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우리 마음이 기름진 옥토가 되어야 흔들리지 않습니다.(행13:44-51)
2022, 8/7 설교문
오늘 하나님께서 저와 여러분들에게 주시는 말씀은 행13:44-51절 말씀으로 “우리 마음이 기름진 옥토가 되어야 흔들리지 않습니다.” 이런 제목으로 말씀 전할 때 주의 크신 은혜와 사랑이 이곳에 함께하길 원합니다.
한 주간 평안하셨는지요? 말복 더위답게 더위가 대단합니다. 이번 주까지 휴가가 피크를 이룰 것 같은데 더위 잘 이겨내고 건강한 여름 지날 수 있기를 바랍니다.
우리 인사 나누겠습니다. 사랑합니다. 반갑습니다.
하나님은 오늘 본문 말씀을 통해서 다음과 같은 3가지로 은혜를 주셨습니다.
첫째로, 마음이 옥토와 같은 사람은 풍성한 결실을 맺습니다.(43절)
둘째로, 악한 시기심은 우리의 신앙을 퇴보시킵니다.(45절)
셋째로, 쉽게 격동하는 사람은 사단의 노리개가 될 수 있습니다.(50절)
사랑하는 여러분!!!
예수님은 마태복음 13장에서 우리 심령을 4가지 밭으로 비유하셨는데, 하나는 길가 밭으로 길가에 씨앗이 떨어지면 지나다니는 사람들이 밟고 다녀 싹을 띄울 수가 없고, 돌짝밭이나 가시덤풀에 떨어진 씨앗은 싹은 나오지만 여러 가지 근심걱정으로 결실을 맺을 수가 없으며, 나머지 옥토에 떨어진 씨앗은 생육하고 번성하여 30배 60배,100배의 결실을 맺는다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마음 밭을 부드러운 옥토로 만들어 하나님말씀을 들을 때 신앙이 쑥쑥 자라 많은 결실을 맺어가는 우리 심령이 되도록 신경 써야할 것입니다.
그러므로 악한 시기질투나 감정에 사로잡혀 신앙이 퇴보하거나 사단의 노리개로 전락하지 않도록 각별히 마음을 잘 다스려나가는 여러분 되시기 바랍니다.
그러면 본문말씀을 따라가면서 우리마음 밭을 옥토로 만들지 못하면 왜 신앙이 퇴보하고사단의 도구가 되는지 성령께서 들려주시는 하나님말씀을 듣도록 하겠습니다.
첫째로, 마음이 옥토와 같은 사람은 풍성한 결실을 맺습니다.(43절)
본문 43절 말씀 함께 읽겠습니다. "회당의 모임이 흩어진 후에 유대인과 유대교에 입교한 경건한 사람들이 많이 바울과 바나바를 따르니 두 사도가 더불어 말하고 항상 하나님의 은혜 가운데 있으라 권하니라." 아멘.
사도바울과 바나바가 비시디아 안디옥에서 유대인의 회당에 들어가 복음을 전하자 그곳에 모인 사람들이 매우 놀라운 반응을 보입니다. 저들은 지금까지 메시야가 곧 오셔서 우리를 로마의 압제에서 구원하고 다윗시대의 번영을 회복해줄 거라는 굳게 믿고 있었는데, 오늘 사도바울은 구약시대부터 그토록 기다려왔던 메시야가 이미 이 땅에 오셨고, 바로 당신들이 십자가에 못 박아 죽인 예수그리스도가 구약에서 그토록 말씀하셨던 바로 그 메시야라고 성경을 인용하여 증거하자 사람들이 상당한 충격을 받습니다.
그토록 완고하고, 지금까지 자신들의 유대교를 목숨보다 더 소중하게 생각했던 사람들이 사도바울이 전하는 복음을 듣고 마음의 큰 변동이 일어난 것입니다.
그래서 예배가 끝났음에도 돌아가지 않고 바울과 바나바를 따랐다고 말씀하는데, 이들이 바울일행을 따른 것은 사도바울이 전했던 복음에 공감했다는 뜻이고, 그래서 바울일행에게 더 많은 말씀을 배우길 원했기 때문일 것입니다.
그런데 여러분!!! 어떻게 바윗돌보다 더 단단한 저들의 완고한 마음에 복음이 들어가는 역사가 일어났을까요? 이 모든 것이 하나님의 은혜라고 생각합니다.
마16:17절에 베드로가 예수님에 대해 "주는 그리스도시오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이니다."라는 신앙고백을 했을 때 주께서 "바요나 시몬아 네가 복이 있도다 이를 네게 알게 한 이는 혈육이 아니요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시니라." 이 말씀을 볼 때 하나님의 은혜가 아니면 우리가 주를 주로 고백할 수가 없음을 알 수 있습니다.
