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비집,상어지느러미,황조기,구전대창 - 중국요리 이야기
제비집 요리
제비집요리는 베트남의 왕실 요리였는데, 이것이 중국에 전해지고서 중국 역대 왕조의 임금들에게 아낌을 받게 되었다. 역사상 유명한 미식가인 건륭(乾隆) 임금은 매일 아침식사 때 반드시 달콤한 당연와(糖燕窩) 한 그릇을 먹었고, 그 때문인지 그는 중국의 역대 임금중에서 가장 오래(83세) 살았다고 한다.
제비집은 제비의 둥우리이다.
그러므로 잘 모르는 사람들은 제비집요리하면 고개를 갸우뚱하면서 어떻게 해서 새집이 먹거리가 될 수 있으며, 더구나 해물요리의 하나가 될 수 있는지에 대해서 의아하게 생각하게 된다. 중국요리에서 말하는 제비는 우리 시골 농가의 처마밑에 둥지를 트는 제비가 아니며 제비집도 우리나라의 것처럼 짚이나 흙 따위로 엮은 것도 아니다. 그리고 대부분의 사람들이 오해하고 있듯이 제비가 잡아온 물고기의 살이나 뼈로 지 은 것도 아니다.
이 제비는 중국 남부를 비롯해 동남아시아 여러 나라의 바다 주변의 산과 절벽에 사는 바닷제비의 일종인 금사연(金絲燕)으로서, 목구멍 속의 침샘에서 끈적이는 분비물을 뱉아 내어 누에가 누에고치를 짓듯이 머리를 저어가며 암벽에 발라 집을 만든다.
이렇게 하여 첫 번째로 지은 것이 최상품으로서 흰색을 띄고 있는데 임금에게 진상하였기 때문에 관연(官燕)이라고 한다. 이것을 사람들이 채취하고 나면 제비는 도리 없이 집을 다시 짓는데 침이 넉넉치 못하여 털도 일부 섞어 지으므로 이것은 모연(毛燕)이라고 한다.
때로는 마른침을 뱉다보니 피를 토하는 수가 있어 이것은 혈연(血燕)이라고 한다. 혈연은 붉은 색을 띈다. 한약재로서는 여성들의 피부미용 따위에도 좋은 효과가 있다하여 많은 형태의 제비집 약들이 개발되어 있다. 제비집은 제비가 해산물을 섭취하여 소화시킨 후 토해 낸 물질이기에 영양가가 풍부함은 두말할 나위가 없다.
제비집요리와 중국
중국의 요리 제비집
중국요리는 끊임없이 발전하고 있다. 요즈음 휴전(Fusion)이 유행하지만 중국요리는 옛날부터 그 휴전의 결과로 보여진다. 중국 자체가 보통국가 크기의 나라 15개 정도로 나눌 수 있는 인구와 땅덩어리가 한 국가로 뭉쳐있다. 그것도 미국이나 구 소련처럼 United가 아니고 하나의 단일국가로 곧 바로 China로 표기되고 있다.
그러나 기후대는 아열대부터 한대까지 사막지대부터 고온다습의 열대 우림 지역까지 대부분의 기후대와 토지 조건을 갖추고 있다. 그래서 음식도 지방마다 다양하여 교통이 불편하였던 시절에는 말이 서로 틀리듯이, 음식도 서로 나누어 먹을 수 없었다고 한다. 그러다가 明·淸의 강력한 중앙집권체제는 현재의 북경어로 관화(官話)를 만들어 중앙에서 파견된 관리들을 중심으로 언어를 통일하였고 음식도 황실 요리를 중심으로, 나중에는 북경요리를 중심으로 차츰 휴전음식이 나오기 시작하였다. 이는 황실(궁중)요리는 전국에서 가장 뛰어난 요리사를 불러들여 황실 주방을 구성함에 따라 최고급 지방요리가 Fusion화 되고 북경요리는 북경이 북방에 치우쳐 있어 재료의 한계가 있지만 수백년간 수도의 기능으로 중국 각 지역에서 올라온 요리사와 그들이 운반해 가지고 온 지방재료를 이용하여 요리를 만들어 왔기 때문이다. 또한 재료가 가장 풍부한 대륙 남쪽의 광동성 사람들은 육해공 모든 재료를 음식 만드는데 사용하였다. 그래서 날아다니는 것은 비행기만 빼고, 네 발 달린 것은 책 걸상만 빼고는 모두 요리해 먹을 수 있다고 큰소리 치고 있는 것이다.
