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아우슈비츠 매표소 입구... 입장료는 3유로(5,000원 정도) 입장후 막사내에서는 비디오,사진,애완견 등
금지되어 있다.
★ 아우슈비츠 수용소 1호는 현재는 전체 28동으로 내부를 전면 개조하여 박물관과 전시관으로 꾸며져 있고,
당시 유태인들이 소지 하거나 착용했던 유품들을 종류별로 큰 방에 쌓아놓고 방 중간쯤에 유리로 칸막이를
하여 관람객들이 볼 수 있게 해 놓았다.
★ 아우슈비츠 수용소 1호 입구... 1947년에 세워진 희생자 박물관은 1979년에 유네스코에 의해 세계문화유산
으로 지정되었다.
★ 아우슈비츠 수용소의 정문... 영화등에서 너무나 흔하게 보아오던 아우슈비츠의 정문에는 독일어로
"ARBEIT MACHT FREI" 즉 "일하면 자유로워 진다" 란 슬로건으로 끝까지 유대인들을 속였다.
★ 아우슈비츠는 수용소는 유태인 뿐만 아니라 폴란드 정치범, 소련군,범죄자, 집시등을 집단 학살하기 위해
대규모로 재건하였고 이곳 제1수용소가 유명해 진 것은 다른 모든 수용소는 파괴되었으나 소련군의 진격
으로 급한 나머지 미쳐 파괴하지 못하고 있는 그대로 남아있어 인류에게 나치의 만행이 그대로 드러나게
되었다.
★ 입구를 들어서자 좌,우로 2층 적색 벽돌 건물과 수많은 수용자들이 걸어다녔을 길을 걸으면서 65년전 비극적
인 모습들을 상상하게 한다.
★ 막사는 관람을 할 수있도록 공개가 되어있고 일부는 박물관으로 내부를 꾸며져 있다. 대부분 건물은 지하1층
과 지상 2층으로 되어있고 관람할때는 항상 폴란드 안내원이 뒤 따른다.
★ 당시 조회를 하는 듯한 일러스트이다. 오른쪽에 대열의 맨 앞에 쓰러져 있는 사람이 눈에 띈다.
★ 여성 수용자들이 일하고 있는 모습이다. 흙인지 석탄인지 무언가 옮기고 있는 듯한 모습.
★ 수용자들의 사기진작을 위한 음악회인가...?
★ 당시의 죄수복으로 유태인, 범죄자, 소련인, 유럽인등으로 윗도리에 표시를 하여 구별했다.
★ "Arbeit Macht Frei" 일하면 자유로워 진다는 뜻이다. 아우슈비츠의 정문에 쓰여있는 아주 유명한 말이다.
★ 내부의 벽에 붙어 있는 당시의 참상을 보여주는 사진. 이 사진들은 수용소내에서 독일 군인들이 직접 찍었다
고 한다.
★ 박물관의 한쪽엔 이런 입체 사진이 전시되 있다.
★ 당시 수용자들의 편지와 엽서가 전시된 사진이다. 유태인 여성이 독일인 남편과 자식에게 보낸 편지...
남편과 자식의 안부를 걱정하는 내용과 수용소 생활의 괴로움이 적혀있었을 거같다. 같은 방 한 여성의
자식이 가스실로 끌려가서 미쳐버린것 같다는 내용도 있다는데... 대부분 독일어로 쓰여져 있다.
★...일부러 확대하지 않은 사진이라 한다. 수용자들의 시신이 정말 짐짝처럼 실려있는 모습.
★ 천진 난만한 어린이들에게 어른용 죄수복을 입혀 놓았다. 아기를 안은 젊은 엄마와 함께 다섯 명의 어린 자녀
들이 사형장으로 걸어가는 사진은 충격적이었다.
★ 철저한 독일인 답게 수용자들의 신상 정보는 정말 꼼꼼하게 기록한것 같다. 이 얼굴이 유태인의 얼굴이다.
