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국가와 에델바이스 ----------------------------------------------------------- 문숭리
필자가 금년 봄부터 하모니카를 다시 배우고 있다는 사실을 [문숭리로부터 온 편지]라는 이름아래 부정기 적이나마 글을 받아보는 필자의 이메일 독자나 필자가 가입되어 있는 카페회원들은 이미 다 알고 있는 사실이다.
지금 그 하모니카 연주 실력이 어디쯤 가고 있을까? 이미 전에도 말한 바 있지만 그냥 나홀로 연주는 프로 수준에 가깝지만 무대 공연을 하기에는 초등학생 수준인 아마추어이다.
한마디디로 말해서 울적한 마음이나 한가한 시간에 홀로 불어서 기분 전화용 연주는 어지간한 노래는 그냥 흉내를 내는데 결국은 사람들이 무슨 노래인지 알 것 같으면서도 잘 모른다 는 것이다.
그러나 나이가 더 들기 전에 음악 기본이론으로 시작해서 하모니카 하나 정도만이라도 정석에 배워서 연주해 보고 싶은 마음에서 금년 봄에 하모니카를 다시 손에 잡으면서 유료 동영상 강의를 신청도 하고, 또한 하모사랑이라고 대한민국에서 가장 인기가 좋은 하모니카 동호회 카페에 가입을 해서 다른 사람들이 연주해 놓은 것을 즐겨 감상하기도 하고 필자도 초보 연습곡을 제법 여러 곡 올려서 배우는 과정에서 조언을 통해 도움을 받고 있는 중이다.
유료 동영상 강의는 그렇게 큰 금액은 아니지만 매월 일정금액을 결제해야 계속 배울 수 있지만 카페는 상호 회원들의 관심과 조언 속에서 이루어지는 것이기에 시간만 투자하면 되는 형식이다. 하지만 고양이도 낯짝이 있다고 필자는 그 대신 아마추어 소설가 이기는 하지만 여러 가지 형태의 글을 자유게시판에 올려 또 다른 수업료로 대신하고자 하는 마음으로 글도 열심히 올리는 중이다. 수업료도 수업료지만 온라인상이지만 인간이 아닌 사람냄새가 나는 인간적인 교류가 그 어느 카페보다 활발히 이루어지다 보니 밤을 새우는 날이 허다하다.
그러던 필자는 온라인이 아닌 오프라인에서 하모사랑 하모니카 모임이 있어 지난 7.4일 경기도 용인을 다녀왔다. 공식적인 행사는 오후 12시부터 오후 6시를 전후였는데 뒤풀이 까 지 참석하고 오는 바람에 오후 10시에나 정처 없이 머무르는 곳이기는 하지만 늦은 귀가를 했던 날이었다.
바쁜 일상 가운데에도 강원도 대관령을 넘어서 멀리는 전남 순천에서 새벽 4시에 출발을 해서 참석하는 열성적인 회원이 있었다.
처음 행사를 구상했던 카페 운영진에서는 하모사랑 회원 3000명 돌파 자축연 비슷하게 번개모임 형식으로 2~30명이 모여 작은 하모니카 연주회와 더불어 조촐한 파티형식이었다고 한다. 하지만 생각보다 참석하려는 회원이 쇄도하여 공개 모임이 되자 일주일 만에 소위 전투 병력의 기본 단위인 중대 병력인 120명 신청을 하여 대성황을 이루는 사태가 벌여졌다. 필자는 이제 겨우 3~4개월에 불과한 입문회원인데 회원의 권리이자 의무를 다하고자 참석을 결정하고 생업을 하루 내려놓고 지인이자 군대 신병교육대 동기를 하모사랑에 가입하게 하고 동행을 했었다.
(참석인원이 120여명에 육박하다 보니 한번에 단체사진을 못 찍고 두, 세번에 걸쳐 찍었는데 두번째 팀에서 맨 뒷줄 우측에 검은 등산복을 입고 있는 잘 생긴 남자가 필자 문숭리 입니다. ㅎㅎㅎ)
그동안 필자가 카페를 통해서 이름도 성도 모르는 회원들과 정을 나누다 보니 보고 싶은 얼굴들이 가슴을 파고들었기에 언젠가 만날 볼 사람들이라면 하루라도 먼저 만나보고 싶은 마음에서 달려갔던 것이었다. 더욱이 필자를 그렇게 만들었던 것은 대한민국에서 하모니카 연주분야에서 거장이라면 거장이고 바둑에서 말하는 고수들이 한자리에 다 모인다는데 온라인이 아닌 실제 얼굴을 보면서 그들이 연주하는 하모니카 연주의 진수를 감상하고 싶었던 것이었다.
