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6. 국가대사에 끼여든 위소보 "산 아래의 포위망을 뚫기가 매우 어려운 척 가장하고 다시 절간으로 되돌아 올라오도록 하시오. 하지만 그때 사오 십 명의 라마들을 사로잡 아 오시오." 징심은 말했다. "방장의 뜻은 그 라마들을 인질로 삼아 경거망동하지 못하도록 하자는 것입니까? 만약 그렇다면 잡아오는 라마들의 배분이 높으면 높을수록 좋지 않겠소이까?" "대라마들을 잡는다는 것은 아무래도 쉬운 노릇이 아니고 또 많은 살상 을 면치 못할 것이오. 그러니 우리들은 수십 명의 소라마들만 잡아오면 충분할 것이오." 뭇승려들은 그의 뜻을 충분히 알아차리지 못했으나 방장의 명이라 모두 영을 받들어 절을 나섰다. 얼마 후 산 허리께에서 고함 소리가 크게 일었다. 위소보는 고루(鼓樓) 에서 구경을 했다. 서른 여섯 명의 소림사 승려들이 라마떼들 안으로 뛰어들었다. 이어 칼빛이 번쩍이는 가운데 서로 공방전이 벌어졌다. 삼십 육 명의 승려들은 모두 소림사의 고승들이어서 일반 라마들은 자 연 그들의 적수가 되지 못했다. 수십 장을 뚫고 나가자 길을 막는 라마 들이 점점 더 많아지게 되었다. 징심등은 주먹으로 치고 발로 차는가 하면 손바닥으로 내려치고 손가락으로 찔렀다. 삽시간에 수십 명이 쓰 러졌다. 징심은 소리 높이 외쳤다. "적의 세력이 너무나 커서 달려 나갈 수 없으니 잠시 절로 돌아가 다시 방법을 강구하도록 하세!" 그의 내력이 심후해서 이 몇 마디의 고함 소리는 멀리까지 울려퍼져 산 골이 울릴 지경이었다. 징통 역시 소리 높이 외쳤다. "뚫고 나갈 수 없으니 어떻게 하면 좋지요?" "모두들 라마를 잡아가세." 뭇승려들은 제각기 한두명의 라마를 잡아 몸을 날려 절안으로 달려 들 어왔다. 위소보는 싱글벙글 웃으면서 절문 앞에서 그들을 맞아들였다. 사람의 수를 헤아려 보니 잡아온 사람들은 사십 칠 명이나 됐다. 문수전 안으로 들어가자 위소보는 입을 열었다. "이 녀석들의 옷을 모조리 벗기시오. 그리고 사람마다 열 여덟곳의 혈 도를 짚어 후원의 창고 안에 감금하도록 하시오." 뭇승려들은 방장의 이와 같은 지시가 정말 헤아리기 어렵다고 생각했 다. 그러나 즉시 사십 칠 명의 라마들을 발가벗기고 몸의 혈도를 짚고 감금시켰다. 위소보는 합장하고 말했다. "이 세상의 뭇색상(色相)은 모두 헛것이고 없는 것이외다. 나도 없고 사람도 없으며, 화상도 없고 라마도 없는 것이외다. 공이 바로 색이고 색이 바로 공이외다. 화상이 라마이고 라마가 즉 화상이외다. 여러 사 질께서는 모두 다 가사를 벗으시고 라마의 옷으로 갈아입도록 하시오." 뭇승려들은 모두 다 아연해져서는 서로의 얼굴을 쳐다보았다. 위소보는 큰소리로 부르짖었다. "쌍아, 그대는 이리 와서 나를 소라마로 분장시켜 다오!" 쌍아는 줄곧 대전 밖에서 기다리고 있다가 그 말을 듣고 대전안으로 들 어왔다. 그리고는 가장 작은 라마의 포자(袍子)를 집어 들고 그에게 바 꿔 입혔다. 위소보의 체구는 왜소해서 그 포자는 여전히 너무 컸다. 그 리하여 비수를 뽑아 포자 아랫도리와 소맷자락을 한 토막씩 잘라내고 허리를 허리띠로 졸라맸다. 그리고 라마관을 쓰게 되자 그야말로 영락 없는 소라마였다. 위소보는 쌍아에게 말했다. "그대도 소라마로 분장을 해라." 징광이 물었다. "사숙께서 라마의 복색으로 바꿔 입는 것은 무엇 때문이죠?" 