동시에 교차하면서 진행되는 것이다. 두 부부의 대사는 원래 서로의 짝과 나누는 대사지만, 이 장면에서는 그것이 교차, 동시 진행되면서 전혀 색다르고 미묘한 뉘앙스를 풍기게 된다. 배우들은 이점에 유의하여야하며 특히 일부러 짜 맞춘 뉘앙스로 들리지 않게끔, 다시 말해 원작에서와 같은 부부간의 대화 같은 분위기와 호흡을 유지해야 한다.
[스미도부] 어마, 아홉 시? (사이) 우린 스시, 사시미, 덴뿌라, 그리고 일본식 사라다를 먹었어요. 애들은 일본 물을 마셨고, 우린 배터지게 먹었죠? 오늘 저녁엔 말예요.
[마틴] 저---부인, 실례가 되겠습니다만---
[스미노부] 이건 우리가 도쿄 변두리에서 살고 우리 이름이 스미도이기 때문이에요.
[마틴] 제가 잘못 본 것이 아니라면 전에 어디서 만나 뵌 일이 있는 것 같은데요.
[스미도부] 마리가 오늘 저녁엔 덴뿌라를 참 잘 튀겼어요.
[마틴부] 저도 그래요.
[스미노부] 요전번에는 엉터리더니.
[마틴부] 선생님을 어디서 만나 뵌 일이 있는 것 같은데요.
[스미도부] 난 잘 튀겨진 덴뿌라를 좋아해요.
[마틴] 혹시 당신을 뵌 곳이 삿뽀로가 아니었던가요, 부인?
[스미도부] 사시미도 싱싱했구요. 입맛이 쫙쫙 당겨서 두 접시나 먹었으니까요. 아니 세 접 시. 그만 그것 때문에 변소엘 다 갔으니까. 당신도 세 접시를 잡수셨지요. 그렇지만 세 번째에는 처음 두 번보다는 적게 드셨지요. 나는 세 번째에 더 많이 먹었는데.
[마틴부] 어쩌면 그럴 상 싶은데요.
[스미도부] 왜 그렇죠? 언제나 당신이 더 많이 드시는데. 식욕이 없어진 것도 아닐텐데.
[마틴부] 전 본래 삿뽀로 태생이에요. 그런데 잘 기억이 나지 않아서 선생님을 거기서 뵈었는지 안 뵈었는지 말씀드릴 수 없을 것 같아요.
[스미도부] 그래도 스끼야끼는 좀 매웠나봐요. 당신에겐 좀 매웠을 거예요. 거기다가 와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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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가 너무 많았고 다마네기는 너무 적었어요. 마리에게 꽈리 고추 이파리를 좀 더 넣으라고 일러 줄 것을---.다음 번에는 내가 만들겠어요.
[마틴] 그것 참 신기한 일인데! 저도 본래 삿뽀로 태생입니다 부인.
[스미도부] 다나까씨 부인은 스와라탐 싱이라는 방글라데시 사람의 식료품 점을 알고 있어 요. 사이공에서 온 지 얼마 안 되는 요구르트 전문가라 나요.
[마틴부] 그것 참 신기한데요.
[스미도부] 마카오에 있는 요구르트 학교를 나왔다더군요. 내일 그 사람한테서 진짜 방글라데시 요구르트를 한 항아리 사올까 해요. 도쿄 변두리에선 여간해서는 구할 수 없는 것이니까요.
[마틴] 그것 참 신기한데요. 하지만 부인, 전 약 5주일 전에 삿뽀로를 떠났는걸요.
[스미도부] 요구르트는 맹장, 십이지장, 설사 그리고 과대 망상증에 좋아요. 이웃 미와자끼씨 대 애들을 치료하신 오까자끼 다까시 의사 선생님이 그렇게 말씀하셨어요. 훌륭하신 의사죠. 그 분은 자신이 먼저 시험해 본 약 밖에는 권하지 않으신 답니다.
[마틴부] 그것 참 신기한데요.
[스미도부] 다나까씨를 수술하실 때에도 먼저 자신의 간을 수술했어요. 조금도 나쁘지 않았었는데.
[마틴부] 정말 기묘한 우연의 일치예요. 저도 그래요. 선생님---.삿뽀로를 떠난 지가 약 5주일 돼요.
[스미도] 다나까상은 죽었고 그 의사는 죽지 않았는데 어떻게 된 거지?
[마틴] 전 5시 15분전에 도쿄에 닿는, 아침 8시 반 차를 탔는데요.
[스미도부] 그 이유는요. 의사 선생님은 수술에 성공했지만 다나까상은 실패했기 때문이죠.
[마틴부] 그---것 참 신기하고 기묘한 우연의 일치예요.
[스미도] 다까시는 훌륭한 의사가 못 돼요.
[마틴부] 저도 5시 15분전에 도쿄에 닿는, 아침 8시 반 차를 탔어요.
[스미도] 양심적인 의사라면 환자를 회복시키지 못할 경우에 그 환자와 더불어 죽어야 하는거요.
