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1.주디스 버틀러
주디스 버틀러(Judith Butler, 1955년 2월 24일 ~ )는 미국의 철학자이자 젠더 이론가로, 그의 저작은 정치 철학,
윤리학, 여성주의, 퀴어 이론, 문학 이론에 영향을 주었다.
1993년부터 캘리포니아 대학교 버클리에서 강의하고 있으며 현재는 비교 문학 학부와 비평 이론 프로그램의 맥신
엘리엇 교수(Maxine Elliot Professor)이자 유러피언 그래주엇 스쿨(European Graduate School)의 한나 아렌트
교수(Hannah Arendt Chair)이다.
학문적으로 버틀러는 젠더에 대한 인식에 도전하고 젠더 수행성(gender performativity) 이론을 발전시킨 저작인
《젠더 트러블》(Gender Trouble: Feminism and the Subversion of Identity), 《바디스 댓 매터》(Bodies That
Matter: On the Discursive Limits of Sex)로 잘 알려져 있으며, 이 이론은 현재 여성, 퀴어 연구에서 중심적인 역할을
하고 있다.
그녀의 저작은 젠더 연구와 담화에서의 수행성을 강조하기 위하여 종종 영화 연구에서도 활용되고 있다.
또한 성소수자 권리 운동도 적극적으로 지지하고 있으며, 다수의 정치적인 문제에 대하여 의견을 피력하고 있다.
특히 이스라엘의 정치와 이스라엘 팔레스타인 분쟁에 대한 그 영향에 대해서는 이스라엘이 유대인이나 유대인의
선택을 대표하는 것으로 여겨지지 않고 그런 것으로 받아들여져서도 안된다고 강조하며 매우 강력히 비판하고 있다.
버틀러의 저작은 여성주의, 퀴어 이론, 대륙 철학에 영향을 주었다.
정신분석학, 문학, 영화, 퍼포먼스 연구, 비주얼 아트 등 다른 학문 분야에 대한 기여 또한 상당하다.
젠더 수행성에 대한 버틀러의 이론은 학계에서 젠더와 퀴어 정체성에 대한 이해를 바꾸었을 뿐만 아니라 전세계에서
다양한 종류의 정치적 활동, 특히 퀴어 운동을 형성시켰다.
또한 버틀러의 저작은 젠더 교육, 게이 육아, 트렌스젠터 비병리화에 대한 현대적 논쟁을 다루고 있다.
교황으로 선출되기 전, 베네딕토 16세는 버틀러의 젠더에 대한 주장을 반박하는 몇 페이지의 글을 쓰기도 하였다.
다수의 학자와 정치 활동가는 버틀러의 섹스/젠더 이분법으로부터의 급진적인 결별과, 여성주의와 퀴어 방법론, 사상,
연구에 대변혁을 일으킨, 권력이 주체를 형성하는 것을 돕는다는 주장을 비롯한 젠더에 대한 그녀의 비본질주의적
개념을 지지한다.
몇몇 비평가는 그녀의 난해한 산문 스타일 때문에 버틀러를 엘리트주의자라고 비판하는 한편, 다른 비평가는 그녀가
젠더를 "담론"으로 축소하고 젠더 주지주의(voluntarism)의 형성을 촉진시켰다고 주장한다.
예를 들어, 수전 바르도(Susan Bordo)는 몸은 젠더의 주요한 부분이라고 주장하고, 버틀러의 "수행되는 것"으로서의
젠더 개념을 반대하며, 버틀러가 젠더를 "언어"로 축소시켰다고 주장하였다.
특히 마사 누스바움은 버틀러에 대한 강경한 비판자로, 버틀러가 J. L. 오스틴의 아이디어를 오독하고, 잘못된 법적
주장을 하였으며, 버틀러가 지지하는 전복적 실행을 지도하기 위한 규범적 윤리 이론을 제공하지 못했다고 주장하였다.
32.가야트리 스피박
가야트리 스피박은 인도 캘커타 태생의 여성 이론가로, 그동안 『다른 세상에서』(1987), 『포스트식민 비평가』
(1990), 『교육기계 안의 바깥에서』(1993), 마하스웨타 데비의 작품을 영역한 『상상의 지도들』(1995), 『스피박
독본』(1996), 『포스트식민 이성 비판』(1999), 『분과학문의 종말』(2003)에 이어 『다른 여러 아시아』(2008)를
출간하였다.
스피박의 이론은 해체론, 포스트식민주의, 페미니즘, 마르크스주의, 문화론의 이론적 지형들과 복합적으로 연계되어
있어 난해하고 복잡하다.
게다가 자세한 설명 없이 툭툭 던지는 식의 불친절한 글쓰기로, 유보적이고 비정형적인 글쓰기로 논의의 맥락을 따라
잡기가 어렵다.