하나님이 뒤에서 도우시지 않았다면, 저들의 마음을 열어주지 않았다면 어떻게 저들의 마음이 부드러워졌겠습니까? 이런 하나님의 역사는 누구도 예상할 수 없기 때문에 우리는 때를 얻든지 못 얻든지 복음을 전하고, 들을 것 같지 않은 사람에게도 복음을 전해야한다는 것입니다.
다시 돌아와 사도바울에게 복음 듣기를 원했던 유대인들과 유대교에 입교한 경건한 이방인들은 진리에 대해 마음이 열려있었고, 복음에 대해 새로운 말씀에 대해 많은 관심을 가진 신앙적으로 아주 좋은 마음 밭을 가진 사람들임을 알 수 있습니다.
지금까지 구원은 오직 율법에 규정된 행위규범들을 잘 지켜야 구원받는다고 알고 있었는데, 39절에서 오직 예수그리스도를 믿음으로 구원받는 메시지를 들었으니 이들의 귀가 번쩍 뜨인 것은 당연합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은혜로 구원받기로 작정된 사람들의 마음이 반응했고, 더 알고 싶은 열망이 넘쳐난 것입니다. 이들이 바로 복음을 받아들이고 결실하기에는 좋은 토양이자, 심령이 가난한 옥토와 같은 사람들입니다.
그렇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에 대하여 항상 마음이 열려있어야 합니다. 그럼에도 살다보면 내 감정과 자존심 때문에 잘못된 것을 알면서도 자기고집을 꺾지 않고 끝까지 가는 경우를 보는데, 이건 악한 자들의 몫이고 우리는 그러면 안 됩니다.
하나님이 보고 듣고 알고 계시는데 어떻게 말씀을 벗어나 내 고집대로 한단 말입니까? 특히 부부간에 서로 자존심 때문에 싸우는 경우가 많은데, 그래서 우리나라 이혼율이 50%를 넘나드는 것이 아닌지 모르겠습니다.
이런 행위는 하나님말씀을 정면으로 거역하는 사술과 같은 죄를 짓는 것이고, 순종이 제사보다 낫고, 듣는 것이 수양의 기름보다 낫다는 책망을 들은 사울왕과 같은 죄를 짓게 되어 신앙의 결실은 물론이고 삶에서도 결실을 맺지 못합니다.
이런 분들의 심령상태는 아무 결실도 할 수 없는 길가 밭과 같은 상태입니다.
여러분!!! 우리 믿는 사람들은 하나님과의 관계가 우선이기 때문에 모든 것은 하나님께 맡기고 우리 마음 밭을 부드럽고 좋은 옥토로 만들어가도록 해야 합니다.
그럼에도 마음이 심란하고 하나님께 집중되지 않을 때는 우리가 죽음에서 구원받은 기막히게 복 받은 사람임을 생각한다면 마음을 다 잡을 수 있을 것입니다.
여러분!!! 하나님은 우리의 심령을 옥토로 만들어 더 많은 결실을 맺어가길 원하십니다. 때문에 가정에 문제가 생기고, 오랫동안 피땀 흘려 일궈온 사업이 힘드어지며, 또 건강을 위협받는 일들이 생기는 것은 우리의 완악한 마음 밭을 갈아엎어 결실이 가능한 옥토로 만드시려는 하나님의 섭리일 수 있음을 알아야합니다.
또 어이없는 실수와 충분히 예상된 실패를 막지 못하는 것도 내 능력이 부족해서 그럴 수도 있겠지만 그러나 우리의 마음 밭을 부드럽게 만들어 가시려는 하나님의 선한 뜻과 섭리일 수 있음을 기억하셔야합니다.
그러므로 삶이 고단하고 어렵고 힘들 때가 오히려 옥토로 만들어갈 기회입니다. 영적으로 점점 피폐해져가는 우리의 심령을 새롭게 바꾸어갈 기회일 수 있습니다. 오늘 여러분들의 마음을 경건한 유대인들처럼 부드럽고, 상한 심령으로 만들어보십시오. 풍성한 결실을 맺을 수 있습니다. 그런 여러분 되시기 바랍니다.
둘째로, 악한 시기심은 우리의 신앙을 퇴보시킵니다.(45절)
본문 45절 말씀 함께 읽겠습니다. "유대인들이 그 무리를 보고 시기가 가득하여 바울이 말한 것을 반박하고 비방하거늘." 아멘.
