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불.도 ‘삼교일치’ 주창
득통기화(得通己和, 1376∼1433)스님은 1376년(고려 우왕 2년) 충주에서 태어났으며, 속성은 유씨(劉氏)이다. 스님은 어린 나이에 성균관에 입학하여 두각을 나타내던 중, 21세 때 출가의 뜻을 굳히고 다음의 시를 읊었다.
“유교 경전과 사서(史書), 정주학(程朱學)에서
불교 헐뜯는 말을 들어서 불법의 옳고 그름을 알지 못했네.
반복하여 가만히 생각하기 이미 오래 되었는데
이제 비로소 진실을 깨달아 부처님께 귀의하네.”
이윽고 1396년(조선 태조 5년) 스님은 관악산 의상암(義湘庵)에 들어가서 삭발하였고, 이듬해인 1397년 회암사(檜巖寺)로 무학자초(無學自超, 1327∼1405)스님을 찾아가 법요(法要)를 들은 뒤 여러 산을 두루 편력하다가, 1404년(태종 4년) 다시 회암사로 돌아와 정좌(靜座)하고 수행을 시작하여 크게 깨우쳤다. 고려 말 새롭게 등장하기 시작한 신진유학자(新進儒學者)들은 배불(排佛)의 강도를 높여갔다. 그 결과 조선 초기 불교교단은 강제로 축소 통합, 폐지되어 개국 초기에 11종이었던 교단이 태종 6년에는 7종으로, 다시 세종 6년에는 선종과 교종의 양종(兩宗)으로 통폐합되었으며, 수많은 사찰들이 폐허화되었다. 스님은 이러한 불교가 핍박받던 조선 초기를 살아가며 불교계를 이끈 대표적인 선사이다.
주지하듯이 스님의 선사상은, 조선 초기 유학자들이 불교를 ‘허무적멸지도(虛無寂滅之道)’라고 비판하는 것을, 반박하는 저술인 〈현정론(顯正論)〉과 〈유석질의론(儒釋質疑論)〉 등을 통해서 주로 나타난다. 스님은 이 저술(著述)들에서 불교(佛敎)와 유교(儒敎)의 회통(會通)뿐 아니라 도교(道敎)까지 포함한 삼교일치(三敎一致)를 제창한다.
“유교는 불교적 수행 일부”주장
조선초 억불론 모순 타파 노력
스님은 설파한다. “삼교(三敎)가 모두 마음에 근본하였으나 유교(儒敎)는 마음의 자취를, 불교(佛敎)는 진심(眞心)을, 도교(道敎)는 자취와 진심의 사이를 접한 도이다. 나타나 볼 수 있는 것은 자취이고 오묘하여 볼 수 없는 것은 성(性)이니, 볼 수 없는 것은 그 도가 멀고 깊으며 볼 수 있는 것은 가깝고 얕은 도이므로 유교는 불교의 대각(大覺)의 경계를 함께 논할 수 없다. …… 삼교(三敎)의 말한 바가 은연중 서로 부합하여 한 입에서 나온 것과 같으나, 삼교의 우열과 같고 다름은 마음을 닦아 지혜로운 안목을 갖춘 뒤에 삼교의 경전을 다 읽고 일상생활과 생사화복의 때를 참고한다면 절로 머리를 끄덕이리니, 내 어찌 구차히 말하여 그대를 놀라게 하겠는가.”
스님은 불교와 유교가 동일한 진리에 근거한 가르침이기 때문에, 본질적으로 다르지 않다고 본다. 왜냐하면 불교와 유교의 가르침을 펼친 성인들의 경지가 동일하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현실적으로 유교는 중생들을 교화하는 기능은 가지고 있지만, 중생을 해탈로 이끌지는 못하는 낮은 가르침인 반면에, 불교는 중생을 해탈로 이끄는 높은 수준의 가르침이라고 본다. 다시 말해서 현실적으로 중생들을 이끌어 해탈의 경지로 나아가게 하는 효용이라는 관점에서 볼 때 불교는 유교보다 우월하며, 궁극적으로는 불교를 통해서만이 해탈이 가능하다는 것이다. 이렇게 볼 때 유교는 불교적인 수행체계의 한 부분으로만 의미를 가지게 된다는 것이다. 따라서 스님의 ‘유불관계론’은 ‘현실적 차별성 및 불교의 우월성’이라는 이중구조를 가지고 있다. 다시 말해서 스님은 당시 신유가의 배불론에 대해서, 합리적인 대화를 통해 배불의 이론적 모순을 타파하고, 참다운 불법의 면모를 드러내고자 했고, 더 나아가서 유교에 대한 불교의 우월성을 논변하고자 한다. 이러한 스님의 입장은 불교와 유교의 관계에 대한 본격적인 논의의 시작이면서, 불교적 입장에서 유교를 바라보는 하나의 틀을 제시하고 있다는 점에서 한국불교사상사의 새로운 지평을 연 것이다.
주지하듯이 스님의 선사상은 뒤로는 원효의 화쟁사상(和諍思想)이나 지눌의 선교회통(禪敎會通) 사상을 이어받으면서, 앞으로는 휴정의 삼교회통(三敎會通)사상에 영향을 끼치고 있다. 그렇기 때문에 한국 불교 사상사에서 스님은 전통의 계승자이면서 동시에 새로운 전통의 창시자라는 위상을 갖는다.
이덕진/ 창원전문대 교수
[불교신문 2012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