그렇지만 오늘날 지구화 시대의 복잡다단한 현실을 이해하고 바꾸어내려면 손쉬운 설명과 안이한 낙관성을 요구하기
보다 복잡함, 복합성, 다중성을 붙들고 씨름해야 할 것이다.
그렇게 하려면 이론의 난해함을 통과하는 자세로 스피박의 책을 읽고 밀도 있는 사유를 펼쳐보려는 자세가 요청된다고
하겠다.
프란츠 파농에게서 통찰과 영감을 받고 에드워드 사이드, 호미 바바와 함께 스피박이 형성해 온 포스트식민주의,
주변성 담론, 소수자 담론은 제국주의/식민주의의 강력한 지배와 착취에 대응하는 20세기 후반의 중요한 탈식민
기획으로 정의된다.
하지만 스피박은 주변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게 된 전 지구적 자본주의 현실에서 재조정되고 있는 서구 중심의 지배
형식에 순응하는 ‘새로운 오리엔탈리즘’을 비판하며, 주변성의 담론을 떠받치는 포스트주의들과 전 지구적 자본의
재배치(국제적 노동 분업) 사이에 은폐되어 있는 공모관계를 지적하고, 또 제국주의적 폭력구조들로부터 비껴선
투명한 존재라는 지식인 이데올로기를 끈질기게 파헤쳐낸다.
지식인들의 탐색자라는 위치가 탐색 대상을 전유함으로써 자본의 이해관계와 공모하게 되는 결과를 자기 비판적으로
분석하는 가운데 스피박은 자신도 ‘인도적인 것’을 서구 문단에 제공하는 ‘첩보원’ 역할을 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끊임
없이 경계한다.
이러한 인식에 따른 스피박의 기본적인 문제의식은 정치적으로 독립한 제3세계가 경제적, 문화적으로 여전히 처해
있는 종속 상태를 제대로 인식하고 해석할 수 있도록 하는 이론구성과 지식생산을 어떻게 할 것인가 하는 점이다.
『다른 여러 아시아』는 ‘위로부터’의 읽기와 가르치기의 윤리를 ‘아래로부터’의 서발턴 관점과 ‘대리보충’하는 관계
속에서 지속시키는 방법을 아시아의 복수화라는 과제로써 구체적으로 모색한다.
출생이라는 우연에 의해 아시아라는 이름을 주장하는 한 사람으로서 스피박은, 미국-러시아-유럽의 권력-이익에 따라
구성되고 배열되며 호명되는 아시아의 특정 부분을 아시아라고 생각하는 태도나 우리의 정체성을 단일하고도 고정되
게 기술하는 것으로 또 경제중심의 특정 권역으로만 아시아를 바라보는 태도를 넘어설 것을 요청한다.
그래서 스피박은 그동안 관심을 갖고 있던 권역들 바깥에서 아시아를 찾아보자고, 광대한 중앙아시아에 대한 무지를
벗어나자고, 지구화 욕망에 따른 석유 접근권 때문에 최근에 부상한 포스트소비에트 권역을 지구적 게임에 저항하는
서발턴적 대항집단성의 부상이라는 맥락에서 보자고 주장한다.
지구화에 맞서는 지역이라는 최소 단위의 공간을 좀 더 넓게 또 융통성 있게 묶어내는 권역 사유에서는 특정한 단일
정체성에 귀속되지 않고 이동하는 입장들의 전체 집합으로서 아시아 상상이 가능하다.
이러한 사유의 궤적은 정체성의 정치에 기반한 반식민주의, 민족해방 투쟁, 민족정체성이라는 개념을 더 이상 유효
하지 않다고 보는 데서 그려진다.
지구적 게임을 견제해야 할 남반구 국가들의 역할이 여전히 필요한 만큼 포스트국가적 세상이라는 말도 좋은 구호가
아니다. 그래서 스피박이 내세우는 것이 ‘비판적인 권역주의’ 세상이다.
33.알렌카 주판치치
니체는 도덕적 현상은 없다고 했다. 현상에 대한 도덕적 해석이 있을 뿐. 한 시대가 '악'이라고 부르는 것은 다른 시대
에는 '선'이었다. 이전 시대에 ‘이상’이었던 것은 시대가 바뀌면서 정반대가 되기도 한다.
한 사회에 위협이 되는 것은 모두 악으로 불렸던 것이다.
선과 악은 미리 정해져 있는 것일까. 아니면 사회적, 관습적 사유의 틀이 만들어 낸 것일까.
선과 악의 본질이라는 것이 있는 것일까.
태초에 내게 이익이 되는 것은 언제나 선이고 손해가 되는 것은 언제나 악이었다.
