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다거북의 알은 28도 이하에서는 수컷으로 태어나고 30도 이상에서는 암컷으로 태어난다. 붉은 사슴은 서열이 높은 암컷이 아들을 많이 낳고 붉은털원숭이 집단에서는 서열이 높고 영양 상태가 좋은 암컷일수록 암컷 새끼를 많이 낳는다. 자연계에는 아버지는 없고 할아버지만 있는 생물이 있으며, 피파개구리는 XY 염색체가 암컷으로 포유류와 정반대다. 암컷과 수컷을 결정하는 성 결정 기구는 무엇이고, 성비를 결정하는 요인은 무엇인가. 이 책은 생태계에 감추어진 암수 숫자의 수수께끼와 그 불가사의한 번식생태학의 메커니즘을 밝힌다. 책은 다양한 생물 종의 번식 메커니즘을 따라가며 성의 기원, 진화의 원천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하세가와 마리코 지음/이윤정 옮김)
1장 세상에 암수가 있는 까닭 - 성의 기원
유성생식은 왜 출현했을까?
결론부터 말하자면 성의 기원은 현대 생물학의 가장 큰 수수께끼 중 하나로 아직 결론이 나지 않았다. 생물이란 정의상 자기 복제가 가능한 존재다. 지구상에 처음 생명이 나타났을 때의 자기 복제 방법은 분열이었다. 그러므로 처음에는 성이 없었다. 분열에 한하지 않고 성 없이 증식하는 방법, 즉 무성생식이 최초의 번식 방법이었다. 하지만 현재 대부분의 생물은 유성적으로 번식한다. 성의 기원을 고찰하려면 무성적으로 증식하던 조상 중에서 왜 유성생식을 하는 생물이 출현하고 번식하게 되었는지 살펴보아야 한다.
유성생식의 불편한 점은 하나의 자손을 만드는 데 부모 둘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따라서 유성생식은 무성생식에 비해 본질적으로 절반의 효과로 번식할 수밖에 없다. 이것을 '유성생식의 두 배의 비용'이라고 한다. 그런 이유로 성은 번식 수단으로서 진화해온 것이 아니라고 생각한다. 번식 수단이었다면 '유성생식의 두 배의 비용'으로 인해 기존의 무성생식 생물 집단에서 경쟁에 이길 수 없었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왜 성은 진화했을까?
성의 본질은 암컷과 수컷 두 개체가 서로 유전자를 섞는 것이다. 유성생식의 경우 자식은 부모 어느 쪽의 온전한 복제도 아니다. 이 유전자 혼합을 '재조합'이라고 부르는데, 성의 본질은 재조합에 있다. 무성생식에서는 부모의 몸 일부에서 그대로 자식이 만들어지기 때문에 자식은 부모의 복제다. 돌연변이가 일어나지 않는 한 자식의 유전자 구성은 부모의 것과 똑같다. 그래서 성이 왜 생겨났느냐는 의문은 유전자 재조합이 왜 중요하냐는 의문이 되고, 유성생식이 왜 번성하느냐는 의문은 유전적으로 다른 자식을 두는 것이 '유성생식의 두 배의 비용'을 넘어서는 어떤 이익을 가져왔느냐는 의문이 된다. 이 의문에 대해서는 아직 확실한 답이 나오지 않은 상태이므로 이에 대한 몇 가지 학설을 간단히 소개하겠다.
세대마다 유전자를 재조합하는 것의 이점은 기본적으로 첫째, 유해한 유전자의 축적을 피할 수 있고, 둘째, 유리한 유전자 조합을 만들어내거나 유리한 유전자를 퍼뜨릴 수 있는 것이라고 한다. 무성적으로 번식하는 생물은 부모와 똑같은 복제 자식을 만들므로 일단 생겨난 돌연변이는 시간이 지남에 따라 계속 축적되어 갈 것이다. 한편 유성생식을 하는 경우에는 같은 장소에 똑같이 나쁜 돌연변이를 가진 개체는 좀처럼 없다. 그래서 나쁜 영향을 끼치는 돌연변이가 확실히 축적되어가는 일은 없을 것이다.
