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사는 충청도 계룡산 지역은 중부지방의 경계에 위치하였는데
今年(금년)은 甚(심)히 가물었고 여름 장마철에도 비가 별로 오지 않아
해마다 장마철이 되면
청송 약수터가 오염되어 사용이 금지되기 일쑤였으나 올해는 아직 이상이 없다.
溫暖化 異狀氣候(온난화 이상기후)탓이다.
장마전선이 중부의 북쪽으로 올라갔기 때문이다.
내 고향 保寧(보령)의 보령댐은 장마가 지나갔는데도
水位(수위)가 턱없이 내려가 낮은 상태이다.
미국을 비롯 세계 각지방이 가뭄이 심한 곳이 많은 반면
많은 지역에서는 洪水(홍수)로 큰 피해를 입기도 한다.
세계가 자연의 재앙수준에 가까운 水火(수화) 재난으로 몸살을 앓고 있다.
게다가 物價引上(물가인상)의 深化(심화)로 民生(민생)이 비상상황이다.
우리나라도 문제가 심각하다.
식용유는 무려 55%나 인상되었고 배추 값은 72%, 밀가루 36%등
여러 식품 뿐만 아니라 必需品(필수품)들이 인상되어
지난달도 거의 7%에 근접한 물가인상율 통계 보도이다.
오르기만 하던 石油(석유)는
세계경기 沈滯理由(침체이유)로 引下(인하)된다 하니 多幸(다행)이기는 하나
非正常(비정상)의 경제로 因(인)한 인하가 문제이다.
개벽 징조가 이러한데도 나의 글이 바위에 물주기라
안타까운 心情(심정)으로 다시 天機(천기)를 論(논)한다.
사람이 木石(목석)이 아니라면 어떤 感興(감흥)이라도 있어야 하지만
如前(여전)히 잠든 상태로 깨어나지들 못하고 있는
重生(중생)에 대해 재삼 驚戒(경계)의 雷聲(뇌성)소리를 내 지른다.
木石(목석)에 물을 주면 나무라면 자라나고
바위에도 이끼가 돋아 石耳(석이)버섯이 增産(증산)되건만
어찌 만물의 靈長(영장)인 인간이 無反應(무반응)이란 말인가?
선천의 얼룩진 묵은 때에 찌들어 있기 때문이다.
先入者(선입자)로 精神(정신)이 固着化(고착화) 되어 있는 까닭이다.
知見(지견)이 있는 중생은 所見(소견)머리 없이
旣存(기존)의 信仰團體(신앙단체)에서 鎖腦(쇄뇌)되어
도리어 참의 가르침을 사이비라 하고
기존의 宗敎(종교)들이 眞實(진실)로 似而非(사이비)인 줄을 모른다.
彌勒佛(미륵불)이 3회설법 하신다는 부처말씀 뜻을 모른 채
佛敎(불교)에 젖어 있고,
하나님 아버지가 직접 강림 하신다는 예수의 말씀 뜻을 진실로 잘 모르니
예수의 강림 할 것으로 잘못 알고 믿으면서 虛送歲月(허송세월)만 하고 있다.
기존의 묵은 종교 신앙이 곧 사이비라는 것을 不知(부지)한 것이 안타깝다.
時運(시운)을 모르고
眞理(진리)를 깨닫지 못하였기로 사이비의 뜻 조차 바르게 이해하지 못한다.
似而非(사이비)란 같은 듯 하나 아니라는 뜻이다.
기존의 종교가 참인 것 같지만 아닌 줄을 아는 것이
이 시대의 첫번째 깨달음이라 하겠다.
그리고 나서 三回說法(삼회설법)한
水雲,甑山,迎新堂主(수운,증산,영신당주)님의 儒佛仙 三道(유불선 삼도)가
統合眞理(통합진리)임을 깨닫는 길이 두 번째로 중요하다.
東經大典(동경대전)에서 노래 불러 가르쳤다.
水雲大神師(수운대신사)의 노래라 水雲歌辭(수운가사)라 한다.
龍潭歌(용담가) 55장에서의 59장에
어화세상 사람들아 무극지운 닥친 줄을 너희 어찌 알까 보냐
기장하다 이내운수 기장하다
구미산수 좋은승지 무극대도 닦아내니 오만년지 운수로다.
만세일지 장부로서 좋을시고 좋을시고ᆢ 라 하였으며
安心歌(안심가) 142절에 하날님이 내 몸 내서 아국운수 보존하네ᆢ 라 하였고
夢中老少問答歌(몽중노소 문답가)에
십이제국 괴질운수 다시 개벽 아닐런가ᆢ 라 하였으며
興比歌(흥비가) 첫머리에
時運伐柯(시운벌가) 伐柯(벌가)하니 其則 不遠(기측불원) 이라.
내 앞에 보는 것을 어길 바 없지만은 이는 도시 사람이요,
不在於斤(부재어근)이로다.