바울일행이 안디옥회당에서 복음을 전할 때 지금까지 그들이 듣도 보도 못한 오직 예수그리스도를 믿음으로 구원받는다는 이신득의의 교리를 전하자 다음 주에도 말씀을 전해달라는 부탁을 받고 복음을 전했는데, 44절 말씀처럼 "그 다음 안식일에는 온 시민이 거의 다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자 하여 모"여 들었습니다.
놀라운 일이 일어난 겁니다. 그런데 이 무리 중에도 복음을 듣고 "기뻐하여 하나님 말씀을 찬송하며 영생을 주시기로 작정된 자는 다 믿"는 분들이 있는가 하면 역시 복음을 반대하며 시기 질투하는 사람들도 있었다는 것입니다.
인간적으로 이해는 됩니다. 아니 어디서 개 뼉다기 뜯어먹던 자들이 굴러들어와 자기들이 그동안 쌓아온 종교적 권위와 이권을 송두리째 무너뜨리니 당연히 밉고 싫겠지요. 그래서 시기심이 발동하여 사도바울의 말을 반박하고 비방합니다.
여러분!!! 이 유대인들을 보십시오. 이들도 본래 하나님을 믿고 섬기는 자들로 비록 복음은 모르지만 율법을 지키며 이방인들보다 도덕적으로 우월한 삶을 살던 자들입니다. 그런데 시기심이 발동하자 복음을 전하던 바울일행을 헐뜯고 핍박하는 사단의 앞잡이 노릇을 서슴없이 자행합니다.
여러분!!! 이 시기심은 인간관계를 무너뜨리고, 나를 황폐화시키기 때문에 정말 조심해야합니다. 그래서 우리들은 이 시기질투와 미움다툼을 어떻게 극복할 것인가를 고민해야 하는데, 왜냐면 미움다툼시기질투가 상대방보다 나를 먼저 죽이기 때문입니다.
이런 사례는 성경에서 얼마든지 찾아볼 수 있는데, 사울왕은 다윗에 대한 시기심으로 이유 없이 그를 죽이려다가 자신이 먼저 비참한 죽음을 당하게 됩니다.
가인도 시기질투 때문에 동생 아벨을 죽이는 엄청난 죄를 저지르고 동방으로 쫓겨갑니다. 다윗이 아마샤를 중용하려하자 요압장군이 시기하여 그를 기브온에서 인사하는 척하다 칼로 찔러죽였는데, 결국 솔로몬에게 죽임을 당하고 맙니다.
여러분!!! 시기심이 다 나쁜 건 아닙니다. 누가 부자가 되면 나도 부자가 되겠다고 시기하여 열심히 일하고, 누가 제품을 개발하면 나는 더 좋은 제품을 개발하겠다는 시기심은 나라와 인류를 발전시키고, 더 나은 삶을 만드니 좋은 일입니다. 그러나 악한 시기심은 상대방보다는 내 인격부터 먼저 파괴하고, 거기다 신앙까지 망가뜨리기 때문에 정말 해서는 안 될 일입니다.
고대희랍의 시인이었던 유리피데스(Euripides)는‘질투는 인간의 모든 질병가운데 가장 위중한 질병’이라고 말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신앙과는 절대 맞지 않는 이 악한 시기질투심을 버려야합니다. 욥5:2절에 "분노가 미련한 자를 죽이고 시기가 어리석은 자를 멸하느니라."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독일의 철학자 쇼펜하우어는(A. Schopenhauer) 귀족 중에는 세 부류가 있는데, 첫째는 문별과 지체가 높은 귀족, 둘째는 재산이 많은 귀족, 셋째는 인격이 훌륭한 귀족 중에 인격이 훌륭한 귀족이 가장 우월하고 고귀하다고 말했습니다.
우리 신앙인은 우월하고 존귀한 귀족들입니다.그래서 사촌이 땅을 사도 배가 아프지 않고, 친구가 잘되고 옆집이 잘나가도 함께 기뻐해주고, 신앙이 날로 성장하면 진정으로 축하해주고, 슬픈 일을 당하면 쌤통이다 하지 않고 함께 슬픔을 나누며 힘이 되어주는 사람들입니다. 잠24:17-18절에 "네 원수가 넘어질 때에 즐거워하지 말며 그가 엎드러질 때에 마음에 기뻐하지 말라 여호와께서 이것을 보시고 기뻐 아니하사 그 진노를 그에게서 (너에게)옮기실까 두려우니라." 이렇게 말씀합니다.
그러니 신앙인답게 모든 걸 하나님께 맡기고 온유하고 부드러운 심령으로 신앙인으로 멋지게 살아가는 여러분 되시길 간절히 축원합니다.