무성생식을 하는 생물 집단에 속한 어떤 개체에 유리한 돌연변이 A, B, C가 생겼다고 가정하면, 무성생식에서 이 돌연변이는 다른 개체에는 퍼지지 않는다. 이 유리한 변이 셋을 모두 가진 개체는 대단히 유리하겠지만 변이 A를 가진 개체에서 변이 B가 일어나고, 다시 변이 C가 일어나지 않는 한 그런 개체는 출현할 수 없다. 하지만 유성생식이라면 개체들 간에 유전자가 섞이면서 쉽사리 변이 A, B, C를 가진 개체가 출현할 것이다. 불리한 돌연변이를 가진 개체에서 유리한 돌연변이가 생겼을 경우, 무성생식에서는 이 유리한 유전자가 개체의 몸을 빠져나가서 불리한 유전자를 지니지 않은 다른 개체의 몸으로 옮겨간다는 것은 불가능하다. 하지만 유성생식을 하는 경우에는 유전자 혼합에 의해 유리한 유전자는 자신의 복제를 다른 개체 속에 쉽게 집어넣을 수 있다.
최근에 크게 주목받는 가설 하나를 더 소개하자면, 성은 기생자에 대항하는 수단이라는 설이다. 앞서 말한 두 가지 가설에서는 생존에 '유리한' 영향을 주는 유전자와 '불리한' 영향을 주는 유전자를 가정하는데, 성은 세대마다 유전자를 뒤섞어버리기 때문에 일단 생겨난 유리한 유전자 조합도 해체하고 만다. 이것은 패러독스다. 하지만 최근에 '붉은 여왕 가설'이라고 불리며 주목받는 이 가설은 특히 '유리한' 조합도, '불리한' 조합도 없으며, 꾸준히 유전자 구성을 바꿔 나가는 것이야말로 성의 본질이라고 본다.
기생자란 다른 생물을 먹이 삼아 살아가는 생물로서, 기생충뿐만 아니라 온갖 병원균이나 원충류, 바이러스 등도 이에 포함된다. 병원균이나 바이러스들은 숙주의 세포를 부수고 침입해서 스스로를 복제한다. 이에 대항하기 위해 생물은 다양한 대책을 세워야 하는데, 면역계도 그러한 대항책의 하나다. 보통 숙주에 비해 훨씬 작은 기생자는 숙주보다 훨씬 더 수명이 짧고 진화 속도가 빠르다. 그러므로 어떤 기생자가 들이닥칠지 모르는 데다 최강의 방어라고 해서 만든 것도 시간의 경과와 함께 어김없이 파괴된다면 숙주로서 할 수 있는 것은 바로 딱 하나, 끊임없이 자기 구조를 변화시키는 수밖에 없다. 이것이 바로 성의 의미라는 것이다.
2장 어떻게 암컷이 되고 수컷이 될까? - 성의 결정 기구
환경 요인에 의한 성 결정
생물 중에는 성염색체 없이, 태어난 후의 환경 요인에 의해 이른바 후천적으로 성이 결정되는 것이 있다. 성염색체에 의해 성이 결정되는 것이 아니라 부화 온도에 따라 성이 결정되는 것은 파충류인 도마뱀, 거북, 악어에서 볼 수 있다. 이들은 모두 지상에서 알을 낳는 종류다. 이러한 종에서는 어떤 때는 전원이 수컷이 되고, 어떤 때는 전원이 암컷이 되는 성비의 극단적인 변동이 일상으로 일어난다. 대부분의 거북 종류는 온도가 높으면 암컷, 온도가 낮으면 수컷으로 부화한다. 도마뱀이나 악어에서는 이와 반대다. 온도에 따른 성 결정은 물고기 중에서도 대서양실버사이드라는 물고기가 그러한데, 온도가 낮으면 암컷, 온도가 높으면 수컷이 된다.
부화 온도 말고 다른 요인에 의해 따른 환경 성 결정의 예는 바닷속 모래진흙 속에 사는 보넬리아라는 작은 생물이 있다. 암컷의 크기가 수컷의 500배나 되어 보넬리아는 암수의 크기 차이가 극단적인 동물로 유명하다. 부유성 플랑크톤인 보넬리아의 유충은 바닷속을 헤엄쳐 다니는데, 이 단계에서는 암수가 따로 없다. 그러다가 정착 생활을 시작하면서 비로소 성이 결정된다. 이때 암컷이 될지 수컷이 될지는 어디에 정착하느냐로 갈린다. 성숙한 암컷 위에 붙으면 수컷이 되고, 아무도 없는 곳에 혼자 정착하면 암컷이 되는 것이다.