[마틴] 아아 참 신기한 일입니다. 그러면 부인---.제가 당신을 기차 속에서 뵈었는지도 모르겠군요?
[스미도부] 어째서죠?
[스미도] 선장을 봐. 선장은 배와 더불어 파도에 휘말려 죽어가거든. 살아남는 법이 없소.
[마틴부] 정말 그럴 상 싶은데요. 정말 같아요. 진짜 그럴법한데요. 그렇지만 생각해낼 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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없어요. 선생님.
[스미도부] 환자와 배를 비교할 수는 없잖아요.
[마틴] 전 2등차를 타고 여행하지요.
[스미도] 배에는 배의 병이 있는 법. 더욱이 당신이 말하는 그 의사는 배처럼 건강하잖소. 그러니 의사가 환자와 더불어 죽는 것은 선장이 배와 더불어 죽는 것과 같은 거요.
[마틴부] 참으로 묘한 일이에요. 어쩌면 그렇게도 우연히 일치될까---저도 선생님---2등차로 여행을 했어요.
[스미도부] 처음 듣는 얘긴 데요. 그런데 뭐가 어떻다는 거죠?
[마틴] 신기한데요. 아마도 그 2등차 속에서 만났던가 봅니다. 부인.
[스미도] 모든 의사들이 사기꾼이란 말이지. 환자들도 모두 마찬가지고, 일본에서 정직한 것은 해군뿐이거든.
[마틴부] 확실히 그럴 성 싶어요. 있을 수 있는 일이에요. 그런데 생각이 안 나는군요. 선생님.
[스미도부] 소오데스네. 나 그런 것을 생각해 보지도 않았군요. 그렇지만 마도로스들은 그렇지 못하지 않아요.
[마틴] 제 자리는 제 8호 객차 내 6호실이었습니다, 부인.
[스미도] 물론이지.
[마틴부] 어머, 신기한 일이에요. 제자리도 역시 8호 객차 내 6호실이었는데요. 선생님.
[스미도] 도대체 알 수가 없단 말이야. 신문은 늘 죽은 사람들의 나이를 보도하지만 새로 태어난 애들의 나이는 보도하지 않거든.
[마틴] 정말 기묘한 우연의 일치인데요. 아마도 6호실에서 만났던가 보지요, 부인?
[스미도] 이건 난센스야.
[마틴부] 정말 그럴 성 싶어요. 그러나 아직 생각이 완전히 나질 않는 걸요 선생님.
[스미도부] 참 그런 생각을 못했군요.
[스미도] (여전히 신문을 읽으며)쯔쯔---. 와따나베 하루끼가 죽었다는 군.
[스미도부] 에그머니 저걸 어째. 언제 그이가 죽었지요?
[마틴] 사실 말씀드리자면 부인---. 저도 역시 잘 기억이 안나요. 그러나 거기서 서로 만난 게--- 그렇다고 생각하니 꼭 정말 같기만 합니다.
[마틴부] 오오 정말 그래요. 정말 선생님!
[스미도] 왜 그렇게 놀란척하지? 그 사람이 죽은 지 2년이나 되지 않소. 일년반전에 그의 장례식에 참석했던 일을 확실히 기억하고 있을 텐데.
[마틴] 참 신기합니다. 제자리는 창문 다음 제3번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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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미도부] 물론 기억하구 말고요.
[마틴부] 어머나 참 신기하고 묘한 일이지요. 제자리는 바로 당신 자리 건너편에 있는 창문 다음 제6번이었어요.
[스미도] 일본에서 가장 아름다운 시체였지. 나이만큼 늙어 보이지 않았어. 불쌍한 하루끼. 죽은 지 4년이 지났는데 아직도 체온이 남아 있었어. 마치 숨을 쉬고 있는 것 같은 시체. 게다가 참 명랑했지.
[마틴] 아아 참 신기한 일이로군. 어쩌면 그렇게 우연히 일치했을까! 그렇다면 우리들은 서로 마주보고 앉아 있었군요. 틀림없이 우리들이 서로 만난 곳이 그곳일 겝니다.
[마틴부] 참! 신기한데요. 그럴 성 싶어요. 그런데 아직 생각이 똑똑히 안 나는군요.
[스미도부] 참 불쌍한 여자였어요, 하루끼는.
[스미도] 불쌍한 사내겠지.
[스미도부] 아니에요. 그의 부인 말예요. 그 여자도 역시 와따나베 하루끼라고 했어요. 둘이 다 똑같은 이름이니 같이 만났을 때는 어느 쪽 한 사람을 부르기가 뭐했어요. 그 여자를 아세요?
[스미도] 한번 하루끼 장례식 때 우연히 만난 적이 있소.
[마틴] 사실 말씀드리자면 저도 기억이 잘 안 납니다. 그렇다면 그때 서로 만난 게 틀림없습니다.
[마틴부] 옳은 말씀이에요. 그러나 확실한 건 아니에요.
[마틴] 당신이 아니었던가요, 부인? 화물 선반에 여행가방을 올려달라고 부탁하고 저한테 감사를 하고 담배 피우도록 허락해 주신 분이?
