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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동부는 미국의 건국 역사를 오로지 간직한 땅입니다. 특히, 필라델피아는 보스턴과 함께 초기 미국이라는 나라를 만든 요람이라 할 수 있죠. 독립선언이 이뤄졌고 헌법이 제정된 곳이기 때문입니다. 미국인들에게 독립과 민주주의의 성지와 같은 그곳, 필라델피아에서 오늘의 여정을 시작합니다. 필라델피아 (Philadelphia)-펜실바니아(Pennsylvania) 주의 도시로, 미국 독립혁명과 산업혁명의 중심지.
미국 북동부를 지나 대서양으로 흐르는 델라웨어 강을 따라 세워진 필라델피아는 미국 수도였습니다. 하지만 이 역사 깊은 도시는 최근 또 다른 별칭으로 불리는 데요. 바로 벽화의 수도입니다. 블록이 굉장히 흔해요. 지금 길거리를 걸어보고 있는데 제 눈을 확 사로잡는 작품이 있습니다. 어마 어마한 벽화가 여기 있습니다. 필라델피아가 요즘 새롭게 떠오르고 있는 벽화 예술의 중심지 거든요. 그런데 이렇게 큰 벽화는 본 적이 없는데 이게 다 모자이크 처리를 한 거 같애요.
그런데 중요한 건 필라델피아 라고 하는 도시의 이름 자체가 ‘형제의 애’를 뜻합니다. 그리고 그 형제애의 핵심에 지금 여기 링컨, 그리고 그 옆으로 흑인노예 해방운동가 였던 프레데릭 더글러스를 그려 넣어 이들이 함께 이룬 노예해방을 기린 것입니다. 프레더릭 더글러스(Frederick Douglas)-흑인 최초의 노예제 폐지운동가. 이들의 우정이야 말로 인종을 뛰어넘는 위대한 미국의 유산(Legacy)이죠. 링컨과 더글러스가 노예제도를 끝낸 위업에 대한 내용을 담은 벽화 이쪽은 아프리카, 그리고 아프리카가 어떻게 보면 노예상태로부터 깨어나는 그런 그림을 쫙 그려 놨습니다. 저건 너무 필라델피아 스러운데요.
아프리카에서 노예로 건너와 이 땅에 정착한 흑인들의 역사가 벽화 위에 새겨져 있습니다. 사실 이 벽화들은 흑인의 힙합문화에서 착안한 것이라고 합니다. 여기 주차장 벽면에도 거대한 벽화가 있네요. 어떻게 보면 쓸모 없이 버려진 공간인데 이렇게 예술적으로 승화를 시켜 놓으니까 아주 그럴듯합니다. 방황하는 10대들에게 그래픽티 라는 거리 낙서대신 벽화를 그리게 해 도시를 하나의 야외 미술관으로 만든 것입니다. 그 중에서도 사우스 스트리트 라는 지역에 독특한 공간이 있어서 찾아갑니다.
다양한 색채에 화려한 모자이크가 저를 안내합니다. 여기가 바로 그 유명한 필라델피아 매직 가든 이네요. 마술정원 어떻게 생겼는지 한번 볼까요. 이곳은 아이자이아 재거라는 한 예술가에 의해 탄생한 곳입니다. 필라델피아 매직 가든 (Phildelphia Magic Garden)-모자이크 아티스트 아이자이아 재거(Isaiah Zager)가 버려진 유리나 타일 같은 것들을 이용해 꾸민 갤러리 공간.
그가 아내와 함께 과거 우범지대였던 사우스 스트리트에 고물상을 차리면서 시작됐습니다. 그는 방치된 건물에 깨진 거울과 폐타이 자전거 바퀴 등 버려진 물건을 조각 조각 부쳐서 하나의 예술작품을 만들어 갔는데요. 그렇게 마술을 부린 것이죠. 마치 어른들을 위한 동화 속 세상 같은 느낌이예요. 지금은 관광명소가 된 매직 가든과 함께 이 거리는 르네상스를 맞고 있답니다. 이런 매직 가든과 같은 공간을 통해서 흑인사회가 갖고 있던 소외당했던 사람들의 열정과 분노와 좌절이 예술로 승화할 수 있게 된 것, 그게 이런 공간의 의미가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해보고요.