이 기원이 망각되고 지금 우리는 선악을 도덕적, 사회적 규범처럼 인정하고, 이해하고 있다.
그러니까 선이라는 것, 악이라는 것은 사회가, 규범에 의존하고 있는 것 즉, 나의 외부에 있는 외재적 힘이라 할 수
있다. 나는 외부에, 타율에 의거하지 않고 나 스스로 내 힘으로 판단하고 행위할 수 있는가.
주어진 선과 악의 범위 밖에서 사유하고 행위할 수 있을까.
알렌카 주판치치는 이런 행위를 ‘윤리’라 부른다. 그것은 선도 아니고 악도 아니다. 그것은 ‘자유’이다.
하지만 우리는 선도 아니고 악도 아닌 것을 사유할 수 있는가. 어렵다.
왜냐하면 우리는 선과 악을 구별하고 선에 따라 살도록 학습되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우리는 수동적으로 살아갈 수 밖에 없다.
이런 주체의 무능력은 결국 근대적 인간, 무기력하고 권태에 빠진 인간유형, 우울증 등을 양산했다.
우울은 이제 우리 시대의 기본 정조인 것만 같다.
알렌카 주판치치는 우리가 자유로운 행위를 할 수 있는지 묻는다.
기껏해야 선을 택할 자유 말고 그런 기존의 관념에 대항하여 진실로 자기의 법에 따라 행위할 수 있느냐는 것이다.
이럴때 내 행위는 사회에서 받아들여지지 않는 행위가 될 수 있고 따라서 그것은 악이라 불릴 수 있다.
하지만 이게 바로 적어도 나에겐 선이다.
이것을 어떻게 일치시킬 수 있을까. 주판치치의 질문은 이곳에서 시작하고 답도 이곳에 있다.
실재의 윤리. 여기서 실재란 주체의 자유로운 행위가 일어나는 무대라 할 수 있다.
사회가 말하는 선도 아니고 악도 아닌 어떤 행위를 우리가 감행할 때 사회는 새로운 질서를 구축할 수 있다.
사회가 요구하는 대로 주어진 삶을 사는 게 아니라 다른 삶을 각자가 추구하는 것이다.
예를 들어 돈이 되는 일을 해야지, 성공해야지, 하는 사회적 요구들에 맞서 돈이나 성공과는 아무 관련 없는 ‘니체
읽기 모임’을 다닌다 해보자.
이것은 사회가 용인하지 않는 행위, 아무 쓸모도 없는 행위, 고로 ‘악’일 수 있다.
하지만 누군가 그곳에서 즐거움을 찾고 삶의 활기를 얻을 수 있다면 그게 왜 악일 것인가.
34.줄리아 크리스테바
시적 언어의 물길을 거슬러 오른 끝에 그 뿌리를 찾고 그 뿌리에서 언어에 이르는 과정을 이론적으로 정리한 작업이
크리스테바(1941~ )의 '시적 언어의 혁명'(1974)이라 요약할 수 있다.
세계의 기호론자, 언어학자, 시 이론가들, 정신분석 학자들의 눈을 번쩍 뜨게 했던 이 저서는 사실 크리스테바의 국가
박사학위 논문(지도교수 롤랑 바르트)이다.
우리나라를 위시한 미국 일본에서 같은 제목으로 번역출판 되어 있는 책은 사실은 이 논문의 첫 부분이다.
1965년 크리스마스 무렵 유학생으로 트렁크 하나를 들고 모국 불가리아에서 파리에 모습을 드러낸 크리스테바는
텍스트 이론에 새로운 차원을 개척한 20세기에서 가장 독창적이고 혁명적인 사상의 하나를 제시하기에 이른 것이다.
프로이트가 의식의 표층 밑에 광대한 무의식의 세계를 발견했듯이 크리스테바는 '페노-텍스트' 밑에 그것을 떠받치는
마그마상 운동체인 '제노-텍스트'를 상정했다.
'제노-텍스트'는 텍스트를 낳는 생산활동 그 자체를 말하는 것이다.
"왜냐하면 의미는 있는 것이 아니라 이루어지는 것이다." 그 곳에서는 통상의 언어 교통과는 다른 논리가 지배한다.
크리스테바의 이론에 드리워진 마르크스주의와 정신분석학의 그늘은 그녀의 이론을 명석하게 하기도 하지만 더 난삽
하게 하기도 한다. '시적 언어의 혁명'을 읽는 일은 넓은 학문적 저변을 필요로 하는 고밀도의 노동이다.
내가 그의 이론에 호감을 가졌던 것은 발생학적 방법으로 시적 언어를 해명하는 그 수순 때문이었다.