[마틴부] 물론 저였을 거예요. 선생님, 참 신기해요. 어쩌면 그렇게도 우연히 일치했을까요?
[스미도부] 전 아직 그 여자를 본적이 없어요. 예뻐요?
[스미도] 용모는 단정한 편이나 예쁘다고는 할 수 없어. 지나치게 키가 크고 억세지. 용모는 단정하지 못한 편이나 아주 예뻐요. 너무 키가 작고 호리호리해. 노래선생이라나.
(포즈)
[스미도부] 참 여보. 그분들은 언제 결혼할 생각이래요?
[마틴] 참 신기하고 기묘하고, 어쩌면 그렇게도 우연히 일치되었을까요! 그렇다면 우리들이 서로 알게 된 것은 바로 그 순간이었던가 보지요, 부인!
[스미도] 늦어도 내년 봄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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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틴부] 참 신기해요. 어쩌면 그렇게도 우연히 일치했을까요. 정말 그럴 상 싶어요. 선생님, 그렇지만 아직 생각이 안나요.
[스미도부] 결혼식에 가봐야 할텐데요.
[마틴] 저도 그렇습니다, 부인. (잠깐 침묵의 시간. 괘종시계는 두 번을 친다. 그리고 또 한번.) 전 도쿄에 온 후로는 죽 신주꾸에서 거주하고 있습니다.
[스미도] 결혼선물도 해야 할 테지. 무엇으로 할까?
[마틴부] 그것도 신기한데요. 묘한 일이에요. 저도 도쿄에 온 후로는 죽 신주꾸에서 거주하고 있어요.
[마틴] 참 신기해요. 그러면 저---.우리가 서로 만난 곳은 신주꾸에서였던가 보지요.
[스미도부] 그렇게 젊은데 과부생활을 계속하다니 불쌍도 하지.
[스미도] 다행히 애들도 없으니---
[마틴부] 정말 그럴 상 싶어요. 그런데 아직 생각이 안나요.
[마틴] 저는 19번지에 거주하고 있습니다. 부인!
[마틴부] 어머나, 참---신기하네요. 저도 역시 19번지에 살고 있어요.
[마틴] 저---그러면, 그러면---우리는 그 집에서 서로 만났던가 보지요. 부인?
[마틴부] 그럴 상 싶은데요. 그러나 생각이 안나요.
[스미도부] 누가 그 애들을 돌봐주는지요. 사내애 하나, 계집애 하나가 있다는데. 참 이름이 뭐라더라?
[스미도] 애들도 부모를 닮아서 하루끼. 와따나베 하루끼라고 하는 와따나베 하루끼의 큰아버지는 부자랍디다. 애를 무척 좋아한데요. 그러니 하루끼의 교육도 돌봐주겠지.
[스미도부] 당연하죠.
[마틴] 테 아파트는 6층 8호입니다.
[마틴부] 참 신기하고 묘한 일이에요. 어쩌면 그렇게도 꼭 우연히 일치될까요? 제 아파트도 6층 8호실인데---.
[스미도부] 게다가 와따나베 하루끼의 큰어머니, 즉 와따나베 하루끼의 할머니도 기꺼이 와따나베 하루끼의 딸인 와따나베 하루끼에게 교육비를 지불할걸요. 그렇게 되면 와따나베 하루끼의 어머니인 하루끼도 다시 결혼할 수 있을 거구. 결혼할 상대라도 있는지요?
[스미도] 있지. 와따나베 하루끼의 사촌.
[스미도부] 누구요? 와따나베 하루끼라구요.
[스미도] 어느 쪽 와따나베 하루끼 말이오?
[스미도부] 그 저 작고한 와따나베 하루끼 둘째 큰아버지인 나이 많은 와따나베 하루끼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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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들인 와따나베 하루끼 말예요.
[스미도] 아-니. 그 사람이 아니라 딴 사람이요. 바로 작고한 와따나베 하루끼의 큰어머니의 아들인 와따나베 하루끼 말이요?
[스미도] 우동집 와따나베 하루끼 말이군요?
[스미도] 와따나베 하루끼 집안은 모두가 우동집을 한다오.
[스미도부] 힘든 장사죠.
[마틴] 신기해요. 신기해요. 정말 신기한 노릇이에요. 어쩌면 그렇게도 꼭 우연히 일치될까요! 제 침실에 침대가 하나있는데 녹색 솜털이불로 덮여 있어요. 그 침대와 그 털 이불이 있는 방은 복도 끝에 있어요.
[마틴부] 꼭 들어맞았어요. 아아! 참 똑같군요. 저의 침실도 녹색 솜털이불이 덮여 있는 침대가 있고요. 화장실과 그리고 서재가 있는 복도 끝에 있어요.
[스미도부] 그렇지만 벌이가 좋다죠?
[스미도] 그렇지 경쟁이 없을 땐.
[스미도부] 경쟁이 없는 날은 언제예요?
[스미도] 매 화요일, 목요일, 화요일.
[스미도부] 아, 일주일에 삼일간이나요? 그런 동안 와따나베 하루끼는 뭘 하나요?