그리고 이런 운동이 무엇보다 미국이 세워질 당시부터 ‘형제애의 도시’라는 이름으로 만들어진 이 필라델피아에서 시작됐다는 게 굉장히 의미있는 것 같애요. 필리라는 애칭으로도 불리우는 필라델피아에는 여기 매직 가든보다 더 오래되 도시의 명물이 있습니다. 제가 지금 이곳 필라델피아를 대표하는 음식이 있어서 먹어보러 왔습니다. 필리 치즈 스테이크 라고 하는 음식인데 보시면 알 수 있습니다.
필리치즈 스테이크의 원조라는 이 가게는 그 명성 때문인지 비가 오는 이 궂은 날씨에도 사람들이 붐빕니다. 필리 치즈 스테이크는 말이 스테이크지 사실 샌드위치 같은 음식입니다. 빵 사이에 얇게 구워낸 쇠고기와 치즈를 듬뿍 넣은 건데요. 이곳이 1940년에 필라델피아 치즈 스테이크가 처음으로 시작된 곳이라고 합니다. 그래서 세계적인 명사와 정치가들이 이곳에 거의 다 와 봤다고 그러더군요. 저기 가운데 트럼프 대통령 아닌가요. 젊은 시절의 트럼프 대통령이 왔다 갔네요. 5개 주시고 다 넣어주세요. 50달러입니다.
패스트 푸드의 본고장 미국답게 주문을 하자 신속하게 음식이 준비돼 나옵니다. 자, 그러면 이제 시식해 볼까요. 필리치즈 스테이크(Philly Cheese Steak)-얇게 썬 쇠고기 조각들과 치즈를 넣어 만든 샌드위치. 과연 많은 사람들을 사로잡은 그 맛은 어떨까요. 살짝 구운 고기가 양도 꽤나 어마하고 너무 부드럽고 진짜 스테이크 같은 느낌이 나요. 정말 치즈의 풍부하고 진한 맛, 진짜 맛있어요. 예상했던 그 맛, 이걸 다 집더라고요. 시큼한데 엄청 매워요.
지금 이 자리에 유일하게 ‘실베스터 스텔론’이 서 있었다. 사진 말고 저렇게 판이 있는 사람, 저기 보니까 석판인데, 석판이 있는게, 바로 필라델피아를 무대로 전 세계적으로 히트했던 ‘록키’라고 하는 영화 주인공, 실베스터 스텔론이 저 자리에 서 있었다는 걸 알려주는 겁니다. 록키도 이탈리아 사람이거든요. 그리고 이 필리치즈 스테이크를 만든 사람들도 이탈리아에서 이민을 왔던 사람들이예요. 그 사람들이 1930년대 자기들 고향의 맛을 잊지 못해서 그런(자신들이 즐겨먹는) 식재료들을 이용해서 오늘날 미국 사람들이 좋아할 만한 것들을 만들어낸 거죠.
한 마디로 말해서 이민자 문화를 미국문화에 정착하고 발전시키는 데에 어떤 영향을 미쳤느냐. 결국 이게 세계적인 미국문화가 되는데 이 만큼 또 기여를 한거죠. 필라델피아도 참 멋진 도시인 것 같애요. 아프리카와 유럽의 다양한 인종으로 구성되었기 때문에 이 도시에서는 그만큼 풍부한 문화가 발전했는데요. 조지 워싱턴(George Washington, 1732~1799)-미국 건국의 아버지이자 초대 대통령. 미국 초대 대통령 조지 워싱턴의 동상이 버티고 있는 이곳은 미국 7대 미술관 중의 하나인 필라델피아 미술관(Philadelphia Museum of Arts) 입니다. 이 미술관이 정말로 미국을 대표하는 미술관 중 하나지만 요즘은 사람들한테 다른 거로 더 유명하죠. 제가 자라날 때 굉장히 유행했던 ‘록키’ 라고 하는 권투 영화가 있었거든요.