그가 창출한 여러 개념 가운데서 익혀야할 필수적 개념에 '세미오틱(原記號作用'과 '상볼릭(記號象徵態)'이 있다.
이에 앞서 우선 언어의 기원에 관계되는 대목을 그가 어떻게 정리하고 있는가를 살펴본다.
이 요긴한 부분에서 그녀는 플라톤의 '코라' 개념을 어색함 없이 차용하고 있다.
코라는 원래 어머니처럼 둘레를 젖먹이고 기르는 매트릭스형 공간이다.
이 코라가 세미오틱(질서화된 언어 이전의 욕동의 상태)에 이어지고, 다음에 상볼릭(언어적으로 구조화 된 상태)이
이루어진다는 것이 크리스테바 이론의 요지다.
신체의 리듬(심장박동 소화기의 운동)에 발판을 두고 있는 가락이나 반-문법적인 데포르메는 세미오틱에 속하는 것
이라 할 수 있고, 질서 지어진 규칙체계에 발판을 두고 있는 안정된 기호 세계는 상볼릭인 것이다.
크리스테바는 시적 언어가 상볼릭에 진입하기 이전의 언어상태라고 각별히 강조하고 있다.
세미오틱은 때로 상볼릭에 침입하여 그 규칙(문법)을 뒤엎거나, 단어를 변조하기도 하고 레토릭을 구사하는 횡포를
부린다.
이 '파괴적인 숨결'에서 작품을 생산해낸 작가 시인들 (조이스, 바타이유, 세린, 말라르메, 로트레아몽)에 크리스테바
는 각별한 애정을 보이고 있다.
국역 출판이 기다려지는 '시적 언어의 혁명' 제2부는 말라르메와 로트레아몽의 작품분석을 통하여 상볼릭 안에 세미
오틱이 분출하는 4가지 모습을 다루고 있다.
'시적 언어의 혁명'은 난해의 대명사로 통하고 있다. 그러나 이 관문을 통과하는 절차는 시의 이론에 관심을 가지는
사람에게는 필수적인 과정이다.
이 여성학자가 이룩한 의미 생성 분석 이론은 문학연구를 점잖은 교양주의에 모시려는 아나크로니즘에 대항하여 시가
안고 있는 미지의 운동에 눈길을 돌리도록 권유하는 끊임없는 유혹이다.
35.엘런 식수
프랑스의 페미니스트 작가 엘런 식수. 출구와 메두사의 웃음은 각각 여성학자 엘렌 식수의 1975년작 또한 같은 해
라르크지 61호 특집에 실렸던 수필이다.
3대 급진주의 여성학자로 손꼽히는 그녀는 이 책에서 남성의 관점으로 바라본 여성성의 부당함이나 여성적 가치를
남성적 가치와 독립된 가치로서 긍정되어야 한다는 것을 주장하고 있다.
36.뤼스 이리가레이
뤼스 이리가레(Luce Irigaray, 1932년~)는 벨기에에서 태어난 페미니스트, 철학자, 언어학자, 정신분석학자이자
문화이론가이다.
《다른 여성의 검시경》(Speculum of the Other Woman, 1974)과 《하나가 아닌 성》(This Sex Which Is Not One,
1977)으로 잘 알려져있다.
뤼스 이리가레는 1955년에 벨기에의 루뱅대학교에서 철학으로 석사학위를 받았고, 1956년부터 1959까지 브뤼셀의
학교에서 교사생활을 했다.
1960년대 초반 파리로 건너가 1961년 파리 대학교에서 심리학으로 석사학위를 받고 1962년 정신병리학으로 디플롬
학위를 받았다.
1962년부터 1964년까지 그녀는 벨기에의 국립과학연구기금(NFWO)에서 일하다가 후에 파리의 중앙국립과학연구소
(CNRS)에서 연구조교로 일하게 되었다.
1960년대 초반 이리가레는 자크 라캉의 정신분석학 세미나에 참여했고, 분석학자로서 훈련을 받았다.
1968년에 언어학으로 박사학위를 받았으며 1969년 프랑스 여성운동의 선구자인 앙투아네트 푸크(Antoinette Fouque)
를 분석하였다.
1970년부터 71년까지 파리 제8대학교에서 가르쳤는데 이 시기에 그녀는 라캉이 지도했던 학교 파리 프로이드학교
(École Freudienne de Paris)의 회원이었다.
파리 제8대학교에서 면직을 당한 직후 이리가레의 두 번째 박사학위논문인 《다른 여성의 검시경》을 발표하였다.
1982년 두 번째 학기중에 이리가레는 로테르담의 에라스무스 대학교에서 철학강좌를 했는데, 이곳에서의 연구성과
는 《성적 차이의 윤리학》(An Ethics of Sexual Difference)으로 출판되었고 그녀의 대륙철학자로서의 입지를
다지게 하였다.