[스미도] 쉬었다가 잤다가 하지.
[스미도부] 경쟁이 없다는데 삼일동안 왜 일을 안 하죠?
[마틴] 정말 묘하고 신기하고 이상도 합니다. 그러면 부인, 우리는 같은 방에서 살고 같은 침대에서 잔다는 말씀이죠.
[스미도] 내가 어떻게 그걸 다 알 수 있단 말이오. 당신의 그 바보 같은 질문엔 대답할 수 없소.
[마틴부] 참 신기해요. 꼭 들어맞다니! 그렇지요. 정말 그런 장소에서 만났던 것 싶어요. 아마 어젯밤에도---. 그런데 생각이 정확히 나지 않는데요.
[스미도부] (화가 나서) 빠가! 당신은 저에게 창피를 줄 셈이에요?
이때 마리가 뒤편에서 들어온다.
[마리] 저는 이 집 식모입니다.
[스미도] 그럴 리가 있겠소.
[마리] 전 오늘 오후를 무척 재미있게 보냈어요. 어떤 남자와 영화관에 가서 많은 여자들과 함께 구경했어요.
[스미도부] 우리도 나가 오늘 오후를 즐겁게 보내고 어떤 남자와 영화관에도 가구. 나폴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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옹 꼬냑과 실론티도 마시길 바랬어.
[마리] 영화구경이 끝난 후에 우리들은 나폴레옹 꼬냑과 실론티를 마시러 갔었죠. 그리고 나서는 신문도 읽었어요.
[스미도] 어쩌면 당신은 그렇게도 귀여운 성난 고양이 같구려. 그저 농담 삽아 얘기했다는 것을 당신도 잘 알텐데.
[마리] 초대한 마틴 부부께서 오셨어요. 저를 기다리고 계셨던가 봐요. 그냥 들어오시기가 거북스러웠던가 보죠. 오늘 저녁식사를 같이 하실 예정이셨죠.
[스미도] 우린 참 우스꽝스러운 한 쌍의 늙은 연인이요,. 여보, 어서 불을 끄고 안녕 합시다.
[스미도부] 오, 그래. 우리들도 그분들을 기다리고 있었다. 하지만 기다려도 오시지 않기에 시장한 김에 우리들끼리만 식사를 해버렸지. 온종일 아무 것도 먹지 않고 있었단다. 넌 외출 안 해야 했어.
[마리] 그렇지만 부인이 외출을 허락하신 걸요.
[스미도] 외출시키려고 외출시킨 건 아냐.
[마리] (갑자기 웃기 시작하다가 갑자기 울기 시작한다. 그런 연후에 미소짓는다.)
[스미도부] 자, 마리. 어서 문을 열고 마틴 부부를 들어오시도록 해라.
[마리] 아리사와 도나르도는 지금 너무나 행복해서 제가 말하는 것도 들리지 않아요. 그래서 제가 여러분에게 한가지 비밀을 가르쳐 드리겠어요.
[마틴] 저에겐 조그만 계집애가 하나 있는데 제 딸애올시다. 그 애와 같이 사는데 두 살 난 애로 흑발이고 한쪽 눈은 희고 또 한쪽 눈은 빨갛고 아주 예쁘지요. 이름은 요시끼라 합니다.
[마틴부] 어머나! 참 묘한 우연의 일치예요. 저에게도 조그마한 딸애가 하나 있는데 두 살이에요. 한눈은 희고 또 한눈은 빨갛고 아주 예쁘지요. 이름은 요시끼라 합니다.
[마리] 도나르도의 딸애는 아리사의 딸애와 마찬가지로 한눈은 희고 한눈은 빨갛지요. 그런데 도나르도의 어린애는 오른쪽 눈이 희고 왼쪽 눈이 빨갛습니다. 그와 반대로 아리사의 어린애는 오른쪽 눈이 빨갛고 왼쪽 눈이 희답니다! 도나르도의 논리체계는 그럴싸하게 전개되었지만 마침내 이 마지막 장애에 부딪쳐 무너지게 된 것입니다.
[마틴] (여전히 느릿느릿한 단조로운 목소리로) 신기합니다. 꼭 부합됐어요. 참 묘하군요. 아마도 같은 애인가 보죠.
[마틴부] 참 신기하군요. 정말 그럴성싶어요.
[마리] 즉, 신기한 우연의 일치가 결정적인 증거로 생각되었습니다만 도나르도와 아리사는 똑같은 어린애의 부모가 아니고 보니 도나르도와 아리사는 도나르도와 아리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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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 아니라는 말씀이에요.
[마틴] 추호도 의심할 여지가 없습니다. 틀림없이 우리는 이전에 서로 만나본 적이 있고 당신은 바로 내 아내입니다. 아리사! 다시 당신을 만나게 되었구려!
[마틴부] 도나르도! 바로 당신이었군요.
[마리] 그러니 그가 도나르도라고 믿어도 그녀가 아리사라고 믿어도 소용없습니다. 그가 그 여자를 아리사로 믿고 그 여자가 그를 도나르도라고 믿어도 헛된 일입니다.