환경 요인에 의한 성 결정 양식은 생물 중에서도 특이한 형태인데, 어떤 상황에서 환경 요인에 의한 성 결정 양식이 출현할까? 기존의 연구 결과를 종합하면 첫째, 수정란이 어떤 장소에서 부화할지 임의적이고 둘째, 그 장소의 환경 요인에 상당한 변동이 있고 셋째, 그 환경 요인으로 부화 후의 개체 성장이 영향을 받고 넷째, 수컷 새끼와 암컷 새끼 간에 영향을 받는 정도가 다를 때 환경에 따른 성 결정이 유리해진다. 바다 거북이 알을 낳는 장소 중에는 온도가 높은 곳도 있고, 낮은 곳도 있어서 그 장소의 온도를 예측하기 어렵다. 이때 온도가 높으면 부화가 빠르고, 새끼는 크게 자란다. 거북의 경우에는 몸집이 큰 암컷은 알을 많이 낳을 수 있어서 몸집이 클수록 번식 성공도가 높아지므로 덩치가 클 경우에는 암컷으로 태어나는 편이 이득이다. 부화 장소가 임의적이고 그 장소의 온도에 따라 어떤 개체가 크게 성장할지 말지 결정된다면, 애초에 성염색체로 성이 결정되는 것보다 부화 장소의 온도에 따라 유리한 성으로 발생하는 것이 좋을 것이다. 그래서 이런 경우에 환경 요인에 의한 성 결정이 출현하는 것으로 보인다.
3장 성비도 유전자로 진화한다
진화란 종을 비롯한 다양한 집단의 유전자 빈도가 시간과 함께 변화하는 것을 가리킨다. 물고기에서 육상동물이 생겨나고 공룡에서 새의 조상이 출현하는 것을 'OO에서 진화했다.'라고 말하는데, 이 같은 사건도 어떤 집단에 생겨난 유전자 빈도 변화로 야기된 것이다. 이전 집단과 유전자 구성이 다른 새로운 집단이 생겨나게 되면, 즉 집단 내 유전자 빈도에 변화가 생기면서 진화가 일어난 것이다. 그리고 이처럼 생물의 체제에 대규모 변화가 일어나면서 새로운 유형의 생물이 생겨나는 것을 대진화라고 한다.
목이 긴 동물 집단에 '목이 긴' 유전자가 확산된 것에 대해 '생존에 유리해서'라는 이유만으로는 충분치 않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생존율과 함께 번식률이다. 자연선택이란 더 유리한 유전자가 집단 내에서 확산되어가는 과정인데, 집단 내로 확산되려면 유전자는 복제를 만들어내야 한다. 이것은 그 유전자가 속한 개체가 생존과 동시에 번식하지 않으면 이루어질 수 없다. 그리고 실제로 생존하는 것과 번식하는 것은 그 정도가 서로 다를 수 있기 때문에 별개다. 그러므로 특정 유전자의 집단 내 확산은 생존율과 번식률의 곱에 의존한다.
여기서 적응도란 말을 도입해보자. 생존율에다 번식률을 곱한 값을 순증식률이라고 한다. 각각의 유형에 대해 이 값을 계산해서 집단 전체의 순증식률로 상대화한 것이 적응도다. 적응도가 높다는 것은 어떤 환경 요인에 대해 다른 유형보다 잘 대처하며 번식률이 높다는 뜻이다. 적응도가 높은 유전자는 환경 요인을 극복하는 우수한 구조를 만들어내는 유전자고, 적응도가 높은 유전자를 가진 개체는 그러한 환경에서 생존·번식하는 재주가 뛰어나다고 할 수 있다. 이것을 '적응'이라고 한다.
진화과정에서 적응을 만들어낼 수 있는 것은 자연선택뿐이며, 여러 유형의 유전자 빈도 변화 중에서 우연에 의한 것은 적응을 만들어내지 못한다. 유전자 빈도가 어떤 방향으로 진화하는지 단순한 우연으로 결정되기 때문이다. 그러나 자연선택에서는 어떤 환경 조건 하의 유전자 복제율 차이에 근거해 복제의 효율성이 높은 유형이 남겨지고, 이로써 집단은 효율이 높고 생존에 유리한 방향으로, 즉 적응적인 방향으로 움직여 나간다. 이토록 정교한 생물의 메커니즘은 자연선택에 의한 적응 덕분이다. 진화는 유전자 복제율 차이에 근거해 일어나는 것이지 해당 유전자가 소속된 집단의 이익과는 무관하다.