거기에서 ‘실베스터 스텔론’이 항상 훈련할 때 이 계단을 오가면서 훈련하는 장면이 있어요. 그것 때문에 사실은 굉장히 유명해진 그런 미술관입니다. 제가 지금 기억이 잘 나진 않는데 ‘록키’라는 영화에 보면 실베스터 스텔론이 이곳에 와서 필라델피아 시내를 보면서 환호한다고 할까. 자신 스스로 용기를 불러일으키는 정면이 있거든요. 여기 바로 록키 스텝이 있네요. 그리고 지금 수많은 여학생이 저 앞에서 마치 록키 처럼 달려오고 있어요. 정말 재미 있는데요. 지금 이거 찍으려고 오는 것 같은데 지금 다 이 자리를 향해서 뛰어 올라오는 것 같은데요. 이들을 보니 생각나네요.
참피온 결정전을 앞두고 이곳 제단에 뛰어오르는 록키는 영화사에 길이 남을 명장면이었죠. 그리고 함께 떠오르는 이 불멸의 음악, 제리/관광객-이곳에는 록키의 이야기가 있죠. 제가 그 이야기 안에 있는 건 아니지만 과거에 록키가 있던 장소에 지금 제가 있다는게 기분좋아요. 록키음악이 정말 유명하잖아요. 지금 이 필라델피아 미술관은 사람이 아무도 줄을 안 서거든요. 지금 이 동상 앞에만 사람들이 계속 줄을 서서 있어요. 사실 영화 록키는 미국 독립 200주년이 되던 해인 1976년에 개봉한 영화입니다.
진짜 재미 있어요. 아니 록키영화 안봤을 사람들 같은데--- 하지만 영화를 보지 않았어도 여전히 사람들이 록키에 열광하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이게 ‘록키’ 라고 하는 영화가 너무 위대해서가 아니라 실베스터 스텔론이 너무 위대한 배우여서가 아니라 어떻게 보면 록키라는 인물이 상징하는 미국사회의 어떤 이미지, 아메리칸 드림이죠. 정말로 이민자로 맨 밑바닥에서부터 자기의 맨주먹 하나로 일어서는 그 스토리가 아마 사람들한테 감동을 주고 그게 미국사람들, 그리고 관광객들을 이곳으로 불러모우는 것 같애요. 미국사회가 그런 사회죠.
아일랜드인은 아일랜드인으로, 이탈리아인은 이탈리아인대로, 흑인들은 흑인들대로, 아시아계는 아시아계대로, 각자 모여서 자기들의 꿈을 이루기 위해서 노력하는 그런 사회, 그걸 하나로 결집해 내는 제도와 그리고 어떤 이상을 가진 사회, 참 재미있어요. 미국은 이런 다양성 속에 통일을 기하며 번영을 이룬 것인데요. 그 토대가 된 것이 바로 미국 독립 후 수도였던 필라델피아입니다.
지금 이 새벽에 제가 서 있는 곳은 필라델피아입니다. 필라델피아의 ‘독립역사공원’이라고 해서 어떻게 보면 미국의 독립이 시작된 곳이죠. 그리고 이 독립역사 공원 안에는 소위 말해서 미국의 국보 1호라고 할 수 있는 종이 하나 있습니다. 우리에게는 자유의 종이라고 널리 알려진 종인데요. 지금 그 종을 찾아가고 있습니다. 미국독립 국립역사 공원(Independence National Historic Park)-미국 탄생의 발생지. 이곳이 바로 보스턴 차 사건으로 촉발된 미국독립혁명 즉 미국의 독립전쟁이 결실을 맺은 역사의 현장입니다.
리버티 벨. 우리에겐 ‘자유의 종’으로 불리고 있는 어떻게 보면 미국의 국보 1호에 해당하는 그런 유물입니다. 와서 보니까 생각보다 정말로 작아요. 그런데 정말 중요한 건 종의 크기가 아니라 이 종이 어떤 의미를 담고 있느냐죠. 새벽에 와서 보니까 더욱 분위기가 그런 것 같애요. 미국이 처음 시작되는 그 새벽에 이 종이 울렸던 거죠. 자유의 종(Liberty Bell)-1776년 7월 4일 미국 독립선언 후 7월 8일 울렸던 종으로 미국의 자유를 상징함. 지금은 균열이 생겨 종을 다시 칠 수는 없지만 1776년 이래로 독립기념일 등 국가의 주요 행사 때 마다 울렸던 종입니다.
