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漢詩를 영화로 읊다] 군인의 칼이 녹슨다면, 그것이 평화일수도
애니메이션 ‘붉은 돼지’에서 마르코는 전쟁 영웅이었지만 인간이길 거부하고 돼지가 된다. 파시스트의 참전 요구를 거절하고 은신처에서 한가로이 낮 잠을 잔다. 브에나비스타코리아 제공
✺ 1991년 작 ‘지중해’ 이탈리아 영화.
썸네일엔 이탈리아군 전투력 이라는 단어가 보이지만... 전투와는 아무 상관없는 영화
https://youtu.be/_zO2IMf8AZQ
가브리엘 살바토레 감독의 영화 ‘지중해’(1991년)는 전쟁을 배경으로 하지만 전투 장면이 없다. 제2차 세계대전 중 그리스의 작은 섬에 파병된 이탈리아 병사들은 사령부와 연락도 끊긴 채 주민들과 어울려 지중해의 햇빛 아래 뛰어논다. 이런 역설적인 한가로움은 조선 중기 임제(林悌·1549∼1587) 시에서도 포착된다.
역루(驛樓)에서/ 임제(林悌·1549∼1587)
胡虜曾窺二十州 (호로증규이십주)
오랑캐가 20주 넘본 것이 어느때더냐?
當時躍馬取封侯 (당시약마취봉후)
당시엔 공훈 취하고자 말에 올랐더라.
如今絶塞無征戰 (여금절새무정전)
오늘날 변방에 전쟁의 자취 잠잠하니,
壯士閑眠古驛樓 (장사한면고역루)
장사는 할 일 없어 옛 역루에서 낮잠 자는 구나.
◇ 驛樓(역루) : 「고산역(高山驛)」이라 된 곳도 있음.
◇ 窺(규) : 엿보다 규,
◇ 躍(약) : 뛰다 약
1579년 시인이 함경도 고산역(高山驛)의 찰방(察訪·역참을 관리하는 벼슬)으로 있을 때 쓴 시다. 전반부는 고려시대 윤관(尹瓘)이 이곳의 여진족을 몰아내고 9성을 쌓았던 역사를 떠올리게 한다. 지금은 전쟁의 기미조차 없어 장사는 무료한 듯 낮잠이나 잔다. 변방을 무대로 이민족과의 긴장 관계를 읊는 ‘변새시(邊塞詩)’로선 이색적인 결말이다.
그럼에도 이 시는 당대 허균 형제 등으로부터 호협(豪俠)한 변새시로 높게 평가받았다. 적의 침입을 방비하기 위해 늘 긴장 상태여야 할 장사의 태평스러운 태도가 뜻밖의 효과를 불러일으킨다. 흥미로운 건 시인의 다른 시에서도 이런 ‘낮잠 자는 장사’가 등장한다는 것이다(‘遣興’ 첫 번째 수).
이 시에 대해 허균은 『성소부부고(惺所覆瓿藁):조선 중기의 문인인 성소(惺所) 허균이 편찬한 시문집』에서, “중형도 임자순의 ···라는 시를 칭찬하여 협기(俠氣)가 펄펄 뛴다고 하였다(仲兄亦稱其胡虜曾窺二十州(중형역칭기호로증규이십주) 將軍躍馬取封侯(장군약마취봉후) 如今絶塞無征戰(여금절새무정전) 壯士閑眠古驛樓(장사한면고역루) 以爲翩翩俠氣(이위편편협기).”라 평했고, 『오산설림초고(五山說林草藁)』에는, “창해(滄海) 양사언(楊士彦)이 안변 군수로 있을 때, 임제는 고산 찰방(지금의 철도 국장과 같은 벼슬)이 되었다. 임제가 창해에게 농담 삼아 말하기를, ‘덕산(德山)역 벽 위에 칠언절구 한 수가 붙어 있는데, 내 못 쓰는 글씨로 쓴 것입니다. 아마 북도(北道) 변장(邊將)이 지은 시가 아닌가 생각합니다.’ 하고 창해에게 그 시를 죽 불러 주는데, ···하였더니, 창해가 웃으면서, ‘이것은 무부(武夫)의 입에서 나온 것이 아니요, 반드시 고산(高山) 당신의 솜씨일 것이다.’ 하였다.
미야자키 하야오 감독의 애니메이션 ‘붉은 돼지’(1992년)에도 한가로이 낮잠을 즐기는 전직 공군 비행사가 등장한다. 주인공 마르코는 과거 전쟁영웅이었지만 인간이 되길 거부하고 돼지의 얼굴로 해안의 작은 섬에 숨어 산다. 감독의 개인적 경험이 은둔하는 돼지로 표현된 것처럼, 지식인 사회와 불화하던 시인의 처지가 잠자는 장사에 투영됐다. 시인도 감독도 세상에서 실현하지 못한 혹은 실현할 수 없던 바람을 낮잠 자는 형상에 담아 놓은 듯하다.