이리가레는 1980년대부터 파리의 중앙국립과학연구소에서 여성과 남성 언어의 차이점에 대한 연구를 진행하였다.
1986년 심리학 위원회에서 그녀가 더 좋아했던 분야인 철학 위원회로 바꾸었다.
2003년 12월 런던 대학교에서, 2008년에는 유니버시티 칼리지 런던에서 명예 문학박사학위를 수여받았다.
2004년부터 2006년까지 영국의 노팅햄 대학교 근대 언어학과의 방문교수였다.
37.펠릭스 가타리
가티리 철학을 핵심은 68혁명과 정신병원에서의 분열분석 지도제작에서 찾아야 할 것 같다.
68은 서구자본주의는 물론 마르크스주의의 파산을 선언하는 혁명이었다. 그 속에서 가타리가 찾아낸 것은 소수자로
불리던 다양한 주체들의 발생과 탈영토화였다.
그의 분열분석은 소위 정신병자들을 모델로 하여 기존이 정신분석이 가진 억압을 극복하고 자신을 정립하는 모습을
통해 새로운 주체의 전략을 보여주는 것이었다.
가타리의 생태학이 자리하는 지점도 바로 이 지점이다.
그는 인간과 사회와 자연을 묶는 원리로서 욕망기계를 작동시킨다. 기계나 생산 따위가 가진 현대적 의미 때문에
가타리의 기계 개념을 다시 받아들여야 하는 난점이 있기는 하다.
아무튼 욕망기계란 주체를 정립하기 전에 일어나는 흐름으로서 ‘자기를 생산하는’ 생명의 특성이기도 하다.
점에서 가시적이거나 비가시적인 기계를 상상할 수 있게 된 것이다. 미시정치와 담론으로부터 거시담론을 허물고자
했던 가타리 시도는 치열함 자체일 것이다.
38.피에르 부르디외
피에르 부르디외(프랑스어: Pierre Bourdieu, 1930년 ~ 2002년 1월 23일)는 프랑스의 사회학자이다.
사회학을 '구조와 기능의 차원에서 기술하는 학문'으로 파악하였으며, 신자유주의를 비판하였다.
알제리 사회학, 재생산, 구별짓기, 호모 아카데미쿠스, 텔레비전에 대하여, 경제학의 구조 등의 저서를 남겼다.
그가 제창한 아비투스의 개념은 유명하다.
프랑스의 사회학자이자 참여 지식인이며, 파리 사회과학대학원(EHESS)과 프랑스 최고 학술기관인 콜레주 드 프랑
스의 사회학 교수로, 1930년 프랑스 남부 베아른의 작은 농촌 마을에서 태어났다.
파리의 명문 루이 르 그랑 고등학교를 거쳐 파리 고등사범학교를 졸업한 뒤 25세 때 교수 자격시험에 합격하였다.
이어 지방 고등학교 교사를 거쳐 알제리대학 조교로 근무하면서 저술 활동을 시작해 1958년, 처녀작인 《알제리
사회학》을 발표하고, 34세에 파리 고등실천학교 학과장으로 부임하였다.
1968년 유럽사회학센터를 설립하고 《사회학연구》를 발행하기 시작, 이 잡지에 활발한 연구논문을 발표하면서
이른바 '부르디외 학파'를 형성하고, 이때부터 사회학을 '구조와 기능의 차원에서 기술하는 학문'으로 파악하는 한편,
후기 구조주의 입장에서 구조와 행위의 관계를 설명하는 입장을 취했다.
즉 사회구조를 개관적으로 분석하는 관점을 고수하면서, 사회학적 방법론과는 거리가 먼 문화예술 현상에도 관심을
가지고 미학적 인식이 사회적으로 구성되어가는 방식 등에 관한 저서를 잇달아 발표했다.
1970년에는 학교의 독립성과 중립성이 환상에 불과하다는 내용을 다루면서 구조와 행위의 통합을 꾀한 역저 《재생산》
을 출간해 사회적으로 큰 반향을 불러일으켰다.
41세 때인 1981년 콜레주 드 프랑스 교수로 취임한 이후 활발한 저술 활동을 하는 틈틈이 현실 참여에도 앞장서 텔레
비전에 출연해 언론 기자들을 비판하고, 실업자들을 지지하며, 문명 파괴 반대 운동에도 참여하는 등 행동하는 지식인
이라는 평가를 받았다.
또 신자유주의자들을 강하게 비판하면서 이들에 저항하기 위해서는 범세계적인 지식인 연대가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대표적인 저서에는 《실천이론 개요》(1972), 《구별짓기》(1979), 《강의에 대한 강의》(1982), 《호모 아카데미쿠스》
(1984), 《국가귀족》(1989), 《텔레비전에 대하여》(1996), 《맞불》(1998), 《경제학의 구조》(2000) 등이 있다.