그랬던 종은 처음엔 독립의 종으로 불리다 1800년대에 이름이 바뀐 것인데요. 북부의 노예해방을 주장하는 사람들이 이 종을 자유의 종으로 부르기 시작합니다. 처음에 우리가 선언했던 자유의 범위가 어디까지냐 결국 그것은 흑백의 범위를 뛰어넘어서 모든 사람의 자유까지 확산되어야 하는 거 아니냐. 그리고 그 의미는 여성의 자유로, 제3세계의 자유로, 모든 인류의 자유로 끊임없이 범위가 넓어집니다. “자유의 종은 모든 민주주의 세계의 매우 중요한 상징이다”-前남아프리카 공화국 대통령. 넬슨 만델라-
사실 자유의 종이 있던 곳은 독립기념관 이었습니다. 미국독립기념관 (Independence Hall)-미국독립 선언(1776)과 미합중국 헌법(1787)이 통과 되었던 곳. 원래 펜실바니아주 식민지 정부청사로 지어진 이 건물의 중앙 첨탑에 달려 있었습니다. 안전문제로 종이 지금의 자리로 옮겨지고 시계탑과 종루는 옛모습 그대로 복구해 놓은 것이죠. 미국독립혁명 당시 식민지 정부청사로 혁명군의 중심지가 된 이곳은 이후에도 연방정부 청사로 사용되면서 연방헌법의 통과를 지켜보는 등 미합중국 탄생의 결정적인 역할을 했습니다. 조지 워싱턴(George Washington, 1732~1799)-미국 건국의 아버지이고 초대 대통령.
오늘날 독립기념관은 역사적인 현장을 중심으로 공개되고 있습니다. 그 중에서도 반드시 둘러 봐야 할 곳이 여기 회의실(Assembly Room)입니다. 회의실 (Assembly Room)-미국 제3대 대통령이었던 ‘토마스 제퍼슨’이 미국 독립선언서를 낭독했던 곳. 지금 이 공간이 미국이 시작된 곳입니다. 그리고 미국이 지향하는 가치, 자유, 평등, 행복의 추구와 같은 모든 것들이 시작된 곳입니다. 1776년 처음으로 미국의 독립선언서가 작성되고 사인이 되었던 곳이 바로 이 방이고요. 그리고 그 후에 미국의 헌법이 제정돼서 오늘날 우리가 얘기하는 Unite States of America (미합중국)가 처음 시작된 공간이 바로 이 공간입니다.
초창기 13개 주의 대표들이 사용했던 펜과 노트가 완벽한 상태로 보존되어 있어 방금전 회의를 마친듯한 분위기를 풍기는데요. 새로운 국가를 만들기 위해 이곳에서 얼마나 치열하게 논쟁을 펼쳤을지가 상상이 됩니다. 그렇게 만들어진 연방헌법의 근본원리는 견제와 균형이었습니다. 연방대법원(Supreme Court Room). 지금 이 방은 미국의 연방대법원이 있었던 곳입니다. 미국의 국부들은 헌법을 만들 때 어떻게 하면 이 민주주의 체제를 오래도록 지킬 수 있을 것인지 고민을 했거든요. 그래서 결국 만들어진 게 권력의 분립입니다.
입법권과 행정권과 사법권을 나눠서 견제와 균형 속에 체제가 유지될 수 있도록 했던 거죠. 가장 고민은 이런 거예요. 대통령이, 국회의원이 자신들이 선출된 권력이라는 명분으로 헌법을 파괴하려고 할 때 어떻게 할 것이냐. 그걸 지키기 위한 최후의 보루로서 법원에 역할과 힘을 강화해 놓은 것이죠. 지금 트럼프 대통령의 공약인 반이민법 때문에 시끄럽잖아요. 결국, 거기에 제동을 걸고 있는게 국부들이 만들어 놓은 연방법원입니다. 결국 이런 상황을 예견했다고 할까요? 정말 중요한 공간이죠. Unite States of America. 즉 미합중국 연방정부의 시작을 알린 장소입니다.
