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네한바퀴 80-실미도
2023년1월9일 실미도로 갔습니다.
1971년 8월23일 경기도 부천면 용유면 실미도에 위치한 대한민국 공군 684부대 북파공작원들이 부대원을 살해하고 부대를 이탈하고 시외버스를 탈취해 청와대로 돌진하다가 서울시 영등포구 대방동에 있는 유한양행 본사앞에서 자폭한 사건이 있습니다. 당시에는 '8.23 난동사건'으로 칭하였습니다.
실미도 입구
1968년 1월21일 소위 '김신조 사건'로 알려진 1.21 사태가 일어났습니다. 북한이 무장게릴라를 통해 박정희대통령를 암살하려는 사실에 분노하여 김일성 암살하려고 복수를 계획하려고 3군에 1개씩 이를 전담할 특수부대를 창설했고 그중 공군산하 684부대가 창설되어 실미도에 비밀 훈련 기지를 마련하였습니다.
창설 당시 인원은 총 31명이었습니다. 1968년 7윌 훈련중 사고로 1명이 사망했고 얼마후 2명이 탈영을 시도하다 붙잡혀 사형 당했습니다. 1970년11월 3명이 탈영하여 인근 무의도로 건너갔습니다. 이들은 무의초등학교 숙직실에서 민간인 여성 2명을 강간하고 이 외에 학생 9명과 교사 1명까지 12명의 인질을 잡고 대치하다 전원 자결하였습니다.
실미도
1970년대초부터 국제적인 데탕스분위기에 따라 남북접십자 회담으로 남북화해분위기가 조성되고 중앙정보부장이 교체되는 등 상황이 변화되면서 암살계획은 점차 뒤로미루어지고 잊혀지고 있었습니다. 그런와중에 부대예산 착복에 의해 이들에 대한 대우도 나빠지고 있었습니다. 봉급이 끊기고 음식배급이 부실해져 굶주리고 자원한 소대장 김방일 공군 중사 1명외에는 특수전출신 교관과 및 조교들이 대부분 떠나고 이쪽과 별관계없는 기관원들이 들어오는 등 상황이 나빠지자 이들은 점차 불안해지고 있었습니다.
소설 실미도 저자 백동호에 따르면 보안유지를 위해 부대원들을 몰살시키자는 얘기가 나왔다는것을 부대원을들이 알게 되었다고 합니다. 이러한 불만때문에 박정희대통령을 만나 담판짓고자 부대원들이 기간병을 죽이고 탈영하였습니다.
결국 불만 품은 이들은 1971년 8월23일 반란을 일으켜 훈련을 담당하던 공군교관들과 기관병력들을 살해, 섬을 장악한후 탈주해 인천에 상륙했습니다. 기간병력들중 출장나가 있던 김방일 소대장과 병 5명등 총6명이 살아남았으며 이들은 화장실이나 숲속에 숨거나 바다에 뛰어들어 어선에 구조되어 살아남았습니다. 684부대원 한명도 교전중에 사망했습니다. 김방일 소대장은 사건이 난 다음날 오전에 배를 타고 복귀하고 있었는데 684부대원들이 탄 배가 이배와 마주치며 지나갔지만 김방일 소대장은 알아차리지 못해 상륙하고 나서야 참상을 발견하게 됩니다.
그리고 대한민국 육군 제33보병사단( 현 제17보병 사단) 예하 해안경계부대의 저지선을 뚫고 인천과 수원을 운행하던 현대 R192 시외버스를 탈취하여 경인국도를 타고 부평, 소사, 영등포를 거쳐 청와대로 돌격하려 시도하였습니다.
당시 버스에 동승했던 버스운전자의 증언에 의하면 실미도 부대원들은 '정부에서 자신들을 섬에다 가두고 죽이려 했다'며 '이 모든일의 원흉 박정희를 죽이겠다'고 말하였다고 합니다. 이들은 무장공비로 간주되어 대방동 유한양행 건물 앞에서 육군제30사단 예하 병력등 육군. 경찰에 저지되었습니다. 684부대원과 진압군들의 치열한 총격전을 벌력는데 갈수록 684부대원들이 불리해졌습니다. 결국 포위망을 돌파할 가능성이 없어지자 부대원 대다수는 버스안에서 수류탄으로 자폭하였습니다.
하지만 그들중 4명은 큰부상을 입었지만 목숨을 건졌습니다. 그들은 국회에서 증언으로 출석했지만 묵비권을 행사했습니다. 나중에 총살당했습니다.
1999년 실상을 파헤친 소설 실미도가 발간되고 2003년 강우석 감독의 영화 "실미도"가 개봉되면서 대중적으로 알려지게 되었습니다.
부대소대장이였던 김방일씨가 공개한 실미도 부대원들 사진입니다.
684부대원 탈출경로와 684부대원들이 탑승했던 버스
이곳은 갯벌체험 안내판이 있습니다
실미도
실미도
갯벌체험안내
실미도에서 무의대교 건너 인천으로 갔습니다.
시흥 갯골에 들렀읍니다.
겨울의 "시흥 갯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