중국인의 이러한 노력은 중국을 떠나서도 계속되고 있다. 그 중 하나의 실례가 제비집(燕窩) 요리라고 생각된다. 사람이 먹을 수 있다고 감히 생각해 보지 않은 재료를 이용하여 지금은 세계 최고의 요리로 만들어낸 사람이 바로 중국 사람이다.
金絲燕窩
명의 초기 환관이었던 鄭和가 水軍을 이끌고 동남아를 평정하고 멀리 아라비아 반도까지 내려갔다. 그 이후 동남아의 해상 세력들은 중국의 水軍위력에 눌리고 그 틈을 타서 중국 남쪽에 살던 중국 사람들이 항구를 중심으로 하는 동남아 전 지역에 이민을 나가게 된다. 지금 동남아의 화교들이 이렇게 해서 현지인보다 더 나은 상황에서 현지 상권을 쥐게 된다. 지금부터 200여년 전 태국에 살던 화교가 신기한 것을 발견하였다. 태국의 여러 섬에 날아다니는 金絲 제비(燕)가 집을 짓는 것을 유심히 보게 되었다. 제비 암수가 날아다니는데 집을 지을 때는 수놈이 바위 위에 자신의 침을 내어 줄줄이 둥지를 만들고 있는 것이다. 마치 누에가 실을 뽑는 형상이었다. 그 색깔이 눈부시게 희었다. 제비집이 눈부시게 깨끗하고 물에 넣으면 부풀어오르는 것을 알게 되었다. 항상 음식재료에 관심을 갖고 있던 중국인은 이것이 중국 요리의 재료로서 식용할 수 있다고 판단하였다. 그는 당시 태국 국왕에게 그 제비집 채취권리를 획득하고 근해 바위섬에 지천으로 널려있는 흰 제비집(白燕)을 채취하여 요리한 것이 유명한 제비집(Bird nest) 요리이다.
그 후 중국 화교들은 이 요리를 북경의 大淸皇帝에게 진상(貢品)하였더니 황제도 좋아하였다고 한다. 그 이후로 태국 화교들은 주기적으로 이 白燕을 황실에 진상하여 그 후 官燕 또는 貢燕이라는 이름이 붙었다고 한다. 이 제비집 요리는 특히 정력에 좋다는 소문이 있어 당시 첩을 많이 두고 있던 돈 많은 노인들 사이에 인기가 있었다고 한다. 처음에는 그렇게 많던 白燕이 다 채취되자 금사제비는 자기 집을 잃고 다시 둥지를 만드는데 이번에는 침이 부족하여 자신의 날개 쪽 부드러운 털을 섞어서 둥지를 만들었다. 그리고 없는 침을 억지로 뱉어 내니 목구멍에 피 까지 섞여 나왔다. 이것도 화교들은 채취하여 피를 씻어내고 털을 제거하고 요리 재료로 쓰는데 백연보다 값이 떨어지는 것은 당연하다. 이 제비집을 생긴 모습을 보고 毛燕 또는 血燕이라고도 부른다. 태국의 푸케섬 근처에 주먹처럼 솟아오른 바위섬 주위를 둘러보면 제비집이 간간이 보이는데 백연은 보기 어렵고 해조류, 식물섬유들로 뭉쳐진 제비집이 보인다. 이는 침이 말라버린 제비가 지은 집이기 때문에 식용 가치가 없으므로 채취되지 않고 그대로 있는 것이다. 세계적인 자연보호론자들은 제비집 요리가 금사 제비의 멸종을 가져 온다고하여 요리 자체를 금지하고 있어서 갈수록 제비집 요리를 맛보기가 어려울 전망이다. 그래서 진짜 백연제비집은 구하기도 힘들고 따라서 값도 비싸다고 한다.