간헐적이기는 하지만 젊은 시절에도 남산타워 가는 길목에 있는 국립극장에서 연주하는 하모니카 대가들의 연주를 고액의 입장료를 내고 들었을 만큼 하모니카 연주를 좋아했던 추억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하모사랑 3000명 비공식 모임이 공개 모임으로 참가신청을 받는다는 카페의 글이 올라오면 서 필자가 가입신청을 제일 먼저 했다는 것이다. 어느 날 새벽 1시인가 2시에 잠을 설쳐 노트북을 열었는데 아무도 신청하지 않는 처음이었다. 이유가 없었다. 무조건 신청을 했다. 그리고는 여러 날 고민을 해야만 했었다. 아직 필자의 하모니카 연주 실력은 다른 일반 사람들이 인정할 만큼 정석으로 연주할 수 있는 수준이 아니었기 때문이었다. 그나마 좋아하는 <고향의 봄>조차 불안한 연주 수준에 이제 겨우 박자 개념이나 하모니카 연주를 하려면 각 종류별로 하모니카가 최소한 14개 정도는 되어야 한다는데 이제 C장조라는 하모니카의 기본 종류를 들고 동요수준에 몰입하고 있는 중이었기 때문이었다.
기회가 주어진다면 동요를 연주한다고 못하게 할 회원들은 아니겠지만 인간은 누구나 다른 사람들 앞에서 자신이 가장 잘 연주하는 것으로 소위 근사한 곡으로 사람들의 심금을 울려서 칭찬 내지는 감동을 받게 해서 자신을 드러내고 싶은 마음이 있기에 필자 또한 그런 마음을 감출수가 없었던 것이었다.
그런 요즘 동요나 외국 민요를 여러 곡 연습을 하고 카페에 올려서 진도를 나가는 중이라 그 중에 자신 있는 곳으로 한곡 선정해 볼까도 하는 생각을 가지고 있었다. 그러나 그래도 하모니카를 사랑하는 많은 사람들이 모인 자리에서 지천명을 넘은 나이에 초등학생 수준으로 연주하기는 그렇고 그래서 아직 미완성의 단계이지만 조용필의 <친구>라는 곡과 더불어 평소 복음성가를 부르던 수준으로 <사랑의 송가>를 연습을 했다. 그런데 갑자가 <애국가>가 끼어든 것이었다.
왜냐고요?
앞서서 이야기 했듯이 연습곡을 요즘 스위스 국가(國歌, 공식적으로 한 나라를 대표하는 의전적인 노래)인 <에델바이스>를 연습중인데 아는 사람들은 그 곡이 스위스 국가로도 알고 있지만 이미 오래전 영화 <사운드 오브 뮤직>을 통해서 일반 적인 노래로 전 세계인이 즐겨 부르고 연주하는 그런 곡이 되어 있는 상태이다. 마치 악기나 노래를 하면 무슨 대단한 명곡을 연주하거나 부르는 것처럼 추앙을 받고 있는 것이다. 알고 보면 우리나라의 <아리랑> 같은 것인데 스위스에서는 전 국민이 누구나 부를 수 있다는 것을 기본 명제로 아주 오래 전에 그들의 애국가로 정하고 애창하고 있는 것이었다. 권위적인 발상이 아닌 그들이 기르고 있는 애완견이나 앵무새조차 따라 부르는 전 국민 이 애창하는 곡으로 자리 잡다 못해 마치 전 세계인인 그들의 스위스 국가라는 것을 떠나서 만찬이나 연회장에서 하다못해 각국의 공항에서서 흘러나오는 그런 노래가 되어있는 중이다. 필자가 그런 의미를 알고 있으면서 열심히 그 노래 <에델바이스>를 연습하면서 많은 생각을 했다. 이 곡은 곡이 아름답기도 하지만 고음 즉, 하모니카에서 높은 도와 레가 들어가는 곳이라 하모니카를 배우는 사람들의 필수 곡이다. 필수 곡이라는 이면에서 이 곡을 다른 사람들 앞에서 연주하면 함께 따라 부를 수도 있고 우아해 보이고 멋있어 보이는 이곳이 가지고 있는 메리트(장점)이 있어 너도 나도 이곡을 피해갈 수 없는 곡인 것이다.
