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사설시조의 형성
양란을 계기로 유교나 주자학에 심취되었던 양반 귀족계급은 평민앞에 무력함을 폭로하고야 말았다. 이에 주자학의 허점을 깨달은 학자들은 실학풍을 일으켜 실사구시를 앞세웠다. 양반귀족의 몰락과 실학풍의 팽배는 평민계급의 자각을 촉구하였으며, 드디어 실질적으로는 평민계급이 사회적 문화적 주역이 되었다. 이러한 시대적 상황을 배경으로 하여 형성 발달한 시가가 곧 사설시조이다.
사설시조의 전성기는 18세기이다. 이때의 배경은 먼저 사회적 배경이다. 조선사회는 임병양란의 계기로 후기에 오면서 사회현상에 변화가 생겨났다. 첫째, 신분제의 동요이다. 조선사회를 일컬어 양반사회라 칭할 때 이는 왕을 정점으로 문무양반에 의해 통치되는 것을 뜻하는 것이다. 따라서 양반이라 함은 지배계층을 통칭하는 말이었다. 그러나 이러한 사회제도가 그대로 지속될 수만은 없었으니, 즉 조선 초기에 지배 계층의 신분이었다 하더라도 계속 집권 대열에 참여할 수만은 없었던 것이다. 노비가 양민으로 승격되고, 양민들은 양반으로 향상되는 경향이 나타났다. 또한 격심한 당쟁과 영조 이후 세도정치기로 접어들면서 기존의 세력권에서 멀어지는 양반들은 낙향하여 양반의 지위로 전락하니 이들의 사회적 지위란 일반 농민과 다를 바 없이 보잘 것 없었다.
둘째, 상품 화폐경제의 발달이다. 전란 후 급박해진 재정상의 곤란은 또 다른 한편에서는 종래 물건 징수의 공납제를 개편하지 않을 수 없게 되었다. 각종 토산물 대신이 미곡으로 통일하는 대동법이 실시되면서 생산에 있어서의 직접적인 현물진납의 형태는 상품생산의 평태로 전환되어 상품 화폐경제의 발들을 촉진시키는 결과가 되었다. 이러한 현상은 서울과 지방에 널리 퍼졌으며, 상권은 전국적으로 확대. 이러한 조선 후기의 경제적 변화는 서민들에게 보다 많은 재화를 축적할 수 있는 기회를 부여하였으니 실질적인 신분상승의 효과를 가져다주는 것이었다.
셋째. 실학사상의 발전을 종래의 성리학은 붕괴되어가는 양반사회체제를 개편하거나 혁신시키는 데 아무런 도움을 주지 못했다. 양반도 모름지기 현실적으로 사회에 기여할 수 있는 학문을 해야 한다는 실증적인 인식의 태도는 서양학술에 대한 견문의 확대로서 더욱 계발되었다. 그리하여 유형원, 이익, 정약용 등의 실학자가 나와 제도의 개편, 기술도입 등을 주장하였다. 이러한 실학사상은 예술에 있어서도 새로운 경향을 낳았다. 실학사상은 18세기 특히 문학부에서 사설시조의 성행에 영향을 끼친다.
이와같이 18세기의 사회적 배경은 문학담당층의 폭을 양반 사대부 계층 위주에서 중서평민층까지로 확대하였고, 이 중서평민층을 중심으로 하여 사설시조는 전성기를 이루게 되었던 것이다.
또한 사설시조의 형성은 두 측면에서 고려해 볼 수 있다. 먼저 사설시조가 평시조의 파격된 변형으로 생겨난 것이 아니라 조선 중기 이전부터 존속해 온 ‘민요’로부터 나왔다는 것이다. 이러한 입장은 ‘사설시조’라는 이름 대신 ‘만횡청’이라는 용어를 제안하였다. 그리고 이 부류의 작품들은 평시조와는 달리 하층민들의 가요로부터 전이되어 주로 평민층의 생활체험과 의식을 표현하는 별도의 시가로서 18세기초보다 훨씬 앞선 시기에 형성되었고, 그것이 사설시조라 불린 것은 조선후기에 접어들면서 지소창의 장단에 실려서 불린 때문이라고 한다. 다음은 사설시조가 평시조와 비슷한 시기에 병행적 보완관계를 지니면서 성립한 것으로 추정하고, 그 담당층 역시 평시조와 마찬가지로 사대부층이 주축이 된다고 보는 견해이다.
조선후기가 사설시조의 본격적 융성기라는 점은 의문의 여지가 없으며, 이 시기의 사설시조 창작과 향유에 중인을 포함한 평민층이 큰 몫을 담당했다는 점도 대체로 인정되고 있다. 조선전기의 사대부들이 남긴 몇 편의 사설시조는 대개가 형태상으로만 사설시조일 뿐 내용과 미의식에서는 평시조와의 차이가 미미했는데, 후기에 와서는 이름을 밝힌 중인층과 사대부 작가들의 작품에서도 해학, 풍자와 대담한 표현 및 세속적 인간형을 다룬 내용이 풍부하게 나타났다.
사설시조가 조선중기 이전에 발생했다 하더라도, 그 대다수의 작품은 조선후기의 것이며 또한 이 시대의 새로운 관심사와 특질을 잘 나타내고 있다. 사설시조는 평시조의 균형 잡힌 틀과는 전혀 다른 형태를 통해 평민적 익살, 풍자와 분방한 생활을 표현함으로서 주선후기 문학사의 새로운 국면을 조성하는데 크게 기여했다.
2. 사설시조의 개념과 형식
사설시조란 본래 창곡의 명칭으로 쓰이다가 문학적 갈래로 지칭하는 이름이 되었다. 즉 평시조보다 긴 사설을 촘촘한 장단으로 엮어 부르는 창법의 작품들 전체를 가리키는 명칭으로 정착되었다.
그 형태를 보면 종장은 평시조와 비슷한 틀을 유지하되, 초․중장 중 어느 일부가 4음보 율격의 정제된 구조에서 현저하게 이탈하여 장형화되었다. 이들을 더 잘게 나누어 엇시조와 사설시조로, 혹은 중형시조와 장형시조로 변별하고 있다. 그러나 엇시조와 사설시조의 형태적 차이로 구분한다 하더라도 그들 사이의 변별성보다는 평시조와의 전체적 대비에서 드러나는 형태 및 내용상의 차이가 뚜렷하다. 때문에 문학상의 갈래 개념으로는 이들을 한데 묶어 사설시조라 규정하는 관점이 널리 받아들여지고 있다.
사설시조는 평시조의 정형으로부터 이탈한 장형화를 기본으로 하기 때문에 일정한 형식상의 규범을 말하기 어렵다. 이 때문에 사설시조를 근대 이전의 자유시라고도 한다. 그러나 사설시조에 부분적인 정형성 및 율격성이 전혀 없는 것은 아니다. 우선 초․중․종장의 3장 형식을 유지한다는 점에서 정형성을 찾아 볼 수 있고, 종장의 첫 음보가 평시조만큼 엄격하지는 않으나 대체로 3음절인 경우가 많다.
시행을 장형화하는 방법으로는 4음보 단위가 확장되면서 2음보 또는 6음보의 변형을 삽입하는 방식이 가장 많이 발견된다. 사설시조의 형식 및 운율이 지닌 자유로움이 완전한 파격과 불규칙성의 산물이 아니라, 이와 같은 ‘넉넉한 정형성’을 적절히 활용하면서 일상어의 산문적 호흡과 다채로운 리듬, 어법을 구사하는 데서 비롯된 것이다.
* 사설시조와 평시조의 공통점과 차이점
차이점
1. 평시조의 사설시조에 비해 형태상의 제약이 크다 - 평시조의 경우는 3장 6구 42자 내외를 지켜야 하나 사설시조의 경우는 종장 3음절만 지키면 된다.
2. 평시조의 경우 대부분이 사대부가 작자층 이었으나 사설시조의 경우 중인, 민중이 그 주류를 이루고 있다.
3. 평시조의 경우 그 내용에 있어 사대부의 지조, 절개, 자연의 흥취, 안분지족 등을 다루고 있으나 사설시조의 경우 서민들의 애정, 지배계층에 대한 비판 등을 다루는 것이 주류다.
4. 미적 범주에서 살펴보자면, 평시조의 경우 우아미, 숭고미 등이 주류를 이룬다면 사설시조의 경우는 골계미가 주를 이룬다.
공통점
1. 종장의 첫 3음절은 꼭 지킨다.
2. 노래(운문)이기 때문에 운율이 느껴진다.
3. 자신의 감정을 읊을 것이기 때문에 서정적이다.