2000년 9월 26일부터 3일간 세종문화회관에서 열린 '2000 서울 국제문학 포럼'에 참가하기도 하였다
상징적 폭력
피에르 부르디외의 저서 <<구별 짓기>>의 내용은 다음과 같다.
『구별짓기』는 8개의 장과 결론으로 구성되어 있다.
1장에서는 프랑스가 대혁명을 거친 후 200년이 지났지만, 여전히 귀족적 사회제도를 유지하고 있다는 총체적인 비판
을 가한다. 2장과 3장에서는 사회변동의 방법론을 설명하고, 사회학에서 일상세계를 분석의 대상으로 설정해야 하는
이유와 구체적인 문화분석의 사례들을 보여주고 있다.
『구별짓기』에서 가장 중요한 부분은 현대사회에서 계급의 위치와 그들의 행위를 설명하고 있는 5, 6, 7장의 계급론
이다(5장은 지배계급론, 6장은 중간계급론, 7장은 피지배계급론이다).
8장은 문화분석의 사례를 정치적 영역에 적용한 경우이다. 프랑스 사람들이 자신의 계급적 기반과 어긋나는 행동을
하는 것, 예컨대 노동자들이 보수 정당에 표를 던지는 경우가 현대 정치에서 대단히 큰 논란거리가 되고 있는데,
이러한 문제를 설명하는 데 부르디외의 해석은 큰 실마리를 준다.
『구별짓기』의 마지막 결론 부분은 방법론에 대한 논의가 많아 대단히 전문적 지식을 요구한다.
그러나 그의 결론을 1장과 연결지어 해석해보면, 결국 프랑스가 자유·평등·박애를 기본이념으로 하여 혁명을 이루어
낸 후 지금까지 200년이 지났건만 현대사회가 과연 이러한 이념들을 제대로 실현했는가는 대단히 의문스러우며,
여전히 보이지 않는 불평등이 사회 곳곳에 남아 있다는 것이다.
그는 이러한 불평등 상태가 과거와는 달리 문화적 생활양식을 통해 개인의 무의식과 습관을 지배하고 있으며, 바로
이러한 연유로 해서 현대사회의 권력관계가 쉽게 가시화되지 않는다고 말한다.
이것이 바로 부르디외가 주장하는 상징적 폭력의 실체이다.
우리는 일종의 보이지 않는 문화권력의 그물망에서 평등의 실체를 망각하고 계급적 불평등에 익숙한 채 살아가고 있다.
장 이론
구체적으로 살펴보면 부르디외의 이론 속에 장 개념이 전면적으로 등장하게 되는 계기는 1966년에 발표한 「지적
장과 창조적 기획」이라는 논문이다.
이 논문에서 그는 지적 작품의 창조성은 작가의 순수한 기획이라기보다는 작가가 속한 사회적 요구와 제약 속에서
형성된 것이라는 사실을 부각시킨다. 즉, 창작자가 자신의 작품과 맺는 관계는 '사회적 관계의 체계'에 의해,
더 정확하게는 '지적 장의 구조 내에서 창작자의 위치'에 의해 영향을 받는다는 것이다.
창조적 지식이나 예술작품들은 장 안에 있는 행위자들의 상대적 위치와 장을 지배하는 구조적 규칙의 상호작용이
만들어낸 결과물이다.
지식이나 예술작품들은 학자나 예술가가 속한 사회의 속성과 구조의 규칙들에 따라 일정한 형태를 띠고 나타나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소위 예술가들은 자신이 속한 계급적 위치에 따라 일정한 교육 과정을 밟게 되며, 이것은 그들에게 공통된
아비투스를 갖도록 유도한다.
그런데 이것은 사회 전체적으로 보면 예술품이나 지식을 대하는 사회구성원들의 사회적 무의식과 같은 역할을 하게
되고, 이것을 근거로 문화재에 대한 가치 판단이 결정된다.
부르디외에 따르면, 사회는 개인이나 집단들의 무질서한 집합체이거나 계급들의 위계화된 피라미드이기보다는, 서로
영향을 주고받으며 연결되어 있는 수많은 장들이 접합된 다차원의 위치공간이다.
그리고 이러한 장 안에서 개인들은 자신이 점유한 위치에 따라 상이한 행동전략을 펼치게 된다.
이때 행위자들의 위치는 보유자본의 총량과 그 총량의 내부구성에 의해서 결정된다.
이윤을 확보할 수 있는 자본의 개념은 현대사회에서 다음과 같은 형식으로 확대될 수 있다.