이런 창작 배경에도 불구하고 이들이 작품을 풀어나가는 방식은 결코 딱딱하지 않다. 전쟁과 평화, 바람의 좌절 같은 무거운 주제가 약간의 유머와 곁들여져 희석돼 표출된다. 감독이 파시즘에 저항하는 마지막 이상주의자의 상징으로 ‘붉은 돼지’란 기호를 사용한 것처럼 시인은 현실 속 좌절을 위안받기 위해 ‘낮잠 자는 장사’의 형상을 만들어낸 것이다.
시인은 자신이 중국의 오대(五代)나 육조(六朝)시대 같은 혼란기에 태어났다면 돌림 천자라도 했을 것이라는 왕정을 깔보는 듯한 유언을 남긴 바 있다. 감독 역시 전쟁과 군대에 대한 환멸로 자신의 신념을 고수하겠다는 다짐을 영화에 담았다. 파시스트가 되느니 돼지를 선택한 영화 속 비행사와 세상에서 인정받지 못해도 아랑곳하지 않는 장사는 감독과 시인의 또 다른 페르소나라고 할 수 있다.
✵임제(林悌, 1549, 명종 4~1587, 선조 20)의 본관은 나주(羅州). 자는 자순(子順), 호는 백호(白湖)·풍강(楓江)·벽산(碧山)·소치(嘯癡)·겸재(謙齋). 초년에는 늦도록 술과 창루(娼樓)를 탐하며 지내다가 20세가 되어서야 비로소 학문에 뜻을 두었다.
제주목사였던 아버지를 만나기 위해 풍랑이 거친 바다를 조각배로 건너가고, 올 때는 배가 가벼우면 파선된다고 배 가운데에 돌을 가득 싣고 왔다고 한다. 1577년(선조 9) 문과에 급제했다. 그러나 당시 당쟁의 와중에 휘말리기를 꺼린 탓에 변변한 벼슬자리를 얻지 못하고 예조정랑 겸 사국지제교(史局知製敎)에 이른 것이 고작이었다.
스승인 성운(成運)이 죽자 세상과 인연을 끊고 벼슬을 멀리한 채 산야를 방랑하며 혹은 술에 젖고 음풍영월(吟風詠月)로 삶의 보람을 삼았다. 전국을 누비며 방랑했는데 남으로 탐라·광한루(耽羅·廣寒樓)에서 북으로 의주·부벽루(義州·浮碧樓)에 이르렀다.
그의 방랑벽과 호방한 기질로 인해 당대인들은 모두 그를 법도(法度) 외의 인물로 보았다. 그러나 당시의 학자인 이이(李珥)·허균(許筠)·양사언(楊士彦) 등은 그의 기기(奇氣)와 문재(文才)를 알아주었다.
성운은 형이 을사사화(乙巳士禍)로 비명에 죽자 그 길로 속리산에 은거한 인물로 임제는 정신적으로 그의 영향을 많이 받았다. 죽을 때는 자식들에게 “사해제국(四海諸國)이 다 황제라 일컫는데 우리만이 그럴 수 없다. 이런 미천한 나라에 태어나 어찌 죽음을 애석해하겠느냐.”며 곡을 하지 말라고 유언했다.
기풍이 호방하고 재기가 넘치는 문인으로 평가받으면서 전국을 누비다 보니 여러 일화들이 전한다. 특히 기생이나 여인과의 일화가 많은데, 당시 평양에서 제일가는 기생 일지매(一枝梅)가 전국을 다녀도 마음에 드는 이가 없던 차에 마침 밤에 어물상으로 변장하고 정원에 들어온 그의 화답시(和答詩)에 감동되어 인연을 맺은 일, 영남 어느 지방에서 화전놀이 나온 부인들에게 육담적(肉談的)인 시를 지어 주어 음식을 제공받고 종일 더불어 논 일, 박팽년(朴彭年) 사당에 짚신을 신고 가 알현한 일 등은 유명하다.
황진이(黃眞伊, 1506~1567)의 무덤을 지나며 읊은 “청초 우거진 골에···”로 시작되는 시조를 포함해 기생 한우(寒雨)와 화답하는 것 등 사랑과 풍류를 다룬 시조 4수를 남겼다. 문집으로는 『백호집(白湖集)』이 있다. 700여 수가 넘는 한시(漢詩) 중 전국을 누비며 방랑의 서정을 담은 서정시(敍情詩)가 제일 많다. 절과 승려에 관한 시, 기생과의 사랑을 읊은 시가 많은 것도 특색이다. 꿈의 세계를 통해 세조의 왕위찬탈이란 정치권력의 모순을 풍자한 「원생몽유록(元生夢游錄)」, 인간의 심성을 의인화한 「수성지(愁城誌)」, 그리고 식물세계를 통해 인간역사를 풍자한 「화사(花史)」 등 한문소설도 남겼다.
출처: 동아일보 2022년 04월 07일(목)|문화 [한시를 영화로 읊다(임준철 고려대 한문학과 교수)]〈36〉장사의 낮잠, Daum·Naver 지식백과
첫댓글 비굴한 평화가 전쟁에서 이기는 것보다 좋습니다 ~
고봉산 정현욱 님
에니메이션 영화 그리고 임재의 시가 말하는 공통점은 군인들 입장에서 본 평화가 어떤 느낌을 주는지를 설명하고 있는것 같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