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 과거와 현재의 그 사이에서 ---> 소문
아아아아아악!! 도대체! 어떤 놈이 소문을 퍼뜨린 거냐고오오오오옷!
주위로 나를 둘러싸고 있는 70~80명에 가까운 사람이 머리를 싸잡아 쥐고 발광하는 나를 보고는 긴장한 듯 침을 삼켰다.
젠장, 젠장! 그놈의 책이 뭐길래!! 주위에 서있는 사람들은 신경도 쓰지 않고 난 여전히 난리를 쳐댔다.
그러니까 사흘 전이었다. 들판에서의 한차례 전투를 치루고 노숙을 한 뒤, 마을로 들어선 나는 한 무더기의 무림인들이 우루루 몰려다니는 것을 보았다.
별 생각 없이 그들의 옆을 지나친 나는 객잔의 점소이에게 의아한 소리를 듣게 되었다.
옛 최절정 고수의 모든 것이 담긴 책을 검은 색의 무복을 입은 한 남자가 갖고 있다고. 그 사실이 어떻게 강호에 퍼지게 된 것일까?
그런 의문을 갖다가 밥을 다 먹은 나는 곧 자리에서 일어섰다.
하지만 그곳을 떠날 수가 없었다. 어느새 내 주위의 식탁에 앉은 사람은 거의 대부분이 무언가를 간절히 원하는 눈빛으로 나를 바라보고 있었기에.
그때 나는 직감했다. 소문을 퍼뜨린 자는 사흘 전에 나와 전투를 벌였던 전.추.협의 회원들에게서 그 책을 받게 되어 있던 사람이라고.
솔직히 그와 그 전.추.협 회원들, 그리고 나를 제외하면 이 책의 정체를 알고 있는 사람은 내게 이 책을 걸어준 사람..
그 정도일까?
하여튼 나는 그날 우여곡절끝에 간신히 그들에게서 벗어날 수 있었다.
그렇게 도망친 다음날부터 난 무림인들에게 시달려야했다.
소위 정파라는 인간들.. 그 중에서도 후지기수라고 불리우는 자들이 나를 찾아왔다.
사룡사봉(四龍四鳳)이라고 했던가?
일단 사룡은... 제마지협이라는 나를 포함해서..... 으음..
내가 들어가 있을 줄은 몰랐는 걸?
말 잘하고 잘 논다고 해서 별호가 풍류공자라고 붙여진 제갈운.... 이제 왕자병은 말기에 달해 있었다.
덩치좋고 힘 잘써서 흑웅황(黑熊皇)이라고 불리우는 모용현..
이 녀석은 더 둔해졌드라...
머리좋고 계획 짜기를 좋아해서 천뇌자(天腦자)라는 자신의 조사의 별호를 그대로 물려받은 제 2의 천뇌우라고 불리는 단리우였다. 왠지 모르게 편협한 성격이 없어진 듯한...
사봉은 다른 여자보다 조금 더 아름답다는 이유로 천하제일미라고 불리우는 녹여령... 생각 외로 그리 아름답지는 않았다. 차라리 우리 엄마가 더 예뻤다.
약간은 성깔 있고 다혈질적인 면모를 보이기는 하지만 무공만큼은 사봉중에서 제일 뛰어난 화무일홍(華武一紅) 매적군.
도가의 후예라고 하지만.. 그 다혈질적인 성격을 보아하니 영 아닌 것 같았다.
깔끔하면서도 사리판단이 뛰어남은 물론 재지가 넘치고 학문도 뛰어나다고 알려진 다지선자(多智仙子) 도옥화. 그 유명한 유림의 후지기수다. 차분한 게 참 귀여웠다. 이제 18세라던가?
마지막으로 언제나 포커페이스, 즉 무표정으로 일관한다는, 모용현의 둘째누나로 더 유명한 무향화(無香花) 모용산산이었다.
솔직히 내가 계속 무시했는데도 조용한 여자여서 조금 무서웠다.