첫째, 경제자본 : 돈으로 즉각적이고 직접적으로 전환이 가능하고 소유권의 형식 속에 제도화되어 있는 이 자본은
생산의 상이한 요소등(토지, 공장, 노동력 등)과 '각종 재화들(자산, 수입, 소유물 등)로 구성된다.
둘째, 정보자본 : 여기에는 문화자본이 포함된다. 정보자본은 받아들여진 정보를 구조화하고 알 수 있게 해주는 각종
정보와 성향의 저장물(stock)이다. 문화자본은 가족에 의해 전수되거나 교육체계에 의해 생산되는데, 대개 세 가지
상태로 존재한다. 먼저 자연스러운 말투나 몸짓처럼 지속적인 성향으로서 '체화된(incorporé)' 상태이다. 다음으로
책, 미술품 등의 다양한 문화재화로서 '대상화된' 상태이다. 끝으로 자격을 부여하는 승인 형식의 '제도화된' 상태이다.
셋째, 사회(관계)자본 : 한 개인이나 집단이 동원하고 활용할 수 있는 사회적인 연줄과 관계망으로서 정의되는 이
자본은 예를 들면, 귀족이라는 명칭 안에 제도화될 수 있다. 이 자본을 소유하기 위해서는 관계를 만들고 관리하는
'사교성의 노동(초대, 집단적 오락, 클럽에의 가입 등)'이 요구된다.
아비투스(habitus)
아비투스(habitus)란 특정한 환경에 의해 형성된 성향, 사고, 인지, 판단과 행동체계를 의미한다. 집단 내에 존재하는
동질적 특정과 집단 간에 존재하는 배타적 이질성으로 계급구성원들의 문화적 행동특성을 나타내는 개념이다.
39.위르겐 하버마스
위르겐 하버마스(Jürgen Habermas, 1929년 6월 18일 - )는 독일의 철학자이자 사회학자, 심리학자이며 언론인이다.
비판이론과 실증주의, 북미 실용주의 분야를 연구한 사회학자로 유명하다.
소통 행위의 이론에서 공공 영역의 개념으로 잘 알려져 있다.
사회 이론의 기초와 인식론을 중심으로 연구하였으며, 진보된 자본주의 사회와 민주주의, 비판적 사회진화적 맥락,
현대 정치학(특히 독일의)에 영향을 미쳤다.
현대 사회 제도 안에서, 또한 이성적인 관심사를 쫓고 그것에 대해 토론할 수 있는 인간의 수용 능력 안에서 이루어
질 수 있는 이성적이고 비평적인 커뮤니케이션의 잠재력과 이성, 정치적 해방에 대해 밝혀내는 것이 하버마스의
이론적 체계이다.
그는 파시즘은 좌우에 상관없이 나타날수 있다고 주장하여 화제가 되기도 했다.
뮌스터 대학교의 송두율 교수의 박사학위 논문 지도교수로도 알려져 있다.
하버마스는 단순히 가난과 빈곤만 사라진 상황을 인간의 진정한 해방으로 보지 않았다.
억압이 사라지고 자유로운 토론과 대화가 가능해야만 비로소 해방된 사회다.
그는 이런 해방된 사회는 이성을 통한 논쟁과 가르침, 곧 계몽을 통해서만 이루어진다고 보았다.
비판 이론가들이 비난을 퍼붓던 인간의 합리성을 그는 끝까지 포기하지 않았던 것이다.
그는 물질문명의 여러 문제들은 이성 자체의 결함에서라기보다, 아직 이성이 충분히 실현되지 않은 탓에 생긴 것으
로 보았다.
하버마스는 부르주아 공론장의 이념형을 전개하기 위해 18~19세기의 영국, 프랑스, 독일의 발전에 주목한다.
독일에서는 18세기 말까지 '작지만 비판적으로 토론하는 공론장'이 형성되었다.
도시민과 부르주아로 구성된 일반 독서 공중이 지속적 독서습관을 갖고 구축하여, 부르주아들의 배타적 공동체로서
실행되고 있었다.
그 후 프랑스 혁명으로 인해 공론장에 정치화 물결이 일어났다.
즉, '사회생활의 정치화', 신문의 증가와 검열에 대한 저항 투쟁과 언론자유를 위한 투쟁은 19세기 중반까지 확장되어
가는 공공적 의사소통망의 기능 변화를 특징짓는 것이다.
하버마스는 국가와 사회의 경향적 분리에서 온 구조 변동을 두 가지 방식으로 개념화하였다.
근대의 자연법 이론이나 스코틀랜드 도덕철학의 사회이론에서만 해도, 시민사회는 전체적으로 사적 영역으로서 항상
공권력과 정부에 대립하는 것이었다.
