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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은 글 스크랩 형기론(形氣論)과 이기론(理氣論) 이란 무엇인가?
잠실/맥(조문희) 추천 0 조회 65 14.10.03 12:31 댓글 1
게시글 본문내용

1. 형기론(形氣論)이란 무엇인가?  

풍수지리를 입문하여 보면 누구나 두 가지의 길에 봉착하게 된다. 산천의 형세와 기(氣)와  중요하게 보는 형기론을 따를 것인가 아니면, 주역과 음양오행설을 중요하게 보는 이기론을 따를 것인가 아니면 욕심 많게 두 가지가 다 맞는 곳을 찾을 것 인가다. 
형기론은 산과 물 등 자연산천의 용(龍), 혈(穴), 사(砂), 수(水) 등  내외적인 현상과 모양을 보고 길지를 찾는 것이 형기론이다. 반면에 이기론은 방위와 시간 등의 음양오행 작용을 살펴 길흉화복을 논하는 이론이다. 예를 들어 사람의 외모와 행실을 보고 사람 됨됨이를 판단하는 것을 형기라고 한다면, 사주팔자 등을 보고 사람을 판단하는 것은 이기라고 할 수 있다. 

우리나라의 고려시대인 중국의 송나라 때에 중국의 모든 학문이나 음양오행설이 크게 발전하였다. 남송의 소강절(邵康節 1011-1077)은 도가사상의 영향을 받아 유교의 역철학(易哲學)을 발전시켜, 특이한 수리철학을 만들었다. 즉 주역(周易)이 음과 양의 2원(二元)으로서 우주의 모든 현상을 설명하고 하도와 낙서의 도수를 응용한 "방원육십사괘도진(方圓六十四卦圖陳)"을 만들어 산수의 방향을 측정하여 길흉의 연도를 계산하였다. 
주자(朱子1130-1200)께서는 성현 중에서 유일하게 풍수에 많은 관심을 가졌는데, 우주만물을 형이상학적인 이(理)와 형이하학적인 기(氣)의 원리로서 태극을 제시했다. 주자는 우주의 만물은 이와 기의 결합으로 끊임없이 생멸 변화한다고 보았다.
특히 그 때에 음양오행설이 만연하였는지 황제 효종이 죽자 릉 자리와 택일을 하지 못하여 6년이나 장례가 늦어지자, 후임 황제 영종에게 산릉의장(山陵議狀)을 보냈는데, "풍수의 핵심은 산세의 아름답고 추함에 있지 음양오행이나 택일에 있지 않다고 주장하였다". 그 후 주자의 "산릉의장"은 중국과 조선 풍수에 일종의 지침서가 되었는데, 조정에서 풍수를 논할 때 그 내용이 자주 언급되었고, 형기풍수에 핵심을 이루었다. 

형기 풍수에서는 모든 것 즉 땅속의 기운과 그 위를 덥고 있는 바위와 땅과 산천의 생김새와 물의 조화와 균형을 살펴보고, 산수가 좋으며 땅이 생기(生氣)가 흐르고 있는가 아니면 사기(死氣)로 땅이 죽어있는 땅인가를 알고, 그러면 어떤 곳의 땅이 좋으면 왜? 좋으며 나쁜 곳은 왜? 나빴는가를 비교 연구하여, 앞으로의 일까지를 예견(豫見)해 내는 법을 형기론이라고 한다. 


2. 이기론(理氣論) 이란 무엇인가?  

이기론이 이전부터도 있었으나 <경국대전>에 지리학 시험과목으로서 청오경(靑烏經), 금낭경(錦囊經)명산론明山論), 호순신(胡舜申) 들어있는 것이 문제였다. 지리신법의 저자 호신순(胡舜申1131~1162)은 주자와 동시대를 살았던 인물? 혹은 명나라 봉의랑 통판 서주군주 주관학사(奉議郞 通判 徐州軍州 主管學士) 관리라는 두 가지 설이 있다.
주자께서는 곽박의 금낭경을 형기론(形氣論)적 관점에서 정리하여 보았고, 호신순은 철저하게 이기론(理氣論)으로 보았다. 그는 오행의 생왕사절을 근거로 이루어진 포태법(胞胎法)을 날줄로 삼고, 구성법을 씨줄로 삼아 풍수이론을 썼고, 양균송(楊筠松)의 수법을 응용했다는 청나라의 조정동(趙廷棟)의 지리오결(地理五訣)의 88향법은 '능지팔십팔향(能知八十八向)이면 횡행천지(橫行天地)에 무기지(無棄地)' 라 하여 즉, 팔십팔향에 잘 맞추어 쓰면 온 천지를 다녀도 버릴 땅이 하나도 없다고 극찬하였다. 

그러나 잘놋된 학설과 책들은 중국인들에게나 한국인들에게 커다란 해악을 끼쳤다. 그 결과는 중국은 서양 사람들이 개방을 요구하자 북경에서 멀리 떨어지고 해적들이 득실대는 광동성의 홍콩이나 아무 쓸모없는 늪지의 작은 어촌인 상해를 개방했는데, 오늘날의 풍수지리적으로 살펴보면,세계무역을 하기에 아주 좋은 명당들이다. 
그리고 한국에는 금수강산의 산하에 수없이 써저 있는 묘지들 중에서 형기밥에 알맞아 발복했다는 묘지들은 많은데, 이기법으로 쓴 묘지들 중에서 손들이 끓어저버려 찾아오는 후손들조차 없어 수많이 묵어있는 수많은 묘지들의 슬픈 사연들이 말없이 그 잘못울 증명해 주고 있는데도, 현대에도 한국풍수의 80%이상이 이 법으로 책을 내거나 강의를 한다는 등으로 혹세무민하고 있는 사람들이 많이 있다. 

