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말씀
만일 여러분 중에 누구든지 지혜가 부족하거든, ··· 하느님께 계속 청하십시오.—야고보 1:5. 여호와께서 기도에 즉시 응답해 주시지 않는다고 느낀다면 어떻게 해야 합니까? 야고보는 하느님께 “계속 청해야” 한다고 말합니다. 여호와께서는 우리가 계속 지혜를 청해도 귀찮아하지 않으십니다. 그분은 우리를 꾸짖지 않으실 것입니다. 우리가 시련을 인내하기 위해 지혜를 달라고 기도하면 하늘의 아버지께서는 우리에게 지혜를 “관대하게 주십니다.” (시 25:12, 13) 그분은 우리가 겪는 시련을 보시고 동정심을 느끼시며 우리를 간절히 돕고 싶어 하십니다. 정말 기뻐할 이유가 아닙니까! 그러면 여호와께서는 우리에게 어떻게 지혜를 주십니까?자신의 말씀을 통해 그렇게 하십니다. (잠언 2:6) 따라서 지혜를 얻으려면 성경과 성경 출판물을 연구해야 합니다. 하지만 단지 지식을 쌓는 것으로는 충분하지 않습니다. 우리는 하느님의 조언을 적용함으로 그분의 지혜가 우리의 생활에서 힘을 발휘하게 해야 합니다. 야고보는 이렇게 썼습니다. “말씀을 행하는 사람이 되고, 듣기만 [하는] 사람이 되지 마십시오.” (야고보 1:22) 하느님의 조언을 적용하면 우리는 더 평화롭고 합리적이고 자비로운 사람이 됩니다. (야고보 3:17) 그러한 특성들은 어떤 시련을 겪더라도 기쁨을 잃지 않고 인내하는 데 도움이 됩니다. 「파21.02」 29면 10-11항 |
만일 여러분 중에 누구든지 지혜가 부족하거든, 모든 사람에게 관대하게 주시고 꾸짖지 않으시는 하느님께 계속 청하십시오. 그러면 주실 것입니다. If any of you lack wisdom, let him ask of God, that giveth to all men liberally, and upbraideth not; and it shall be given him. Barnes' Notes on the Bible If any of you lack wisdom - Probably this refers particularly to the kind of wisdom which they would need in their trials, to enable them to bear them in a proper manner, for there is nothing in which Christians more feel the need of heavenly wisdom than in regard to the manner in which they should bear trials, and what they should do in the perplexities, and disappointments, and bereavements that come upon them; but the language employed is so general, that what is here said may be applied to the need of wisdom in all respects. The particular kind of wisdom which we need in trials is to enable us to understand their design and tendency; to perform our duty under them, or the new duties which may grow out of them; to learn the lessons which God designs to teach, for he always designs to teach us some valuable lessons by affliction; and to cultivate such views and feelings as are appropriate under the peculiar forms of trial which are brought upon us; to find out the sins for which we have been afflicted, and to learn how we may avoid them in time to come. We are in great danger of going wrong when we are afflicted; of complaining and murmuring; of evincing a spirit of rebellion, and of losing the benefits which we might have obtained if we had submitted to the trial in a proper manner. So in all things we "lack wisdom." We are short-sighted; we have hearts prone to sin; and there are great and important matters pertaining to duty and salvation on which we cannot but feel that we need heavenly guidance. Let him ask of God - That is, for the specific wisdom which he needs; the very wisdom which is necessary for him in the particular case. It is