그러나 가족적 사생활 영역과 직업 체제의 반대 방향으로의 구조화가 의식되었다.
이는 '시민사회:사적 영역=국가:공권력'의 관계에서 시민사회가 공권력에 영향을 미칠 수 있게 되면서 생활영역 자체
가 다시금 사적 영역과 공권력의 영역으로 분리되었다고 할 수 있다.
이 권력으로 인해 공론장은 의사소통적 영향력의 조종을 위해 싸우는 '권력화한 투기장'으로 성장하였다.
조직화된 집단의 구성원들은 다중심적 공론장에서 수종적 대중의 동의를 얻으려 경쟁한다.
이 과정에서 그들은 권력 조정과 이익조정을 둘러싸고 서로 경쟁하는 동시에 무엇보다도 국가 관료의 거대한 복합체
에 대항해 겨룬다.
하버마스는 정치적 공론장에 내재하는 사회적 자기 조직화의 잠재력을 주목하고, 서구적 유형의 사회에서 복지국가
및 조직화된 자본주의에로의 복잡한 발전이 지닌 반작용들에 관심을 가졌다.
40.페터 슬로터다이크
페터 슬로터다이크(57) 칼스루에 조형대 총장은 계몽주의에 대한 니체의 비판적 계몽작업을 재구성하고 있다는 평가
를 받는 세계적인 학자다.
위르겐 하버마스로 대표되는 프랑크푸르트 학파의 비판이론과 대척점에 서 있는 그의 인간복제에 관한 주장은 하버
마스의 제자인 토마스 아스호이어로부터 생명공학과 관련된 윤리적 물음을 배제함으로써 엘리트 인간을 사육하려는
‘차라투스트라의 기획’이란 비난을 받는 등 현재까지 논쟁이 계속되고 있다.
슬로터다이크 교수는 독일 칼스루에에서 태어나 뮌헨대에서 철학과 독문학, 역사학을 공부하고 75년 함부르크대
에서 현대 자전문학의 철학과 역사에 관한 연구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80년 이래 자유작가로 활동하며 시대진단을 비롯,종교철학·심리학·문화·예술이론에 관한 다수의 논문과 책을 펴냈다.
슬로터다이크 철학의 특징은 칸트를 빗댄 제목을 단 ‘냉소적 이성 비판’에서 찾을 수 있다.
그는 이 책에서 근대의 이성중심적 계몽주의가 결국 냉소주의를 보편화시켰다고 진단하면서, 우리가 상실한 고대의
견유주의 전통을 회복할 때 비로소 계몽주의를 보전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철학은 근대 계몽주의를 통해 삶과 분리되기 시작했으며 삶과 분리된 지식이 보편화할수록 우리는 그만큼 더욱 더
무감각해진다는 것이다.
그가 말한 “우리는 계몽되었고, 우리는 무감각해졌다”는 명제는 냉소주의의 보편화를 선명하게 표현하고 있다.
또 계몽이 허위의식을 제거하는 대신 계몽된 허위의식과 다를 바 없는 냉소주의가 대중적으로 보편화하는 현상을
혁신하기 위해 이성 보다 몸을 중시한 디오게네스의 견유주의에 주목했다.
이를 통해, 그가 보여주려 한 것은 계몽이 계몽을 배반하고 이성의 절대화가 절대적 비합리로 전도되는 이성중심
주의가 철저하게 추구될 때 빚어지는 자기배반의 역사다.
휴머니즘이 인간다움에 관한 철학적 성찰을 한 세대에서 다음 세대로 이어주는 문자와 긴밀히 결합돼 있다고 본 그는
우리가 살고 있는 시대는 포스트문자적이며, 따라서 포스트휴머니즘이라고 말한다.
휴머니즘의 기능을 ‘인간 길들이기’로, 인간을 ‘동물로 존재하고 동물로 남아 있는 것에 실패한 존재’로 이해하는 슬로
터다이크 교수는 인간이 가축과 동거하기 시작하자마자 인간은 가축만을 사육한 것이 아니라 다른 인간도 사육한 것
이 아닐까라는 물음을 제기한다.
이점에서 그에게 인간을 유전학적으로 선별하고 사육할 수 있게 만든 생명공학은 포스트휴머니즘의 도래를 의미하는
동시에 인간을 길들이는 또 다른 수단으로 보일 수 있다.
어쨌든, 인간복제에 관한 그의 주장은 독일의 좌파 지식인들과 주요 언론들로부터 나치시대의 인종주의 철학과 과학
의 결탁을 연상시킨다는 이유로 집중적인 비판을 받았다.
그러나 그가 볼 때 위험은 유전공학 자체가 아니라 나르시즘적인 인간이 가지고 있는 유아적인 사유방식에 있을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