[마틴] 여보! 우리들 사이에 일어나지 않았던 모든 일을 깨끗이 잊읍시다. 이젠 피차 다시 만나게 되었으니 이 이상 떨어지지 말고 이전처럼 살아봅시다.
[마틴부] 그러고 말고요. 여보!
[스미도부] 안녕하세요? 오랫동안 기다리게 해서 미안합니다. 훌륭한 두 분에게 예의를 차려야한다고 생각이 되었기에 사전에 예고도 하지 않으시고 저희들을 방문하여 주시는 친절을 깨닫고 곧 옷을 갈아입기 위해 바삐 갔었습니다.
[마리] 완전히 속고 있는 거죠. 그러면 누가 진짜 도나르도일까요? 누가 진짜 아리사일까요? 이런 착오를 조장해서 그걸 즐기고 있는 자가 누군가? 그건 저도 모르겠어요.
[스미도] (노기가 등등해서) 우리들은 온종일 아무것도 먹지 못하고 있었소. 당신네들을 위해서 꼬박 네 시간을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왜 그렇게도 늦으셨습니까?
[마리] 알려고 하지 맙시다. 사물은 있는 그대로 내버려두는 게 좋습니다. (몇 발자국 걸어서 문 쪽으로 가다가 돌아서서 관중에게 말한다.) 저의 정말 이름은 셜록 홈즈라고 합니다.
[마틴] 옳은 말씀이오. (침묵)
[스미도부] 그렇게들 말하죠. (침묵)
[마틴부] 그 반대를 말씀하시는 분도 있던데요. (침묵)
[스미도] 진리라는 것은 그 둘 사이에 존재한답니다.(침묵)
[마틴] 맞았습니다. (침묵)
[스미도부] 오랫동안 여행을 하셨으니 재미있는 이야깃거리가 있으실텐데요.
[마틴] (자기 부인한테) 여보, 오늘 뭘 봤지?
[마틴부] 말할 필요 없어요. 아무도 제 말을 믿어 주지 않을 테니까요.
[스미도] 당신을 의심하다니 천만예요.
[스미도부] 만약에 그렇게 생각한다면 저희를 모독하는 게 됩니다.
[마틴] 여보, 당신이 그렇게 생각한다면 저분들을 모욕하는 게 되는 거야.
[마틴부] 그럼 좋아요. 오늘 저는 이상한 것을 봤어요. 정말 믿을 수 없을 정도로 놀라운 것이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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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틴] 빨리 말해요.
[마틴부] 오늘 제가 야채를 사려고 장에 갔었어요. 배추 값은 자꾸 비싸지는데, 자꾸 비싸지는데 옷차림을 단정하게 하고 나이가 쉰 살이 되어 보일까 말까하는 남자를 보았어요. 그런데 그 남자는---
[스미도] 누구? 뭐요?
[스미도부] 누구? 뭐요?
[스미도] (자기 부인에게) 방해하지 말아요. 당신은 정말 진절머리가 나는군.
[스미도부] 여보 최초에 방해하신 분은 당신이에요. 등신같이.
[스미도] 쉬! (마틴 부인에게) 그 사람은 뭘 하고 있었죠?
[마틴부] 그 사람은 한 무릎을 꿇고 허리를 굽히고 있었어요.
[마틴] 저런!
[스미도부] 저런!
[마틴부] 네, 허리를 구부리고 있었어요.
[스미도] 그럴 수가!
[마틴부] 사실 그랬어요. 그래서 그 사람이 무엇을 하고 있는지 보러 가까이 갔었지 않아요---
[마틴] 그랬더니---?
[마틴부] 가 보았더니 그 사람은 풀어진 구두끈을 매고 있었어요.
[마틴] 설마!
[스미도부] 설마!(환상적인 느낌으로)
[스미도] 딴 사람이 이런 얘기를 했다면 전 그 얘기를 믿지 않았을 겁니다.
[마틴] 왜요? 매일 걸어다니노라면 더욱 괴상한 것을 볼 수 있어요. 예를 들자면 오늘 지하철에서 어떤 사람이 조용히 자리에 앉아 신문을 읽고 있는 것을 보았어요.
[스미도부] 정말 별난 사람이네---
[스미도] 아까 그 사람하고 똑같은 사람인지도 몰라!
[마리] 왜 그렇게 늦으셨지요! 예의가 방정하시질 못한데요. 시간을 지키셔야해요. 아시겠죠? 여하튼 저기 앉으셔서 기다리세요.
[스미도] 저런, 누가 벨을 누르고 있어요.
[스미도부] 누가 와있는가 본데요.
[스미도] 여보, 누가 벨을 눌러요.
[스미도부] 나가보겠어요.
[스미도] 여보---누가 벨을 눌러요.
[스미도부] 아무도 없어요. 다시는 문을 열어보지 않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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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미도] 곤니찌와! 소방대장님이 오셨어.
[스미도부] 처음엔 아무도 없었어요. 두 번째도 아무도 없었어요. 세 번째도 아무도 없었고. 이번엔 누가 왔을 거라고 어떻게 생각할 수가 있어요?
