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영혼의 카미노로 가는 첫걸음 (나는산티아고신부다.인영균끌레멘스 p135-138)
살면서 어떤 난관에 부딪혔을 때 셀 수 없을 정도로 ‘왜’라는 질문을 던진다. 그 열쇠를 찾으려 하지만, 실패만 거듭한다. 답 없이 사는 것이 우리 발걸음을 더 무겁게 한다. 아직 풀리지 않는 의문의 답을 산티아고 순례길에서 찾으려고 해도 영혼의 카미노를 걷지 않으면 그 결과는 마찬가지다. 그럼 어떻게 하면 영혼의 카미노를 걸을 수 있을까?
바오로 사도의 말씀이 순례자에게 진리의 빛을 던져 준다. “우리는 이 보물을 질그릇 속에 지니고 있습니다. 그 엄청난 힘은 하느님의 것으로, 우리에게서 나오는 힘이 아님을 보여 주시려는 것입니다.” (2코린 4,7)
카미노는 우리가 선택한 길이 아니고 하느님께서 초대하신 길이다. 곧, 순례자는 카미노에 초대받은 존재이다. 그래서 카미노는 온전히 '내어 맡기는 길'이어야 한다. 인간의 계획은 거의 소용이 없다. 하루하루 그분 손에 맡긴다. 그저 내어 맡길 뿐, 내 계획이 아니라 나를 초대하신 분의 계획에 따라 움직인다.
나는 순례자에게, 카미노는 무작정 걷거나 목표를 달성하기 위한 것이 아니라, "아직 무엇인지는 모르지만, 자신에게 베풀어진 것을 선물로 발견하기 위한 것"이라고 강조한다. 그러면서 믿음의 조상 아브라함을 예로 든다.
창세기를 보면 고향에서 편안히 살던 아브라함은 "집을 떠나 너에게 보여줄 땅으로 가라"라는 하느님 말씀에 따라 무작정 길을 떠난다. “젖과 꿀이 흐르는 땅과 하늘의 별과 바다의 모래알처럼 번성할 자손"을 약속하신 하느님만 믿고 나섰다. 마치 순례자처럼 그 땅을 향해 한 발 한 발 걸어나갔다. 근데 마지막에 큰 위기가 닥친다. 하느님께서 외아들 이사악을 번제물로 바치라고 명령하신 것이다. 이미 아브라함은 가정의 평화를 위해 서얼 이스마엘을 내보낸 뒤였다.
아브라함에게도 자식은 무엇보다 소중하였다. 이사악을 얻기까지 하느님을 원망하며, 때를 기다리지 못하고 인간의 방법으로 노심초사하며 살았다. 이제 애지중지하던 이사악을 잃게 되었다. 아들을 통해 이루어질 하느님의 약속이 무산될 위기였다. 여기서 아브라함의 위대함이 드러난다. 아브라함은 하느님의 선하신 뜻을 읽으려고 노력하였고, 끝까지 무너지지 않고 주님의 선하심을 믿었다. 외아들을 번제물로 드리려는 순간, 하느님의 개입으로 이사악 대신 숫양을 제물로 바친다. 이 이야기는 표면적으로는 하느님이 아브라함을 시험한 것이지만, 그 안에는 아브라함의 믿음을 완성하려는 하느님의 깊고 선하신 뜻이 있었다. 이 일을 계기로 아브라함은 자신이 얼마나 하느님을 신뢰하는지 새삼 깨닫게 되었을 것이다. 아브라함의 깊은 신앙에서 이스라엘 민족이 탄생하고, 궁극적으로는 인류의 구원자 예수 그리스도께서 아브라함의 후손으로 이 세상에 오신다. 아브라함은 숫양을 바친 그곳을 '야훼이레'라고 이름 붙인다. 야훼 이레란 “하느님이 보시다”라는 뜻, 곧 "주님께서 필요한 것을 살펴 채워 주신다”라는 뜻이다.