셋째로, 쉽게 격동하는 사람은 사단의 노리개가 될 수 있습니다.(50절)
본문50절 말씀함께 읽겠습니다. "이에 유대인들이 경건한 귀부인들과 그 시내 유력자들을 선동하여 바울과 바나바를 박해하게 하여 그 지역에서 쫓아내니." 아멘.
여러분!!! 유대인들이 사람들을 선동하여 바울과 바나바를 핍박해 안디옥에서 쫓아냈는데, 결국 저들의 시기심이 하나님을 대적하는데까지 이르게 됩니다.
그런데 여러분!!! 유대인들이 바울일행을 안디옥에서 쫓아낼 때 경건한 귀부인들과 성내 유력자들이 동조하여 쫓아냈다고 말씀하시는데, 43절을 보면 유대인과 유대교에 입교한 경건한 사람들이 많이 바울과 바나바를 따랐다고 했습니다.
어떻게 하나님말씀을 듣고 은혜를 받아 따랐던 사람들이 이제는 핍박하고 쫓아낼까요? 이렇게 조석지변으로 변하는 저들의 신앙을 좀 잡을 수가 없습니다.
바울일행을 쫓아내는데 앞장선 자들 중에는 경건한 귀부인들이 있었는데,‘귀부인’이란 신분이 높고 부와 명예를 가진 부인을 말하고, 사도행전에서‘경건하다’는 말은 이방인들 중에 하나님을 경외하는 사람을 지칭할 때 주로 쓰는 말입니다.
그렇다면 바울일행을 대적하는 자들이 하나님을 모르는 자들이 아니었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잘 알고 은혜도 받고 교회공동체 안에 머물며 일도 했습니다.
또 교양도 있고 예의도 있는데도 유대인들의 선동에 쉽게 놀아나 복음의 원수를 자처했습니다. 사도들과 하나님을 대적하는 사단의 앞잡이가 되었습니다.
여러분!!! 솔로몬은 잠11:22절에서 "아름다운 여인이 삼가지 아니하는 것은 마치 돼지 코에 금고리 같으니라." 이렇게 말씀합니다.
아무리 외모를 잘 꾸미고, 교양도 있고, 믿음이 있어보여도 마음을 다스리지 못해 허탄한 말에 선동당하고 휘둘려 감정대로 움직인다면 마치 돼지코에 금고리 같다는 것입니다. 이건 순수한 것도 아니고 착한 것도 아니고 그냥 사단에게 쓰임 받은 것입니다. 때문에 선하고 착한 것이 불신앙의 변명이 될 수는 없습니다.
신앙인들은 말씀의 통제를 받아야합니다. 그럼에도 막상 일이 벌어지면 말씀은 생각도 안 나고 우선 내 감정대로 쉽게 흥분하여 일을 처리하는데, 이건 사단의 도구로 전락할 가능성이 매우 높다는 것을 알아야합니다.
우리 신앙인들은 어떤 말을 듣거나 무슨 일이 일어나도 당황하거나 흥분하지 말고, 그게 하나님 뜻인지 아닌지 기도하면서 인도하심을 받으셔야합니다.
사사기 9장에서 여룹바알의 아들 아비멜렉이 순진한 세겜사람들을 꼬드겨 오브라에서 자기형제 70명을 살육했는데, 이 대 학살극은 세겜사람들이 오늘 귀부인들처럼 귀가 얇아 아비멜렉에게 쉽게 선동되어 일어나게 됩니다.
우리나라도 남북으로 갈라지고 동서로 갈라진 것도 모자라 이념으로 갈라져 홍역을 앓고 있는데, 정치인들이 정치적 목적으로 하는 선동에 쉽게 넘어가는 순진한 국민들에게 문제가 있다고 봐야할 것입니다.
그러므로 순진하고 착한 것은 좋지만 옳고 그름을 분별하지 못해 이용당하는 것은 나쁜 것입니다. 때문에 분별하지 못하여 쉽게 선동당하고 이용당하지 않도록 기도하고 말씀을 열심히 읽고 묵상해야할 것입니다.
고전14:20절에 "형제들아 지혜에는 아이가 되지 말고 악에는 어린아이가 되라 지혜에는 장성한 사람이 되라."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옳고 그름과 선과 악, 진리와 비진리, 의와 불의를 구별하는 판단력을 기르고, 무슨 일이 생겨도 격동하지 말고, 그것이 하나님의 말씀에 비춰볼 때 옳은 것인지 그른 것인지를 분별하는 지혜와 혜안을 가지십시오. 그럴 때 사단은 우리 앞에서 힘을 쓰지 못하게 됩니다.
그래서 마지막 때를 살아가는 우리가 마음 밭을 옥토로 만들고, 분별력도 최고로 만들어서 장성한 신앙인으로 살아가는 여러분 되시길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