[마틴부] 반드시 그런 건 아니에요. 그 반대의 경우를 방금 보지 않았어요!
이때 소방대장이 뒤편에서 등장한다.
[마틴] 대개의 경우는 그렇단 말이오.
[스미도] 내가 어떤 분을 방문할 때는 문을 열라고 벨을 누릅니다. 내 생각엔 누구나 그런다고 생각되고. 때문에 벨이 울리면 반드시 누가 와있을 거라 이거죠.
[스미도부] 이론상으론 옳아요. 그러나 현실의 일이란 반드시 그렇게 되지 않아요. 방금 그렇지 않은 걸 보셨지 않아요.
[소방대장] (윤이 나는 커다란 헬멧을 쓰고 물론 정복을 입고 있다.) 안녕 하십니까. 신사 숙녀 여러분. (모두들 아직도 약간 놀란 기색이다. 스미도 부인은 화가 나서 그의 인사에 답하지 않는다.) 안녕 하십니까. 스미도 부인께서는 노한 것 같군요.
[스미도] 내 아내는 자기의 의견이 틀렸다는 걸 알고 기분이 좀 상한 거요.
[마틴] 스미도상과 그 부인이 서로 논쟁을 하고 있었습니다. 소방대장님.
[스미도부] (마틴에게) 당신이 참견할 일이 아녜요. (스미도에게) 우리 집안 싸움에 바깥 사람들까지 끌어들이지 마세요.
[스미도] 아니 뭐 그리 대단한 얘기라고. 소방대장은 우리 집안과 오랜 친구사이인데. 이분의 어머님이 날 좋아했으며 또한 이분 아버님하고도 같이 아는 사이지. 이분 아버님은 내게 딸이 있으면 그 아들과 결혼시키자고 했는데 그만 기다리시다가 돌아가셨지요.
[스미도부] 글쎄 제 남편이 막 우겨대지 않겠어요.
[스미도] 당신이 우겨댔지 내가 언제.
[마틴] 부인께서 우겨대셨습니다.
[마틴부] 아니에요, 스미도상이 그랬어요.
[소방대장] 흥분하지 마시고 말씀해주세요. 스미도부인.
[스미도부] 말씀드리죠. 제 남편이 벨이 울리 때는 항상 누가 와있는 거라고 말했기 때문에 말싸움이 붙었어요.
[마틴] 명백한 사실이지.
[스미도부] 그래서 제가 벨이 울릴 때는 아무도 와 있는 게 아니라고 말했어요.
[마틴부] 좀 이상하긴 하죠?
[페이지] 011
[스미도] 소방대장님. 이번엔 제가 몇 가지 묻겠어요.
[소방대장] 네 그러십시오.
[스미도] 내가 문을 열었을 때 당신을 보았습니다. 그러면 벨을 누른 분은 당신이었지요.
[소방대장] 그렇죠.
[마틴] 문 옆에 서서.
[마틴부] 아셨지요. 벨은 울렸는데 아무도 없었거든요.
[마틴] 아마 딴 사람이 벨을 눌렀던 모양이지.
[스미도] 문 밖에서 오래 서 있었습니까?
[소반대장] 한 사십 오 분쯤 되지요.
[스미도] 아무도 보지 못했어요?
[소방대장] 아니오, 아무도 없었지요.
[마틴부] 그러면 두 번째 벨이 울리는 소리를 들었습니까?
[소방대장] 네, 그러나 제가 울린 것은 아닙니다. 역시 아무도 없었어요.
[스미도부] 만세---제가 옳았어요.
[스미도] (자기 부인에게) 아직 일러. (소방대장에게) 그럼 문간에서 무얼 하고 계셨지요?
[소방대장] 아무것도 안 했습니다. 그저 서 있기만 했습니다. 하지만 중요한 건 양쪽 다 반반 옳다는 겁니다. 즉 벨이 울리면 사람이 와 있기도 하고 그렇지도 않을 때도 있습니다.
[마틴] 참 논리적인 말씀이군요.
[마틴부] 저도 그렇게 생각해요.
[소방대장] 인생은 단순한 겁니다. (스미도 부부에게) 서로 키스나 하세요.
[스미도부] 방금 전에 키스한 걸요.
[마틴] 내일 키스할겁니다. 아직 시간은 넉넉합니다.
[소방대장] 미안하지만 전 오래 있을 수는 없습니다. 전혀 다른 일 때문에 찾아뵈러 왔습니다. 지금 저는 근무중이니까요.
[스미도부] 근무상 무슨 볼일이라도. 소방대장님?
[소방대장] 너무 당돌하게 들러서 죄송합니다. (몹시 당황해서) 저---(한 손가락으로 마틴 부부를 가리키며) 괜찮을까요---저분들 앞에서.
[마틴부] 무슨 말씀이라도 하세요.
[마틴] 다 옛친구입니다. 우린 뭐든지 말하는 사입니다.
[스미도] 말씀하세요.
[소방대장] 그렇다면 말하죠. 불이 있으신 가요. 댁에.
[스미도부] 그런 걸 왜 물으시죠?