사운드 오브 뮤직(SOUND OF MUSIC)이라.
세계 제2차 대전 중 스위스국가 대령이 나치의 동조를 거부하고 알프스를 넘으면서 그들 가족이 망명과 적의 추격을 잠시나마 잊게 했던 그런 곡으로 우리에게 다른 나라 군인이 보여준 애국이라는 것을 보면서 눈시울을 붉히면서 감명 깊게 보았던 영화가 아닌가?
그래 소설가가 무엇이냐?
아마추어 소설가이지만 난들 그 스위스 국가의 대령보다 못할 것도 없고 못난 것도 없다. 배운 것을 말하자면 그 보다 더 배웠고 그는 군인에 불과하지만 그래도 나는 언젠가 역사가 기억해줄 문숭리라는 소설가로 이름을 남길 사람이 아닌가?
그래, 애국가를 연주하는 것이다.
이미 좋은 머리는 아니지만 초등학교 시절 처음 배웠던 애국가 가사를 아직도 4절까지 다 외우고 있고 계명을 다 외우고 있지 않은가?
솔도시라. 도솔미솔, 도레미파미레. 중략~
화음, 베이스, 이런 것 다 없다. 그냥 요즈음 배우고 있는 텅 블럭(Tongue block)인가? 뭐 라, 혀로 막고 불기로 해서 정확하게 연주하면 되는 것이지 뭐 화려할 것도 없다.
애국가면 애국가로서 족한 것이기 때문이다.
연습도 필요 없었다. 한번 불어보니까 하모니카에서 애국가가 흘러 나왔다. 잘 연주하고 다른 사람들의 칭찬도 필요 없다. 그냥 내가 연주하면 애국가인 것이다. 감동을 받고 안 받 고는 듣는 사람들의 몫이고 그들이 한국인이냐? 아니냐? 는 차이이지 한국이라면 영화관에 서 남의 나라 애국가를 애국가인줄도 모르고 따라 부르던 한국인 인데 자신의 나라 애국가를 연주하는데 눈만 멀뚱거리면서 감명이 없다고 멍하니 바라보고 사람들이라면 그들과 더불어 세월을 낭비할 이유가 없지 않겠는가?
보나마나 공식적인 국민의례 같은 형식은 없을 테니까 말이다. 그렇다고 내가 주최 측에 미리 이곡을 연주하겠다고 할 수도 없고 이를 어떻게 하지? 또한 설령 기회가 주어진다고 해도 모임 분위기상 중간에 이 곡을 연주하면 모임에 찬물을 뿌리는 행태가 되는데 고민은 하루 이틀만의 것이 아니었다.
하지만 방법이 전혀 없는 것도 아니었다. 그날 모임을 주관하고 초대하는 묵리촌장이라는 분이 하모사랑에서는 하모니카 연주를 올리는 거장 중에 한 사람이지만 하모사랑을 계기로 필자가 운영하는 카페에 회원이기도 하기에 휴대폰으로 필자의 생각을 알릴 수도 있고 더 나아가 카페 쪽지나 메일로 내 의지와 생각을 전달하여 소기의 목적을 달성할 수도 있었다. 하지만 이제 입문회원 내지는 병아리 회원이 처음 모임에 얼굴을 내 밀면서 무리한 행동이다 싶어 그냥 연습만 하고 참석을 했었다.
술은 즐겨하지 않지만 음주 운전을 하면 안 되기에 대중교통을 이용하여 지기이자 군대동기를 용인 시외버스터미널에서 만나서 묵리행 시내버스로 이동하기로 했던 것이었다.
당일 11시가 넘어 용인터미널에 도착을 해 보니 친구만 보이는 것이었다. 묵리 행 버스는 한 시간 간격인지 30분 간격인자 11시 30분 출발이라는 시간표시만 있고 문은 잠겨있어 벤치에서 친구와 시간을 기다려야 했다.
그런데 한 작은 어는 중년 남자가 배낭을 메고 묵리 행 버스 앞에서 서성거리는 것이었다.
주저없이 물었다.
묵리에 하모니카 모임에 가시는 분이냐? 고. 그 분과 동시에 질문을 주고받았단다.
그렇단다. 누구시냐고? 어부 박씨란다. 이런 잘 모르는 닉네임이었다. 자주 카페에 올라 왔는지는 모르지만 필자는 닉네임이 낯설었다. 참가자 명단에도 거의 기억이 안 난다.