후우...... 들은데로 생각하기도 힘이 꽤 들어.... 음....
솔직히 말해서 다 예쁘기는 했어... 내가 몰리모프한 모습보다는 조금 못하지만.... 훗훗훗... 으윽.. 제갈에게 옮았다..
아무튼 나를 제외한 삼룡사봉(三龍四鳳) 칠(七)인이 나를 찾아오더니 대뜸 하는 말,
"소림의 장문인께서 전하라고 그러셨소. 그 책은 강호의 동도들에게 혼란을 가져다주고 있으니, 우리가 그 책을 보관하겠다고....."
헛웃음도 나오질 않았다. 지들이 내게 책이라도 맡겨뒀냔 말이야.. 그래서 피식 웃고만 나.
책은 이미 불태워버렸다고 말했지만 도무지 믿지를 않는 녀석들. 그래서 난 못 믿겠으면 함께 목욕이나 가자고 해서 그들에게 지금 내가 책을 갖고 있지 않음을 알렸다.
하지만 다른 곳에 책을 감춰두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하는지 그날부터 나를 미행하기 시작했다. 저기 객잔위에 느긋하게 앉아서 차를 마시고 있는 그들이 왠지 눈꼴시다.
그 다음날인가? 사파의 후지기수라는 인간 4명을 만났다.
그것도 차례대로. 자신을 제대로 소개도 하지 않아서 어떤 놈들인지 잘 생각이 안 나는데.....
그러니까... 일독황녀(一毒皇女) 만상미.. 음... 요즘 황(皇)자가 들어가는 사람이 많군. 아무튼 독종독인을 이뤄 독을 마음대로 발출하고 거둬들일 수 있는 능력을 지녔다는 여자다. 출신 문파... 불명..
음.. 그리고... 사검(死劍) 백종인... 사형살막의 소막주로 검의 달인이라고 한다. 이미 심검의 경지에 접어들었다던가?
직접 겪어보니 소문의 인물이 아닌듯한.. 으음....
혈도(孑刀) 사우.. '외로운 도'라는 별호답게 언제나 혼자서 침묵을 고수하더라.
음서시(淫西施) 교아련. 별호에서 알 수 있듯이 무척이나 색기를 뿌리고 다니는 여자다. 음탕함이 하늘 끝에 닿았는지 어쨌는지 모르겠지만, 어제 거의 다 보이는 옷을 입고 책 좀 달라고 내게 접근해오는데, 짜증나서 그냥 마혈 막고 지나갔다.
아무튼 그들이 차례대로 나를 찾아오더니 대뜸 하는 말이 모두 같았다. 마치 미리 짜놓은 것처럼. 아, 사우는 제외.
"책을 좀 보여주시겠소? 그게 싫다면 함께 가던지.."
허허.... 내가 무슨 할 말이 있을까? 당연히 다 외우기는 했지만 이미 그것이 함정임을 알고 있는 나로서는 전혀 가고 싶다는 생각이 들지 않았다.
그래서 가기 싫다고 하고, 책도 태워버렸다고 했더니, 각양각색의 반응.
만상미 : "거짓말 마세요!!!! 책을 갖고 있는 것이 아닌가요?!"
바로 격공타혈로... 오옷!! 어려운 한문!!!... 마혈을 찍어서 대략 일각동안 못 움직이게 해두고, 그냥 지나쳤다. 독종독인 이라는데 아무도 안 건드리겠지, 하는 생각으로.
백종인 : "그게 진정이오?"
고개를 끄덕였더니, 나를 한번 째려보더니 그냥 지나가더라.
가장 맘에 들었던 놈이지. 음...
사우 : "......."
아무 말 없이 내가 지나가려는 길을 막고 서서는 무언의 요구를 하는데 아무리 태웠다고 해도 안 비키기에, 바로 워프를 사용해 100 미터 정도 지나가버렸다. 그 다음부터는 쫄았는지 그저 묵묵히 쫓아오고 있을 뿐이었다.