징관은 말했다. "설마 하니 우리더러 라마에게 투항하여 황교로 개종하라는 것은 아니 겠죠?" 위소보는 말했다. "아니외다. 모두들 라마로 분장해서는 우르르 뒤쪽에 있는 조그만 절간 으로 몰려가 옥림과 행치, 행전, 세 화상을 잡아서는 그들의 혈도를 짚 고 다시 그들에게 라마의 옷을 입히는 것이외다......" 징통은 거기까지 듣더니 손뼉을 치며 좋아했다. "정말 묘책입니다! 묘책입니다! 우리 수십 명의 가짜 라마가 어둠을 타 고 산 아래쪽으로 내려간다면 뭇라마들은 진짜와 가짜를 분간하지 못할 것입니다." 뭇승려들은 일제히 좋다고 말했으며 대뜸 환한 얼굴을 지었다. 그런데 그들은 위소보의 이와 같은 묘책이 바로 가짜 기녀로 분장하여 곤경에 서 빠져나오게 되었던 옛날 지혜를 그대로 써먹은 것임을 이해하지 못 하고 있었다. 징광은 주저했다. "하지만 행치대사 등 세 분의 위엄을 거슬리게 되었으니 불경스러운 죄 를 짓는 것이 아닌가?" 위소보는 말했다. "아미타불, 그들 세 분의 목숨을 구하는 것은 그야말로 삼 칠이 이십 일이라고 이십 일 층의 불탑을 만들어 세우는 것보다 낫지 않소이까? 조그만 위엄을 거슬리는 것은 뜨거운 불길에 몸을 태우는 것보다 낫소 이다." 징관은 말했다. "사숙의 말씀이 옳습니다." 뭇승려들은 일제히 승포자락을 벗고 라마들의 옷으로 갈아입었다. 뭇승 려들은 평소 계율을 엄히 지켜 왔으며 근엄하면서도 장중한 태도를 지 어 왔다. 하지만 이때 그들은 위소보와 더불어 엉터리 같은 짓을 하고 라마들의 옷을 입게 되자 그 야릇하고 괴상한 모습에 서로 얼굴을 쳐다 보며 킥킥 웃었다. 위소보는 말했다. "각자는 승포를 싸서 이 곤란한 처지에서 벗어난 이후 다시 바꿔 입도 록 하시오. 산을 달려 내려가게 되었을 때 만약 흩어지게 된다면 부평 현 길상사(吉祥寺)에서 모이도록 합시다." 그는 쌍아에게 은자와 물건을 찾아 보따리로 만들어 어깨에 짊어지도록 했다. 날이 어둑어둑해지기를 기다려 위소보는 말했다. "모두들 어굴에 재와 흙으 바르도록 하시오. 그리고 각자 몸에 한 통의 물을 들도록 하시오. 이제 손을 쓰도록 합시다." 뭇승려들은 그 지시를 받자 모두 다 즐거워했으며 믿어 의심치 않고 그 말을 좇았다. 즉시 그들은 흙을 집어서는 얼굴에 문지르고는 한 통의 물을 들고 무기를 갖추었다. 그리고 일제히 산 뒤로 달려갔다. 옥림과 행치, 그리고 행전 세 사람은 이미 분신하기로 결심을 하고 마 당에 장작과 풀들을 쌓아놓고 몸에 향유를 발랐다. 뭇라마들이 공격해 오기를 기다려 그들에게 자기의 몸을 던져 불태운다 는 사실을 밝힌 후 불을 지르려고 했다. 그런데 사전에 아무런 조짐도 보이지 않다가 뭇라마들은 느닷없이 들이닥쳤다. 그러다가 오로오로(嗚 嗚 ),화차화차(花差花差)라는 서장말 같기도 한 괴상한 소리가 크게 일 더니 수십 명의 라마들이 바로 절간 안으로 들이닥치는 것이 아닌가? 옥림은 낭랑히 외쳤다. "여러분들은 잠깐 기다리시오. 노납이 몇 마디 할 말이 있소..." 그런데 그 말이 미처 끝나기도 전에 그의 머리위에 한 통의 냉수가 퍼 부어졌다. 그리고 곧이어 수십 통의 냉수가 다투어 세 사람의 몸에 뿌 려졌다. 쌍아가 달려들어 행전의 혈도를 짚었다. 그리고 행치는 무공을 모르고 있고 옥림은 무공이 약하지 않았으나 손을 써서 항거하기를 원하지 않 았다. 따라서 혼란 속에 모두 다 혈도를 짚히고 말았다. 뭇승려들은 재 빨리 손을 써서 세 사람의 승포를 벗겨 버리고 라마의 승복을 세 사람 에게 입혔다. 