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봉이야기 문일선
닭장이 소란스럽다. 몸집이 불어난 2년생 수탉이 힘센 우두머리 수탉에게 도전장을 내놓고 요 며칠째 치열한 서열 다툼을 벌이고 있는 중이다. 푸드덕, 푸드덕, 땅을 박차고 날아올라 송곳처럼 날카로운 발톱으로 상대의 붉은 볏을 사정없이 휘갈기고 쪼아댄다. 어느새 하얀 깃털에는 선혈이 낭자하다.
한동안 권좌를 지킬 줄 알았던, 우두머리 수탉이 맥없이 꽁무니를 빼고 달아난다. 처절한 혈전이 멈추자 닭장 안은 언제 그랬냐는 듯이 다시 조용하다. 하지만 힘의 우열은 분명했다. 새로이 권력자로 등극한 수탉은 보란 듯이 몸짓도 사뿐사뿐하다. 이제 모두 독차지가 된 암탉들에게 의기양양 무정란 예방접종을 실시하고 내려와서는 한쪽 날개를 땅에 닿을 듯 말 듯 비스듬히 내려 깔고 한쪽 다리는 슬쩍 들어 올리며 암탉 옆으로 빙그르 돌아주는 세리머니를 한다.
하지만, 싸움에서 패한 수탉은 앞에서 벌어지고 있는 이 기막힌 순간을 멀뚱하게 바라만 보고 있다. 바로 조금 전까지도 감히! 다른 수탉들이 암탉 근처에는 얼씬거리지도 못했다. 어쩌다가 우두머리수탉이 잠시 해찰하는 사이 다른 수탉이 사리살짝 암탉 위로 올라가기라도 하면 어디서 보고 있었는지 잽싸게 눈에 쌍심지를 켜고서 활주로에서 비행기가 이륙하듯이 양 날개를 낮게 깔아 쏜살같이 달려와 수작을 걸고 있는 수탉의 면 두를 캭, 쪼아서 사정없이 밀쳐버렸다.
한때의 융성한 권력도 강물에 이는 물결처럼 밀려났다. 새로이 권력자가 된 수탉은 일부다처의 호기를 한껏 뽐내며 거들먹거리고 있다. 하지만 힘에 밀려 구석으로 내몰린 수탉은 위세에 눌려서 내시 닭처럼 오금을 못 쓰고 살아야 한다. 이는 마치, 벌어지고 있는 인간 권력의 속성을 보는 것 같아서 바라보는 마음 한편이 씁쓰레 진다.
우리 집의 닭장 이야기다. 시골에서 살다 보니 철 따라 씨앗 뿌려... 남들 하는 것 이것저것 다해보고 싶은 소박한 농심으로 백봉 4마리를 분양받아 키우는 중에 암탉 한 마리는 마당가에 메여있는 진도 견한테 눈 흘기다 물려서 죽고 3마리가 지금은 대충 40마리 가량 된다. 정확한 마릿수를 확인하기 위하여 줄을 세워 보고도 싶지만 우리 집에 닭들도 주인을 닮아서 역마살이 끼었는지 잠시도 가만있지 않고서 무리 지어 이리저리 왔다 갔다 하여 지금까지 대충 어림짐작만 하고 있다.
백봉은 중국 강서성 무산이 원산지다. 실크와 같이 부드러운 흰색의 깃털과 검은색의 피부와 검은색의 뼈를 가지고 있으며 중국에서는 불로장생의 봉황으로 알려져 왕족과 귀족들만 먹을 수 있는 고귀한 약선 요리로 이용되어왔다. 또한, 야성 조류의 특성이 강한 백봉은 교미 본능이 왕성하여 부화율이 90% 이상의 유정란이지만, 습성이 워낙 시끄럽고, 수탉은 밤낮을 가리지 않고 시도 때도 없이 울어댄다. 하여 가끔씩 바로 이웃집에다가 닭과 알을 담 너머로 넘겨주기는 하지만 미안하기가 짝이 없다.