교아련 : "호호호! 그런 말에 속아 넘어갈 것 같은가요?"
'그럼 관둬.' 그렇게 말하고 지나치는데 계속 짜증나게 해서 바로 마혈을 막아버렸지. 훗.
아무튼 그렇게 그들을 떨궈냈더니, 그 다음부터는 저기 정파놈들과 어떻게 연합했는지 함께 다니더라. 쯧...
지금은 어딜 갔는지.... 내가 상관할 바는 아니지만.
그날 저녁.. 내가 멧돼지를 사냥해 맛있게 구워 먹고 있는데, 그 열 한 명의 인원이 내 근처의 모닥불로 다가 오더니만 자신들의 사냥감을 꺼내서 구워먹었다.
뭐, 모닥불이야 카사로 만든거라 별 신경은 안썼지만 문제는 밤이었다. 인간들이 나를 짜증나게 해서 받아내기로 작정이라도 했는지, 뭐라고 두런두런 대는데... 으윽..
귀에다 바람의 결계를 치고 자는데.. 괴상한 느낌에 눈을 떠보니 음서시가... 으윽.. 말로 표현이 안 된다.
그 다음부터는 뜬 눈으로 밤을 세웠다.....
그리고 오늘..... 이렇게 무림인들에게 잔뜩 포위된 체 있다. 하아..... 도대체 왜 난 그냥 넘어가는 일이 없을까?.... 피곤하다보니 별 생각이 다 드네...
으윽....... 그건 모두 그 놈 때문이야!!
책을 못 갖게 되자, 소문을 퍼뜨려 내게 사람들의 시선이 주목되게 한 다음, 혼란을 조성하고 그 다음에 스리슬쩍 책을 빼가겠다는 속셈인 모양인데... 큿큿,
어디 그게 마음대로 되는지 두고 볼까?
"모두들 왜 그렇게 책을 갖고 싶어 합니까? 이미 그 책은 제 소유나 마찬가지입니다만.."
"그렇지 않소!!"
호오... 아무도 저 놈이 대표인 모양이군. 모두의 시선이 자신에게 집중되자 앞으로 나서며 말하는 남자.
"본인은 만지운이라는 별 볼일 없는 이류 고수요. 하지만 지금 강호에 떠도는 소문을 듣고 찾아왔다오.
당신은 마치 당신의 소유물처럼 말하는데, 그것은 잘못된 것이오. 그 책은 전대의 고수께서 후세에 남기신 무림 모두의 물건이오. 그런 물건을 당신 혼자서 독차지하는 것은 잘못이지 않소!! 그렇지 않습니까? 여러분!"
"옳소!!"
"와아!!! 옳소이다!"
"어서 책을 내놓으시오!"
오오... 말 잘한다. 군중심리를 일으키는 것도 상당하네..
하지만 왠지 짜증이 나려고 그러는 걸? 어디 끝까지 물러서지 않는지 두고 볼까?
"그렇게 생각합니까?"
"그렇소!!"
무림인의 일치단결... 보기 어려운 것인데... 그들의 목소리가 잦아들자 난 단 한마디만을 던졌다.
"그럼 그렇게 생각하십시오."
그렇게 말한 나는 뒤로 돌아서서 걸었다. 잠시 후 얼마동안 멍해져있던 사람들이 나를 향해 소리치며 달려오려 했다.
하지만 그보다도 지켜보고 섰던 혈교의 무리가 더 빨랐다.
"모두 비켜라!! 혈교의 사대 장로가 오셨다!!"
"물렀거라!!"
그 목소리에 멈춰서서 뒤로 돌아서는 나. 사람들은 그 말에 웅성대기는 하지만 약간은 쫀 얼굴로 물러섰다. 그 만지운이라는 인물도.
물살이 갈라지는 듯한 군중들사이로 들어서는 혈교의 무리. 네 명의 노인을 선두로 예전에 혈사자들이 입고 있던 옷을 입은 남자 40명이 노인들의 뒤에 서있었다.