그런데 '동물은 종의 보존을 위해 행동한다', 'OO는 종의 이익이 되므로 진화했다.'란 생각이 사람들 사이에 뿌리 깊게 남아 있다. 이는 유전자의 적응도가 아닌 집단의 적응도를 높이는 성질이 진화한다는 생각으로 집단선택이라고 일컬어진다. 그런데 이것은 완전히 잘못된 생각이다. 진화를 생각할 때 기초로 삼아야 할 것은 유전자지 집단이 아니다. 복제하는 것은 유전자며, 종을 비롯한 집단은 직접 복제할 수 없기 때문이다. 진화가 종이나 집단의 이익을 위해 일어난다는 생각을 집단선택의 오류라고 하는데, 1970년대 중반까지도 생태학자나 행동학자 같은 전문가들조차 진화가 종의 이익을 위해 일어난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이것은 그릇된 생각이며, 그로 인해 동물행동학은 크게 정체될 수밖에 없었다.
적응도가 높은 유전자가 증가하면서 집단 내 개체는 적응을 익혀 나간다. 이 과정은 유전자에서 시작되는 것으로, 집단 전체에 유리한 유전자가 선택되어 증가하는 것이 아니다. 복제하는 실체는 유전자고, 어떤 유전자의 적응도는 그 유전자가 다른 유전자에 비해 얼마나 유리한지로 결정된다. 집단이란 하나의 격리된 집합으로서 복제 단위가 될 수 없다. 물론 인간이 임의로 경계를 정한 집단에 대해 증식률을 계산하는 것은 가능하다. 하지만 자연 상태의 집단 안에는 다양한 개체가 있고, 그 개체 안에는 다양한 변이가 있으며, 개체의 드나듦도 있다.
성비의 진화
XX은 암컷, XY는 수컷인 포유류의 성 결정 기구에서 정자와 난자가 수정하면 암컷과 수컷이 절반씩 태어난다는 논리가 나온다. 모든 것이 우연에 맡겨진다고 생각하는 한 그럴 것이다. 이는 진화적 관점에서 보면 X정자와 Y정자의 생산율이나 각각의 생존율, 수정률, 수정란의 생존율 등이 모두 우연에 맡겨지고, 그 어느 하나를 쏠리게 하려는 적응은 작동하지 않는 상태에서 완전히 우연에 맡겨지는 것이 적응이라는 말이 된다.
그런데 성비를 논할 때에는 어느 단계의 성비를 대상으로 삼는지 분명히 해두어야 한다. 암수의 수는 수정 때나 출생 때 그리고 출생 후의 다양한 연령 단계에서 측정할 수 있는데, 태어나서 얼마 지나면 성비의 쏠림이 보이더라도 출생 성비가 쏠려서 그런 것인지, 출생 성비는 같지만 출생 직후의 사망률 차이로 그렇게 된 것인지 구분하기 힘들다. 당연한 이야기지만, 3차 성비는 영아 살해를 비롯한 다양한 이유로 인해 편의를 보일 수 있다. 성비의 진화를 생각할 때에는 어느 단계에서 어떠한 자연선택이 있을 수 있는지 구별해서 생각하지 않으면 안 된다.
다윈이 성비 문제를 거론한 지 60년 정도 지난 1930년에 피셔가 성비 문제에 대해 처음으로 진화적인 설명을 시도했다. 피셔의 설명에 따르면 성비가 암컷에 쏠린 집단 내에 '수컷을 낳는' 유전자가 나타난 경우, 이 유전자의 적응도는 '암컷을 낳는' 유전자의 적응도보다 높다. 그러므로 최초의 성비가 암컷에 쏠려 있을수록 '수컷을 낳는' 유전자의 적응도는 높아지고, 이에 따라 '수컷을 낳는' 유전자는 집단 전체로 급속히 퍼져나간다. 그런데 이런 상황이 시작되는 순간, '수컷을 낳는' 유전자가 늘면 집단 내의 수컷 새끼 숫자가 늘어난다. 수컷 새끼 숫자가 늘어나면 성비 쏠림이 수정되어 1대 1에 가까워진다. 이렇게 되면 수컷 새끼 한 마리가 교미할 수 있는 암컷 수도 줄어들어 '수컷을 낳는' 유전자의 적응도도 빠르게 떨어진다.
그러면 이 시소게임 같은 부침은 어디서 멈출까? 바로 '수컷을 낳는' 유전자와 '암컷을 낳는' 유전자의 적응도가 같아지는 시점이다. 그것은 암컷의 수와 수컷의 수가 같아지는 지점이다. 요컨대 암컷이나 수컷만 낳는 성비의 편의를 초래하는 유전자는 극단적인 성비의 쏠림이 존재할 때는 유리하다.