그러면 그렇지. 오늘 아침 맨 마지막으로 신청을 했단다. 오늘 아침에는 필자는 노트북을 열어 보지 않았기에 모르는 것이 당연한 것이었다.
그런데 그 분은 나를 마치 10년 이상 알고 지내고 있다는 듯 아는 척을 하는 것이었다.
<문숭리>라고 하니까 더 이상 말이 필요 없었다.
자신이 여기 오늘 용인 묵리촌장 모임에 오는 목적이 딱 두 가지인데 그 중에 하나가 문숭 리라는 소설가가 어떻게 생긴 사람인자 두 눈으로 보고 만나보고 싶었고, 다른 하나는 과연 이 모임이 자기같이 이제 입문하고 얼마 안 되는 회원도 사람 취급내지는 환대하는지 그들의 마음을 한번 들여다보고 알아보고 싶었다는 것이었다. 두 가지 목적중 하나가 이렇게 빨리 실현될 줄을 몰랐다는 것이었다. 처음 인상이 필자가 도둑놈 같이 생기지 않아서 그런지 안도하는 분위기였다.
함께 그 분과 우리 일행 셋은 묵리에서 내려서 행사장으로 이동을 했다, 오고 가던 분위기는 생략을 하고자 한다. 오늘 밤새도록 다 써야 할 것이기에 말이다.
행사장에 모여 서로 오랜 세월동안 인연이 있었던 사람들처럼 여러 사람들과 눈인사, 손인 사(악수), 종이 주고받기(명함)를 하고 초대를 주관한 용인 모바스 팀이 마련한 정성어린 음식으로 환대를 받았다.
드디어 무대 커튼이 올라가고 행사가 시작되었다.
오늘 처음 어부 박씨라는 분의 생각을 읽어다는 듯이 처음 초보자들이 우선 연주를 하고 고수 내지는 거장들은 맨 나중에 연주를 하겠다고 하고 이유를 불문하고 100여명이 넘는 인원이다 보니 잘 연주하고 못하고를 떠나서 무조건 한곡씩만 연주한다는 원칙이 선포되었다.
우선 초보자들이 자진해서 신청곡을 적어 내고 무작위 연주 순서에 따라 묵리촌장님의 평화의 쉼터에서 하모니카 화음이 산을 타고 대한민국과 전 세계에 울려 퍼지기 시작하게 된 것 이었다. 하모사랑 방송국에서 녹화중계를 위해서 임시 방송국을 설치하고 촬영까지!
비공식으로 하모사랑만의 카페행사이지만 국제행사를 하는 감회랄까? 그런 것이었다.
필자는 주저 없이 다른 사람의 메모지 절반을 찢어서 닉네임 문숭리를 적고 <애국가>를 적어서 내자마자 주최 측에게 다른 사람들의 신청곡에 묻혀 전달이 되었다. <친구> 나 <사랑의 송가>를 적어야 했어나? 하는 만감이 교차하는 순간, 어디서 많이 듣던 이름이 스피커를 통해서 일번 연주자로 낙점을 받은 것이었다.
<지성이면 감천이다.>라고 했던가? 아니면 이심전심이라고나 할까? <뜻이 있는 곳에 길이 있다>고나 할까? 하여간 소기의 목적을 달성할 수 있는 기회를 잡은 것이었다.
그러고 보면 사회를 맡은 이날 행사의 초빙자인 묵리촌장님은 애국가를 제1번 연주곡으로 선별해 낼 수 있는 보통 사람들이 가지고 있지 않은 통찰력을 가지고 있었던 것이 분명했다.
정말이지 공식적인 무대애서 악기를 연주해 보기는 처음인지라 무대에는 신발을 신고 올라가는 곳인데 바닥에서부터 신발을 다 벗고 올라가니 신발을 신고 올라오란다. 혹시나 싶어 하모니카도 내가 가지고 갔던 3개를 다 들고 올라갔다. 새로 산 하모니카가 중음 <레>가 속을 썩이는 지라. 다른 G장조나 아니면 하모니카 중에서는 가장 저렴한 금년 봄에 다시 산 하모니카를 들고 올라갔다. 음이 약간 탁하기는 하나 음정에는 이상이 없었는지라 혹시나 싶어 내가 가지고 있던 하모니카 중에서 가장 오래되고 저렴한 것이지만 정확하게 자신 있게 연주하고자 미화 하모니카 버터플라이를 잡았다. 손에 가장 익고 음도 자신 이 있는 하모니카이기에 세게 불어도 망가져도 아쉬울 것이 없이 본전을 뽑은 하모니카이기 도하기 때문이었다.