그날 밤도 닭아, 닭아 울지 마라, 네가 울면 날이 새고/ 날이 새면 나 죽는다. 나 죽기는 섧지 않으나 /의지 없는 우리 부친 어찌 잊고 간단 말인가! 심청전에서 공양미 300석에 팔려 가는 심청이가 새벽에 닭 우는소리를 듣고 자탄하는 장면이다. 이런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목청 좋은 우리 집 수탉들은 초저녁부터 교대로 꼬끼오 오. 울기 시작하더니 그것도 부족하여 새벽이 되자 5-6마리가 합창으로 울어대어서 기어코 마누라의 심보를 긁어놓고야 말았다. 내일 수탉 한 마리만 남기고 모두 없애라는 집권자의 살 처분 명령이다.
아침 일찍, 닭장 앞을 기웃거리며 오늘 구조조정 대상 수탉들을 눈도장을 찍는데 저놈은 볏이 맨드라미처럼 예쁘고, 대가리도 실팍하게 생겨서 생, 저놈은 체구는 별로지만 발등 까지 덮여있는 설 백의 하얀 털이 눈이 부셔서 생, 저놈도 체구가 옹골차게 생겨서 또 생. 이래저래 생살여탈권을 손에 쥐고 갈등만 키우고 말았다. 아침 식탁에 마주 앉아있는 마누라 “오메! 무슨 놈의 달구 새끼도 관상 보고 잡소.” 이제는 이웃집 미안해서 더 이상은 안 되니까. 무조건 꼬끼오 우는 놈 모조리 일망타진하라는 득달같은 명이다. 알도 못 낳은 것들이 오사 게 시끄럽기만 하고 비싼 사료만 축내고 있다며…….
집행자로 나선 나는 삼국지에 나오는 성산 조자룡이 장판파에서 애각창을 꼬나 잡듯이 손바닥에다 침을 탁 뱉어 갈퀴를 거머쥐고 닭장으로 성큼 들어섰다. 닭들이 심상치 않은 내 행동에 경계심이 가득한 몸짓으로 구석으로 몰려서 고개들이 이리저리 갸웃거리며 나를 쳐다보고 있다. 눈망울들이 또랑또랑하다. 나는 닭들을 향해서 한마디 안 할 수가 없었다.
목 가다듬어 에~또! 본관(本官)에 여린 마음은 놔두고라도 그동안 느그들 하고는 얄프막한 정이 들어서 오래 같이하고 싶지마는 집권자의 엄명을 거역할 수가 없어, 바로! 구조 조정을 시행하니 십분! 내 마음을 이해 바란다. 이상. 훈시를 마친 나는 오늘 구조조정의 대상인 수탉을 골라낸다. 첫 번째는 새벽마다 키메라 목소리로 꼬~~끼~~오~~오~~오" 목청껏 울어대는 놈, 두 번째 시도 때도 없이 암 닭 머리끄덩이 물고 하루 교미 횟수를 초과하여 양계 질서를 문란케 하는 놈
눈도장이 찍혀있는 7마리 포획하여 포대에 담아 시장 닭 집으로 달렸다. 단골이 된, 여자사장이 포대 속의 닭들을 내려다보더니, 폴기(팔다)도 허요? 나는 엷은 미소를 머금고 말했다. “못 파요.” ‘고놈에 정 땜 시’ 바쁜 일손을 놀리던 여사장이 픽하고 웃고 만다. 닭털을 벗기는 기계 소리만, 텅 텅 텅 하고 돌아간다. 잠시 후, 눈앞의 알몸뚱이가 된 닭들은 모두가 까만 흑계 인데도 유독 한 놈만이 흑도 백도 아닌 몸뚱이가 희미 끄리 하다.
어허 참! 불륜의 징표가 뚜렷하다. 뒷집 수국 댁의 닭이 자꾸 월담을 하더니 기어코 요런 사단이 벌어지고 말았다. 하지만 이제 와서 따져 볼 수도 없는 노릇이다. 설령 내가 알았다고 치더라도... 짜잔한 주인이 아닌 이상, 이미 지나가버린 일을 가지고 일일이 얽히어 야단법석을 떠 느니... 차라리 양질의 사료를 공급하여 산란율에 의한 부가가치를 높이는데 힘을 쏟아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