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자유주의적 통치에서는 경제적인 것이 정치적 주권을 생산한다. 신자유주의는 경쟁을 매커니즘으로 삼으며, 사회체의 모든 것을 시장화 한다. 나는 본 장을 읽으면서 신자유주의의 매커니즘을 가장 잘 보여주는 것이 바로 기업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기업은 본디 볼 수도 만질 수도 없는 인위적인 존재로서, 오로지 법률적 사고 내에서만 존재한다. 하지만 오늘날, 기업은 헌법의 보장을 받는다. 인간을 위해 만들어진 헌법의 보장을, 인간과 같은 위치에서 받는 것이다. 기업은 인간과 동등하거나, 더 많은 권리를 가지지만 인간과 같은 의무나 책임을 부담하지 않는다. 왜 기업은 인간이, 혹은 인간보다 더 나은 취급을 받는 존재가 되어버렸을까?
지금의 한국은 독특한 구조로 되어 있는데, 그것은 바로 ‘삼성’의 존재이다. 삼성은 현재 대한민국의 명실상부한 1위 기업으로 실제 한국 시장에서 엄청난 비중을 가진다. 하지만 이렇게 슈퍼재벌이 되기까지, 삼성의 성장 이면에는 그룹 계열사 간 내부 거래, 순환 출자, 금융 계열사의 동원, 무노조 경영, 불법 상속 등의 문제를 가진다.
나는 한국사회의 재벌에 관한 사례 중, 최고 재벌 삼성이 절대 무시하고 넘어갈 수 없는 이야기인 ‘삼성 반도체 노동자의 직업병’ 사례를 생각하며 한국사회에서 재벌이 미치는 영향을 고민해보았다. 2007년 시작된 이들의 갈등이 왜 10년이 넘는 시간 동안 지속하고 있을까? 그것은 바로 현재 대한민국의 산업재해와 같은 노동법이 노동자가 아닌 기업에 유리하게 만들어져 있기 때문이다.
현재 산업재해의 법적 입증구조를 살펴보면 입증의 책임은 노동자에게 있지만, 입증을 할 수 있는 여건의 마련은 기업의 자발성에 달려 있다. 기업이 영업비밀을 이유로 조사에 응하지 않거나, 원하는 기관에 의뢰하고 그 구체적 자료를 제시하지 않는 등의 행위에 대해 제재할 수 있는 근거, 즉, ‘기업에 강제할 수 있는 법’이 없기 때문이다.
이러한 상황 속에서 현실적으로 노동자들이 선택한 방법은 연대 투쟁이다. 그들은 사건이 언론으로 확장되는 데 크게 기여한 고 황유미 씨의 유가족을 중심으로 삼성반도체 집단 백혈병 진상규명 대책위원회를 구성했다. 대책위는 연대적으로 그들이 근무한 환경에 대한 진상규명을 위해 힘썼으며, 반도체 사업을 포함한 전자사업 분야 노동자들의 직업병 피해를 포괄하는 ‘반도체 노동자의 건강과 인권지킴이 반올림’으로 발전하였다.
노동자들은 오랜 시간 투쟁해왔지만 아직까지 소송과 사움을 진행 중이다. 이처럼 삼성의 행위를 강제할 수 있는 법이 없다는 것과 노동자가 산업재해를 입증해야 할 책임을 진다는 법을 볼 때, 지금 우리나라의 법은 노동자, 즉 인간이 아닌 기업을 위해 있는 불공정한 상황임을 알 수 있다. 즉, 책에서 말한 바와 같이 현재 우리나라는 경제적인 것이 정치적, 법적 주권을 가지고 있다. 이제는 경제적인 것이 인간까지도 지배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