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하현옥의 시시각각] 노후 연금 뒤흔드는 건보료 공습
중앙일보
입력 2022.08.29 01:06
하현옥 기자중앙일보 금융팀장
하현옥 금융팀장
이쯤 되면 나라님의 말을 따르다 ‘호구’되기 딱이다 싶다. 국민연금 수령액을 늘리기 위해 연금공단이 홍보했던 방법을 따랐던 일부 가입자가 건강보험료(건보료) 폭탄을 맞게 돼서다. 다음 달 시행되는 건보료 부과체계 2단계 개편에 따라 피부양자에서 탈락해 건보료를 내야 하기 때문이다.
2021년 연간 합산 종합과세 소득이 2000만원을 넘으면 오는 11월부터 피부양자에서 지역가입자로 자격이 변경된다. 건강보험 피부양자 자격을 따지거나 보험료 산정 시 적용하는 소득요건을 강화하면서다. 당국에 따르면 27만3000여명이 피부양자 자격을 잃을 것으로 예상된다. 월평균 15만원의 건보료를 내야 할 것으로 추산된다(물론 재산 등에 따라 건보료는 더 늘어날 수 있다).
뜨거운 감자는 연금소득이다. 소득요건으로 따지는 합산소득은 이자나 배당 등 금융소득과 사업소득, 근로소득, 연금소득, 기타소득이다. 이 중 연금소득에는 공무원연금과 군인연금, 사학연금, 국민연금 등 공적연금이 포함된다. 다른 소득 없이 매달 167만원이 넘는 공적연금을 받아 생활하는 이들도 피부양자에서 탈락하게 된다. 연금 수령액만으로 연 소득 2000만원을 넘기 때문이다.
특히 날벼락을 맞은 이들은 노후에 받는 월 수령액을 한 푼이라도 늘리려고 국민연금공단이 홍보하고 권했던 각종 제도를 활용한 가입자들이다. 추납(내지 못했던 보험료 추후 납부)과 연기연금(연금 수령 시기 늦춰 연금을 최대 연 7.2% 더 받는 것), 임의계속가입(만 60세 이후에도 연금 가입) 등을 통해 연금 수령액을 늘린 이들이다. 예상치 못했던 건보료 변수에 국민연금공단은 연기연금과 임의계속가입 취소부터 연금액을 줄여달라는 각종 민원으로 홍역을 치르고 있다.
노후자금까지 건드리는 건보료 부과는 건강보험 보장성 강화를 내세워 추진한 ‘문재인 케어’의 비싼 고지서다. 건강보험이 적용되지 않는 비급여 항목을 급여 항목으로 전환하며, 건보 재정은 거덜나기 시작했다. 2011~2017년 연속 흑자였던 건보 재정 수지는 2018년 적자 전환했고, 3년 연속 적자를 기록했다.
건강보험료 부과체계 2단계 개편안이 다음달부터 적용된다. 사진은 서울 영등포구 국민건강보험공단 영등포남부지사의 모습. 연합뉴스
‘부담 능력’이 있는 이들을 피부양자에서 솎아내겠다는 취지에도 텅텅 비다 못해 구멍 난 곳간을 채우기 위해 은퇴자들의 알량한 지갑까지 털겠다는 것으로 비칠 지경이다. 게다가 튼실한 또 다른 먹잇감도 노리고 있다. 현재 건보료 소득요건에 포함되지 않는 퇴직연금과 개인연금인 사적연금이다.
판을 깐 건 감사원이다. 최근 발표한 ‘건강보험 재정관리 실태’ 감사 보고서에서 “공적연금과 사적연금의 건보료 부과 체계가 다른 것은 가입자 간 형평성에 어긋난다”며 “사적연금을 포함한 연금소득 전체를 파악해 보험료를 산정하거나 피부양자 요건을 관리하는 방안을 마련할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하지만 공무원·군인연금처럼 세금으로 국가가 부족분을 메워주는 공적연금과 달리 저축성 성격이 강한 사적연금을 연금 형태로 받는다는 이유로, 납입한 원금에 대해서도 소득으로 간주해 건보료를 부과하겠다고 하는 건 지나치다는 지적이다. 사적연금으로 노후의 안정적 소득을 만들려 했던 이들도 건보료를 피해 일시금으로 받거나 아예 사적연금을 넣지 않겠다고 나설 판국이다.
더 황당한 건 노후소득 강화를 위해 정부가 최근 세제개편안에서 연금저축과 퇴직연금을 합친 세액공제 납입 한도를 현재의 700만원에서 900만원으로 높이는 방안을 추진하겠다고 발표한 것이다. 세액공제란 미끼로 건보료를 더 거둬들이려는 ‘짜고 치는 고스톱’이란 오해를 사도 할 말이 없을 판이다. 만약 사적연금까지 건보료 부과 대상에 포함되면 정부의 말만 믿고 노후자금 강화에 나선 이들이 또 뒤통수를 맞을 수 있어서다. ‘노후의 보루’라던 각종 연금이 ‘노후의 복병’ 혹은 ‘사라진 보루’가 될 위기다.
하현옥 금융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