그러나 도선 국사님도 세상에 흔한 이치 멸망경(滅亡經: 잘못된 학설의 책)의 말씀이 있었다. 
만일에 그르치면 멸문지화(滅門之禍)로다. 용혈사수의 길흉론을 담을 치고 앉아서도, 분금(分金)한다하며 예장 예장하니 무죄한 저 백골이여! 
산기통맥(山氣通脈) 모르거든 살인멸망(殺人滅亡) 어이할고, 혹세무민하는 저 사람이 무엇으로 혈(穴)을 볼까? 
무식한 세속인이 그 글로 준행하니, 근래의 지사(地師)들이 일자무식이라도 혈(穴)을 안다 자랑하며 천금으로 폐백 받고, 수화염정(水火炎貞) 못 피할 재에 그 자손들이 편할 소냐? 
세상에 흔한 이치 멸망경(滅亡經)이 있으리다. 고금에 많은 서적 모두 찾아 없앨 수도 없으니 부디부디 잘 짐작하소! 하셨다.

조선조에만해도 도로나 철도가 나면 땅이 울린다고 도로나 철길을 내는 일을 반대를 했으나, 오늘날에는 교통여건이 좋은 곳이 명당이 되었고, 현재의 과학은 인간을 달에 착륙시켰고, 컴퓨터와 인간 게놈 프로젝트(Human Genome Project)는 이제 초읽기 단계에 들어섰는데, 포태법이나 구성법이 얼마나 신빙성이 있는지는 의심스럽고, 세계적으로 태양력을 쓰고 있고 음력은 윤달을 두어 양력과 날자를 맞추어 쓰고 있는데, 옛날의 천기대요의 날자가 현재에도 그 날자가 꼭 맞는지는 모르겠다. 천기대요에서도 다만 꼭 맞는 법이다고 단언하지 않고, 혹불혹생(或不惑生)으로 혹 맞을 수도 있고, 안 맞을 수도 있다고 써있는 대목을 주목해야 한다.

이기 풍수는 현지가 용 혈 사 수의 명당이 아니라도, 음양오행상으로 적법하게 맞추어 명당을 잡는 방법을 말한다. 이기론은 풍수지리는 산수의 형세로 체(體)를 정한 다음에, 이기를 용(用)하는 법이므로, 한 곳의 용혈이 형기에 합당한다 하더라도, 이기법에 맞아야 대지는 대발하고 소지는 소발 한다고 그럴듯한 논리로 입으로는 말들은 잘한다. 
부처님 말씀에 그릇된 지식을 남에게 전파하는 것처럼 큰 죄악은 없다고 했는데, 또 최근에 수입된 대만 홍콩 풍수법의 대현공학(大玄空學)의 비밀이 세계적으로 대중화되었다고 선전을 하고 있는데, 풍수지리의 운이 구궁법대로 20년마다 바뀐다니 앞으로의 최고의 직업은, 집의 문이나 구조를 바꾸는 실내장식이나 이사업체들이 선두산업이 되겠구나하고 생각한다.


3. 형기론과 이기론에 대한 선현들의 말씀

주문공께서도 간산(看山)에 제일 중요한 것이 입수(入首)와 취기(取氣)가 분명하면 가히 혈을 구할 수가 있어도, 입수와 취기가 분명치 않으면, 천성팔괘를 종횡으로 취합하여도 결과는 허사가 된다고 말씀하셨다. 설심부(雪心賦)의 복응천(卜應天)선생께서도, 생용에는 반드시 생혈이 있고, 용호 명당 사수가 다 합법이 다고 상대성 이론을 말씀하셨다. 

제갈공명께서도 산천형세는 자연으로 생성된 것인데, 어찌하여 구성 팔괘로만 전환할 수 있겠느냐고 말씀하셨다.
허량공께서도 어찌하여 천성이기를 응용하고 팔괘를 이용하는가? 금성과 수성으로 정혈 한다는 것은 말만 다를 뿐 재관인설로 구산 하다보면, 마침내 패가망신한다고 말씀 하셨다.
유백온께서도, 구성과 팔괘를 응용하다 보면 의혹만 남길 뿐 심찰해야 된다고 말씀 하셨고, 초학자들이 알지도 모르면서 생왕 문으로 들어가면, 심신이 곤고해져서 돌이킬 줄 모른다고 지적하셨다.

조선의 선조시대에 병조참판 한준겸(1600년)이 선조에게 호신순의 법이 고려에는 사용하지 않았고 수파를 따지지를 않했는데, 이법이 조선에 널리 행해지고 있어 식자들이 걱정하고 있습니다. 라고 했고, 한강 정구(鄭逑1543~1620)는 선조에게 호신순 법은 중국인들도 참고하지 않을 뿐만이 아니라 주변 오랑케나라에 혼란을 조장하여 나라를 망하게 하기위해 쓰여진 멸만경(滅蠻經)으로 한것 헛된 술수로 취할 것이 못된다고 주장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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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 첫댓글 좋은 자료 올려 주셔서 ..
    감사히 공부 잘 하고 갑니다..
    조문희님!!..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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