3. 사설시조의 특성
(1) 현실저항적 세계관
사설시조 작품 텍스트에서 보이고 있는 가장 두드러진 특성은 '현실에 대한 지대한 관심‘이다. 그러나 이 때의 현실에 대한 관심은 주로 저항적인 측면으로 나타난다. 따라서 현실에 대한 반발정신의 투영화가 작품화된 것이 바로 사설시조라고 할 수 있다.
① 일상적 생활상 제시를 통한 현실인식적 자아관 형성
사설시조 텍스트에는 대체적으로 사소한 현실적 사건․일상사 등이 중요하게 취급되고 있다. 즉, 일상적인 사소한 일이나 현실 사회에 대한 깊은 관심 등이 두드러지게 나타나며, 당대의 잘못된 점이 일상적인 시어나 어투 등을 통하여 실감나게 표출되고 있고, 낮은 신분의 인물이 주요 대상으로 등장한다는 특징을 보이는 것이다. 이런 점에서 볼 때 사설시조의 세계관은 ‘현실 지향적인 인식’과 깊이 연맥되어 있다고 할 수 있다. 작품에 나타나고 있는 일상적 요소에는 생활 주변에 대한 잡다한 일들이 주로 채택되는데, 이를테면 상품의 거래, 처첩제도의 불합리성 제시, 현실적인 생활의 사설적이고도 실감있는 표현 등이 그것이다.
발가버슨 兒孩(아해)ㅣ들리 거믜쥴 테를 들고 개천(川)으로 왕래하며,
발가숭아 발가숭아 져리 가면 쥭나니라. 이리 오면 사나니라. 부로나니 발가숭이로다.
아마도 世上(세상) 일이 다 이러한가 하노라. <김수장>
[현대어 풀이]
벌거벗은 아이들이 거미줄로 만든 테를 들고 개천을 오가며
"고추잠자리야 고추잠자리야, 저리 가면 죽는다, 이리 오면 산다." 부르는 것이 아이들이로다
아마도 세상일이 다 이런가 하노라
어린 아이가 잠자리를 잡는 단순한 놀이에 풍자성을 가미하여 서로 속고 속이며 모해하는 세태를 풍자한 작품이다. 어린아이들이 잠자리를 잡으려고 하면서 잠자리가 자기들에게로 와야 산다고 하는 것은 일종의 역설적 상황이다. 잠자리가 살기 위해서는 아이들로부터 멀리 도망쳐야 하기 때문이다. 이 시조는 이처럼 서로 믿을 수 없는 약육강식의 각박한 세태를 해학적으로 풍자하여, 그 속에 인생의 오묘한 진리와 생활 철학을 안으로 간직하고 있다. 여기에서 '발가버슨 아해(兒孩)ㅣ들'은 '모해하는 자'를, '발가숭이'는 '모해받는 자'를 의미한다.
② 승려의 비행 고발을 통한 현실저항적 인식
승려를 비하하고 경시하는 태도와 불신하는 사상 등도 당대의 사회적 실상을 반영하는 요소 중의 하나이다. 평시조에서는 승려가 시의 소재로 나타나는 경우 자체도 드물지만, 혹시 나타난다고 해도 긍정적인 성향을 지닌다. 예컨대, “물아ㅣ 그림 지는 리 우희듕이 간다 / 져듕아 게 있거라 너가ㅣ 말 무러보자 / 그 듕이 손으로 백운을 로치며 말 아니터라”에서 나타나듯, 승려층은 점잖고 긍정적인 이미지의 인물로 그려진다. 더욱이 시적 분위기는 현실적이기보다는 이상적이고 아름다운 상상력을 내포하게 되는 것이 평시조의 특성이기도 하다. 이에 비해 사설시조에 등장하는 승려의 경우에는 승려의 비행이나 불합리성에 대한 지적, 승려의 부패상 폭로, 경시사상 등, 주로 부정적인 이미지로 나타나고 있다. 이러한 내용에는 현실 부정과 비판적 태도가 배태되어 있다고 할 수 있는데, 왜냐면 당시의 문화권․생활권에서의 승려층은 신분의 몰락과 소외에도 불구하고 상층과의 밀접한 관계를 유지하던 계층으로서, 이들에 대한 비난이나 비판․풍자는 결국 당대 상층에 대한 그것으로 환치되기 때문이다. 따라서 승려들에 대한 불신적 태도 역시 당대 지배층에 대한 저항적 세계관의 형성에서 비롯된다고 할 수 있다.
즁놈은 승년의 머리털 잡고 승년은 즁놈의 상토 쥐고
두 끄니 맛밋고 이왼고 져윈고 쟉쟈공이 쳔듸 뭇 쇼경이 구슬 보니
어듸셔 귀머근 벙어리 외다 울타 니 <무명씨>
[현대어 풀이]
중놈은 중년의 머리털을 쥐어 잡고 중년은 중놈의 상투를 잡아쥐고
두 골을 마주 대고 네가 옳네 서로 타두니 뭇 소경들이 굿을 보는데
어디서 귀먹은 벙어리가 나타나 누고 옳고 누가 그르다 하더라.
불합리한, 즉 사실에서 벗어나거나 있을 수 없는 모순된 상황을 통해서 승려의 행위가 풍자되고 있다. 즉, 모순어법을 통한 조롱적 태도와 상황의 설정이 상징성(이중적 의미로 기능)을 지닌다는 점에서 그러하다. 없는 머리털과 상투, 볼 수 없는 장님의 시선, 들을 수 없는 벙어리의 판단력 등이 모두 모순적인 상황을 제시하고 있는 바, 이러한 상황 설정은 사실 있을 수 없는 일로서 단지 그러한 모순적인 상황이 전개된 그 배경, 즉 텍스트의 이면적인 의미만이 핵심화되고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초․중․종장을 통해서 제시하고자 하는 시적 화자의 의도는 당시 현실 세태의 불합리성을 꼬집는 데에 있다.
③ 양반 및 관리의 위선이나 비리 고발을 통한 비판의식 고취
가장 우회적으로 저항적 태도가 표출되는 경우는 바로 당대의 지배층에 속하는 양반을 비난이나 비판하는 경우이다. 승려의 비행이나 불합리성을 제시하던 경우가 주로 일상적이고도 사소한 사건의 제시와 일부 알레고리에 의존했던 것에 비해, 양반들을 포함한 지배층의 거짓된 위선이나 비열함, 가혹한 행위 등을 고발할 때는 보다 더 우회적이고 알레고리를 이용한 상징적 수법이 사용되며, 특히 동물우의가 많이 나타난다. 동물우의는 동물이 인간으로 빗대어지는 경우인데, 그 성향에서도 이중적 의미를 보유한다. 만약에 ‘쥐’가 대상으로 선택된다면, ‘쥐’의 약삭빠르고 비열한 속성이 빗대어진 인간의 속성으로 전치되며, 다른 한편으로는 텍스트 전체가 이중적인 의미를 지니게 되는 것이 그것이다. 사설시조에 나타나는 동물들은 거개가 부정적인 이미지를 내포한 해충류이다. 즉 이들은 추하며 몸집이 작은 파충류나 해충들로서, 비난․비판․경멸적인 의미를 함유하고 있다. 따라서 이들은 이중적 의미로 쉽게 환원된다. 사설시조에는 특시 ‘두꺼비’가 보조관념화되어 자주 등장한다.
눈 멀고 다리 져는 두터비 셔리 마즈 리 물고 두엄 우희 치다라 안자,
건넌산 라보니 白松骨(백송골)리 잇거 가에 금죽여 플 다가 그 아 도로 잣바지거고나.
쳐로 날 젤싀만졍 혀 鈍者(둔자)ㅣ런둘 어혈질 번괘라. <병와가곡집(甁窩歌曲集)>
[현대어 풀이]
한 눈 멀고 한 다리 저는 두꺼비, 서리맞은 파리 물고 두엄 위에 치달아 앉아
건넌 산을 바라보니 백송골이 떠 있거늘 가슴이 끔찍하여 풀떡 뛰다가 그 아래 도로 자빠지겠구나.
다행히 날랜 나였기 망정이지 행여 둔한 놈이런들 피멍들 뻔했도다.