쌍아는 촛대를 들고 마당에 쌓아 놓은 장작더미와 풀더미에 불을 질렀 다. 위소보는 행전의 황금저가 법전 밑에 놓여 있는 것을 보고 가져 가 려고 했다. 그러나 황금저는 너무나 무거워 들 수가 없었다. 그러자 징 통이 손을 뻗쳐 그것을 잡아쥐었다. 위소보가 손을 내두르자 뭇승려들은 행치 등 세 승려를 가운데 세우고 동쪽 길로 내려갔다. 수십 장을 달려가자 조그만 절간에서 검은 연기와 화광이 충천하는 게 보였다. 산 허리께의 라마들은 불길이 치솟는 것을 보고는 큰소리로 놀 라 부르짖었으며 대뜸 사방이 크게 어지러워졌다. 뭇승려들은 어느덧 산 아래에 도달했다. 그 조그만 절간은 이미 지붕까 지 불길이 치솟아 올라 있었다. 징통은 말했다. "저 조그만 절간이 불길에 완전히 휩싸이게 되고 그들이 또 행치대사를 찾지 못하게 된다면 행치대사가 이미 조그만 절간 안에서 타죽은 줄 알 고 단념하고 다시 방해를 놓지 않으면 좋을 텐데......" 위소보는 징관에게 행치 등 세 사람의 혈도를 풀어 주라고 말하고 사과 했다. "정말 실례되는 점이 많았습니다. 아무쪼록 너무 탓하지 마시기 바랍니 다." 행전은 큰소리로 갈채를 보냈다. "정말 묘책이요, 묘책이외다. 모두들 가볍고도 수월하게 도망쳐 나올 수 있었구려. 방장대사, 그대는 우리들의 목숨을 구했으니 감사하다는 말을 해도 부족한 판인데 어찌 탓할 수가 있겠소이까?" 행치가 결심을 하고 자기 몸에 불을 질러 이 세상을 등지려고 했을 때 행전은 충성심이 강한 나머지 주인을 따라 죽으려고 했다. 그러나 그의 마음속에는 역시 죽고 싶은 마음이 없었다. 이제 커다란 액겁에서 벗어 나게 되자 자연 기뻐서 어쩔 줄을 몰라했다. 그때 갑자기 맞은편 산길에서 발걸음 소리가 울려퍼지더니 한떼의 사람 들이 재빠른 걸음으로 달려왔다. 징통이 말했다. "사숙, 한떼의 라마들이 공격해 옵니다." 위소보는 말했다. "우리들은 앞으로 달려 나가며 입으로 오랑캐의 말을 하도록 합시다. 그리고 그들을 대하게 되었을 때 얼굴에 미소를 띄우고 손을 뻗쳐 산위 를 가리키도록 합시다." 뭇승려들은 행치 등을 가운데 두고 보호한 채 큰길을 따라 앞으로 달려 나갔다. 이때 산모퉁이 저쪽에서 한 떼의 사람들이 달려 나왔다. 그들의 손에는 등롱과 등불이 들려 있었는데 라마들이 아니었고 모두다 산 위로 예불 을 하러 가는 향객(香客)들이었는데 목에는 누런 푸대자루를 매고 있었 다. 그런데 그 푸대자루 위에는 건성진향(虔誠進香)이라는 커다란 글자 들이 씌어 있었다. 이때 향객들 가운데서 한 명의 사내가 걸어 나오더니 큰소리로 호통쳐 물었다. "당신들은 무엇하는 사람들이오?" 이 사람은 체구가 매우 우람했고 음성이 우렁찼다. 위소보는 그를 보자 크게 기뻤다. 그는 바로 어전시위총관인 다륭이었다. 그는 즉시 달려 나가며 부르짖었다. "다형, 소제가 누구인지 잘 보시오." 다륭은 놀람과 기쁨에 얽혀 말했다. "아니...... 위형제가 아니오? 그대가......그대가...... 이곳에는 웬 일이오? 어찌하여 소라마의 모습을 하고 있소이까?" "다형은 또 어떻게 이곳에 오셨소이까?" 이와 같은 말을 하고 있는 사이에 다륭의 등뒤로 다시 한떼의 향객들이 달려왔다. 앞장을 선 향객들은 바로 조제현이었다. 위소보는 이를 보자 이 향객들이 모두 어전시위들이 분장한 것임을 알 수 있었다. 그리고 보니 그들 가운데 태반이 알고 있는 사람들이 아닌가. 