이와 같이 피셔의 이론은 많은 생물에서 성비가 1대 1로 나타나는 이유를 설명하는 이론으로 유명한데, 이 이론이 훌륭한 점은 어떤 조건이 갖추어졌을 때에 숫자상의 1대 1 성비가 실현되는지 명확히 한 데 있다. 그 조건이란 어떤 생물 집단이 충분히 큰 집단이고, 교배가 임의로 이루어지며, 수컷 새끼와 암컷 새끼에 대해 부모가 투자하는 시간과 에너지가 같을 때다. 따라서 이러한 조건이 충족되지 않은 상황에서는 1대 1에서 벗어난 성비가 나타날 것으로 기대된다. 실제로 생물계에서는 그 같은 상황이 많이 발견된다.
4장 성비의 쏠림과 다양한 경쟁
국소적 자원 확충
국소적 자원경쟁은 부모와 어느 한쪽 성의 새끼 간에 생기는 경쟁이므로 경쟁 상대가 되는 성의 새끼가 적게 태어날 수밖에 없다는 이론이다. 이때 성비를 결정하는 열쇠는 어느 성의 새끼가 부모 곁에 남느냐는 것이다. 하지만 새 중에는 새끼가 성적 성숙에 이르러서도 부모 곁을 떠나지 않고, 스스로 번식하지 않으면서 부모의 번식을 돕는 도우미를 두는 종류가 있다. 대개 도우미는 먼저 태어난 새끼가 맡는데, 부모 곁에서 나중에 태어난 동생들 양육을 돕는다. 이때 암수 어느 쪽의 새끼가 도우미가 되느냐는 종에 따라 다르다.
무슨 이유로 제때 독립해서 스스로 번식하지 않고 부모 곁에 남아서 도우미 구실을 하는지는 예전부터 수수께끼였다. 자연선택의 작용 방식에서 분명히 알 수 있듯이 스스로 번식하지 않는 유전자는 다음 세대로 전해질 수 없기 때문이다. 그런데 지금까지의 연구를 종합해본 결과 서식지가 포화 상태여서 새로 독립하는 젊은 개체에게 돌아갈 세력권이 거의 남아 있지 않은 종에서 도우미를 둔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제때 둥지를 떠나더라도 스스로 번식할 만한 여건이 갖추어지지 않다 보니 부모 곁에 남아서 동생들을 돌보는 편이 나은 것이다. 이렇게 도우미로 지내다 보면 번식조가 죽는 등의 기회가 생겼을 때 세력권을 얻을 가능성이 높다는 사실도 알게 되었다.
미국에 서식하는 붉은관머리딱따구리는 수컷 새끼가 도우미 구실을 한다. 연구 결과로는 암컷 새끼가 수컷 새끼보다 덩치가 크거나 양육에 비용이 더 드는 것도 아니었다. 양육 기간 중 사망률에서도 암수의 차이는 없었다. 그러므로 이는 도우미를 많이 가진 부모가 번식에 유리해서 생겨난 성비의 편의라고 생각할 수 있다. 이 같은 사태로 인해 나타나는 성비의 쏠림을 '국소적 자원 확충'이라고 한다. 도우미 구실을 하는 성의 새끼를 많이 생산함으로써 부모는 주변 자원의 이용을 확충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 연구결과가 발표된 지 얼마 지나지 않아 인도양의 세이셸 제도에 서식하는 세이셸휘파람새에서 자원의 양과 국소적 자원 확충의 관계를 보여주는 기막힌 연구가 발표되었다. 국소적 자원 경쟁은 부모와 부모 근처에 머무는 새끼 간의 자원을 둘러싼 경쟁을 일컫는다. 국소적 자원 경쟁이 강하면 부모 곁에 남는 성의 새끼를 적게 낳는 자연선택이 작동하고, 국소적 자원 확충이 강하면 부모 곁에 남는 성의 새끼를 많이 낳는 자연선택이 작동할 것이다.
세이셸 제도에 서식하는 세이셸휘파람새는 주로 벌레를 잡아먹고 살며 부부가 세력권을 가지고 번식한다. 놀랍게도 1년에 한 번 돌아오는 번식기에 부모 새는 알 하나만 달랑 낳고 만다. 몸집이 작은 새치고는 부모 새의 수명도 길고 사망률도 낮아서, 대략 9년 정도 번식을 계속한다. 그래서 섬에 서식하는 개체 수가 많아지면 새끼가 둥지를 떠나더라도 자신의 세력권을 가질 기회를 얻지 못한다. 수컷 새끼는 그래도 둥지를 떠나지만 암컷 새끼는 부모 곁에 남아서 도우미가 된다.