군중들이 물러서서 조용해지자, 장로중의 한 사람이 나서서 말했다.
"네가 책을 갖고 있다는 아이냐?"
아이라.. 그래, 아이라고 말할 수도 있겠군. 난 공손하게 고개를 숙이며 말했다. 내가 이래봬도 경로사상은 투철하다고.
"그렇습니다."
자신들을 대하던 태도와는 전혀다른 내 태도에 웅성대는 군중. 혈교에 아첨하는 놈이라고 욕하는 소리가 대부분이었다.
하지만 난 무시했다. 맘대로 생각하라 그래. 저들이 나랑 무슨 상관이냐고.
공손한 내 태도에 흐뭇한 미소를 짓는 장로. 그가 말했다.
"후후.. 예의가 바른 아이로구나. 그래, 그 책을 잠시 내게 내줄 수 없느냐? 내가 한번 보고 싶구나."
쩝.. 역시..인가? 약간은 허탈하군. 역시 실제로 보지 않으면 믿질 못하는 건가?
"사람들은 참 이상하군요. 이미 그 책은 태워버렸는데 말이죠. 그 책의 내용을 알고 싶으면 제 기억을 읽으면 될 겁니다."
그런 내 말에 약간은 의심하는 표정을 짓고 믿는다는 얼굴을 하는 장로. 그는 여전히 인자한 얼굴로 다정하게 말했다.
"허허.... 역시 그랬는가? 그럼 어쩌겠나? 이대로 우리를 따라가는 것이..."
쩝... 그럴까? 그것도 좋겠지. 어차피 그곳을 찾아가려 했었는데. 참, 그전에.
"그러도록하죠. 하지만 지금 여기서 끝내야 할 일이 있으니 잠시만 시간을 주시겠습니까?"
"그러게나."
장로의 대답을 들은 나는 잠깐 주위를 둘러보고 탄식을 내뱉는 사람들 틈에서 내가 찾던 사람을 찾았다.
후훗.. 어딜 슬그머니 내빼시려고 그러시나?
"당신의 이름이 만지운이라고 그랬던가요?"
내 말 한마디에 집중되는 사람들의 시선. 그 주인공은 잠깐 동안 당혹한 얼굴이 되었지만 다시 태연한 얼굴이 되어 대답했다.
"그렇소."
"왜 아까와 같은 말은 못하시는지요? 지금 해보시죠?"
잠깐 동안 생각하는 듯한 표정의 사람들. 하지만 만지운은 아차 한 표정이 되더니 꿀먹은 표정이 되었다. 큭큭.. 완전히 매장시켜주마!
음하하하핫!!!
"구역질 나는 군요. 상대가 약해보이면 그렇게 당당하게 말하면서, 지금은 입 다물고 조용하게 있습니까? 당신이란 사람들... 강한 상대에는 약하고 약한 상대에는 강한, 세상에서 제일 짜증나는 인간입니다. 그걸 아십니까?"
그런 내 말에 참담해지는 사람들의 표정. 그들은 알고 있었다.
자신들을 신랄하게 비꼬고 있음을. 몇 명이 분위기 파악을 못한 듯 울컥함으로써 자신의 무지함을 드러냈지만...
"이런 말을 듣기 싫다면 당당해지십시오. 훗... 이런 말을 한다고 바뀔리가 없을 테지만......"
멍해져 있는 사람들과 얼굴을 붉힌 체 고개를 숙이고 있는 마지운을 잠시 동안 바라보다가 나는 뒤에 서있는 혈교의 장로에게 말했다.
"그럼 이만 가시지요."
"그러도록 하지."
훗.. 멍한 표정이 되어있는 정파랑 사파의 인간들의 모습이 보인다. 쿠킬킬킬킬.. 그렇게도 나를 귀찮게 하더니만... 한 방 먹었지? 음핫핫핫!!!!