proper to bear the very case before God; to make mention of the specific want; to ask of God to guide us in the very matter where we feel so much embarrassment. It is one of the privileges of Christians, that they may not only go to God and ask him for that general wisdom which is needful for them in life, but that whenever a particular emergency arises, a case of perplexity and difficulty in regard to duty, they may bring that particular thing before his throne, with the assurance that he will guide them. Compare Psalm 25:9; Isaiah 37:14; Joel 2:17. That giveth to all men liberally - The word men here is supplied by the translators, but not improperly, though the promise should be regarded as restricted to those who ask. The object of the writer was to encourage those who felt their need of wisdom, to go and ask it of God; and it would not contribute anything to furnish such a specific encouragement to say of God that he gives to all men liberally whether they ask or not. In the Scriptures, the promise of divine aid is always limited to the desire. No blessing is promised to man that is not sought; no man can feel that he has a right to hope for the favor of God, who does not value it enough to pray for it; no one ought to obtain it, who does not prize it enough to ask for it. Compare Matthew 7:7-8. The word rendered "liberally" haploos - means, properly, "simply;" that is, in simplicity, sincerity, reality. It occurs nowhere else in the New Testament, though the corresponding noun occurs in Romans 12:8; 2 Corinthians 1:12; 2 Corinthians 11:3, rendered simplicity; in 2 Corinthians 8:2; 2 Corinthians 9:13, rendered "liberality," and "liberal;" 2 Corinthians 9:11, rendered "bountifulness;" and Ephesians 6:5; Colossians 3:22, rendered "singleness," of the heart. The idea seems to be that of openness, frankness, generosity; the absence of all that is sordid and contracted; where there is the manifestation of generous feeling, and liberal conduct. In a higher sense than in the case of any man, all that is excellent in these things is to be found in God; and we may therefore come to him feeling that in his heart there is more that is noble and generous in bestowing favors than in any other being. There is nothing that is stinted and close; there is no partiality; there is no withholding of his favor because we are poor, and unlettered, and unknown. And upbraideth not - Does not reproach, rebuke, or treat harshly. He does not coldly repel us, if we come and ask what we need, though we do it often and with importunity. Compare Luke 18:1-7. The proper meaning of the Greek word is to rail at, reproach, revile, chide; and