필라델피아는 초창기 미국의 수도였습니다. 구의원회관(Old Congress Hall). 이곳은 의원회관입니다. 하원이었던 이곳이 미국 역사상 첫번째 정권교체가 이루어졌던 장소입니다. 하원(House of Representatives). 세계 최초의 대통령이자 미국의 초대 대통령이었던 조지 워싱턴에서 제2대 대통령 이었던 존 애덤스로 말이죠. 여기서 정말 대단한 건 ‘조지 워싱턴’이죠. 그는 왕이 될 수 있었고 장기 집권을 할 수 있었지만 스스로 권좌에서 내려왔죠. 하고 싶은 일도 많았고 해야 할 일도 너무 많았지만 정말 중요한 건 본인이 스스로 권좌에서 내려옴으로써 민주주의적인 전통, 임기제의 전통을 지켜야 한다는 그 신념이 더 강했던 거예요.
취임식이 끝나고, 존 애덤스(John Adams, 제2대 대통령)가 저 문을 통해서 나갑니다. 큰 박수가 있었죠. 두번째로 ‘토마스 제퍼슨(Thomas Jefferson)’이 나가기 전에 워싱턴에게 ‘당신이 먼저 나가라’고 하죠. 그때 워싱턴이 얘길 합니다. ‘이제 나는 일개 시민에 불과하다. 부통령인 당신이 먼저 나가라.’ 제퍼슨이 두번째로 나갑니다. 역시 큰 박수가 있었습니다. 그리고 세번째로 조지 워싱턴이 일개 시민으로서 나갑니다. 그러나 그때 정말로 천지가 울릴 정도로 어마어마한 박수가 쏟아져 나옵니다. 사람들은 알고 있었던 거예요. 그 일개 시민이 얼마나 위대한 시민인지를요.
필라델피아는 미국이 영국을 상대로 독립을 이룬 곳입니다. 이제 저는 식민지 시대의 삶을 찾아 윌리엄스버그를 거쳐 요크타운으로 향합니다. 버지니아주 남동쪽에 위치한 윌리암스버그, 18세기 버지니아주의 수도였던 이곳엔 당시 모습을 그대로 재현해 놓은 곳이 있습니다. 윌리엄스버그 (Williamsburg)-버지니아 (Virginia)주 남동부의 도시로, 식민지 시대의 오래된 건물들이 잘 보존되어 있음. 야외 박물관이라 불리는 이곳은 우리네 민속촌과 같은 곳이죠. 콜로니얼 윌리엄스버그 (Colonial Williamsburg)-식민지 시대의 거리와 모습들을 재현해 놓은 역사지구.
좋은 하루 되세요. 좋은 하루 되세요. 반가워요. 식민지 시대에 온 것 같은 느낌인데요. 정말로 식민지 시대에 왔다는 느낌이 드네요. 여기 지금 어떻게 보면 미국의 초창기 깃발이 있습니다. 깃발이 있는데 굉장히 특이하죠. 지금 여기 빨강과 흰색은 열세개의 줄을 상징하는 건데 지금은 별이 있는 그 자리에 영국국기가 있는 거예요. 결국은 영국이었다는 걸 얘기하는 거고, 지금 줄을 나타내고 있는 빨간색과 흰색의 이 줄들도 이 영국국기 안에서도 가장 중심되는 잉글랜드 깃발이 흰색과 빨간색이거든요. 결국은 그걸로 자기들의 줄을 나타낸 거죠. 한 마디로 영국이었다는 겁니다.
초창기의 성조기를 보니 미국의 본질을 어느 정도는 알 것 같습니다. 1620년 플리머스에 도착한 이후 그들의 삶은 얼마나 나아졌을까요. 벌써 규모가 어마어마 하잖아요. 그러니까 플리머스의 이민자들이 도착한지 백년이 채 되기도 전에 이미 식민지는 이 정도로 성장하는데 성공했던 것입니다. 나름대로 초창기 이민자들이 보면 ‘상전벽해’라고 느끼지 않았을까요. 제가 지금 들어온 이곳이 총독 관저거든요. 총독도 영국정부에서 파견된 사람들인데 역시 영국 사람들 정원을 좋아하다 보니까 이 총독 관저에도 나름 아기자기 하게 정원이 꾸며져 있네요.