[페이지] 012
[소방대장] 실은---용서하세요. 시내에 있는 모든 불을 끄라는 명령을 받았습니다.
[마틴부] 모든 불을요?
[소방대장] 모든 불을.
[스미도부] 글쎄요---없으리라고 생각되지만, 가보고 올까요?
[스미도] 불이 있을 리가 없지. 타는 냄새라곤 하나도 없는데요.
[소방대장] 전혀 없단 말입니까? 아니 난로 속에도 불이 없고 지붕밑 방이나 지하창고 속에도 타고 있는 게 없단 말씀이에요. 적어도 불씨 같은 것이라도.
[스미도부] 안됐습니다만 현재로선 아무것도 타는 것이 없어요. 무엇이든 타면 곧 알려드리겠습니다.
[소방대장] 제발 잊지 마세요. 큰 도움이 되겠습니다.
[스미도부] 약속합니다.
[소방대장] (마틴 부부에게)당신네 댁에도 타는 게 없습니까?
[마틴부] 불행하게도 없어요.
[소방대장] 불행하게도? 그럼 얘기라도 하나 해드릴까요?
[스미도부] 오! 어서 하세요. 참 멋있는 분이야. (그에게 키스한다.)
[스미도] 소방대원들의 얘기가 무엇보다도 흥미 있는 것은 다 실제로 있었던 체험담이기 때문이죠.
[소방대장] 실제로 체험한 바를 얘기하겠습니다. 사실 그대로 사실 그 자체입니다. 소설이 아닙니다.
[마틴] 그렇죠. 진실이란 책에서 발견되는 것이 아니라 인생에서 발견되는 것입니다.
[스미도부] 시작하세요!
[마틴] 시작하세요!
[마틴부] 쉿! 곧 시작할 테니까.
[소방대장] (가벼운 기침을 여러 번 한다.) 미안합니다. 그렇게 저를 쳐다보지 마세요. 어쩔 줄을 모르겠어요. 아시다시피 전 부끄럼을 타는 편입니다.
[스미도부] 멋있는 분이야.
[소방대장] 어쨌든 시작은 해보겠습니다만 제 말에 귀를 기울이지 않겠다는 약속을 하세요.
[마틴부] 당신의 말에 귀를 기울이지 않으면 들을 수 없잖아요.
[소방대장] 그걸 미처 생각 못했군요.
[스미도부] 내가 뭐랬어요. 어린애 같다고 하지 않았어요.
[마틴] 어쩌면 그렇게 귀여울까!
[스미도] 어쩌면 그렇게 귀여울까!
[마틴부] 용기를 내세요.
[페이지] 013
[소방대장] 이 우화는 개와 소라는 얘깁니다. 옛날옛적에 어떤 소가 어떤 개에게 왜 자기네는 긴 코를 접게 생기지 않았나 하고 물었습니다. 개가 대답하기를 미안하네 나는 내가 코끼리인줄만 생각했기 때문에 그랬어 하고 말했답니다.
[스미도부] (화가 나서) 딴걸 하세요.
[소방대장] 어떤 어린 송아지가 유리 조각을 너무 많이 먹었는데---(소방대장은 입을 벌린 상태에서 한동안 움직이지 않는다.)
[스미도부] (마치 소방대장이 못 다한 얘기를 다 들은 듯이) 모든 신문에 났었죠.
[마틴부] 여기서 그리 멀지 않은 곳에서 일어났던 일이니까요.
[소방대장] 이번엔 수탉이란 얘기입니다. 옛날옛적에 어떤 수탉이 흉내를 내고 싶어했습니다. 그러나 모든 사람들이 자기를 알아보기 때문에 실패했습니다.
[스미도부] 그와 반대로 수탉인 척한 개는 아무도 못 알아봤습니다.
[마틴부] 재미있는데요.
[마틴] (스미도 부인에게) 당신 차롑니다.
[스미도부] 전 하나밖에 몰라요. 꽃다발얘기.
[스미도] 저의 처는 늘 낭만적이었습니다.
[마틴] 요조숙녀지요.
[스미도부] 옛날에 어떤 남자가 자기 약혼녀에게 꽃다발을 주었습니다. 그래 여자는 감사합니다 라고 했는데 남자는 여자가 감사하다고 말하기도 전에 아무 말 없이 교훈을 주기 위해 주었던 꽃을 슬그머니 뺏고는 꽃을 도로 찾아가야겠습니다 말하고 꽃을 도로 빼앗아 가지고 사라져 버렸습니다.
[마틴] 정말 매력적인 이야기요.
[마틴부] 스미도상, 당신 부인은 온 세상 사람들이 부러워할 뿐입니다.
[스미도] 사실입니다. 제 아내는 더없이 지성적이죠. 저보다 더 지적입니다. 하여튼 훨씬 더 여성적이라는 평판입니다.
[스미도부] (소방대장에게) 딴 걸 하나 부탁드립니다. 소방대장님!
[소방대장] 아, 그만두겠습니다. 너무 늦어서요.
[마틴] 하나 더 말씀하세요.
[소방대장] 너무 피로해서요.