the object here is probably to place the manner in which God bestows his favors in contrast with what sometimes occurs among men. He does not reproach or chide us for our past conduct; for our foolishness; for our importunity in asking. He permits us to come in the most free manner, and meets us with a Spirit of entire kindness, and with promptness in granting our requests. We are not always sure, when we ask a favor of a man, that we shall not encounter something that will be repulsive, or that will mortify us; we are certain, however, when we ask a favor of God, that we shall never be reproached in an unfeeling manner, or meet with a harsh response. And it shall be given him - Compare Jeremiah 29:12-13; "Then shall ye call upon me, and go and pray unto me, and I will hearken unto you. And ye shall seek me, and find me, when ye shall search for me with your whole heart." See also Matthew 7:7-8; Matthew 21:22; Mark 11:24; 1 John 3:22; 1 John 5:14. This promise in regard to the wisdom that may be necessary for us, is absolute; and we may be sure that if it be asked in a proper manner it will be granted us. There can be no doubt that it is one of the things which God is able to impart; which will be for our own good; and which, therefore, he is ever ready to bestow. About many things there might be doubt whether, if they were granted, they would be for our real welfare, and therefore there may be a doubt whether it would be consistent for God to bestow them; but there can be no such doubt about wisdom. That is always for our good; and we may be sure, therefore, that we shall obtain that, if the request be made with a right spirit. If it be asked in what way we may expect he will bestow it on us, it may be replied: (1) That it is through his word - by enabling us to see clearly the meaning of the sacred volume, and to understand the directions which he has there given to guide us; (2) By the secret influences of his Spirit. (a) Suggesting to us the way in which we should go, and, (b) Inclining us to do that which is prudent and wise; and, (3) By the events of His Providence making plain to us the path of duty, and removing the obstructions which may be in our path. It is easy for God to guide his people; and they who "watch daily at the gates, and wait at the posts of the doors" of wisdom Proverbs 8:34, will not be in danger of going astray. Psalm 25:9. 반스의 성경 주석 만일 너희 중에 지혜가 부족한 사람이 있다면 - 이것은 그들이 시련에서 필요로 하는 지혜를 가리켜서, 그들이 적절한 방법으로 그 시련을 견딜 수 있도록 하는 것일 것이다. 기독교인들은 그들이 시련을 견뎌야 하는 방식과 그들에게 임하는 뉘우침, 당혹감, 실망 속에서 행해야 할 일에 대해 천상의 지혜의 필요를 가장 많이 느끼기 때문이다. 그러나 여기서 사용된 표현은 매우 일반적이므로 지혜가 필요한 모든 면에 적용될 수 있다. 