‘두꺼비’는 흉식스런 외모로 말미암아 사람들에게 혐오감을 주는 동물로 인식된다. 따라서 이러한 부정적인 두꺼비의 이미지는 두꺼비의 속성을 흉물스럽거나 위선적, 이중적 성향으로 받아들이게 한다. 이런점에서 볼때, ‘두꺼비’를 선택했다는 그 자체가 이미 의미심장한 바유이며, 두꺼비의 행위가 회화화된다는 것에서는 그 부정적인 속성이 더욱 가시화되면서 강조될 수밖에 없다. 두꺼비가 한 다리 절며 한 눈 멀었다는 것은 불완전함을 함축하는 표현으로서 무력한 사람들을 괴롭히는 자에 대한 반감의 형상화가 된다. 스스로 그렇게 불완전한 대상이, 불완전할뿐더러 극도로 허약하기까지 한 대상(백성)을 괴롭힌다는 점에서 바로 비난적 태도를 증폭시키는 원인을 제공하기 때문이다. 더구나 “여러 사람 앞에서 남을 웃길 뻔했다”는 표현에서 회화화는 극대회돠며, 이런 점에서 아이러닉한 분위기가 조성되기도 한다. 그러므로 양반층에 대한 공격과 비난은 강한 어조나 신랄한 목소리로서 시적 화자의 의지를 강하게 표출한다고 볼 수 있다.
(2) 극적 서사지향 시
① 언술방식
가) 대화적 언술방식
사설시조의 언술방식에서 특히 주목되는 점은 텍스트 내에서 화자와 작중인물 혹은 작중인물들 사이에 직접적인 대화 형식으로 이루어진다는 점이다. 이는 결국 직접화법으로 이루어지는 대화체를 의미하는데, 시 텍스트에서의 대화체의 등장은 상당히 생소하다. 이는 시적 언어 소통 방식이 아니라 일상적 의사소통의 방식을 취함으로써, 시를 수용하는 독자들의 상식적 수준에 놀라움을 야기시키기 때문이다. 따라서 이때의 사설시조 텍스트는 표현 행위 그 자체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시적 화자의 지향의지를 전달하는 것과 지향의지의 객관화가 주 목적이 된다. 그러므로 이러한 언술방식은 일상적인 의사소통적 측면에 더 근접할 수밖에 없는데, 이러한 모든 점에서 사설시조는 평시조와는 아주 다른 양태가 된다.
ㄱ) 작중인물들간의 직접화법에 의한 언술
가장 객관화된 언술의 형태는 작중인물과 화자, 혹은 작중인물들간의 직접적인 화법을 통해 의사소통되는 경우이다. 이 때에는 시적 화자의 개입은 극소화되며, 작중인물들의 언술은 극대화된다. 이는 화나자 작중인물의 주관적인 감정토로가 억제된다는 점에서 상당히 객관성을 획득한다.
댁들에 연지라 분들 사오
져 쟝사야 네 연지분 곱거든 사쟈
곱든 비록 안이되 발음연 녜 업든 교태 절로 나는 연지분이외
진실로 글어 하량이면 헌속꺼슬 풀만졍 대엿말이나 사리라
[현대어 풀이]
"집에 연지분을 사시오."
"저 장사야, 네가 파는 연지분이 곱다면 사겠다."
"곱지 않은 얼굴이더라도 바르면 전에 없던 교태가 절로 생겨나는 연지분이오."
"진짜로 그렇다면야 헌속곳을 풀망정(몸을 팔아서라도) 대여섯 말이라도 사겠다."
ㄴ) 화자와 청자와의 대화에 의한 언술
청자라 함은 글자 그대로 듣는 사람이라는 뜻으로서 독자를 의미하기도 하지만, 이 경우에
는 작중인물에 해당되는 인물로서 텍스트 내에서의 화자의 상대역인 제 삼 인물을 지칭한다. 그러나 엄밀히 말하면 작중인물의 역할과는 조금 다르다고 할 수 있는데, 이는 표면적으로 보았을 때 제 삼자의 직접적인 목소리는 부재하는 경우이기 때문이다. 결국 이 때의 작중인물은 텍스트 속에서 듣는 역할만 한다. 따라서 등장인물은 2명 이상이나 목소리는 하나로서, 화자의 언술로만 진행된다. 쉽게 말하면 혼자서 입밖에 내놓는 소리인 독백으로만 이루어지는 경우이기 때문에, 이때의 청자는 내포된 독자의 성격을 지닌다.
ㄷ) 화자의 간접화법에 의한 언술
화자의 언술로 진행되지만, 화자의 말 속에 타인의 말이 삽입되는 언술 형태이다.
ㄹ) 화자가 개입된 작중인물간의 대화로 된 언술
이때에는 주로 작중인물간의 직접적인 대화에 의해 진행되며, 화자는 단지 약간 개입하는 정도이다. 화자의 역할이 소극적으로 드러나는 것이다.
나) 대상을 직접 겨냥하는 언술방식
이때에는 시적 화자의 직접적인 언술로 진행되며, 대상에 대한 이해를 그 목표로 한다. 주로 일상적인 평어체나 구어체에 의해 사물이나 사건, 화자의 심정 등이 나열식으로 직접 제시된다.
다) 이야기․묘사적 언술방식
- 화자 자신의 행위나 사건․상황 등에 대한 언술
- 타인물의 행위나 사건, 상황에 대한 언술
② 언표적 특징 - 비아냥, 조롱적인 어조, 원거리, 관능적 일상어
4. 사설시조의 내용상의 특성
문헌에 보이는 사설시조의 명칭으로는 만횡청류, 락, 조, 농, 편악, 음, 음농, 슬시조 등이 있다. 만횡청류, 악희조, 농, 편악 등과 같이 음악상의 성격을 나타내는 용어로서 즐겁게 희롱하듯 말을 엮어 부르는 노래라는 뜻이다. 슬시조, 言(樂) 등은 그대로 말노래를 의미한다. 이들 용어라 내포하고 있듯이 사설시조는 이야기를 엮어 부르는 노래인데 '이음'이 아닌 '엮음'이란 그 내요이 여러 가지 화소로 이루어진 것임을 뜻하고 있고 엮음 또한 다양한 양상을 띠고 있다. 엮음 구성이란 곧 진술 태도와 관련되는 것으로 서정적 자아의 표현인 순수 서정시의 독백적, 개인적 진술방법과는 달리 사물(대상)을 遠心照明의 위치에서 파악하고 3인칭 관점에서 객관적으로 언술하는 태도이다. 이러한 점은 다른 시가에서는 잘 볼 수 없는 구성 방법이다.
사설시조의 내용상의 특성은 첫째, 서사성을 지니고 있는 점이다. 사설시조는 이야기가 있는 시가, 즉 이야기적인 노래이다. 하나의 이야기란 시간의 진행 방향에 따라 일어나는 행위(사건)들이 어떤 변화를 야기하고 그것이 인과 관계의 필연성을 갖추었을 때 성립된다. 이 경우 그것의 전달이 문제가 되는데 사설시조의 이야기는 작품 속의 인물 시점과 진술자의 시점 및 양자의 교체로 진술되는 이중의 시점 등으로 진술되기도 하고 또 유형, 무형의 대상(인물)과의 대화적 진술 태도를 취하기도 한다.
그러나 사설시조의 이야기는 시간적인 순서나 인과관계에 의해 구축되는 아니라 이야기의 줄거리나 골격만 갖춘 것이 대부분이기 때문에 서사적인 것이라 할 수밖에 없다.
두터비 파리를 물고 두험위의 치다라 안자
것너산 바라보니 白骨松이 떠잇거든 가슴이 금즉하여 플떡 뛰어 내닷다가 두험아래 잣바지거고
모쳐라 날랜 낼쉬만졍 에헐질번 하괘라
위의 시는 묘사를 중심으로 서술하고 있으며 1인칭 시점에서 원심초명자의 위치에서 사물(대상)을 조명하고 있다. 지방관리의 부정부패와 비굴성을 조명하여 상부계층의 이중성을 은연중에 비판하고 있는 것이 그것이다. 사설시조는 이와 같이 사실적 묘사를 중심으로 현실적 인간의 삶을 그리고 있고, 또 실제적․구체적 묘사와 진술을 통해 현실적 비리와 인간적 모순을 해학과 풍자로써 나타내 보여주는 객관적 우화적인 면모를 지니고 있다. 이러한 수법은 대화적 구문과 밀접하게 연결, 혼합되면서 이야기의 극적 효과를 나타내고 있는 것이다.
사설시조의 두 번째의 내용상 특징은 이야기의 형식을 띠고 있는 점이다. 문학의 형태는 그 구성법에 따라 성립되고 구성은 서술방식과 밀접한 관계에 놓인다. 사설시조는 서사적인 면과 극적인 면을 지니고 있다. 대화의 담화형식을 취하고 있다든가 재미있고 놀랍고 속시원한 인간의 체험들을 이야기한다는 점에서 희곡과 같다. 그러나 인물과 행위의 인과관계가 성립되어야 하는 요건을 갖추고 있지 않다는 점에서 극적인 것이다. 무엇보다도 사설시조가 극적인 것은 대화의 담화 형식을 취하고 있는 데 있으며 사설시조를 대화시라고 하는 것도 이 때문이다.