지금도 동남아 해상 바위섬의 금사제비 서식지에는 마치 군사 비밀기지처럼 철책을 둘러치고 무장 경비가 지키고 있다. 해적들이 몰래와 제비집을 채취해가기 때문이다. 이 바위섬은 홍콩의 유명한 식당이 섬 전체를 태국 또는 말레이시아 정부로부터 장기 임대하여 금사 제비집을 확보해 두고 있다고 한다. 홍콩의 식당들은 이 제비집을 이용 고급 수프(湯)를 만들거나 코코낫·아몬드 등과 함께 요리하여 후식으로 내놓기도 한다.
제비집
사진 : 제비집 요리.
중국 유명 음식점인 탄자차이(?家菜)는 제비집 요리로 특히 유명하다. 탄자차이는 식재료 사용에 있어 자신들만의 독특한 비법을 가지고 있으며 탕으로 매우 유명한 음식점이다. ‘주방장은 탕으로 승부한다’는 말이 있듯이 이 음식점의 탕은 오랜 전통을 가지고 있으며 타 음식점들과는 다른 독보적인 위치에 있다고 할 수 있다.
탕 속에는 닭, 소시지, 말린 조개관자, 오리 등이 들어가 영양만점이라고 할 수 있다. 탄자차이는 식재료를 매우 엄격하게 엄선하는 것으로도 유명하다. 이곳의 제비집 요리는 태국과 필리핀의 제비집을 사용하고 있으며 정성스러운 손질과 요리로 만들어지고 있다.
제비집 요리는 모양과 색깔도 예뻐 보기만 해도 입맛을 돋우어 준다. 봄에는 간을 여름에는 심장을 가을에는 폐를 겨울에는 신장을 보양해야 좋다는 중의학 이론에 따라 탄자차이는 계절마다 탕 속에 각기 다른 약재들을 넣어 보양식 효과를 한층 더해주고 있다. 겨울에는 제비집 요리 속에 신장을 보양해줄 수 있는 동충하초를 넣는다고 한다.
상어지느러미
전설 속의 중국 유명 화가 장다치엔(?大千)은 종종 사람을 베이징으로 보내 막 만들어진 어떤 탄(?)가의 음식을 사오게 해 난징(南京)에서 즐겼다고 한다. 그가 먹었다는 그 음식이 바로 탄가의 상어지느러미 요리 ‘황먼위츠(???翅)’이다. 탄가에서는 10여 종의 방법으로 상어지느러미를 요리하는데 그 중 황금색을 띄고 인한 진한 탕 맛에 코를 찌르는 향기를 내는 황먼위츠가 으뜸으로 꼽힌다.
황먼위츠의 탕이 입 속으로 들어가는 순간 ‘중용’이라는 단어가 머릿속에 떠오른다. 이 ‘중용’은 탕의 맛이 밋밋하다는 말이 아니라 탕의 짭짤한 맛과 단맛이 각기 튀지 않고 서로 잘 어우러져 있다는 의미이다. 탄가의 현 주방장 리우종(?忠)은 만약 탕을 한 입 먹었을 때 손님이 단맛 혹은 짠맛 어느 하나가 더 많이 느껴진다면 그 음식은 실패한 것이라고 말했다. 단맛과 짠맛이 반반씩 섞인 조리방법은 탄가의 음식 맛을 더욱 돋워주며 남북 모든 지역 사람들의 입맛에도 잘 맞는다.
황먼위츠는 보통 진귀한 필리핀 루손(Luzon) 상어지느러미를 사용한다. 우선 상어지느러미 전체를 따뜻한 물에 불린다. 절대로 급한 마음에 어떠한 첨가제도 사용하지 않아 영양성분의 파괴를 피하고 있다. 조리과정 중 전분으로 걸쭉하게 만들 때 절대로 어떠한 화학성분도 첨가하지 않고 처음부터 끝까지 오직 몇 시간 동안 불에만 의지해 상어지느러미 속의 콜라겐이 모두 탕 속으로 녹아 들게 하기 때문에 진한 탕과 야들야들한 상어지느러미를 만들어낼 수 있는 것이다. 리우종 요리사는 황먼위츠 요리과정 중 모든 단계와 과정이 요리 맛의
성공과 실패에 영향을 줄 수 있다고 말했다. 상어지느러미를 너무 오래 불리면 껍질이 벗겨지고 모래가 달라붙게 돼 씹히는 감에 영향을 줄 수 있다. 또 처음에 비린맛을 없애는데 실패하면 요리가 끝난 후에도 먹기 힘들 정도로 비린맛이 난다고 한다. 만약 조리시간이 부족하면 상어지느러미가 원하는 만큼 부드러워지지 않으며 마지막 간을 맞출 때 실수하면 맛이 서로 부딪혀 실패한 음식이 된다고 한다.