우리가 시련에서 필요로 하는 특별한 종류의 지혜는 우리가 그 시련들의 의미와 경향을 이해할 수 있게 하는 것이다; 그러한 이해 아래에서 우리의 의무 또는 그것들로부터 자라날 수 있는 새로운 의무들을 수행할 수 있게 하는 것이다; 하나님께서 가르치려고 계획하신 교훈을 배우는 것, 그는 항상 고통으로 우리에게 귀중한 교훈을 가르치려고 하기 때문에, 그러한 견해와 감정을 배양하는 것이다. 우리에게 임하는 특이한 형태의 시험 아래서 마땅히 해야 할 일이니라 우리가 당한 죄를 들추어내고 장래에 그것을 피할 수 있는 방법을 배우라 우리가 고난을 받을 때, 불평과 중얼거림, 반항 정신을 입증하는 것, 그리고 우리가 적절한 방법으로 재판에 복종했다면 얻을 수 있었을 이익을 잃는 큰 위험에 처해 있다. 그래서 우리는 모든 것에 대해 "지혜가 부족하다". 우리는 근시안적이고, 마음이 죄짓기 쉬우며, 의무와 구원에 관한 크고 중요한 문제들이 있는데, 우리는 그것에 대해 하나님의 안내가 필요하다고 느끼지 않을 수 없다. 하나님께 구하라 - 그것은 그가 필요로 하는 특정한 지혜와 특정한 경우에 그에게 필요한 바로 그 지혜를 구하라 바로 하나님 앞에서 그 시련을 감수하고, 구체적인 욕구에 대해 언급하며, 우리가 그토록 당혹스러워하는 바로 그 문제에 대해 하나님께 인도해 달라고 요청하는 것이 마땅하다. 그것은 기독교인들의 특권 중 하나로서, 그들은 하나님께 가서 그들에게 필요한 일반적인 지혜를 요구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특정한 긴급한 일이 있을 때마다, 직무에 관하여 곤혹스럽고 어려운 경우, 그들은 그 특정한 것을 그의 보좌 앞에 가지고 갈 수 있으며, 그가 그들을 인도할 것이라는 확신을 가지고 있다.. 시편 25장 9절과 이사야 37장 14절과 요엘 2장 17절을 비교하라 지혜를 모든 사람들에게 후히 준다 - 여기서 '사람들' 이라는 단어는 번역가들에 의해 제공된 것이지며, 그 지혜는 구하는 사람들에게만 주어진다는 제한은 부적절하지는 않다. 글쓴이의 목적은 지혜가 필요하다고 느끼는 사람들에게 가서 하나님께 구하도록 격려하는 것이었다. 그리고 그것은 그가 그들이 구하든 않든 모든 사람들에게 관대하게 주는 하나님에 대해 말할 수 있는 특별한 격려를 제공하는 데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을 것이다. 성경에서 하나님의 도움의 약속은 항상 원하는 자들로 제한된다. 구하지 않는 축복은 인간에게 약속되지 않는다. 아무도 하나님의 은혜를 바랄 권리가 있다고 느낄 수 없다. 그 은혜를 위해 기도할 만큼 충분히 소중하게 여기지 않는 사람은 그 은혜를 얻을 수도 없다. 마태 7:7-8을 비교해 보자. "후히"라고 번역된 단어 핲루즈는 단순함 속에서, "단순히", 성실하게, 현실적으로 라는 의미이다. 해당되는 명사형은 롬 12:8; 고후 1:12,9:13; 고후 8:2,9:13; 엡6:5; 골3:22 에 언급되며, 신약성서에서 그 외의 곳은 나타나지 않는다. 그 개념은 개방성, 솔직함, 관용, 어떤 사람들의 경우에서 발견되는 것보다 더 높은 의미에서, 비도덕적이거나 옹색함이 없는 관대하고 후하다는 느낌을 주는 것 같다. 이 모든 탁월한 속성이 하나님에게서 발견되며, 이 때문에 모든 것을 관대하고 후히 주시는 이러한 마음의 소유자이신 그분께 나아오게 하는 것이다. 꾸짖지 아니하시는 - 사람을 모질게 다루거나 질책하지 않는다. 만약 우리가 가서 필요한 것을 구할 때, 너무 자주 요청하거나 끈덕지다고 해서 물리치지 않는다. 눅 18장을 비교해 보라. '꾸짖다'에 해당되는 그리스 단어의 적절한 의미는 격분하다, 책망하다, 피하다, 귀찮게 여기다이고, 여기서 아마 하나님은 때때로 사람들 사이에서 발생하는 문제들과는 달리 그의 은혜를 베푼다는 방식을 의도한 것이다. 그는, 우리의 과거의 행동으로 우리를 절대 비난하거나, 우리의 어리석음을 물어 우리의 요청을 책망하지 않는다. 그는 우리가 가장 자유스런 분위기에 오도록 친절의 영을 나타내신다. 그리고 우리의 요구 사항을 들어 주는 것에 신속하며, 기꺼이 우리를 만나 주신다.우리가 인간에게 친절을 베풀 때 혐오스러운 것 또는 우리를 불행하게 할 것을 만나지 않을 것이라 확신하지 못하나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은혜를 베풀 때, 우리는 결코 무정하게 책망받지 않을 것이며 가혹한 응벌을 받지 않을 것이라 확신할 수 있다. 주시리라 - 예레미야 29장 12-13절을 비교해 보라 "그러면 너희가 나를 부르러 가서 내게 기도하라 그리하면 내가 너희에게 들으리라 너희가 온 마음을 다하여 나를에게 부르짖을 때에 나를 찾게 되리라 하시니라." 마태복음 7장 7~8절, 마태복음 21장 22절, 마태복음 11장 24절, 요한복음 3장 22절, 요한복음 5장 14절도 참조하라. 우리에게 필요할지도 모르는 지혜에 관한 이 약속은 절대적이다. 그리고 우리는 그것이 적절한 방법으로 요구된다면 그것이 우리에게 주어질 것이라고 확신할 수 있다. 그것은 하나님이 우리에게 베푸실 수 있는 것 중 하나이며, 그것은 우리의 유익을 위해 이루어 질 것이며, 그러므로 그는 언제나 베풀 준비가 되어 있다. 