뭇시위들은 그를 에워싸고 매우 다정하게 굴었다. 위소보는 나직이 다륭에게 물었다. "황상께서 그대들을 보내셨소?" "황상과 태후께서 오대산으로 예불을 드리고자 오셨소. 지금 바로 연경 사 안에 계시다네." 위소보는 놀람과 기쁨에 얽혀서 말했다. "황상께서 오대산에 오셨단 말이오? 그것 참 잘되었소. 정말 잘 되었소 이다." 그는 속으로 생각했다. (그 늙은 갈보가 이곳에는 무엇하러 왔지? 노황야는 그녀를 죽도록 미 워할텐데......) 얼마 후 다시 한떼의 효기영 군관과 병사들이 달려왔다. 모두 다 향객 으로 분장하고 있었다. 위소보는 물었다. "이번에 북경에서 오대산으로 온 향객은 모두 몇 명이나 되시오." 다륭이 나직이 말했다. "우리 어전시위들 이외에도 효기영, 전봉영(前鋒營), 호군영( 軍營)등 이 모두 어가를 따라 이곳으로 왔소이다." "그렇다면 적어도 삼사 만의 관병은 되지 않겠소?" "모두 삼만 사천여 명이나 되오." "어가를 보호하는 뭇 영(營)의 총관은 누구시오?" "강친왕이외다." "그렇다면 옛친구로군." 그는 조제현에게 손짓을 해서 그가 다가오기를 기다려서는 말했다. "조형, 그대가 가서 강친왕에게 보고를 하시오. 나는 인마를 움직여서 한 가지 큰일을 해야겠소. 사태가 다급하니 그의 지시를 따를 수가 없 으니 빨리 가서 허락을 받아오도록 하시오." 조제현은 대답을 하고 달려갔다. 곧이어 효기영의 정황기도통령 찰이주 역시 도달했다. 위소보는 말했 다. "다형. 도통도인, 수천 명의 서장 라마들은 황상께서 예불을 하려 오신 다는 소문을 들었는지 지금 청량사를 겹겹이 에워싸고 반란을 일으키려 하고 있소. 그대들 두 분이 즉시 가 그 반적들을 제거하시오. 그렇게 된다면 커다란 공로를 세우게 되는 것이외다." 두사람은 크게 기뻐서 일제히 위소보에게 사의를 표했다. "위대인이 우리들에게 공로를 넘겨 주시니 정말 무엇으로 보답을 해야 할지 모르겠구려." "모두들 충심으로 황상을 위해 일을 하는 것인데 어찌 너니 나니 나눌 수 있겠소? 이것이야말로 복이 있으면 함께 누리고 어려움이 있으면 함 께 겪자는 것이 아니겠소." 두 사람은 즉시 명령을 내려 사방의 산길을 지키도록 했다. 그리고 맹 장들과 정예병을 불러 모아 산 위로 공격해 올라갔다. 위소보는 큰소리로 부르짖었다. "성상(聖上)께서는 인자하시고 영명하시며 호생지덕이 있소이다! 그대 들은 그저 반적만 사로잡고 인명을 더 살상하지는 마시오! 성상께서는 조생어탕(鳥生魚湯;옛날 요순우탕 등의 어진 제왕들을 가리킴)이시고 형편없는 황제가 아니기 때문이외다!" 뭇시위들과 친병들은 일제히 대답했다. 그런데 이 몇 마디의 말은 노황제보고 들으라고 한 말이었다. 소황제에 게 아첨을 하는 것보다 더욱더 영험하고 효과가 있을 것이라고 내다보 았기 때문이었다. 그는 몸을 돌려 행치의 앞으로 나아가 말했다. "세 분 대사님, 우리들이 옷을 걸치고 있는 모양이 꼴불견이니 우선 앞 의 금각사로 가서 옷을 바꿔 입도록 하십시오." 행치 등은 고개를 끄덕였다. 일행은 금각사에 이르렀다. 위소보는 절안으로 들어가자마자 일천 냥의 은표를 꺼내 주지에게 내밀고 말했다. "잠시 보찰을 빌려 휴식을 취하도록 하겠소이다. 모든 것은 더묻지 마 시오. 한 마디 질문하는 데 대하여 열 냥의 은자를 제하도록 하겠소. 한 마디도 묻지 않는다면 이 일천냥의 은자는 모두 향촉비가 될 것이 오." 