긴장 그 자체였다.
하지만 이미 계명을 외우고 있는 곡인지라. 마음을 가다듬어 연주를 하기 시작했다.
그런데 어찌 된 일인가? 참석 회원들이 누구라 할것 없이 한 목소리로 애국가를 따라 부르 기 시작하는 것이 아닌가? 더 이상 하모니카 소리가 무색하게 되어 버렸다. 그래도 연주를 하는 것이기에 합창과 더불어 연주를 했다. 주최 임원들이 옆에서 필자가 초보라 쉬어가는 박자타임을 놓칠세라 4/4박자 특유의 박자 리듬을 맞추는 둘, 셋, 넷으로 다음 시작 부분을 알려주는 것이었다.
하지만 그래도 긴장을 한 탓인지 한 부분에서 실수를 했다. <무궁화 삼천리~>를 해야 하는 데 그냥 얼버무려서 넘어 갔던 것이었다.
나중에 카페에 동영상이 올라왔는데 실수한 부분이 캠이 오작동하는 바람에 누락이란다. 이런 경우를 천우신조하고 하나보다. 마지막 부분이기는 하지만 필자의 애국가 연주의 확실한 하모니카 연주소리와 더불어 하모사랑 회원들의 합창 애국가가 선명하게 녹음이 되고 필자의 멋진 애국가 연주 장면이 동영상으로 전 세계에 울려 퍼진 것이다.
그랬다. 이제는 또 다른 소설가가 되어 보는 것이다.
애국가가 문숭리 아마추어 소설가의 하모니카 18번 연주곡이 되는 것이다. 하모니카 연습에 앞에 제일 먼저 연습을 하고 이제 하모가리님을 비롯해 카페에 속해 있는 거장들을 다 찾아가서 원 포인트 네슨(ONE POINT LESSON)을 받아서 문숭리 하면 하모니카에서는 <아~, 애국가>. 그래 하모니카 연주회에서 크나 작으나 처음 국민의례 차원에서 소설가 연주자에게 애국가 연주를 시키지 않으면 행사 오픈이 안 되는 그런 날을 만들어 보는 것이다.
오랜 시간 장문을 읽어주신 모든 분들에게 감사를 드리며 다음주에 <내 고향 충청도>라는 필자의 첫 출세작으로 만나 뵙겠습니다. 감사합니다.
2009. 7.7. 하남 시립도서관에서 휴무를 보내던 날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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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대단하십니다. 애국가를 연주하실 생각을 하셨다니.....하모니카는 동심을 자극하는 악기 같아요. 그냥 편하고 고향생각 나는 그런 악기입니다. 글과 음악 즐감햇음더...
가을 축제때 우리 텃밭 도서관에서 발표회를 합주로 해 보세나. 개별적으로 하고,... ㅎㅎㅎㅎ
소설가가 연주허는 애국가... 들을 기회가 생기것제? ^^
가을에 축제때 국민의례가 있으면 피아노하고 저량 합주로 애국가 연주를 하면 금상첨화 이겠지요. 출연료는 특별히 찬조출연으로 해 드리겠습니다. ㅎㅎㅎ
모인 분들의 마음이 하나가 되는 순간이 첫 애국가 연주부터 시작되었겠네요. 듣기만 해도 환상의 하모니커합주가 들리는듯합니다요.
그래서 저는 그날 이유로 하모니카 연주 연습을 할때마다 애국가를 먼저 연주하고 연습을 하기로 했답니다. 정말 이런 기분은 처음입니다. 감사!
원숭이도 나무에서 떨어진다고.... 에델바이스에 대한 내용을 문숭리가 많이 절반 이상은 잘 못 알고 있다는 이영희 님의 메일을 통한 조언이 있어 정정합니다. 사운드 오브 뮤직에 나오는 가족이 오스트리아 가족에 그 나라 대령입니다. 하도 오래된 기억을 되 살리다 보니..죄송. 그리고 에델바이스도 스위스 국가라고 알고 있었는데.. 그냥 주어들은 이야기라 그렇게 썼는데 절말 확인도 없이 글을 썼는데. 저는 애국가를 강조하다 보니 ...그래서 사과의 말씀과 더불어 그렇게 이해를 해 주십사. 에델바이스는 그냥 넘기고 애국가 연주만 감상해 주시기를 ㅎ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