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도들 숫자는 많지 않지만 신앙의 가장 기본적인 것에는 철저한 교회 폐지 줍는 노인부터 아이들까지 십일조·주일성수 등 신앙생활에 엄격
경기도 양주시 유양동 주내제일교회(김영환 목사)는 동두천교회, 연희교회, 천광교회 등을 개척한 김삼관 목사가 1958년에 개척한 교회이다. 이후 현 김영환 목사가 18대 주내교회 담임목사로 부임할 때까지 16명의 목회자가 몇 년을 채우지 못하고 그만두는 일이 반복되어 주내교회는 목회자가 잠시 머물다 지나가는 하나의 ‘정거장’ 같은 역할을 했다. 주내교회가 ‘정거장’이 되었던 이유는 다른 무엇보다 주변에 인가가 너무 적어 교인들 수가 부족하고 이로 인해 경제적 어려움이 있었기 때문으로 생각된다. 현재도 교회가 자리 잡고 있는 양주시 유양동에는 주택이 50가구를 넘기지 못해 ‘사람보다 나무가 더 많은 동네’라고 불린다고 한다. 김영환 목사는 겉모습을 보면 굉장히 자유로운 목회자로 보인다. 예배를 인도하지 않을 때는 거의 청바지에 티셔츠를 입고 있으며, 그림 그리기와 사진 그리고 여행을 좋아하는 멋쟁이 아저씨처럼 보이기도 한다. 실제로 김 목사는 주민등록상 나이보다 많이 젊어 보이기까지 한다. 젊은 마음으로 젊게 살고 있는 김 목사에게 비결을 물어 보았다 김 목사는 “열심히 목회를 하지만 또한 열심히 놀기도 한다. 스키도 타러 다니고 틈나는 대로 여행도 많이 다니고 있다. 하나님과의 약속을 지키면서 목회외적인 일에서는 자유를 추구하는 삶을 살고 있다. 사람마다 차이가 있겠지만 나처럼 생각하고 살아가는 사람이 하나쯤 있는 것도 나쁘지 않다고 생각한다. 나를 이해해주고 따라주는 성도들에게 감사할 따름이다”고 말했다. 김 목사가 청바지와 티셔츠를 입고 있는 것에는 개인적인 취향과 함께 농촌목회에 대한 개인적인 확신이 배어 있다. 김 목사는 시골목회를 하면서 머리에 기름을 바르고 양복을 입고 다니는 것보다는 편안한 복장으로 농사를 짓고 삽질을 하는 모습이 보다 자연스럽다고 생각한다. 김 목사는 “예배당과 성전마당 청소를 내가 한다. 그래서 청바지가 편하다. 나의 모습이 마음에 들지 않는 분들도 분명 있을 것이라 생각한다. 나의 모습이 정답은 아닐 수 있지만 이런 목사도 있다고 생각해줄 수 있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1989년 김 목사가 부임할 당시 10명이 채 되지 않았던 주내교회는 현재 100여 명 성도의 규모로 성장했다. 주변에 주택이 거의 없고 찾아오기에도 쉽지 않은 이곳에 100여명의 성도들이 모여 예배를 드린다는 것도 놀랍지만 더욱 놀라운 것은 성도 모두가 제대로 된 신앙생활을 하고 있다는 것이다. 김 목사는 “우리교회 성도들 중에는 건성으로 교회를 다니는 분이 한분도 없다. 아이들도 십일조 생활을 한다. 폐지를 팔아 생활을 하는 분부터 사업을 하는 분들까지 십일조 생활을 당연한 것으로 생각한다. 주일성수와 십일조 생활은 전국 어느 교회와 비교해도 뒤떨어지지 않는다고 자부한다”면서 “숫자는 많지 않지만 신앙의 가장 기본적인 것에는 철저한 교회를 만들려고 노력했다. 성경에서는 좁은 길이 생명의 길이라고 말씀 하셨다. 하지만 현대인들은 큰 교회를 찾는다. 쉽고 편안하기 때문이다. 주내교회를 다닌다는 것은 좁은 길을 가는 것이다. 절대 신앙생활이 편하지 않기 때문이다.”고 말했다. 김 목사는 주내교회 성도들을 보석 같은 성도들이라고 칭찬한다. 좁고 어려운 길을 가는 신앙인 그리고 어디서나 찾을 수 있는 흔한 신앙인이 아니기 때문이다. 김 목사는 “작은교회를 섬기는 성도들은 모두 보석과 같은 성도이다. 특히 우리 성도는 더욱 귀한 분들이라 생각한다. 내가 원칙을 많이 강조한다. 고단한 길을 따라오기 힘들었을 것이다. 그래서 더욱 보석 같다. 성도들 모두 한 분도 빠짐 없이 헌금생활 봉사생활에 열심히 참여한다. 형식적으로 이름만 걸고 대충 흉내만 하는 것이 아니라 진짜 다 드리는 신앙생활을 하고 있다”고 칭찬했다. 주내교회는 성결교회에서 잃어버린 예배를 드린다. 주일예배를 제외한 모든 공예배 때에는 감동이 있을 때마다 통성과 함께 안수기도를 드리며, 찬송은 모든 악기를 동원해 뜨겁게 드린다. 드럼만 4대가 동원된다고 한다. 또한 설교에도 다이내믹하고 뜨거우며 직접적인 선포가 있다. 김 목사는 “나는 전통적인 것만 배웠고 또 그런 것이 편하다. 뒤떨어 졌다는 이야기를 자주 듣기도 하지만 성결교회는 뜨거운 교회 아닌가? 그 뜨거움이 나에겐 편하고 좋다”고 말했다. 김 목사는 은퇴할 때까지 후임목사가 편안하게 목회할 수 있는 환경을 마련하는 것이 꿈이라고 한다. 그것을 위해 지난 20여 년 동안 땅을 사고 교회와 부속건물을 손수 지어 왔다. 김 목사는 “모든 목사들이 당대에 결론을 보려고 하는데, 나는 내 당대에 열매 맺을 능력이 못된다. 이 교회에는 많은 목회자가 거쳐 간 곳이다. 누구하나가 썩어져야 한다. 내가 그 역할을 하고 싶다. 내 이후로 부임하는 목회자가 내가 닦은 터 위에서 활짝 꽃을 피울 수 있도록 바탕을 만들어 주고 싶다. 그것이 주님께서 내게 주신 주내교회에서의 역할이다”고 말했다. 김영환 목사의 외향은 매우 자유로워 보인다. 하지만 신앙은 매우 엄격하고 보수적이다. 부드러움과 엄격함을 함께 조화시켜, 보석과 같은 성도, 보석과 같은 교회를 만들어 가고 있는 주내교회가 잃어버린 영화의 회복을 꿈꾸는 양주시의 발전과 함께 지역사회 내에 ‘성결의 꽃’을 활짝 피우길 기도해본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