주지는 갑자기 거금을 얻게 되자 기뻐 어쩔 줄 몰랐다. "사형께서는......" 그러다가 그는 갑자기 입을 멈추고 약간 당황해하더니 말투를 바꾸었 다. "......차 한잔을 마셔야겠죠?" 그리고 총총히 안으로 들어가더니 차를 들고 나왔다. 위소보는 절을 나와 암암리에 명령을 내려 백 명의 어전시위들로 하여 금 금각사 사방을 지키게 했다. 그리고 또 두 명의 시위에게 당부하여 황상에게 이렇게 보고토록 했다. "소신 위소보의 직책이 너무나 중대하여 함부로 떠날 수 없어서 삼가 금각사에서 기다리겠습니다." 두 명의 시위는 응락하고 몸을 돌렸다. 뭇승려들은 옷을 바꿔 입고 앉아서 쉬었다. 이때 산 위에서 고함소리가 크게 일었다. 시위와 친병들이 어느덧 라마들을 포위한 모양이었다. 한 참동안 시끄러운 소리가 들리더니 이윽고 그 소리가 점점 사그라졌다. 다시 반 시진이 흐르자 갑자기 사방이 조용해졌다. 한참 후에 수십명의 발걸음 소리가 멀리서부터 가볍게 들려오더니 절밖에 이르러 멈추었다. 곧이어 발자국 소리가 나는 가운데 한 떼의 사람이 절안으로 들어왔다. (소황제가 도달했구나.) 그는 비수를 뽑아서는 손에 들고 행치가 쉬고 있는 승방 밖을 지켰다. 얼굴은 자연히 충심으로 주인으로 지키고 백 번 죽음도 불사하겠다는 표정을 짓고 있었다. 십여 명의 간단한 옷차림을 한 시위들이 재빠른 걸음으로 달려왔다. 그 리고 손에 등롱을 들고 양쪽으로 늘어섰다. 한 명의 시위가 나직이 호 통을 쳤다. "빨리 칼을 거두시오!" 위소보는 뒤로 몇 걸음을 물러나 등을 문 쪽에 기대고 비수를 비스듬히 쳐들었다. 그야말로 한 사람이 지키고 있으면 만 사람이라도 뚫고 들어 갈 수 없다는 기세를 보였다. 그런가 하면 또한 호통을 내질렀다. "선방 안에는 뭇대사들이 조용히 휴식을 하고 있소! 그 누구도 다가와 잔소리를 하지 마시오!" 이때 몸에 남색 장포를 걸친 젊은이가 다가왔다. 바로 강희황제였다. 위소보는 그제서야 비수를 갈무리하고는 앞으로 나아가 큰절을 하며 나 직이 말했다. "황상, 크게 기뻐하십시오. 노......노...... 노법사께서 안에 계십니 다." 강희는 떨리는 음성으로 말했다. "그대가 나를 대신해서...... 통보를 해주게." 그리고 몸을 돌리더니 손짓을 했다. "그대들은 모두 물러가라!" 뭇시위들이 물러간 이후 위소보는 선방의 문을 두어 번 가볍게 두드리 고 말했다. "회명이 뵈옵기를 원합니다." 한참 시간이 걸렸으나 안에서 대답하는 소리가 없었다. 강희는 참을 수 없어 한 걸음 다가서며 문을 두 번 두드렸다. 위소보는 손을 내저으며 아무 소리 말라는 시늉을 했다. 이렇게 되자 강희는 목구멍까지 올라왔 던 부황(父皇)이란 소리를 억지로 삼킬 수밖에 없었다. 다시 한참의 시간이 흘렀다. 그제서야 행전이 말하는 소리가 들렸다. "방장대사, 사형은 이미 공문(空門)으로 뛰어든 몸이라 속세의 인연은 끝이 났소이다. 그러니 아무쪼록 바깥에 계신 분에게 그의 청수(淸修) 를 방해하지 말라고 전해 주십시오." 위소보는 고개를 돌려 강희를 바라보았다. 그의 안색은 참담했다. 강희는 이미 참을 수 없다는 듯 갑자기 대성통곡을 하였다. 위소보는 두 손으로 가슴팍을 크게 몇 번 두들겼다. 그리고는 잇달아 소리내어 울었다. 한편으로 울음을 터뜨리면서 한편으로는 부르짖었다. "나는 이 세상에서 아버지도 없고 어머니도 없는 고아로구나! 외로운 신세로서 나를 귀여워할 사람이 없구나! 