★ 수용자들의 머리카락을 모아둔 곳. 머리카락 무게만도 7톤이나 된다고 한다.
★ 초기에는 입소하면 정면 측면등 사진을 남겼으나 그후 엄청난 사람이 들어 올 때는 그냥 가스실로 바로 갔다
고 한다.
★ 가스실에서 사용됐을 티트론 독가스... 1통이면 10여분만에 400~500명을 죽일수 있다.
★ 수용소 내부 모형도... 한참을 보고도 그당시 처참한 모습에 발길이 떨어지지 않는다.
★ 보석을 찾느라 뒤축이 떨어진 신발들이 산더미처럼 쌓여있다. 아이들 인형, 장애자들의 의족, 가방, 범랑
그릇등 일상생활에 사용됬던 것들이 산더미처럼 쌓여 있다.
★ 이 많은 안경의 주인들은 모두 가스실로 사라졌다.
★ 유태인을 대상으로 한 의학 실험용 짚시 어린이들 생체실험 사진. 어린 소년들을 대상으로 성기를 제거
내지는 극대화, 기형화하는 실험.
★ 이곳은 비교적 깨끗하게 정리된 3단 침상을 볼 수있다.
★ 수용소 지하감방 질식의 방...수감자들이 손톱으로 그린 벽화. 해골같은 모습은 자신들의 얼굴이다.
★ 관광객들 중에는 유대인, 폴란드인, 독일인들이 제일 많다고 한다. 독일인들은 학교에서 단체로도 자주 오는데
다시는 이런 일이 일어나지 않도록 학생들에게 가르친다고 한다.
★ 기둥은 교수형 자리... 벽돌 건물은 수용소로 창문을 전부 막아 약간의 햇빛만이 들어가게 해 놨다.
★ 총알벽... 가스실로 가기전 조금이라도 마음에 들지 않는 유태인들을 이곳에서 2만명이나 총살 시키던
장소. 그 때를 생각하며 지금도 헌화가 계속 이어지고 있다. 오른쪽 건물 지하에는 생체 실험실이 있다.
★ 2차 세계대전으로 5천만 명이 죽었다는데 이중 학살된 사람이 2천만 명이며 그중 유태인이 600여만 명이나
되는데 이곳 아우슈비츠에서는 약 5년동안 350만 명이 학살을 당했다고 한다.
★ 곳곳에 설치되어 있는 초소... 철조망뒤에는 조그만한 수영장도 있었던걸 기억된다.
★ 전기 철조망으로 둘러쌓여있는 수용소의 모습... 전기 철조망은 가까이서 보면 정말 기분나쁘게 징그럽다.
왠지 소름이 끼치는 듯 한 전율이...
★ 양쪽 약 2m정도 사이를 두고 2중 철조망이 쳐져 있었는데 당시는 220V의 3상 전류가 흐르게 하여 포로들의
탈출을 막았고 수용소 생활에 절망한 나머지 스스로 전류가 흐르는 철조망을 붙들고 죽은사람도 수없이
많았다고 한다.
★ 아우슈비츠 수용소(폴란드어로는 '오쉬비엥침'이라고 부른다)는 영화에서 보는 허름한 판자집으로 생각
하였으나 의외로 아주 튼튼한 빨간 벽돌건물 이었으며 이것은 원래 폴란드의 군인막사였던 것을 나치들이
개조하여 수용소로 썼다고 한다.
★ 막사와 막사 사이는 전기가 통하는 철조망으로 철저히 격리 시켜놓았다.
★ 종전후 체포된 아우슈비츠의 독일군 수용소 소장 헤스 한명만을 처형하기 위해 만든 교살대... 전범재판에
의하여 교수형이 집행된 곳.