니르랴 보쟈 느르랴 보쟈 내 아니 느르랴 네 남진려
거즛거스로 물깃 체고 통으란 리와 우물젼에 노코 또아리 버서 통조지에 걸고 건너집 쟈근 金書房을 눈 야 불러내여 두손목 마조 덥셕주고 슈근슈근 말 다가 삼밧트로 드러가셔 므스일 던지 삼을 쓰러지고 굴근삼대 끄삼ㄴ나마 으즑우즑 더러 고 내 아니 니르랴 네 남진다려 져아희 입이 보 라와 거즛 말 마라스라
우리을 지서미라 실삼 죠곰 ㅣ더ㅣ라
모든 말은 행위에서 나오고 말에 의해서 행위가 나오기도 한다. 그 행위 주체는 자기 자신일 수도 있고, 구체적인 상대일 수 도 있으며 인간 전반일 수도 있다. 그리고 실제적 행위와 직접 간접 관련되어 서로 주고받는 대화가 성립된다. 위의 인용시는 자못 위협적이지만 악의가 없는 농적인 담화이다. 그리고 구체적인 대화 상대가 나타나 있는 것도 아니다. 그러면서도 대화가 성립하는 것은 어떠한 상황이 전개되었고, 그 전개 상황이 구체적으로 묘사됨으로써 행위자의 정체가 드러나고 있는 데 있다. 그러나 묵언의 대답이 있으며 표면에는 나타나지 않지만 또다른 대화 상대가 있는 것이다. 그는 물론 발화자가 직접 대상으로 상정하고 있는 남편으로서 '져아희 입이 보 라와 거즛말 마라스라'의 수화자이다. 이로써 말없는 대답의 내용이 나타났으나 이는 발화자가 상정한 말로써 대화가 삽입된 경우이며, 이러한 기법은 서사문학에 많이 쓰이는 방법이다. 그러나 작품의 정황은 극적인 것으로 고려가요의 쌍화점의 '삿기광대'로 발화자를 환치시키면 두 작품의 연결성에 의해 극적 흥미를 실감하게 된다.
눈아 눈아 두미러질 눈아 두손 長가락으로 꾹 질러 머르지를 눈아
뫼온任 보나 고은任 보나 본동만동 라고 ㅣ 언제부터 情다슬나고 너더려 아니 닐넛ㅅ더냐
아마도 이 눈에 連坐로 是非될가 노라
이 인용시는 대화가 자기 자신이다. 눈이라는 신체의 일부가 대화의 상대로 상정되어 있다. 원망과 질책의 자성적 내용이면서도 소박하다 못해 투박한 표현의 재미를 잃지 않고 있다. 이외에도 '아마도' 와 같이 종장 제1음보가 '두어라' 등의 명령형, 호격 등 감탄사가 사용되는 경우는 자신과의 대화류이며 이것은 대화체로써 실제 상황이 전개되면서 극적 재미를 느끼게 하고 있다. 이러한 대화체의 극적 구성은 우리의 역사 장르 가운데 고려가요인 처용가, 만전춘별사, 쌍화점 등과 같은 가극으로부터 전승된 것으로 생각한다.
사설시조의 세 번째 특성은 엮음이다. 즉 다성구조로서 시적 진술태도가 작자나 시중의 화자가 1인칭 또는 3인칭의 시점에서 하나의 목소리로 노래하는 것이 아니라 대화적 기법이나 판소리와 같이 화자의 다양한 목소리로 이루어져 있음을 말한다. 이러한 화자의 진술태도―작자, 시중인물, 작자와 시중인무의 교체, 타설소의 삽입, 대화 등― 뿐만 아니라 그 의미 내용 역시, 작자의 순수한 감정과 사상이 아니라 타장르인 속담, 고사, 한시문 등이 패로디화 되거나 삽입되어 주제가 성립되는 경우로 의미상의 병렬적 다층적 구조를 보이는 것들이 이에 속한다.
말을 한꺼번에 몰아붙여 엮어가는 가락이 사설시조의 음악이며 편악과 언편의 용어와 같이 사설의 엮음이 전개의 속성이라고 할 수 있다. 그리고 그 장문화의 속성과 현상은 구조상 비형식적 부분인 주제, 소재, 이야기거리, 작자 태도 등에서 비롯된다.
로 도라드니 범녀는 간곳업고 백빈주 갈마기는 흉노로 나라들제 삼상의 기럭 한수 나려 심양강 당도하니 백낙천 일거후에 비파성도 끈어졌다
적벽강 도라드니 소동파 노든 풍월 의구히 있다마는 죠맹덕 일셰 지후의 이금의 아재재야 월낙오제 깊흔 밤의 고소셩의 배를 매니 한산사 쇠북소리 객션의 둥둥 드리왓다
진회를 도라보니 연룡한수 월용사의 야백진회 근주가라 상여는 부지망국한하고 격강유창 후정화라
인용시는 작자의 순수한 창작이 아니라 白居易의 <琵琶行>, 蘇軾의 <前赤壁賻> 張繼의 <楓橋夜迫>, 杜牧의 <迫秦准>의 구절들을 인용하여 사설시조로 엮고 있다. 이러한 엮음의 소재들은 한시구나 소설 속의 한 대목뿐만 아니라 속설이나 전설 등을 삽입하기도 한다. 이렇게 한시문과 아울러 평시조의 내용들이 모방, 삽입 패로디화 하여 사설시조를 이루는 경우는 대개 작자가 어느 정도 독서량을 지닌 양반 중인들이나 전문 가객의 소작이 아닌가 한다. 엮음의 구성은 주제의식의 개방성과 다양한 내용의 완전한 전달에 따른 것이라고 할 수 있다.
5. 사설시조의 표현기법
(1) 사실적 표현
사실적 표현 기법은 조선후기 문학의 주요한 표현 기법 중의 하나이다. 조선 후기 사설시조의 작가는 자신이 경험한 현실 사회의 삶의 모습과 남녀간의 애정문제들을 숨김없이 솔직하게 표현하고 있다. 그래서 작가들은 자신이 세상을 보는 눈을 일상적인 삶의 현장으로 집중시키고 있다. 이때 작품에 구현되는 세계는 궁핍한 생활, 시정의 풍속, 남녀간의 관능적 성욕 등 현실적이고 사실적인 세계이다. 이런 사실적 표현은 평민들이 살아가는 모습을 단순히 전달하거나 평가하는데 그치지 ㅇ낳고 구체적인 공간 속에서 이루어지는 인물들의 일상적 행위를 생동감 있게 드러냄으로써 보다 현실을 객관적으로 반영하고 있다.
(예)
논 밭 갈아 기음 매고 뵈잠방이 다임 쳐 신들메고
낫 갈아 허리에 차고 도끼 버려 두러매고 무림 산중(茂林山中) 들어가서 삭다리 마른 섶을 뷔거니 버히거니 지게에 질머 지팡이 바쳐 놓고 새암을 찾아가서 점심(點心) 도슭 부시고 곰방대를 톡톡 떨어 닢담배 퓌여 물고 코노래 조오다가
석양이 재 넘어갈 제 어깨를 추이르며 긴 소래 저른 소래 하며 어이 갈고 하더라.
<청구영언>
[현대어 풀이]
논 밭 갈아 김매고 베잠방이 대님 쳐 신들메고(신을 벗어지지 않게 하고)
낫 갈아 허리에 차고 도끼를 버려 들러 메고, 울창한 산 속에 들어가서, 삭정이 마른 섶을 베거니 자르거니 지게에 짊어져 지팡이 받쳐 놓고, 샘을 찾아가서 점심도 다 비우고 곰방대를 툭툭 털어 잎담배 피워 물고 콧노래 졸다가,
석양이 재 넘어갈 때 어깨를 추스르며, 긴 소리 짧은 소리 하며 어이 갈꼬 하더라.
농촌의 하루 생활을 소재로 하여 작가는 농부가 논밭을 매고 나무하는 모습을 사실적으로 표현하고 있다. 평시조도 농촌의 생활을 소재로 하고 있지만, 평시조의 은유적 표현은 사설시조의 실생활의 사실적 표현과는 차이를 보인다. 평ㄹ시조가 주로 은유적 표현을 취하고 있는 반면에 사설시조는 실제로 일어난 일을 대상으로 사실적 표현을 취하고 있다.