[스미도] 호의를 베풀어주시오.
[마틴] 부탁합니다.
[소방대장] 싫습니다.
[마틴부] 당신의 심장은 얼음인가 보군요. 우리가 이렇게 몸달아하는데도---
[스미도부] (흐느끼면서 무릎을 꿇고 또는 그러지 않아도 좋다.) 정말 애원합니다.
[페이지] 014
[소방대장] 그럽시다.
[스미도] (마틴 부인 귀에다 대고) 승낙했어요. 우리를 또 지루하게 할 판이군.
[마틴부] 제기랄.
[스미도부] 재수가 없군. 너무 잘 해준 탓이야.
[마리] 마나님---.아저씨---
[스미도부] 왜 그래?
[스미도] 무슨 일이야?
[마리] 마나님과 아저씨는 저를 용서하시겠죠?---저 그리고 신사 숙녀 여러분들 도요. 저---저---저--- 여러분들에게 이야기를 하나 해드리고 싶습니다.
[소방대장] ---참! 바로 이 여자야! 이럴 수가!
[스미도] 아는 사이요?
[소방대장] 도대체 뭐가 뭔지! (마리는 소방대장의 목을 껴안는다.)
[마리] 다시 만나게 되었군요---.마침내!
[스미도부] 어머나!
[스미도] 이건 너무 심한데. 여기 도쿄 변두리에 있는 우리 집에서.
[스미도부] 온당치 못한 짓이야.
[소방대장] 이 여자가 바로 저의 첫 번째 불을 꺼준 분입니다.
[마리] 전 당신의 작은 소방호스지요.
[마틴] 아, 이제야 이해가 되는군---이러한 감정은 퍽 인간적이고 명예로운---
[마틴부] 모든 인간적인 것은 명예롭답니다.
[스미도부] 비록 그렇다하더라도 이런 꼴은 보기가 싫어---특히 우리들 앞에서.
[스미도] 저 애는 필요한 교육을 받지 못했어요.
[소방대장] 아, 당신은 지나친 편견을 가지고 계십니다.
[마틴부] 저는 이렇게 생각해요. 비록 제게 관한 일은 아니지만 말씀드리자면 하녀는 결코 하녀에 지나지 않다는 거예요.
[마틴] 비록 때로는 훌륭하게 탐정이 될 소질이 있어도 말입니다.
[마리] 제가 하고 싶은 이야기는---.
[스미도] 아무 말도 해서는 안 돼.
[마리] 말을 해야겠어요.
[스미도부] 자, 가거라! 빨리 부엌으로 가서 거울 앞에 서서 너의 시나 읽어라.
[마틴] 나는 하녀가 아니라도 거울 앞에서 시를 읽어요.
[마리] 짧은 시를 하나 암송해도 되겠지요.
[스미도부] 마리, 지독한 고집쟁이로구나.
[페이지] 015
[마리] 시를 암송하겠어요. 좋지요? 소방대장님을 환영하는 뜻에서 불이라는 제목입니다.
짐승들 숲 속에서 타오르고
성에 불이 붙고
남자들에 불이 붙고
새들에 불이 붙고
물에 불이 붙고
잿더미에 불이 붙고
불에 불이 붙고
불이 붙고 불이 붙고
돌에 불이 붙고
숲에 불이 붙고
여자들에 불이 붙고
고기들에 불이 붙고
하늘에 불이 붙고
연기에 불이 붙고
모든 것에 불이 붙고
시 낭송이 끝나면 마리, 갑자기 뒤돌아 나간다.
[마틴부] 등골이 서늘했어요.
[마틴] 그런 대로 어떤 열정이 그 시에 있었어---
[소방대장] 참 멋있는 시인데요.
[스미도부] 하지만---
[스미도] 과장이 심하시군---
[소방대장] 잠깐만---시간을 모르신 다니 말씀드리자면 꼭 45분. 더하기 16분 후에 이 고을 저편에 불이 일어납니다. 서두르지 않으면 안됩니다. 비록 대단한 것은 아닐지라도.
[스미도부] 어떤 불이에요? 난로의 조그마한 불?
[소방대장] 아니 그런 것은 아닙니다. 지푸라기 한 올에 불이나 속이 타는 정도.
[스미도] 가신다니 서운합니다.
[스미도부] 참 재미있었습니다.
[마틴부] 정말 당신 덕분에 철학적인 15분간을 보냈어요.
[소방대장] (문 쪽으로 향해서 가다가 멎는다.) 그런데 대머리 여가수는? (모두들 침묵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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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북하다)
[스미도부] 늘 같은 머리 모양을 하고있어요.
[소방대장] 아, 그래요. 그럼 안녕히 계십시오.
[마틴] 행운이 있기를---그리고 좋은 불을!
[소방대장] 저도 그렇게 바라겠습니다. 모든 사람을 위해서요. (소방대장 퇴장. 모두 문까지 그를 따라갔다가 자리로 되돌아온다.)
[마틴부] 저는 오빠를 위해 주머니칼을 살 수 있지만 당신은 할아버지를 위해 아일랜드를 살 수 없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