기존 연구에서 서식지 환경이 나쁘고 먹이의 양이 적은 장소에서 도우미의 존재는 국소적 자원 경쟁으로 인해 부모의 이후 번식 성공도를 낮추고, 먹이가 풍부한 양호한 서식지의 경우 둥지에 도우미가 한두 마리 있으면 국소적 자원 확충을 통해 부모의 번식 성공도를 높인다.
연구팀이 갓 부화한 새끼의 정확한 성별을 살펴본 결과 양호한 서식지에 살며 도우미를 한 마리도 둔 적이 없는 새 부부들은 무려 87%의 암컷 새끼를 낳은 반면, 척박한 서식지에 살며 마찬가지로 도우미를 한 마리도 두지 않은 새 부부들은 겨우 23%의 암컷 새끼를 낳는 것으로 나왔다. 이는 매우 큰 성비의 편의다. 그리고 1993년부터 1995년에 걸쳐 이뤄진 강제 이주로 인해 척박한 서식지에 살다가 갑자기 질 좋은 서식지로 옮겨진 휘파람새 부부들이 전년도까지 2대 18의 비율로 수컷 새끼를 많이 낳던 데서 이듬해에는 무려 29대 5의 비율로 암컷 새끼를 많이 낳았다는 사실이 확인되었다. 한편 처음에 좋은 서식지에 살다가 마찬가지로 좋은 서식지로 옮겨간 휘파람새 부부는 이주 전이나 후나 암컷 새끼를 많이 낳는 데에 변화가 없었다.
만화로 치자면, 좋은 장소로 이사 간 세이셸휘파람새 부부가 "이제 우리도 딸을 낳을 수 있게 되었어요!"하고 감격해하는 장면이 상상된다. 알의 성비가 어떻게 변하는지에 관해서는 아직 밝혀지지 않았지만, 이토록 기막힌 적응적 변화를 보면 어떤 강력한 메커니즘이 작동하고 있다고밖에 생각할 수 없다.
5장 포유류의 성비 쏠림
트리버스-윌러드의 가설
1973년, 당시 하버드 대학의 젊은 행동생태학자인 트리버스와 윌러드가 가설을 하나 내놓았다. 두 사람은 번식을 둘러싼 수컷 간 경쟁 양상을 보고, 조건이 좋은 어미는 아들을 낳고, 조건이 나쁜 어머니는 딸을 낳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이 가설의 전개에는 다음의 다섯 가지 가정이 깔려 있다. 첫째, 번식 기회를 둘러싼 수컷끼리의 경쟁이 몸싸움을 벌이거나 뿔로 들이받거나 때리고 무는 경쟁인 경우에 덩치가 큰 수컷은 덩치가 작은 수컷보다 유리할 것이다. 둘째, 서열이 높고 영양 조건이 좋은 어미는 큰 새끼를 생산할 수 있고, 수유량도 풍부할 것이다. 셋째, 이렇게 자란 조건이 좋은 어미의 새끼는 이유 시점에서 그렇지 못한 어미의 새끼보다 발육 상태가 좋을 것이다. 넷째, 이유 시점의 덩치 차이는 이후의 성장에도 영향을 주고, 결국 이유 시점에서 덩치가 큰 새끼는 덩치가 큰 어른으로 자라고 덩치가 작은 새끼는 작은 어른이 될 수밖에 없다. 만약 이러한 조건이 충족된다면 서열이 높고 영양 조건이 좋은 어미는 수컷을 낳아야 하고, 조건이 나쁜 어미는 암컷을 낳아야 한다는 말이 된다.
암컷의 경우에는 너무 덩치가 작은 암컷보다는 덩치가 큰 암컷의 번식 성공도가 높겠지만 덩치가 커짐에 따라 번식 성공도가 높아지는 비율은 수컷에 비하면 미미하다. 그리고 암컷에게 교미하는 수컷의 숫자는 번식 성공도와 별 상관이 없으므로 암컷 사이에서는 짝짓기 상대인 수컷을 둘러싼 육체적 투쟁이 잘 일어나지 않는다. 그러므로 덩치가 큰 것은 수컷에게는 대단히 유리하지만 암컷에게는 별 유리할 것이 없다.