(2) 풍자적 표현
문학에서 풍자는 사회의 모순이나 결함을 빗대어 비판하는 데에 활용하는 대표적인 표현 기법이다. 사설시조에서도 사회적 모순을 지적하는 데에 풍자가 자주 등장한다. 그러나 지금까지의 논의는 사설시조의 풍자를 지나치게 확대하여 풍자를 통해 사설시조의 전체 성격을 규정하려고 하는 경우가 지배적이었다. 사설시조는 평시조와는 달리, 유교 도덕과 같은 기존 관념을 부정하고 삶의 현실을 긍정함으로써 풍자를 형성하고 있다. 사설시조에 쓰인 풍자의 방법은 우의적 풍자, 직접적 풍자, 반어적 풍자 등으로 나누어진다. 풍자는 가리워진 사실, 위선적인 사실을 꿰뚫어 보려는 현실적 현실적 동기에서 표출된 것이며, 대상에 대한 관심은 자기 보호에서 출발한 자기 해방에 그 사상적 뿌리를 두고 있다. 이러한 동기에서 발생한 풍자는 일종의 비판적인 성격을 띠며 대상에 대해 공격하는 형태로 나타난다. 풍자는 대상보다 우위에서 대상의 불합리를 표현하기 때문에 강한 현실성을 띠게 된다. 그러므로 풍자의 대상은 존재 가치를 상실하였는데도 쓸데없이 자신의 진정한 속성을 가장하려고 ㅅ도하는 세력과 질서이다. 따라서 풍자는 시대에 뒤떨어진 사회 세력과 사회 질서에 보내는 조소를 그 본질로 한다.
(예)
눈 멀고 다리 져는 두터비 셔리 마즈 리 물고 두엄 우희 치다라 안자,
건넌산 라보니 白松骨(백송골)리 잇거 가에 금죽여 플 다가 그 아 도로 잣바지거고나.
쳐로 날 젤싀만졍 혀 鈍者(둔자)ㅣ런둘 어혈질 번괘라. <병와가곡집(甁窩歌曲集)>
[전문 풀이]
한 눈 멀고 한 다리 저는 두꺼비, 서리맞은 파리 물고 두엄 위에 치달아 앉아
건넌 산을 바라보니 백송골이 떠 있거늘 가슴이 끔찍하여 풀떡 뛰다가 그 아래 도로 자빠지겠구나.
다행히 날랜 나였기 망정이지 행여 둔한 놈이런들 피멍들 뻔했도다.
이 시는 두터비를 위정자에 빗대어 희화화 시켰다. 두터비는 서리 맞은 파리를 물고는 백송골리를 보고 자빠졌다는 것으로 보아, 자기보다 힘이 약한 자들에게는 무자비하고 강한자 들앞에서는 무능한 모습을 보이는 위정자들의 약육강식의 세태와 횡포에 대해 풍자하고 비판하고 있다
(3) 해학적 표현
해학(諧謔)은 주관적 골계(滑稽)를 대표하는 웃기기이다. 해학은 본래 자연성, 선천성, 기질성을 본질로 한다. 유머가 본래 생리학상 용어에 어원을 두고 있는데, 그것은 우연한 일이 아니며, 유머의 본질을 시사하고 있다. 사설시조에 나타난 해학성은 우리 민족의 자연스럽고 선천적인 웃음이다. 그 웃음은 남을 비꼬거나 야유하는 풍자가 아니고 남과 함께 웃고 즐기는 웃음의 세계다.
위트는 남을 보고 웃지만, 유머는 남과 함께 웃을 때 우리는 친근감을 갖는다. 유머는 다정하고 온화(溫和)하며 마음을 너그럽게 달래 주고 관대하고 동정적이다.
해학이 부드럽고 너그러운 웃음이 되기 위해서는 위트처럼 날카로운 웃음이 되어서는 안 되고, 풍자(諷刺)처럼 뼈가 들어 있는 웃음이어서도 안 된다. 너그러운 웃음을 연출하는 해학적 사설시조가 고시조에 허다하다. 사설시조에는 웃음을 일으키게 하는 상황, 언어구사가 자주 보이고 있다. 희극적인 표현은 시대에 뒤떨어진 사회 세력과 사회 질서에 보내는 조소를 본질로 한다. 조선후기 임병 양란 이후 봉건적 지배 계층들의 모순과 한계가 드러나고, 새로운 계급이 성장을 보이기 시작했다. 낡은 것과 새로운 것의 대립이 심화되던 시기였다. 새로운 세력의 성장에 맞서 기존의 실서를 유지, 강화하려는 봉건적 수구세력의 공세가 만만치 않았던 이 시기는 희극성이 표출된 문학이 배태될 수 있는 좋은 토양을 갖추었다고 볼 수 있다. 사설시조의 희극적 성격에 대한 긍정적인 평가는 희극 발생의 일반적인 동기 외에도 작품에 나타나는 웃음을 해학의 차원에서 이해하고 있기 때문인 것으로 보인다.
(예)
一身(일신)이 사쟈이 물 계워 못 견딀쐬.
皮(피)ㅅ겨튼 갈랑니 보리알튼 슈통니 줄인니 니 벼록 굴근벼록 강벼록 倭(왜)벼록 긔는 놈 는 놈에 琵琶(비파)튼 빈대 삭기 使令(사령)튼 등에아비 갈귀 샴의약이 셴 박회 눌은 박회 바금이 거절이 불이 죡한 목의 달리 기다 목의 야왼 목의 진 목의 글임애 록이 晝夜(주야)로 뷘 업시 물건이 쏘건이 건이 건이 甚(심)한 唐(당)빌리 예셔 얼여왜라.
그中(중)에 참아 못견딜손 六月(유월) 伏(복)더위예 쉬린가 노라. <해동가요>
[현대어 풀이]
이내 몸이 살아가고자 하니 무는 것이 많아 견디지 못하겠구나.
피의 껍질 같은 작은 이, 보리알같이 크고 살찐 이, 굶주린 이, 막 알에서 깨어난 이, 작은 벼룩, 굵은 벼룩, 강벼룩, 왜벼룩, 기어다니는 놈, 뛰는 놈에 비파같이 넙적한 빈대 새끼, 사령 같은 등에 각다귀, 사마귀, 하얀 바퀴벌레, 누런 바퀴벌레, 바구미, 고자리, 부리가 뾰족한 모기, 다리가 기다란 모기, 야윈 모기, 살찐 모기, 그리마, 뾰록이, 밤낮으로 쉴새없이 물기도 하고 쏘기도 하고 빨기도 하고 뜯기도 하고 심한 당비루 여기서 어렵도다.
그 중에서도 도저히 견딜 수 없는 것은 오뉴월 복더위에 쉬파리인가 하노라.
사람을 괴롭히는 ‘물것’이 많아서 살기 어려움을 호소하고 있는 노래이다. 그런데 여기에서 ‘물것’은 단순히 ‘사람이나 동물의 살을 물어 피를 빨아 먹는 벌레의 총칭’이라는 사전적 의미보다는 백성을 착취하는 온갖 부류들을 상징하는 것으로 보아야 할 것이다. 즉 이 노래의 핵심은 백성들을 착취하는 무리들이 너무 많아서 고통을 견딜 수 없는 현실을 풍자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 노래의 표현상 두드러진 특징으로는 중장에서 보는 바와 같이, 열거를 통한 다양한 예시를 들 수 있다. 사람을 괴롭히는 ‘물것’의 종류를 그렇게 많이 열거할 수 있다는 것도 놀랍지만, 그것을 숨가쁘게 엮어 나가는 익살스런 말투가 절로 웃음을 자아낸다. 사설시조가 아니고는 보여 줄 수 없는 묘미를 흠뻑 담고 있는 작품이라 하겠다.
(4) 용사적 표현
'용사'란 한시의 수사법의 하나이다. 빈번한 사회에서의 한시를 창작하는 과정에서, 시는 일자 일구마다 사람을 놀랠만한 경어나 경구가 되는 것을 염원하기도 했는데, 그런 이유에서인지 시의 기법에 있어서 기왕에 있어 온 문장 수사법의 하나인 용사가 한시 세계에 있어서는 크게 성행했다.
사설시조에서도 용사적 표현이 쓰이는데, ‘화과산 ~ 묵은 진납이 나셔’로 시작하는 작품은 서유기는 명의 오승은이 지었다고 하는 회장소설이다. 당승 현장의 인도 여행에 관한 전설에서 취재한 것이다. 손오공, 저팔계, 사오정이 삼장법사를 수호하여 여러 가지 곤란을 극복하고 천축에 가서 무사히 불경을 가지고 돌아온 다는 내용이다. 이 시조는 서유기의 손오공에 대한 부분만을 작품이 제재로 삼았다. 손오공을 등장시켜 불가능한 일을 가능케하여 사회의 어려운 난관을 극복해 보려는 조선조 당시인들의 의지를 간접적으로 희망하여 표출하고 있는 시조라 보겠다.