★ 가스실과 화장장... 가스실은 우리의 옛날씩 목욕탕과 비슷한데 다만 문이 철문으로 되어있고 천정과 벽에
는 가스가 나오는 구멍이 있다. 가스실 바로옆에 화장장이 있어서 곧 바로 시체를 태우도록 설계되어 있다.
★ 가스실 내부... 이곳에 들어가기 전에 수건과 비누를 주었다고 하며 조금후 싸이클론이 뿌려지고 기화하여
독가스가 나왔다고 한다. 한번에 400명씩 수용에 사이클론 1통이면 10~15분사이 사망.
★ 천정에는 가스를 배출할 수있도록 구멍이 여러군데 뚫려져 있다.
가스실에 사용했던 살인가스는"사이클론" 이라는 독가스는 상온에서 27℃이상 올라가면 고체가 기화되면서
독가스가 되어 이 것에 노출되면 10여분 안에 모든 생명체가 죽게 된다고 한다.
당시 독일은 이 가스를 폴란드로 가져올 때 폴란드에는 쥐가 많아 쥐를 잡는 약이라고 속여 가져왔다고 한다.
★ 가스실 바로 옆에 있는 화장터... 사망한 시체를 태우는 곳으로 각각 2구의 사체를 넣어 태웠다고 한다.
이곳에 일하는 사람 역시 건강한 유태인들이 었다고 하니 그들의 심정이야 어떻게 말로 표현할 수 있을까?
독일에서 제작해와서 조립했다고 함. 지금도 작동이 가능하다고 한다.
★ 아우슈비츠의 최초의 가스실이라고 한다. 처음엔 이렇듯 가스실을 지상에 지었는데 가스가 새나가 유태인들
이 잘 안죽어서 위에 잔디도 입혔다고 한다. 그래도 자꾸 가스가 새서 이후의 가스실은 전부 지하에 만들었다
고 한다.
★ 목메달아 죽이던 교수대... 유대인들의 공포감을 극대화 하기 위하여 여기 연병장 앞에 메줏덩이 마냥
주렁주렁 메달아 죽였다. 탈출이나 규칙위반등을 다스리기 위해 시범적으로 시체를 달아놓거나 공개처형
한 곳.
★ 아우슈비츠 2호로 불리는 비르케나우는 넓은 초원위에 지어졌다. 아우슈비츠 1호보다 훨씬 크고 수용소
스러워 보인다.
★ 이곳이 바로 죽음의 문(The gate of death) 이라고 불리는 곳이다. 영화 쉰들러 리스트에도 나온다는 곳.
수용자들은 기차에 실려서 저 문을 통과해서 아우슈비츠로 들어온다. 한번 통과하면 다시는 살아나갈 수
없기에 "죽음의 문" 으로 불렸다고 한다.
★ 지금은 여행자들이 몇 걸음이면 넘어갈 수 있는 이곳은 과거 유태인들은 절대 갈 수 없었던 몇 걸음 이었다.
★ 파괴되지 않은 제2수용소의 건물 일부... 당시 유럽 전지역에는 이런 수용소가 1,000 여개가 있었다고 한다.
★ 파란 하늘의 고등학교 교정과 같은 깔끔한 수용소와 그것을 두르고 있는 고압 전류의 2중 철조망을 바라보고
있노라니 오히려 더 잔인하게 느껴진다.
★ 수용소 막사안... 마치 짐짝을 창고에 쌓아둔 듯한 3층 침대. 지금은 깔끔하게 보이지만 당시에는 아래의
사진 과 같이 지냈으니 장티프스가 많이 발생했다 한다.
★ 아우쉬비츠의 생존자들이 가스실에서 처형당하지 않은 것도 대단하지만, 이런 곳에서 살아남은 것도 정말
대단하게 느껴진다. 아우쉬비치에서 살아남은 자는 600여명, 현재 생존자는 20여명...