지금도 그렇지만 영국하고 미국이 유사성이 굉장히 많거든요. 특히 이제 식민지 초창기 때는 영국의 영향력이 절대적 이었죠. 그러니까 이곳의 건축 양식이라든지 정원 양식이라든지 혹은 삶의 패턴, 삶의 양식은 영국하고 굉장히 유사했습니다. 이 사람들은 자기들이 다 영국인이라고 생각했었어요. 그러니까 미국은 독립혁명이 일어났을 때 사람들은 왜 왕이 같은 백성인데 우리를 차별 대우하지? 왜 우리를 식민지 사람대접을 하지? 우리는 같은 신민인데 이렇게 느낄 정도로 영국에 대한 애착과 어떤 정서적인 공감대가 있었던 겁니다.
그런 느낌이 이제 이런 건물이라든지 건축 양식에서 드러나는 거죠. 그건 미국의 태생 자체가 영국의 이주민으로부터 시작되었기 때문일 텐데요. 이런 애착이 어쩌면 미국의 독립혁명을 더 격하게 촉발시키지 않았을까요. 영국총독 관저(Governor’s Palace). 제가 지금 총독 관저에 붙어 있는 주방으로 들어가고 있습니다. 당시의 음식을 한번 보려고요. 지금 총독 테이블에 올라갈 음식들이 이곳에 진열이 돼 있네요. 뭐가 굉장히 많은데요. 안녕하세요. 반갑습니다. 안녕하세요. 반가워요. 이 분이 이곳에 주방 요리사 이십니다.
오늘은 양배추 요리를 만들었어요. 미리 조금 가열해 놓은 뒤에 이렇게 섞어주는 거죠. 당시의 복장을 한 요리사가 시범을 하는데요. 나무로 휘젖는데 굉장히 성능이 좋아 보입니다. 그런데 그냥 시늉이 아닙니다. 도구와 조리법 모두 옛날 방식 그대로 입니다. 양배추를 밀가루와 계란에 익혀 팬에 익히는데 프랑스에서 영향을 받은 요리랍니다. 이 음식은 버지니아의 음식이라고 할 수 있죠. 이 음식의 레시피가 나온 첫 요리책도 버지니아에서 출판 됐어요. 매리 랜돌프 (Mary Randolph)의 ‘버지니아 하우스 와이프(The Virginia House-Wife)’ 라는 책으로 1820년대에 나왔죠. 음식이 완성되면 시식을 좀 해봐도 될까요? 물론이죠. 한쪽에선 바비큐도 준비 중입니다. 노릇 노릇 익은 모습에 포크가 절로 갑니다.
이게 지금 식민지 당시에 전통음식이었던 캐비지 파이 라는 건데 보시다시피 포크도 옛날 방식 그대로 날이 두개, 요즘은 포크가 날이 다 세개 잖아요. 옛날에는 두개 짜리를 많이 썼었다. 과연 맛은, 맛 있네요. 아주 바삭하고 고소한게 약간 우리의 빈대떡 느낌, 당시의 바베큐 맛은 어떨까요. 당시 사람들은 이런 요리를 주식으로 먹으면서 살았던 거죠. 근데 이것도 아무나 먹을 수 있는게 아니죠. 사실은 주지사 정도돼야 이렇게 고기를 매일 같이 먹었을 겁니다. 정말 맛있네요. 맛있죠? 총독도 먹었던 음식이죠. 굉장히 정말 담백하고 이게 건강식이구나 하는 걸 느껴지는 맛이예요.
이곳은 정말 18세기의 실제 마을 처럼 꾸며져 있어 이들의 삶을 생생하게 체험할 수 있게 해 놨는데요. 바로 여기군요. 대장간입니다. 쇠를 두드리는 소리가 경쾌한데 무엇을 만들수 있을까요? 지금 이것을 만들고 있습니다. 장식품을 만들고 있죠. 제가 생각한 건 농기구나 연장이었는데 여기서 보니까 이 대장간의 역할 같은 걸 보면서 식민지의 생활이 끊임없이 발전하고 있구나. 생각이 듭니다. 이건 장식품이잖아요? 이 귀한 쇠로 장식품을 만들었다는 건 이건 생존시 반드시 필요한 게 아니거든요.