6. 텍스트 분석
현전하는 사설시조는 약 780수로 최근까지 수집된 옛시조 5,180수 중에서 약 15퍼센트에 해당하는 수량이다. 이 가운데서 유명씨 작품이 220수, 무명씨 작품이 560수 정도로 78퍼센트에 달하는데 이 현상은 평시조의 경우에 비추어 극히 대조적이다. 그 이유에 대해서는 사설시조 창작의 주된 원천이 중인 및 그 이하의 신분층이라는 것이고, 사대부층 창작이 많았으나 작품의 비속함 때문에 이름 밝히기를 꺼렸다는 것이다. 사설시조의 작가로 이름이 기록된 이들은 40명 정도로서 중인층과 사대부층이 두루 섞여 있는데, 작품 수량으로 보면 중인층이 훨씬 많다. 김수장과 안민영을 그 대표적 인물로 꼽을 수 있는 바, 김수장은 18세기 사설시조의 경향을, 안민영은 19세기의 경향을 보여주는 작가로서 주목된다. 사설시조의 내용을 흔히 시정의 현실적 삶이라든지 적나라한 애정 표현, 현실에 대한 풍자와 해학에 국한함으로써 마치 사설시조가 세속적 현실에만 관심을 기울인 시가인 것으로 흔히 오인하게 된다. 그러나 사설시조에는 어느 정도 철학성을 지니고 인간존재의 문제를 다룬 작품도 있다.
가) 정철의 <장진주사>
盞(잔) 먹새 그려. 盞(잔) 먹새 그려. 곳 것거 算(산) 노코 無盡無盡(무진무진) 먹새 그려
이 몸 주근 後(후)면 지게 우 거적 더퍼 주리혀 여 가나 流蘇寶帳(유소 보장)의 만인이 우레 너나 어욱새 속새 덥가나무 白楊(백양) 수페 가기곳 가면 누른 흰 비 굴근 눈 쇼쇼리 람 불 제 뉘 잔 먹쟈 고.
믈며 무덤 우 나비 람 불 제 뉘우 엇더리.
[현대어 풀이]
한 잔 먹세 그려 또 한 잔 먹세 그려. 꽃을 꺾어 술잔 수를 꽃잎으로 셈하면서 한없이 먹세 그려.
이 몸이 죽은 뒤면 지게 위에 거적을 덮어 꽁꽁 졸라매 가지고 (무덤으로) 메고 가거나, 아름답게 꾸민 상여를 많은 사람들이 울며 따라가거나, 억새, 속새, 떡갈나무, 은백양이 우거진 숲을 가기만 하면 누런 해, 밝은 달, 가랑비, 함박눈, 회오리바람이 불 적에 그 누가 한 잔 먹자고 하리요?
하물며 무덤 위에서 원숭이가 휘파람을 불며 뛰놀 적에는 (아무리 지난날을) 뉘우친들 무슨 소용이 있겠는가.
이 작품은 인간의 유한성에 대한 시상을 노래한 애주가로 이름이 높고, 호방한 송강의 성품이 잘 드러난 권주가이다. 꽃을 꺾어서 술잔 수를 셈하는 낭만적 정경과, 무덤 주변의 쓸쓸한 분위기를 대조시켜, 인생의 무상함을 실감나게 형상화하였다. 표현면에서는 당나라 시인 이백과 두보의 술을 노래한 시와 시상이 비슷하고 더러는 그 구절을 인용한 것도 있으나, 전반적으로 우리말의 아름다움이 자연스럽게 드러나도록 국어미를 살려 독특한 경지에 이르는 걸작이다.
나) 김수장의 시조
갓나희들이 여러 층이오
송골매도 갓고, 줄에 안즌 져비도 갓고
백화원리에 두루미도 갓고, 녹수파란에
비오리도 갓고, 따래 퍽 안즌 쇼로개도 갓고, 석은 등걸에
부헝이도 갓데
그려도 다 각각 님의 랑인이 개일색인가 노라 <해동가요>
[현대어 풀이]
계집들이 여러 층이더라. 송골매 같기도 하고, 줄에 앉은 제비 같기도 하고, 온갖 꽃들이 핀 뜰에 두루미 같기도 하고, 크고 작은 푸른 물결 위에 비오리 같기도 하고, 땅에 앉은 소리개 같기도 하고, 썩은 등걸에 부엉이 같기도 하네. 그래도 다각각 님의 사랑이니 각자가 뛰어난 미인인가 하노라.
초장에서는 여인들이 다양하다고 전제하고, 중장에서는 여인들의 다양한 존재 양상을 여러 중류의 새에 비유하여 구체화한 다음, 종장에서는 그 다양한 여인들이 각각 제 임의 사랑을 받고 사니 모두 일색이라고 보아야 한다는 긍정적 인간관을 제시하였다. 존재 양식면에서 볼 때, 이 시조의 ‘님’은 일찍이 우리 문학사에 등장한 적이 없는 특이한 ‘님’이다. 우리 시가 문학에서 ‘님’은 대부분 떠난 임이요, 부재하는 임이다. 그러나 이 작품의 ‘님’은 함께 살면서 사랑하는 임이다.
다음은 해학 속에 감춰진 삶의 애환을 읊은 것으로 살아가는 이야기를 화제로 한 작품들이다. 이런 유형의 사설시조는 일상적인 소재들을 야단스럽게 나열하는 방식으로 삶의 애환으로 과장시킨다. 감정의 절제를 미덕으로 삼는 사대부들과는 달리 삶의 모습을 생생하게 보여주는 것이다. 우리는 이런 사설시조에서 삶의 고뇌와 슬픔까지도 익살스럽게 표현하는 낙천적 목소리를 들을 수 있다.
다)
一身(일신)이 사쟈이 물 계워 못 견딀쐬.
皮(피)ㅅ겨튼 갈랑니 보리알튼 슈통니 줄인니 니 벼록 굴근벼록 강벼록 倭(왜)벼록 긔는 놈 는 놈에 琵琶(비파)튼 빈대 삭기 使令(사령)튼 등에아비 갈귀 샴의약이 셴 박회 눌은 박회 바금이 거절이 불이 죡한 목의 달리 기다 목의 야왼 목의 진 목의 글임애 록이 晝夜(주야)로 뷘 업시 물건이 쏘건이 건이 건이 甚(심)한 唐(당)빌리 예셔 얼여왜라.
그中(중)에 참아 못견딜손 六月(유월) 伏(복)더위예 쉬린가 노라. <해동가요>
[현대어 풀이]
이내 몸이 살아가고자 하니 무는 것이 많아 견디지 못하겠구나.
피의 껍질 같은 작은 이, 보리알같이 크고 살찐 이, 굶주린 이, 막 알에서 깨어난 이, 작은 벼룩, 굵은 벼룩, 강벼룩, 왜벼룩, 기어다니는 놈, 뛰는 놈에 비파같이 넙적한 빈대 새끼, 사령 같은 등에 각다귀, 사마귀, 하얀 바퀴벌레, 누런 바퀴벌레, 바구미, 고자리, 부리가 뾰족한 모기, 다리가 기다란 모기, 야윈 모기, 살찐 모기, 그리마, 뾰록이, 밤낮으로 쉴새없이 물기도 하고 쏘기도 하고 빨기도 하고 뜯기도 하고 심한 당비루 여기서 어렵도다.
그 중에서도 도저히 견딜 수 없는 것은 오뉴월 복더위에 쉬파리인가 하노라.
사람을 괴롭히는 ‘물 것’이 많아서 살기 어려움을 호소하고 있는 노래이다. 그런데 여기에서 ‘물 것’은 단순히 ‘사람이나 동물의 살을 물러 피를 빨아먹는 벌레의 총칭’이라는 사전적 의미보다는 백성을 착취하는 온갖 부류들을 상징하는 것으로 보아야 한다. 즉 이 노래의 핵심은 백성들을 착취하는 무리들이 너무 많아서 고통을 견딜 수 없는 현실을 풍자하고 있다.
이 노래의 표현상 두드러진 특징으로는 중장에서 보는 바와 같이 열거를 통한 다양한 예시를 들 수 있다. 사람을 괴롭히는 ‘물 것’의 종류를 그렇게 많이 열거할 수 있다는 것도 놀랍지만, 그것을 숨가쁘게 엮어나가는 익살스런 말투가 절로 웃음을 자아낸다. 사설시조가 아니고는 보여줄 수 없는 묘미를 흠뻑 담고 있는 작품이라 하겠다.
라)
논 밭 갈아 기음 매고 뵈잠방이 다임 쳐 신들메고
낫 갈아 허리에 차고 도끼 버려 두러매고 무림 산중(茂林山中) 들어가서 삭다리 마른 섶을 뷔거니 버히거니 지게에 질머 지팡이 바쳐 놓고 새암을 찾아가서 점심(點心) 도슭 부시고 곰방대를 톡톡 떨어 닢담배 퓌여 물고 코노래 조오다가
석양이 재 넘어갈 제 어깨를 추이르며 긴 소래 저른 소래 하며 어이 갈고 하더라.