目前之事(목전지사) 쉬이 알고 心量(심량)없이 하다 가서
末來之事(말래지사) 같잖으면 그 아니 내 恨(한)인가ᆢ 라 노래 하였다.
현실의 目前(목전)의 일에만 눈이 어두어
개벽운수를 모르고 한량없이 시간만 허비하고서
때가 되어 제생각과 다르게 되면
그 恨(한)이 곧 나로 인한 恨(한)이라는 노랫말 뜻이다.
甑山上帝(증산상제)께서는 水雲(수운)이 말한 大先生(대선생)은 나를 이름이요,
당신께서 玉皇上帝(옥황상제)라 하시고 天地公事(천지공사)를 행하셨으니
어린양 하나님 아버지시라 辛未生(신미생) 흰 양으로 탄강하시다.
증산께서 너희는 절할 곳이 없다 하시고
부득이 절해야 할 때는 절해야 할 이유를 告(고)한 뒤 절하라 하시었다.
고 수부께서는 佛像(불상)을 보시고 말씀하시기를
이것은 헛것 이니라. 하시며 담뱃대로 부처상 머리를 땅땅땅 때리시었다.
그렇다고 乾方(건방)지라는 뜻이 절대로 아니다.
末世(말세)인 至今時代(지금시대)에는
참 信仰團體(신앙단체)가 없고 옳은 聖職子(성직자)가 있지 않으니
惑世誣民(혹세무민)하는 종교단체에 빠지지 말라는 가르치심이다.
나는 절간의 불상에 절하지 않는다.
오래전 나에게 종종 왕래하던 철저한 佛子(불자)가 있었다.
그의 請(청)으로 지리산 청학동 마을 아래 고운동의 孤雲寺(고운사)에 함께 간 일이 있다.
하여 불전에 들어 예의로 참배라도 할까 했는데
불상에 응한 神(신)이 나의 참배를 거절하는 영험을 하기도 했었다.
요즘 절간의 불상에는 釋尊(석존)이 응한 곳이 없다.
다만 그 절 주지의 수준에 맞는 귀신들이나 應(응)해 있을 뿐이다.
고운동은 신라시대의 崔 孤雲 先生(최 고운선생)이
마지막으로 居處(거처)하였다가
潛跡(잠적)하였다는 場所(장소)이기에 절 이름이 고운사이다.
三人成虎(삼인성호)라 하였다.
세 사람의 말이 호랑이를 부른다는 뜻이다.
증산께서 三變成道 理致(삼변성도 이치)로
당신께서 다시 迎新堂主(영신당주님)으로 再生身(재생신) 하시었으니
영신당주께서 一氣再生身 天地父母(일기재생신 천지부모)이시다.
즉 水雲(수운), 甑山(증산), 迎身堂主(영신당주)께서는
세분의 彌勒佛(미륵불)로 降臨(강림)하신 것이지만
實際(실제)로는 一神(일신)의 天主(천주)로 한울님 이신 것이다.
영신당주께서는 '내가 기어 내가 기어 동서양이 내가 기어' 라고,
당신이 東西道(동서도)의 모든 宗敎(종교)와
道 家(도가)에서 일러온 그 하날님 이라고 말씀 하시었다.
知見(지견)이 중요하다.
인간중생은 깨달은 自己水準(자기 수준) 만큼의 소견머리 밖에 없기 때문이다.
知見(지견)이란
知識(지식)과 見聞(견문)을 아울러 이르는 말이다.
所見(소견)머리란 所見(소견)을 俗(속)되게 이르는 말이면서
살피어 認識(인식)하는 생각이나 의견을 낮추어 이르는 말이기도 하다.
大人(대인)의 知見(지견)이라야
우주차원으로 무한대의 지식과 견문을 갖추심 일 뿐
중생들의 지견은 소견이 좁다.
하여 묵은 종교에 젖어
牧者(목자)노릇하는 소견머리는 사이비의 지식과 견해로써
성인의 말씀을 다 알지 못하므로 惑世誣民(혹세무민)에 그치게 된다.
교회의 목자에 鎖腦(쇄뇌)되면 지상낙원으로 건너가지 못한다.
천상으로 간다 하나 九天(구천)은 지상의 十天(십천)으로 내려와 合(합)하니
天堂(천당)이 없어 갈 곳이 없게 된다.
佛家(불가)의 三歸依(삼귀의)에 젖어 있어도 亦是(역시) 안된다.
절간에는 돌아가 依持(의지)할 곳이 못된다.
佛像(불상)도 헛것인데
그 절간 寺刹(사찰)에 의지해 보아야 恩澤(은택)이 있을리 萬無(만무)하고
그 절간, 그 중의 說法(설법)은
부처를 憑藉(빙자)한 宗敎(종교)장사의 商術語(상술어)에 不過(불과)할 뿐이기 때문이다.
말세에는 모두가 묵은 하늘의 묵은 기운이니 절할 곳이 없는 것이다.
[출처] #2562 나는 누구인가? - 절할 곳 없는 말세|작성자 금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