카미노를 걸으면서 순례자는 자신의 카미노도 '야훼 이레’라는 진리를 깨닫는다. 카미노는 내가 마련하고 준비하는 것이 아니라, 더 큰 것을 위해서 하느님께서 마련해 주시는 것이다. 나에게 주도권이 있는 것이 아니라 하느님께 주도권이 있음을 받아들여야 한다. 나를 옭아맨 욕심과 위선을 과감하게 벗어던지고 내적 자유의 길로 한 걸음 내딛는 위대한 결단이다. 전적으로 나의 길을 내어 맡긴다는 결단은 두려운 일이다. 동시에 내적 자유를 향한 위대한 첫걸음이다. 하느님 앞에 날것인 나를 봉헌하며 걷는 길, 곧 순명을 배우는 길이 영혼의 카미노이다.
* 동아일보|오피니언 입력 2017-10-25 03:00
[왕은철의 스토리와 치유]<9>트뤼도의 눈물
왕은철 문학평론가·전북대 교수
쥐스탱 트뤼도 캐나다 총리의 눈물이 화제가 되고 있다. 지난주 화요일, 그는 기자들에게 이렇게 말하면서 울었다.
“오늘 아침, 우리는 최고의 사람 중 한 명을 잃었습니다. 고드는 내 친구였습니다. 아니, 모든 사람의 친구였습니다. 고드는 자신의 모든 것을 바칠 만큼 이 나라를 사랑했습니다. 그는 이 나라를 더 좋게 만들고자 했습니다. 이것이 그가 지난해에 채니 웬잭과의 화해에 헌신했던 이유입니다. 나는 개인적으로 그것에서 영감과 힘을 얻었습니다. 고드가 없으니 이 나라에 뭔가가 빠진 것 같습니다. 우리는 그의 죽음이 다가오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지만 그러지 않기를 바랐습니다.”
그의 눈에서 눈물이 흐르기 시작했다. 그는 애도의 말을 차분히 할 수 있을 거라 생각했지만, 마음이 아파서 그럴 수 없다고 말했다. 그를 울게 만든 것은 록 그룹 ‘트래지컬리 힙’의 리드 보컬이었던 고드 다우니의 죽음이었다. 라디오 방송국들도 정규 방송을 중단한 채 다우니의 음악을 들려줬고, 의회도 묵념 후에 업무를 시작했다.
다우니는 캐나다의 자부심이었다. 그의 음악이 그랬고 삶이 그랬다. 무엇보다도 그는 ‘트래지컬리 힙’으로 얻은 명성을 활용해 상처를 얘기하고 캐나다를 화해의 길로 이끌고자 했다. 그는 “이 나라는 우리가 알고 있는 나라가 아니다”라고 말했다. 원주민들에 대한 야만적 폭력을 염두에 두고 한 말이었다. ‘인디언 기숙학교’에서 도망쳐 집으로 가다가 죽은 원주민 소년 채니 웬잭의 이야기를 ‘시크릿 패스’라는 제목의 음악과 그래픽소설로 만든 것은 인디언에 대한 폭력을 환기시키기 위해서였다.
그는 TV로 생중계되어 1000만 명 이상이 시청한 자신의 마지막 콘서트에 참석한 총리에게 북쪽의 인디언들을 생각해 달라고 공개적으로 부탁했고, 의회에 가서는 고통받는 인디언 젊은이들을 생각해 달라고 부탁했다. 암에 걸려 죽어가는 상황에서도 그랬다. 그가 인디언 대표로부터 창조주를 상징하는 독수리 깃털을 받고, ‘별들 사이를 걷는 사람’이라는 의미의 ‘위카피 오마니’라는 이름을 받은 것은 그러한 헌신 때문이었다.
다우니는 음악과 사회적 정의의 문제를 별개로 보지 않은 로커이자 시인이자 활동가였다. 그는 예술이 아름다움만이 아니라 옳고 그름의 문제에 관여할 때, 상처를 치유하고 공동체를 화해의 길로 이끌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줬다. 인디언 문제로 자주 눈물을 보이던 그는 쉰셋의 나이에 ‘별들 사이를 걷는 사람’이 됨으로써 자신의 친구였던 트뤼도 총리를, 아니 캐나다를 울게 만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