이제 식민지는 생존을 걱정하는 단계를 벗어나서 어떻게 보면 삶을 좀 더 윤택하게 하는데 이 귀한 재료를 쓸만큼 정말로 발전하고 있었던 거죠. 이게 바로 풀무입니다. 바람을 불어넣어서 불을 확 피우는 거죠. 대장간에서 일하시는 분이 끊임없이 풀무를 잡아 당기면서 바람을 집어넣고 있거든요. 이들의 역동적인 모습에서 플리머스에 최초로 정착했던 필그림 파더스, 즉 순례의 아버지들이 겹쳐집니다. 척박한 땅을 일구고 혹독한 추위를 이겨낸 그들은 이 거대한 나라의 시원이었죠. 정말 여기 와서 미국을 만든 힘이 느껴져요. 이 분들의 노동의 힘, 개척의 힘, 강인함과 근면함, 이런 것들이 결국 오늘날의 미국을 만들어 내는 거죠.
영국의 식민지였던 미국은 드디어 1776년 독립을 선언하고 본격적으로 영국과 전투를 벌입니다. 그리고 결국 전쟁에 승리함으로써 독립을 쟁취하게 됩니다. 요크타운 (Yorktown)-버지니아(Virginia)주의 도시로 독립전쟁과 남북전쟁의 격전지였던 당시의 역사 건축물이 많이 남아 있음. 제가 정말 와보고 싶어했던 곳이 요크타운 이곳입니다. 제가 결국 이곳에 왔네요. 눈 앞에 이런 거대한 기념비가 서 있습니다. 요크타운 전투를 기념하는 거죠. 요크타운 전승기념탑 (Yorktown Victory Monument).
1781년 바로 이곳에서 미국의 독립전쟁의 결말을 지운 결정적인 전투가 벌어진 곳입니다. 미국의 역사는 1607년 남쪽 버지니아의 제임스타운과 1620년 북쪽 매사추세츠의 플리머스, 그곳에서 이민자들이 정착하면서 시작이 되거든요. 식민의 역사가 시작되는 겁니다. 그리고 그 식민의 역사는 바로 이곳에서 1781년에 조지 워싱턴이 영국을 상대로 최후의 승리를 거둠으로써 식민지에서 벗어나서 국가로 재탄생하는 거죠. 그런 역사적인 현장이 바로 이곳입니다. 그런데 이 미국독립 혁명에서는 프랑스의 도움이 결정적이었습니다. 하지만 프랑스는 미국 독립혁명의 여파로 루이 16세로 대표되는 절대왕정이 무너지고 프랑스 대혁명까지 일어나게 됩니다.
이 요크타운 전투승리 기념비에 정말 감동적인 문구가 있거든요. 보시다 시피 맨 위에는 한 여성이 손을 벌리고 있습니다. 결국 새롭게 태어난 국가 아메리카를 상징하는 거죠.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국가는 항상 여성으로 표현하거든요. 우리나라도 모국이라고 하지 부국이라고 얘기하지 않찮아요. 여기도 다 “Motherland”라고 얘길 합니다. 결국 아메리카가 있는데 이 기둥 중간에 보면 13명의 여자들이 손을 잡고 있어요. 결국 13개의 주, 여성으로 표현되는 이 주가 이제 힘을 합쳐서 새로운 국가를 만들어 냈다는 겁니다.
그리고 그 아래에 문장이 있습니다. One Country (하나의 나라) One Destiny (하나의 운명) One Constitution (하나의 헌법). 결국 이 나라는 헌법의 토대 위에 이루어진 국가다. 결국 미국인들에게 있어서 왜 법이란 게 중요한가. 그들은 법으로 하나의 운명을 향해 가고 있는 겁니다. 미국이 법의 국가인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지금 제 눈 앞에 펼쳐져 있는 저 대서양을 건너서 수많은 이민자가 이 땅으로 건너왔습니다. 그리고 그들은 13개의 식민지를 개척했죠.
독립혁명이 날 때 영국이 오판했던 가장 중요한 원인중의 하나는 13개의 식민지가 너무 다른 문화, 역사, 민족, 종교를 가지고 있었다는 거예요. 절대 하나가 될 수 없다. 그건 미국의 국부들도 알고 있었습니다. 결국 이제 미국을 하나로 묶을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법이다. 헌법. 그래서 그들에게는 법이 중요했던 겁니다. 요크타운 기념비가 ‘하나의 국가’와 ‘하나의 운명’ 사이에 ‘하나의 헌법’을 접어넣은 이유가 거기에 있는 거죠. 이로써 미국의 독립혁명이 완성됩니다. 끝. (EBS 세계테마기행 제218회에서 요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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