많은 것들에 대해서, 만약 그것들이 허락된다면, 그것이 우리의 진정한 복지를 위한 것인지 아닌지에 대한 의심이 있을 수 있고, 따라서 하나님께서 그것들을 주는 것이 일관성이 있는지에 대한 의심이 있을 수 있다; 그러나 지혜에 대한 그러한 의심은 있을 수 없다. 그것은 항상 우리의 이익을 위한 것이요 그러므로 우리는 그 요구가 올바른 정신으로 행해진다면 그것을 얻을 수 있으리라 확신 할 수 있다 만약 그가 우리에게 어떤 방식으로 그것을 줄 것인지 우리가 예상해 본다면, 다음과 같이 대답할 수 있다. (1) 그 말씀으로 말미암아 우리는 성서의 뜻을 똑똑히 볼 수 있고, 그 안에서 우리에게 인도하여 주신 길을 이해할 수 있다. (2) 그의 영혼의 은밀한 영향력으로 말미암아 (a) 우리에게 가야 할 길을 제안했고, (b) 우리에게 분별과 지혜를 베푸는 일을 하도록 함이라 (3) 하나님의 섭리로 말미암아 우리에게 가야 할 길을 밝혀 주시고 우리의 길에 있는 장애물을 제거하여 주셨다. 하나님께서 그의 백성을 인도하시는 것은 쉬운 일이다. 지혜의 말씀인 잠언 8장 34절에서 "매일 성문을 지키고 문기둥에서 기다리는 자들"은 방황할 위험이 없다. ㅡ 시편 25: 9 |
야고보서 1장은 시험에 처한 그리스도인들을 위한 권면으로 시작한다. 그 시험은 다양하고 절박한 것들이다. '삶은 시련의 연속' 이란 말이 있듯이 시련에서 떠나 있는 사람은 거의 없다. 하지만 시련을 당할 때, 어떤 자세와 태도를 취하는지를 보면 그 사람이 지혜로운 사람인지 그렇지 않은 사람인지 잘 판단될 수 있다. 지혜롭지 못한 사람은 자신의 삶을 놓고 원망과 불평만 쏟아내고 환경만 탓한다. 그런 사람은 시련을 이겨낼 수 없다. 하지만 지혜로운 사람은 자신이 가진 역량과 하나님의 도움을 통해서 이겨내려고 안간힘을 쓴다. 이런 사람이 지혜 있는 사람이다. 구약성경에서 지혜는 매우 중요하게 다뤄진다. (잠 2:6, 8:35) 지혜는 세상을 바라보는 통찰력을 주고 삶을 살아가는 방법을 알게 한다. 야고보는 지혜를 얻기 위하여 '이렇게 하라'고 말한다. 5절을 보자. "너희 중에 누구든지 지혜가 부족하거든 모든 사람에게 후히 주시고 꾸짖지 아니하시는 하나님께 구하라 그리하면 주시리라" (5절) 그리스도인들의 삶에서 항상 부족함을 느끼는 것이 지혜이다. 이때 지혜의 근원이신 하나님께 구해야 한다. 보통의 인간관계를 생각해 보자. 어려운 일을 당할 때 상대방에게 고민을 털어놓거나 도움을 요청하는 일은 쉽지 않다. 여러번 망설이게 되고, 고민을 얘기했다가 공연히 창피를 당하거나 약점을 잡힐까봐 포기하곤 한다. 이런 반응은 자기 자신에 대한 용기와 담대함에 대한 것이지만, 동시에 상대방의 태도와도 연관되어 있다. 보통 도움이 필요할 때는 진짜 힘들 때이다. 그때는 먼저 하나님께 구하라고 하신다. 왜냐하면 그분은 꾸짖지도 아니하시고 후히 주시는 분이다. 아무런 꾸짖음 없이 구하는 것을 주신다는 것은, 비록 그가 평소에 자만에 빠져 무신론적이거나 어떤 죄를 지었거나 간에 과거를 묻지 않고 진심으로 구하기만 한다면 들어 주신다는 뜻이다. 그렇기 때문에 평소에 하나님을 찾지 아니한 사람도 바다에 빠져 구조를 기다리며 하나님께 지혜를 구하는 것이다. '구한다'는 말은 '기도로써 간청한다'는 말이다. 야고보는 기도에 대한 명쾌한 답을 제시한다. "오직 믿음으로 구하고 조금도 의심하지 말라..." (6절 상반절) 기도에 대한 응답은 믿음에 달려 있다. 믿음은 구하는 것에 대한 확신이라면, 이에 대한 반대말은 의심이다. 의심은 내적인 갈등을 말한다. 의심은 이랬다 저랬다 하는 마음이고 안정되지 않은 마음입니다. '의심' 은 그리스어로 '디아크리노'(diakrino) 이다. 이 단어는 두 개의 뜻이 합해진 용어인데, '사이' 를 뜻하는 '디아'(dia)와 '분리시키다' 를 일컫는 '크리노'(krino)가 합성된 단어다. 그러니까 의심은 이곳과 저곳을 왔다갔다 하는 갈등을 일컫는 말이다. 야고보는 이에 대하여 다음 성구로서 생생한 그림을 사용해서 표현한다. "의심하는 자는 마치 바람에 밀려 요동하는 바다 물결 같으니, 이런 사람은 무엇이든지 주께 얻기를 생각하지 말라.두 마음을 품어 모든 일에 정함이 없는 자로다" (6절 중반절~8절) 의심하는 자에 대한 그림과 같은 묘사이다. 의심하는 자는 바람에 밀려 요동하는 바다 물곁 같고 이런 사람은 무엇이든 주께 얻기를 생각하지 말라고 했다. 참으로 적절한 표현이다. 의심하는 사람들의 기도가 잘 될리가 없다. 처음부터 이뤄지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하며 기도하는 것이나 중간에 빨리 응답되지 않는다고 조급한 마음을 가지면 배가 가다가 파도에 밀려 진행을 못한다는 것이다. 야고보는 의심에 대하여 한번 더 강조하면서 '두 마음을 품은 자'라고 했다. 의심하는 자는 두 마음을 품은 자라는 뜻이다. '두 마음'은 야고보만의 독특한 표현이다. 두 마음 역시 그리스어로 '디프쉬코스'(dipsuchos)인데 '디스'(dis)는 '두 번' 이고, '프쉬케'(pshche)는 아는 바와 같이 '영혼' 이다. 두 영혼은 의심의 또 다른 표현인 셈이다. 이런 사람은 두 종류의 삶 사이에서 방향을 못잡고 헤메는 사람이다. 의심과 두 영혼을 퇴치하는 방법은 바로 믿음의 기도이다. 반드시 이루어진다는 확신의 기도는 한쪽 방향의 삶을 향하여 나아가는 영혼의 중심을 잡아 준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