[현대어 풀이]
논 밭 갈아 김매고 베잠방이 대님 쳐 신들메고(신을 벗어지지 않게 하고)
낫 갈아 허리에 차고 도끼를 버려 들러 메고, 울창한 산 속에 들어가서, 삭정이 마른 섶을 베거니 자르거니 지게에 짊어져 지팡이 받쳐 놓고, 샘을 찾아가서 점심도 다 비우고 곰방대를 툭툭 털어 잎담배 피워 물고 콧노래 졸다가,
석양이 재 넘어갈 때 어깨를 추스르며, 긴 소리 짧은 소리 하며 어이 갈꼬 하더라.
농부의 일상사를 있는 그대로 그려 낸 작품이다. 논밭에 김을 맨 다음에 산에 들어가 나무를 하여 지게에 짊어지고, 지팡이 받쳐 놓고 샘을 찾아가 점심 도시락 먹고, 잎담배 피우고 식곤증으로 졸다가 석양에 재를 넘어갈 때 일어나 어깨를 추스르며 긴 소리 짧은 소리를 한 다는 내용이다. 하층 농민의 생활에서 우러나온 사설이 이렇게 생동감 있게 반영돈 시조는 그리 흔치 않다. 힘들고 고된 일 가운데서도 긴 소리 짧은 소리로 흥을 돋우는 농부의 모습은 우리 민족의 낙천적이고 풍류적인 성정을 잘 드러낸 것이다.
사설시조에 나타난 풍자와 해학의 차이를 볼 수 있는데, 풍자와 해학은 우회적으로 웃음을 유발한다는 점에서 유사하지만 풍자는 단순한 익살이 아니다. 풍자는 당대의 사회적 모순과 부조리, 또는 어떤 인물의 어리석음이나 악덕 등을 폭로하고 공격하는 것을 말한다. 그러므로 풍자는 언제나 대학에 대하여 비판적으로 부정적인 태도를 취하게 된다.
이에 비하여 해학은 대상의 부정적인 면을 폭로하고 비판하는 정신의 소산이 아니다. 인생의 모순과 세상의 비속함을 폭로하고 조롱하기도 하지만, 그것을 부정적으로 다루거나 비판하지는 않는다. 그저 부조화와 비속함을 너그럽게 수용하고 긍정하면서 익살스럽게 웃어넘기는 여유를 보일 뿐이다.
다음은 이중적 구조의 미학을 노래한 것으로 주제는 임을 애타게 기다리는 정서이나 표현은 해학적이다. 해학은 진지하고 엄숙한 것과는 거리가 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들 사설시조에는 이 두 요소가 묘한 조화를 이루고 있다. 임을 안타깝게 기다리는 진지한 정서가 해학적 어조로 형상화된 이중적 구조이다. 그리고 이것은 삶의 고뇌까지도 익살로 풀어버리는 서민적 삶의 미학인 것이다.
마)
개를 여나믄이나 기르되 요개 갓치 얄믜오랴
뮈은 님 오며는 꼬리를 홰홰 티며 칩뛰락 나리 뛰락 빈겨셔 내닷고 고온 님 오며는 뒷발을 버둥버둥 므르락 나오락 캉캉 지져셔 도라가게 한다
쉰밥이 아모리 그릇그릇 묵은 들 너 녀길 줄이 이시랴 <청구영언>
[현대어 풀이]
개를 십 여마리 기미운 님 오면 꼬리를 홰홰치며 올려 뛰고 내리 뛰며 반겨서 내닫고, 고운 님 오면 뒷발을 버티고 서서 뒤로 물러 났다. 앞으로 나아갔다. 하며 캉캉 짖어서 돌아가게 한다.
밥이 많이 남아서 쉰밥이 그릇그릇 쌓여도 너에게 먹을 성 싶으냐.
임을 기다리는 애타는 심정이 일상적 우리말로 잘 형상화된 작품이다. 기다리는 정서의 간절함이 지나쳐, 오지 않는 임에 대한 미움을 개에게 전가시키고 있다. 개 때문에 임이 못 올 리 없건마는 아무 것도 모르고 짖는 개를 원망하고 있는 것이다. 이런 착상을 통해 소박한 여심이 사실적이면서도 익살스럽게 표현되었다. 또 임을 내쫓는 개의 동작을 묘사한 부분은 의성․의태어를 적절하게 써서 실감 나게 표현함으로써 이 작품의 가치를 높이고 있다. 다음에서는 희극적 풍자로 표현된 세정을 볼 수 있는데, 17~18세기에 이르러 평민들이 자아각성이라는 시대적 변화에 따라, 현실적 부조리를 폭로하고 비판하는 사설시조가 많이 출현하였다. 여기에 실린 작품들은 그 대표적 사례이다. 그러나 이들 작품의 한계는 세정의 부도덕성과 불합리성에 대한 개혁의지보다는 그저 해학적, 희극적으로 풍자하여 웃어넘기는 차원에 머물러 있다.
바)
싀어마님 며나라기 낫바 벽 바닥을 구르지 마오.
빗에 바든 며나린가 갑세 쳐 온 며나린가. 밤나모 셕은 등걸에 휘초리 나니갓치 알살픠신 싀아바님, 볏 뵌 쇠똥갓치 되죵고신 싀어마님, 삼 년 겨론 망태에 새 송곳 부리갓치 뾰족하신 싀누의님, 당피 가론 밧태 돌피 나니갓치 새노란 욋곳 갓튼 피똥 누는 아들 하나 두고,
건 밧태 메곳 갓튼 며나리를 어듸를 낫바 하시난고.
[현대어 풀이]
시어머님, 며느리가 나쁘다고 부엌 바닥을 구르지 마오.
빚 대신으로 받은 며느리인가, 무슨 물건 값으로 데려온 며느리인가. 밤나무 썩은 등걸에 난 회초리와 같이 매서운 시아버님, 볕을 쬔 쇠똥같이 말라빠지신 시어머님, 삼 년간이나 걸려서 엮은 망태기에 새 송곳 부리같이 뾰족하신 시누이님, 좋은 곡식을 심은 밭에 돌피(나쁜 품질의 곡식)가 난 것같이 샛노란 외꽃 같은 피똥이나 누는 아들(너무 어려서 사내구실을 하지 못함을 풍자한 것) 하나 두고,
기름진 밭에 메꽃 같은 며느리를 어디를 나빠하시는고
전 근대적 가정생활의 질곡 속에서 어렵게 시집살이하는 며느리의 원정을 진솔하게 대변하고 있는 작품이다. 시어머니, 시아버지, 시누이, 어리고 못난 신랑 등 시집 식구들의 부정적 모습들을 며느리의 관점에서 비유적으로 그려내고 있다. 이것은 이유 없이 며느리를 학대하는 봉건적 대가족 사회의 악습에 대한 비판의식의 표출이다. 그러나 이 비판의식은 투쟁지향이 아니고 해학을 동반한 풍자라는 점에 특징이 있다.
사)
딕들에 동난지이 사오,져 쟝스야, 네 황후 긔 무서시라 웨는다. 사쟈.
外骨內육, 兩目이 上天, 前行後行, 小아리 八足 大아리
二足, 靑醬 으스슥 하는 동난지이 사오.
쟝스야, 하 거북이 웨지 말고 게젓이라 하렴은. <청구영언>
[현대어 풀이]
여러 사람들이여, 동난젓 사오. 저 장수야, 네 물건 그 무엇이라 외치느냐? 사자.
밖은 단단하고 안은 물렁하며 두 눈은 위로 솟아 하늘을 향하고 앞뒤로 기는 작은 발 여덟 개 큰 발 두 개 푸른 장이 아스슥하는 동난젓 사오.
장수야, 그렇게 장황하게(거북하게) 말하지 말고 게젓이라 하려무나.
시정의 상거래 장면이 서민적인 생활용어로 익살스럽게 표현된 작품이다. 전반적으로 대화형식으로만 엮어졌다는 점에서 다른 사설시조와 구별된다. 중장에서 장사꾼이 한자어휘를 동원하여 ‘게’를 장황하게 묘사한 점은 다분히 풍자적이며, ‘스슥 ’과 같은 감각적 표현은 한층 현실감을 더해 준다. 이 시조의 풍자성은 종장에 응결되어 있다. ‘게젓’이라는 쉬운 우리말을 버려두고 한자어휘로 수다스럽게 수식하여 현학의 허세를 부린 장사꾼을 비꼬고 있기 때문이다.