사람 노릇을 한다고 무슨 재미 가 있으랴. 차라리 머리를 부딪쳐 죽어 버리는 것이 깨끗하겠다." 거짓으로 울음소리를 내는 것은 그가 어릴 적부터 익숙해진 장기라고 할 수 있었다. 그의 눈에서는 눈물이 주르륵 쏟아졌고 그의 울음소리는 매우 슬프게 들렸다. 이때 드륵! 하는 소리와 함께 선방 문이 열렸다. 행전이 문앞에 서서 입을 열었다. "소시주께서는 들어오십시오." 강희는 슬픔과 기쁨에 얽혀서는 곧장 방안으로 들어가 행치의 두 다리 를 얼싸 안고 대성통곡을 했다. 행치는 가볍게 그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말했다. "이 바보 같은 아이야, 이 바보 같은 아이야." 그리고 눈물을 주르륵 흘렸다. 옥림과 행전은 고개를 숙인채 선방에서 나왔다. 그리고 문을 닫아주었 다. 위소보는 정신을 가다듬고 귀를 기울여서 선방 안에서 들리는 행치와 강희 부자 두 사람이 하는 말소리를 들었다. 강희의 울부짖는 소리가 들렸다. "부황, 정말 그리워 죽을 뻔했습니다." 행치는 나직이 뭐라고 몇 마디 말을 했다. 그러자 강희가 울음을 멈추 었다. 두 사람이 말하는 소리는 지극히 낮아서 위소보는 한 마디도 들 을 수가 없었다. 그는 호기심이 많았지만 방문 틈을 살짝 열고 귀를 기 울일 수도 없어서 그저 문밖에 서서 기다렸다. 한참 후에야 어렴풋이 강희가 단경황후를 들먹이는 소리를 들을 수 있 었다. 위소보는 속으로 생각했다. (지난번 노황야께서는 나에게 소황제에게 전하라고 하시면서 늙은 갈보 를 괴롭히지 말라고 했다. 나는 그 말을 젖혀 두고 말씀드리지 않았는 데 지금 노황야께서는 마음이 달라졌는지 모르겠구나.) 잠시 후 행치가 말하는 소리가 들렸다. "오늘 내가 너와 만난 것은 인연이 지나친 일이다. 차후로는 다시 찾아 오지 말아라." 강희는 아무 소리도 하지 않았다. 행치는 다시 말했다. "네가 사람을 보내 나를 시중들어 주니 너의 효성은 갸륵하다 하겠으나 출가인은 마겁(魔 )을 누차 겪어야 하는 법이다." 잠시 동안 두 사람은 나직이 뭐라고 말을 주고받더니 행치가 말하는 소 리가 다시 들렸다. "이제 너는 가보아라. 그리고 몸조심하고 백성을 사랑해라. 백성을 사 랑하는 것이 바로 나에게 효성을 다하는 것이다." 강희는 그래도 헤어지기가 아쉬운 듯 떠나려 하지 않았다. 끝내 발걸음 소리와 함께 방문이 열렸다. 행치는 강희의 손을 잡고 문 밖으로 걸어 나왔다. 부자 두 사람은 잠시 동안 서로 마주보았다. 강희는 부친의 손을 꼭 잡 았다. 행치가 말했다. "너는 정말 훌륭했다. 나보다 훨씬 낫다. 나는 무척 마음이 놓이는구 나. 너는 안심하도록 해라." 이어서 가볍게 그의 손을 뿌리치고 방안으로 들어가 방문을 닫았다. 잠 시 후 덜커덕 하더니 문을 거는 소리가 들렸다. 강희는 문앞에 엎드려 여전히 흐느끼기를 그치지 않았다. 위소보는 한 편에 서서 그와 함께 눈물을 흘렸다. 강희는 한참 동안 눈물을 흘리더 니 위소보의 손을 잡았다. 그리고 어깨를 나란히 하고 정원 앞 돌계단 위에 앉아 손수건을 꺼내 눈물을 닥았다. "소계자, 부황께서는 네가 매우 훌륭했다고 하시더구나. 하지만 네가 시중드는 것을 그만두라고 하셨단다. 부황께서는 신하들이 너무나 치밀 하게 받들고 보호한다면 오히려 그 어르신으로 하여금 출가인답지 않게 만든다고 하시더구나." 출가인이란 말을 하게 되자 그는 다시 눈물을 흘렸다. 