광동요리에서처럼 개운하고 탄력 있는 요리법과는 달리 탄가의 상어지느러미 요리는 부드럽기가 찹쌀떡 같아야 하고 색이 황금색이어야 한다. 그 이유는 탄가가 원래 광동(??)가정의 담백한 맛을 추구했으나 북부지역 음식의 진수를 기초로 북부의 농후한 맛과 접목시켰기 때문이다. 6~ 8시간의 고아 만들어진 상어지느러미는 맛이 진하고 일품이다.
황조기
쉬커(徐克)의 영화 ‘만한전석(??全席)’ 중에는 황조기 요리가 나오는데 주방장의 신의 경지에 도달한 요리 솜씨는 과연 볼만하다. 이 영화 속 주방장은 중상을 입어 미각을 잃어버렸기 때문에 이 환상적인 요리의 맛을 느끼지 못하고 눈으로만 만족해야만 했다.
청나라 황제의 식단 중 으뜸요리로 손꼽히는 황조기 요리는 재료부터 고급이며 요리하기가 매우 번거롭고 어려운 편에 속한다. 그래서 이 요리를 제대로 맛볼 수 있는 음식점도 베이징에서 몇 군데 밖에 안 된다고 한다.
이 요리를 하는데 있어 가장 어려운 점은 세 가지로 꼽을 수 있는데 첫째는 생선 전체의 가시를 도려내는 것이고 둘째는 탕즙을 만드는데 어려움이 있으며 셋째는 탕즙을 부어 조기를 튀기는데 많은 어려움이 있다고 할 수 있다. 탕즙은 제비집, 삭스핀, 전복, 해삼 등 진귀한
8종의 해산물로 만들어져 그 맛이 그야말로 일품이다.
구전대창
중국 요리 구전대창(九?大?)의 명칭 유래에 대해 창자가 9번 감겨져 있기 때문이라는 설과 아홉 가지 절차를 걸쳐 요리가 완성되기 때문이라는 설이 있으며 혹자는 단맛, 쓴맛, 매운맛, 짠맛 등 9개의 다양한 맛이 있기 때문이라고 말하고 있다. 음식점 젠이궁관(健一公?)의 주방장은 구전대창의 명칭 유래에 대해 도가에서 말하는 ‘구전선단(九?仙丹)’에서 유래했다고 밝혔다.
관청요리 중 중요한 자리를 차지하던 산동요리는 바로 북경요리의 전신이라고 할 수 있다. 그래서 옛 북경요리인 구전대창은 바로 산동요리의 주요 요리가 된 것이다. 이 요리는 청나라 광서(光?) 때 지난(?南) 지우화린(九?林) 음식점에서 유명해지게 된다. 이 음식점의 주인은 여러 개의 음식점을 경영하는 부자이며 요리에도 일가견이 있는 사람이었다. 그는 여러 해의 실험과 연구를 거쳐 탕즙이 진하고 맛이 풍부한 홍샤오대창(??大?)을 개발해냈다.
젠이궁관의 주방장은 대창 자체는 내장냄새가 매우 강해 구전대창을 요리할 때 매우 심혈을 기울여 그 냄새를 가시게 하고 있다고 밝혔다. 육두구, 팔각 등의 향료들은 냄새를 없애 줄 뿐만 아니라 건강에도 이로워서 일석이조의 효과를 거두게 해주는 셈이다. 구전대창 요리는 붉은 색의 향기로운 냄새로 식욕을 돋우어 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