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진 1주일 살기 3일차 입니다.
보길도와 땅끝전망대를 다녀왔습니다.
노화도 가는 카페리
멀리 산위에 땅끝전망대가 보입니다.
노화도
고산 윤선도(1587~1671)
고산(孤山) ·해옹(海翁). 시호 충헌(忠憲). 1612년(광해군 4) 진사가 되고, 1616년 성균관 유생으로 권신(權臣) 이이첨(李爾瞻) 등의 횡포를 상소했다가 함경도 경원(慶源)과 경상도 기장(機張)에 유배되었다.
1628년 42세 때 별시문과(別試文科) 초시(初試)에 장원, 1629년 형조정랑(刑曹正郞) 등을 거쳐 1632년 한성부서윤(漢城府庶尹)을 지내고 1633년 증광문과(增廣文科)에 급제, 문학(文學)에 올랐으나 모함을 받고 파직되었다. 1636년 병자호란(丙子胡亂) 때 의병을 이끌고 강화도로 갔으나 청나라와 화의를 맺었다는 소식을 듣고 제주도로 항해하다 풍랑을 만나 보길도에서 은거하였다. 하지만 병자호란 당시 왕을 호종하지 않았다 하여 1638년 영덕(盈德)에 유배되었다가 1년 뒤에 풀려나 해남으로 돌아갔다.
평생 치열한 당쟁으로 거의 벽지의 유배지에서 보냈으나 경사(經史)에 해박하고 의약 ·복서(卜筮) ·음양 ·지리에도 통하였으며, 특히 시조(時調)에 더욱 뛰어났다. 그의 작품은 한국어에 새로운 뜻을 창조하였으며 시조는 정철(鄭澈)의 가사(歌辭)와 더불어 조선시가에서 쌍벽을 이루고 있다.
저서에 《고산유고(孤山遺稿)》가 있다.
윤선도 문학관
보길도
일찌기 고산 윤선도가 배를 타고 제주도로 가던 중 심한 태풍을 피하기 위해 이곳에 들렀다가 수려한 산수에 매료되어, 이곳 동명을 부용동이라고 명명하고 머물 것을 결심했던 곳이다.
10여 년을 머물면서 세연정, 낙서재 등 건물 25동을 짓고 전원 생활을 즐겼으며, 그의 유명한 작품 "어부사시사"도 이곳에서 태어났다.
섬 남쪽에 위치한 예송리 해수욕장과 천연기념물인 예송리 상록수림과 어우러져 매우 아름답다.
윤선도 원림
세연정
세연정 안내문
연못
세연정 현판
판석보
세연정에서 바라본 풍광
옥소대
곡수당
상연지
귀암
낙서재
낙서재 바라 본 풍경
망끝 전망대
보길도의 가장 서쪽인 보옥리 바로 못 미쳐 망월봉 끝자락의 돌출부에 자리한다
망끝전망대
땅끝전망대
해남 갈두산은 한반도 육지의 가장 끝, 땅끝이라고 부른다. 갈두산 사자봉 정상에 땅끝전망대가 있다.
맑은 날에는 제주도의 한라산까지 보인다고 한다. 전망대 1층에는 해남의 상징물과 땅끝 마을을 배경으로 사진을 찍을 수 있는 포토 부스가 있다.
전망대까지는 걸어서 올라갈 수도 있지만 땅끝마을의 풍경을 여유롭게 감상하기 좋은 모노레일을 타보는 것도 좋다.(대한민국 구석구석, 한국관광공사)
땅끝전망대
땅끝 유래
전망대 본 남해
땅끝 전망대 조형물
땅끝 전망대 근처 봉수대
땅끝탑
스카이워크
스카이워크
해남 영전성당
저녁에 먹은 장어탕
고산 유선도의 유적지가 있는 보길도.
처음가 보는 보길도 인지라 배를 타고 나서는 길이 마냥 가슴을 설레인다.
날씨도 11월 임에도 불구하고 23도를 가리키고, 하늘은 정말 정형적인 맑은 청명한 가을 하늘입니다. 수도권 보다 공기도 맑고 상쾌한 느낌이다. 평일이라 한적하게 둘려보는 고산의 유적지는 또 다른 감회를 안겨주네요.
이렇게 육지에서 먼 곳에 고산 윤선도가 머물고 만든 정자와 연못을 보면서 400년 전의 조선시대로의 시간여행을 즐겨 봅니다.
해남까지 왔으니, 땅끝전망대도 둘려보고 늦은 저녁으로 먹은 좌일 오복식당의 장어탕은 강추입니다. 경기도의 장어탕은 추어탕과 비슷하게 장어를 갈아서 만드는데, 이곳에서는 장어탕은 주문을 하면 수족관에서 장어를 바로 잡아 1~2센티 크기로 장어를 다듬어 친철하지 않은 안주인이 즉석에서 끓어 주는데, 부드러운 고기맛과 국물이 정말 일품입니다.
첫댓글 망중한을 즐기시네요. 아직 보길도, 땅끝마을 가보지는 못했는데 덕분에 눈요기 잘했습니다.
자세한 설명과 사진~~역사 교수님 같으셔요,,멋지십니다..최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