트리버스-윌러스 가설을 지지하는 사례 중 하나가 남미 원산으로 물가에 서식하는 쥐의 일종인 뉴트리아다. 뉴트리아는 일부다처의 짝짓기 시스템을 가지며, 수컷은 암컷보다 약 15% 더 체중이 나간다. 한 배에 대여섯 마리의 새끼를 배며 암컷은 1년 내내 번식이 가능하다. 연구 결과 뉴트리아에서는 여름에 암컷이 많이 태어나지 않는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자세한 경위를 조사했더니 뉴트리아에서는 한 배의 새끼 수가 적고, 그 구성이 암컷에 치우칠 경우에 태아가 모두 유산된다는 사실을 알아냈다. 한 배의 새끼 수가 적더라도 구성이 수컷에 쏠려 있을 때에는 유산되지 않았다. 또 유산을 하는 뉴트리아는 평균 이상의 지방 축적량을 나타내는 영양 상태가 좋은 암컷이었다. 게다가 유산 후에 재임신했을 때 한 배의 새끼 수는 이전 임신 때보다 많아지는 경향을 보였다.
한 배의 새끼를 모조리 유산해버린다는 것은 이만저만한 낭비가 아니다. 보통은 영양 상태가 나쁜 암컷이 유산하는 경우가 많은데, 왜 영양 상태가 양호한 암컷이 유산하는 걸까?
이 연구를 진행한 연구자는 덩치가 큰 수컷은 덩치가 큰 암컷보다 훨씬 더 유리하기 때문에 영양 상태가 좋은 어미는 큰 암컷 새끼보다 큰 수컷 새끼를 낳는 편이 좋을 것이라고 해석하고 있다. 그리고 한 배의 새끼 수가 적고 그 대부분이 수컷이라면 분명 이 수컷 새끼들은 크게 자랄 것이다. 그에 비해 암컷 새끼는 아무리 크게 낳더라도 그리 유리한 상황을 기대할 수 없을 것이다.
여름철은 영양이 충분해서 뉴트리아들이 지방을 가장 많이 축적하는 계절이다. 암컷은 영양 상태가 좋은 여름철에 충분히 큰 새끼를 생산할 여력이 있다. 이런 상황에서 한 배의 새끼 수가 적은 데다 암컷만 임신한 경우 어미는 뱃속의 새끼를 전부 희생하더라도 새로 임신해서 더 많은 새끼를 낳거나 아니면 적은 숫자여도 수컷 새끼를 많이 낳는 쪽에다 과감히 배팅하는 것으로 보인다. 겨울철처럼 영양 상태에 여유가 없을 때에는 아무리 암컷만 임신했더라도 전부 유산하는 일은 없는 듯하다. 이 같은 일이 아무렇지도 않게 일어나는 데에는 1년 내내 임신이 가능한 뉴트리아의 번식 생리가 큰 관련이 있는 게 분명하다. 그렇지 않고 번식기가 1년에 한 번처럼 정해져 있다면 이런 배부른 선택은 못할 것이다.
6장 아들이 좋을까 딸이 좋을까 - 사람의 성비와 양육의 성차별
사람의 출생 성비는 약 105대 100
사람의 출생 성비가 정확히 1대 1이 아니며, 남자가 약간 더 많이 태어난다는 사실은 누구나 알 것이다. 지금까지 조사된 인류의 모든 집단에서 남자아이가 태어나는 수는 여자아이의 수를 웃돈다. 미국 백인에서는 약 106 대 100, 아프리카계 미국인에서는 103 대 100, 그리스에서는 113대 100, 쿠바에서는 101대 100 등으로 나타나는데, 세계 평균을 잡으면 105∼160 대 100 정도일 듯하다. 그러나 이것은 태어날 때의 성비지 수정 때의 성비가 아니다. 만약 X를 가진 정자와 Y를 가진 정자가 평등한 확률로 수정하는 것이라면 남자아이가 많이 태어난다는 것은 여자아이의 태아 사망률, 이른바 유산율은 남아가 훨씬 높다. 그러므로 수정 때 성비는 105대 100보다 훨씬 더 남아에 치우쳐 있는 셈이다.
요컨대 사람에서도 X를 가진 정자와 Y를 가진 정자가 평등한 확률로 수정하지 않으며, Y정자의 수정률이 훨씬 높다. 어찌된 이유일까? 피셔가 생각한 자연선택이 사람에서도 작용해서일 것이다. 태아에서 시작해 출생 후 유유아기에서 청년기에 이르는 모든 연령에서 남자의 사망률은 여자의 사망률을 웃돈다. 현대 의학이 발전하면서 이 차이는 점점 좁혀지고 있지만, 오랜 인류 역사에서 남성의 사망률은 여성 사망률보다 훨씬 높게 유지되어 왔다. 그러므로 자녀에 대한 부모의 보살핌이 종료하는 시점에서 아들에 대한 투자와 딸에 대한 트지가 균형이 맞으려면 수정 당시에 남아의 숫자를 훨씬 많도록 해두어야 할 것이다.