위소보는 노황야가 그가 시중을 다시 들 필요가 없다는 말을 했다고 했 을 때 흐뭇하기 짝이 없었다. 그러나 얼굴에는 조금도 기쁜 빛을 띄지 않았다. "노황야를 해치려는 사람이 무척 많습니다. 황상께서는 어쨌든 방법을 강구하시어 암암리에 보호를 해야 합니다." "그것은 반드시 그렇게 해야겠지. 그 고약한 라마들, 흥! 제기랄! 도대 체 무슨 음모와 관계가 있는 것일까?" "사부님, 쌍소리가 늘었군요." 강희는 얼굴에 한 가닥 미소를 띄웠다. "나의 누이가 시위들에게 배워 온 것이야. 그녀와 태후께서도 따라서 산 위에 오셨다네......" 그러나 곧 안색을 굳히며 말했다. "부황께서는 그녀들을 보고 싶지 않다고 하셨다네." 위소보는 고개를 끄덕였다. 강희는 말했다. "소계자, 너는 정말 훌륭하다. 이번에 부황을 구했으니 공로가 적지 않 다." "소신은 별다른 공로가 없습니다. 황상께서 그 누구를 파견하시더라도 해낼 수 있는 일을 했을 뿐입니다." "그렇지 않네. 부황께서는 자네가 그 어르신의 뜻을 잘 받들어서 한 사 람에게도 상처를 입히지 않고 액난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고 칭찬을 하 더군." "소신은 노황야께서 불을 질러 스스로 몸을 태우려고 하시면서 몸을 던 져 죄업을 가라앉히겠다고 하셨기 때문에 깜짝 놀라 혼이 다 나갈 정도 였으며 똥 오줌을 바지에 갈길 정도였습니다." 강희는 놀라 물었다. "뭐라구? 불을 질러 스스로를 태우겠다고? 그리고 몸을 던져 죄업을 사 하겠다고 하셨단 말인가?" 위소보는 있는 말 없는 말을 보태서 경과를 이야기했다. 이야기를 듣고 난 강희는 등줄기에서 식은땀이 흘러내리는 것을 느꼈다. 위소보는 다 시 말했다. "그저 소신이 다급한 김에 노황야에게 한 통의 냉수를 끼얹게 했으니 그것이야말로 크게 불경스러운 행동이었습니다." "그대는 주인을 보호하고 싶은 마음이 간절하여 그렇게 하지 않았는가? 잘했네, 잘했어." 그는 선방쪽을 바라보며 말을 이었다. "노황제께서는 나에게 백성들을 사랑하시라고 하시면서 영원히 세금을 증가하지 말라고 하셨네. 그 한마디 말은 지난번에도 자네가 나에게 들 려 주었지. 이번에 노황야께서 친히 당부하시니 영원히 잊지 못할 것이 네." "도대체 세금이 어떻다는 것입니까?" "세금이란 나라에서 백성들에게 거두어들이는 돈이 아닌가. 명나라의 황제들은 지극히 사치를 좋아했다네. 거기다가 군사를 일으켜 싸움을 하게 되었을 때 돈이 모자라면 명령을 내려서 백성들로 하여금 더 많은 세금을 바치도록 했지. 명나라에는 탐관오리가 많아서 황제가 일천만 냥의 세금을 거두고자 하면 크고 작은 관리들이 적어도 이천만 냥은 더 긁어 모았다네. 그렇지 않아도 백성들은 궁하기 이를 데 없는 몸인데 조정에서는 작년보다 올해에 세금을 더 징수하고 내년에 세금을 더 징 수하니 백성들이 어찌 밥을 먹을 수 있겠는가. 이것이야말로 관가에서 백성들이 반란을 일으키도록 핍박한 것일세." "알겠습니다. 원래 명나라 백성들이 반란을 일으킨 것은 오히려 황제와 벼슬아치들이 나쁘기 때문이었군요." "그렇지 않구? 명나라 숭정(崇禎)연간에 천하의 백성들은 모두 먹을 것 이 없게 되었네. 그래서 동쪽에서도 반란을 일으키고 서쪽에서도 반란 을 일으키게 되었지. 하남에서 일으킨 반란을 평정하게 되면 협서성에 서 다시 반란을 일으켰네. 산서성의 반란을 진압하게 되면 사천성에 또 다시 반란이 일어나곤 했지. 