★ 그 당시 수많은 수용자들이 이 곳에서 힘든 생활을 했을것이다. 지금은 깨끗하게 정리된 모습
★ 단층 막사인데... 숙소인지 알 수는 없지만 겨울엔 얼마나 추웠을까... 라고 생각했던 기억이 난다.
★ 증거를 없애기 위해 폭파시킨 최대 수용시설이 있던 제2수용소에는 터만 남아 있는데 규모가 53만평에 막사
만 300개가 넘어 아우쉬비츠 1호 보다 규모가 10배 이상이었다고 하니 아마 학살 규모도 엄청 났으리라 짐작
할 수있다.
★ 철길 오른쪽으로 가면 여성수용소이다. 앞으로 계속 가면 화장장이다.
★ 누군가 당시 희생된 사람들을 추모하기 위해 철길위에 꽃을 올려 놓았다. 그들의 평안을 기원한다.
독일은 은 전쟁후에 유태인을 비롯한 유럽 전역에 진심어린 사과와 충분한 보상을 함으로서
현재는 따돌림을 받지않고 유럽연합이라는 대열에 포함되어 잘 지내고 있으나 일본은 아직도
그렇지 못하니 참 딱한 노릇이다.
학살과 징용 등으로 점철되고 지금도 위안부들의 보상을 거부하는 일본인들에 비하면 독일인들이
그래도 훨씬 낫다고 생각하였다.
아우슈비츠 수용소는 오늘날 학살을 알리는 박물관으로 사용하고 있지만 만약 다 파괴 되었다면
증거가 없어서 몰지각한 일본같이 오리발을 내지는 않았을까하는 부질없는 생각도 하게된다. 수용소에 찍혀있는 사진과 그 당시 유품들에서 그들의 공포, 전율, 분노가 고스란히 나타나 있고
수백만명을 학살한 가스실등을 보며 인간이 이렇게도 잔인할 수 있단 말인가...? 라는 생각을 하지
않을 수 없었다.
나 자신이... 내 삶이... 아무리 힘들어도 여기 아우슈비츠의 삶 보다는 행복할 것이라는 것에 감사
하였고... 다시는 이런 비극이 일어나지 않기를 바라는 무거운 마음을 떨칠 수 없었다.
보지 못한 것들이 너무 많아 언젠가는 다시 이 곳을 찾아 다시 오리라 마음 먹으며 아쉬운 발걸음을
옮겼다.
음악 / Exodu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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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좋은자료 잘보았읍니다.이런게 교육이지요.아이들이 있는 회원들은 교육자료로 활용하십시요.종근님 수고했어요.
덕분에 가보지 않고도 이렇게 보며 그당시의 전율을 느끼네.. 우리선조들에게도 저런 아픈 역사가 있었지요.. 잊지 말아야 할것 같네요.. 잘 보았습니다..
그저 뭔 말을 해야 할지...ㅉ ㅉ
가보지않고도 현지에 모습을 접할수 있는 사진 넘잘보았습니다. 슬프네요.사람이저럲게 잔인하다는게요
지혜씨 잘 지내죠? 반갑네요^^* 그리고 이렇게 리플까지 달아주시고.. 아우쉬비츠 집단 강제 수용소는 매년 많은 학생들의 현장 교육으로 찾아 온답니다. 독일 학생들은 실상을 보면서 메모를 한다거나 조국이 잘 못한 것을 뉘우치는 모습을 볼 수있었고, 유태인 학생들은 처참히 죽어가는 참담한 모습에 우는 학생들이 눈에 띄었답니다. 내가 봐도 머리카락이 쭈빗 서는듯한 소름을 느꼈으니까 말이죠.. 실제 가보니 느끼는 점이 많았답니다. 너무나 광범위하고 크기에 다 볼 수가없었고 언젠가는 이 곳을 다시 한번 찾아와 봐야 겠다는 생각을 했었답니다. 죽어간 사람이 몇병인지는 확실하지는 않으나 최소한 350만명 이상이라고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