그런데 사람의 성비는 시대에 따라 변화되지는 않을까? 충분히 긴 기간을 잡아서 어떤 인간 집단의 성비를 비교해보면 대략 105대 100이라는 성비에 큰 변화는 없는 듯하다. 수정 당시에는 남아가 여아보다 훨씬 많지만, 상당수의 남아 수정란이 발달하지 않고 흡수되어버림으로써 105대 100이란 성비가 나온다는 뜻이다. 그러니 수정란이나 태아의 사망률이 전체적으로 준다면 결과적으로 남아가 태어나는 비율이 높아질 것이다. 수정란의 사망률이나 태아의 사망률은 어머니의 심신 건강 조건이 나쁘면 높아지고 좋으면 낮아진다. 한 나라의 유유아 사망률은 그 나라의 의료 제도 수준이나 국민소득, 공중위생 상태, 그 밖의 여러 조건으로 결정된다.
세계 96개국에 대해 유유아 사망률과 출생 성비의 남아 편의를 조사했더니 확실히 유유아 사망률이 낮은 나라에서는 남아 비율이 높고(가령 노르웨이는 106.6 대 100), 유유아 사망률이 높은 나라에서는 남아 비율이 낮았다(가령 파키스탄은 102.5대 100). 인간 집단 전체에서 보면 이는 여성의 건강 상태와 출생 성비 간에 대략적인 연관 관계가 존재한다는 사실을 나타낸다.
사람에서도 트리버스-월러드의 가설 같은 상황이 작동한다고 암시하는 연구도 있으나 확실한 증거는 없어 보인다. 그런데 사람의 경우에 출생 성비에는 편의가 없어도 태어난 후에 상황에 따라 아들과 딸을 차별해 기르는 일이 간혹 있다. 아들과 딸 어느 쪽을 어떻게 차별하는지는 그 사회가 아들이나 딸에게 부여하는 가치 차이를 정직하게 반영하고 있는 듯하다. 인간 사회는 자연적으로 형성되지 않은 성비의 편의를 스스로 실현해왔다고 말할 수 있을지 모르겠다.
그리고 죽이거나 태아 때 죽이지 않더라도 여아에 대한 차별은 계속된다. 이것은 어떤 의미에서 영아 살해나 중절보다 훨씬 잔혹한 수단이다. 딸을 곁에 두고도 충분한 보살핌을 베풀지 않고 방치하는 방법인데, 부모가 의도하건 의도하지 않건 간에 학대받은 여인들은 대부분 성숙하기 전에 사망한다.
세계 여러 나라 가운데 출생 성비가 105대 100을 크게 벗어나는 곳은 인도, 중국, 파키스탄, 방글라데시 같은 나라다. 이들 나라 정부는 다양한 대책을 궁리하며 고심하고 있지만, 카스트 제도, 가부장제, 장자상속, 아들의 부모 부양 같은 뿌리 깊은 재래 관습으로 인해 자식에 대한 부모의 성 차별이 사라지지 않는다. 최근 보고에서 문제로 떠오른 것은 파키스탄 사태의 심각성이다.
파키스탄의 출생 성비는 102.5대 100인데, 1995년 기록을 보면 출생 1년 이내 성비가 남자 107.53대 여자 100으로 나타난다. 문제는 이 성비 쏠림이 출현하는 주된 이유가 높은 여아 사망률 때문이라는 점이다. 1세에서 5세 사이 어린이 가운데 남자아이 세 명에 여자아이 다섯 명꼴로 죽는 셈인데, 이유는 여자아이에 대한 불충분한 양육이나 노동력 혹사 같은 여아 차별에 있다.
이러한 취약한 여아의 지위를 인정해 초등학교에 다니는 여아 비율이 전체의 35%로 남아의 절반밖에 되지 않는다. 이웃한 인도나 방글라데시와 비교해도 매우 낮은 수치로, 이는 파키스탄의 취약한 여성의 지위를 상징하고 있다. 그리고 이것이 피임 보급을 저해하는 요인이 되어 최종적으로 최근 파키스탄 인구 폭발의 원인이 되고 있다.
첫댓글 이거 다 일거야 해요 언니????? ㅡㅡ;; 바다 거북이면 내칭군뎅...
못읽겠어~~~~~~~~지금 켠디션 별루라서~눈에 않들어 오넹~~~^^;; 글고 전화좀 받으시오~
바다거북이 참 신기하당...... 28도 이하에서 수컷이구 30도 이상에서는 암컷이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