그 곤궁한 사람들은 동쪽에서 서쪽으로 떠 돌아 다니며 노략질을 했는데 목숨을 연명하기 위해서였지. 명나라는 바로 이러한 곤궁한 사람들의 손에 망한 것이지. 그들 한나라 사람들은 떠돌이 도적들이 난을 일으켰다고 했지. 기실은 난민이 떠돌이 도적이 된 것은 모두 다 조정에서 그렇게 몰아세운 탓이라네." "원래 그랬군요. 노황야께서 황상에게 영원히 세금을 더 추가하지 말라 고 하셨고 그렇게 된다면 천하에는 떠돌이가 없게 되겠군요? 황상께서 는 조생어탕이시니 철통같은 강산은 그야말로 만세,만세,만만세로군 요!" "요순우탕의 노릇을 하는 것이 어찌 수월한 노릇이겠나?" 위소보는 속으로 생각했다. (천지회나 목왕부의 사람들은 청나라 오랑캐들이 우리 한나라의 강산을 차지했다고 해서 하나같이 이를 부드득 갈고 있다. 소황제는 명나라의 황제가 나쁘다며 오히려 그들 오랑캐의 황제가 좋다고 한다. 그러나 그 것은 대단한 일이 못 된다. 모릇 사람이라면 자화자찬하기 마련이 아닌 가 말이다.) 강희는 다시 말했다. "부황께서는 또 나에게 말씀하셨다네. 이 몇 년간 그가 조용히 수도를 하면서 참선한 결과 우리 만주사람들이 옛날에 한 짓과 소행을 생각하 면 종종 부끄러워져서 등줄기에서 땀이 흘러내린다고 하셨네. 명나라 숭정은 바로 유족(流族)이자성(李自成)이 핍박하는 바람에 죽게 되었는 데 오삼계가 우리 청나라의 군사를 빌어서는 이자성을 때려 부수게 되 었고 명나라 황제의 원한을 갚아주었다. 그러나 한나라 백성들은 대청 나라에 고맙다고 생각하기는커녕 오히려 우리들을 원수처럼 여기고 있 다. 그대는 이게 무슨 까닭인지 알겠는가?" "아마도 그들이 멍청한 탓이겠죠. 본래 천하에는 멍청한 사람들이 많고 총명한 사람들은 적습니다. 아니면 그들이 은혜를 입고도 의리를 저버 렸는지도 모를 일이죠." "그렇다고는 할 수 없네. 한나라 사람들은 우리들을 오랑캐라고 하며, 외족(外族)이 그들의 아름다운 강산을 점령했다고 한다네. 청나라 병사 들이 중원으로 들어와 도처에서 살인방화를 일삼고 무수한 백성을 해쳐 죽였으니 우리 만주인을 뼈에 사무치도록 증오하는 것도 무리는 아닐 세." 위소보는 본래 한나라 사람이었다. 그런데 강희는 그에게 정황기의 만 주 사람이라는 자격을 내렸기 때문에 위소보에게 말을 할 때 우리 우리 하면서 그를 만주 사람처럼 대우한 것이다. 기실 국가의 대사를 이야기 하는 데 있어서 위소보는 아무것도 알지 못했다. 강희는 막 부친과 해 후를 하게 되자 마음이 격동되었고, 부황의 타이르던 당부를 상기하게 되어 이 나이 어린 심복과 국가 대사를 논하기에 이른 것이다. "소신이 양주에 있을 때 옛날 청나라 병사들이 사람을 죽였던 참혹한 일들을 들은 적이 있습니다." 강희는 한숨을 내쉬었다. "양주십일(揚州十日)과 가정삼도(嘉定三屠)는 그야말로 부지기수의 사 람을 죽였지. 그것은 우리 대청나라에서 한 아주 못된 짓이었다네. 그 래서 나는 성지를 내려 양주와 가정 사람들이 삼 년동안 세금을 바치지 않도록 할 생각이네." 위소보는 속으로 생각했다. (양주의 사람들이 삼 년 동안 전량을 바치지 않게 된다면 모두들 주머 니가 돈으로 두둑해지겠군. 여춘원의 장사가 크게 흥청거리겠는데? 어 떻게 방법을 강구해서 소황제로 하여금 나를 양주로 보내 일을 하도록 하게 할 수 없을까?) |
첫댓글 잼 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