다음은 진솔하고 애절한 사랑을 형상화한 것으로 강렬한 사랑을 전제로 한 작품들이다. 임을 애절하게 그리는 마음이 가식 없이 형상화되어 있어서, 서민적인 발랄함과 더불어 정서적 개방성을 확인해 볼 수 있다. 유교적 이념이나 음풍농월을 일삼던 사대부들의 시조와 구별되는 서정의 세계를 형성하고 있는 것이다.
아) 나모도 돌도 바히 업슨 뫼헤 메게 쪼친 가토릐 안과
대천 바다 한가온대 일천석 시른 배에
노고 일코 닷도 일코 뇽총도 근코 돗대도 것고 치도 빠지고
람 부러 물결치고 안개 뒤섯계 자진 날에
갈 길은 전치만리 나믄듸 사면이 거머어득 져뭇 천지적
막 가치노을 떳듸 수적 만난 도사공의 안과
엊그제 님 여흰 내 안희야 엇다가 리오 <악학습령>
[현대어 풀이]
나무도 돌도 전혀 없는 산에 매한테 쫓기는 까투리의 마음과
대천 바다 한가운데 일 천 석 실은 배에 노도 잃고, 닻도 잃고, 용총(돗대의 줄)도 끊어지고, 돛대도 꺾이고, 키도 빠지고, 바람 불어 물결 치고, 안개 뒤섞여 잦아진 날에 갈 길은 천 리 만 리 남았는데 사면은 검어 어둑하고, 천지 적막 사나운 파도 치는데 해적 만난 도사공의 마음과 엊그제 임 여읜 내 마음이야 어디에다 비교하리요?
이는 절망적이고 절박한 여인의 목소리로 임과 이별한 심정을 노래한 시조이다. 아무리 절망적인 상황에 처한 까투리와 도사공의 마음이라도 임을 여읜 암담한 내 심정에는 비길 바가 안 된다는 것이다. 특히, 중장은 모든 상상할 수 있는 시련이 중첩된 극한적 상황을 설정하고 있어 비장감․절박감과 더불어 그 수다스런 표현에서 해학성까지 느낄 수 있다. 그리고 백척간두와 같은 상황을 고조시키기 위해 4음보의 율격조차 상당 부분 파격된 모습이다.
자)
도 쉬여 넘 고개. 구름이라도 쉬여 넘 고개
산진이 수진이 해동청 보매도
다 쉬여 넘 고봉 장성령 고개
[현대어 풀이]
그 너머 님이 왓다 면 나 아니 번도 쉬여 넘어가리라 <악학습령>
바람도 쉬었다가 넘는 고개 구름도 쉬었다가 넘는 고개
야생매,길들인매,송골매,사냥매라도 다 쉬었다가 넘는 고봉 장성령 고개
그 고개 넘어에 님이 왔다고 하면 한번도 쉬지 않고 단번에 넘어 가리라,
이 사설시조의 요지는 바람, 구름, 날짐승까지도 쉬어 넘어야 할 만큼 험준한 고개라 할지라도 임을 만날 수 만 있다면 단숨이 뛰어 넘어가겠다는 것이다. 임을 향한 그리움이 진솔하게 표출되었을 뿐만 아니라, 사랑을 성취하고자 하는 적극적 의지와 정열이 함축되어 있다. ‘고개’는 화자와 임의 사이를 가로막는 장애물의 상징이며, 종장은 어떤 장애물이라도 극복하여 임을 놓치지 않겠다는 강인한 의지의 표현이다.
7. 사설시조의 미의식
사설시조는 사대부시조와 달리 거칠면서도 활기에 찬 삶의 역동성을 담고 있다. 사설시조를 웃음의 미학이라 할 수 있겠는데, 일상적 삶 속의 갑남을녀들에 대한 해학적 관찰, 중세적 고정관념을 거리낌 없이 추락시키는 풍자, 고달픈 생활에 대한 해학 등이 주요 내용을 이룬다. 아울러, 남녀 간의 애정과 기다림, 그리고 성의 문제가 많은 비중을 차지하였다. 그리고 시적 대상을 바라보는 시선에서도 사설시조는 독특한 점이 있다. 평시조를 포함한 일반적 서정시에서 시적자아는 작자 자신이거나 작자의 체험, 심리가 투영된 상상적 분신이 경우가 압도적으로 많으나, 사설지노는 작자와 수용자가 작중 인물 및 사태에 대해 심리적 거리를 두고 희극적으로 객관화하여 보게 하는 유형의 작품들이 많다. 이들이 사설시조의 변별적 양상을 드러내는 것이고, 표현하는 언어 역시 독특한 점이 많다. 종래의 관습으로는 비시적이라고 할 일상적인 어휘와 사물들이 사설시조에서는 흔하게 등장한다. 이러한 언어 요소들이 작품에 진솔하고 구체적인 생동감을 불어 넣기도 하고, 때로는 경쾌한 익살과 재담의 효과를 일으킨다.
8. 사설시조의 쇠퇴이유
시조가 고려중엽 말기부터 시작하여 현대까지 창작되고 있다. 시조는 대체로 사대부들이 자신들의 도학이나, 풍류(하지만, 동양권은 자연과 하나가 되는 삶을 지양하고 그 속에 도가 있다고 생각하였다)를 즐기며 노래(운문)에 담았다. 일종의 자신의 감정을 노래가사화 했다고 보면 된다. 조선 전기까지 시조는 한자를 주로 사용하던 사대부들의 전유물이었고, 중기로 들어서면서 기생이나, 가객(돈받고 노래를 불러주는 사람)들이 주로 이용하다가 "조선후기에 들어서면서 서민들의 의식이 신장되고, 각성되면서(화폐경제발달, 임란과 호란의 양란, 양반층의 붕괴) 아녀자들도 자신들의 일상사를 노래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가사 내용이 길어지고 내용이 많아지면서 다른 사람들이 부르기 어려워졌다. 그래서 글자 암기가 많아지고, 노래 부르기도 운율형성하기가 어렵고, 내용자체도 복잡해지니까 사설시조보다 간단한 연시조나, 평시조가 지금까지 주를 이루게 되었다.
9. 문학사적 의의
사설시조는 우아한 기품과 균제미를 함께한 평시조와는 달리 어조가 거칠지만 활기에 차 있고, 삶의 역동성와 웃음의 미학을 극대화하는 작품이다. 특히, 18세기 이후의 사설시조는 현실적 모순과 부조리에 대한 폭로와 비판, 전근대적 관념을 거리낌없이 조롱하는 풍자, 고달픈 생활에 대한 해학적 표현, 남녀 사이의 애정과 기다림 등을 통해 서민적 웃음의 미학을 구축하였다. 이러한 특징을 지닌 사설시조는 근대의 문학을 준비하는 발효작용으로서의 가치를 지닌다. 그러나 사설시조 전반의 미의식과 내용들이 그 자체로서 근대적 가치에 일치하는 것처럼 단순화하는 논법은 위험하다. 사설시조 가운데서 흔히 발견되는 파괴적이고 냉소적인 웃음과 성의 비속화는 완고한 관념의 억압에 대한 일탈적 저항으로서의 형상일 수는 없기 때문이다. 인생을 덧없는 시간성 속의 한 순간으로 보고 취락에의 몰입을 유일한 선택인 것처럼 노래한 작품들 또한 마찬가지의 비판적인 재해석을 필요로 한다. 다만 이러한 재해석과 평가에서도 사설시조가 종래의 관습화된 미의식과 규범적 세계로부터 벗어난 인간의 모습, 욕망, 갈등 등을 시의 세계 안에 이끌어 들이고 갖가지 추한 것과 비천한 것들까지도 적극적으로 다룸으로써 조선후기문학의 새로운 지평을 확대했다는 점은 크게 주목되어야 할 것이다. 이런 미의식은 조선후기에 나타난 세계관과 현실 인식의 변화를 바탕으로 이루어진 것이며, 우리가 살아가는 현실에 대한 비판적 인식은 이후 우리 근대문학의 씨앗이 되었다. 이와 같이 조선후기 사설시조는 종래의 관습적이고 전형적인 미의식을 넘어서서 평민적 삶의 실상과 갈등을 소재로 해학미를 창조함으로써 시가문학의 영역을 넓히는 데 기여한 것으로 평가된다.
※ 참고문헌
시조와 가사의 해석 / 류연석 / 역락
고려속요․시설시조의 새로운 이해 / 북스힐 / 강명혜
사설시조의 형식과 내용에 관한 고찰 / 송정란
사설시조의 작가 의식 연구 / 김종열 / 2005년 문학박사학위논문
사설시조에 나타난 평민의식 고찰 / 박경희 / 학위논문지
[출처] [고전문학] 사설시조 :|작성자 신선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