낙동강 천 삼 백리를 걷다.
-일곱번 째-
사단법인 우리 땅 걷기에서 시작하는 천삼백리 낙동강 답사 일곱 번째가 9월 네 번째 금요일(25) 밤부터 일요일(27)까지 실시된다. 현풍을 도동서원 창녕과 합천 의령에 이르는 길에 펼쳐진 박석진나루 율지나루 남지나루 등을 도보 답사할 예정이다.‘
선착순 45명 예정인 이번 답사에 참여를 원하시는 분은 속히 접수를 요한다.
낙동강 한식식당을 지나며 저만치 현풍이 보인다. 그렇다 이 지점부터 길가에는 낙동강을 팔아서 사는 사람들이 셀 수도 없이 많다. ‘달서지방 산업단지’와 ‘개진’으로 길은 나뉘고 뒤돌아보면 내가 지나온 고령교 일대가 한 눈에 들어온다. 드디어 현풍면에 접어들고 현풍을 지나던 김지하 시인은 ‘현풍 지나며’라는 시 한편을 남겼다. 며칠 사이에도 불구하고 날은 제법 쌀쌀하다. 개진면으로 건너가는 박석진교에는 간간히 자동차들만 지나간다. 이곳 현풍면 부동리에 있는 구쌍산에는 구마고속도로 현풍휴게소가 였으며 그 아래 낙동강에는 박석비리(礴石一)라는 벼랑이 있고 그 아래에 고령군 개진면 성동으로 건너가는 박석진 나루가 있었다.
전국적으로 널리 알려진 현풍할매곰탕은 1945년 달성군 유가면에서 박소선 할머니가 ‘일성식당’이란 간판을 걸고 가마솥에 끓여 뚝배기에 담아 팔면서 사람들에게 알려지기 시작했다. 전국 여러곳에 직영점을 둔 할매곰탕은 현재 박씨의 외아들 차준용씨가 대를 물려 이어가고 있다. 현풍은 본래 현풍현(玄風縣)이었다.
한편, 삼국유사를 남긴 석일연(釋一然)스님은 삼국유사에서 포산이성(苞山二聖)이란 내용으로 관기(觀機)와 도성(道成)의 두성사에 관한 기록을 남긴 것으로 보아 비슬산과 아주 인연이 깊은 사람이라고 보여진다.
관기선사가 도성선사에게 전할 말이 있을 때에는 관기봉 아래 관기암의 수도장에서의 고나기선사가 도통바위를 향하면 포산의 수목은 일제히 그쪽 방향으로 허리를 굽히므로 도성선사가 이를 알아 차려 달빛 아래 조화봉에서 이야기를 나누고, 반대로 도성선사가 관기선사에게 할 이이갸가 있을 때에도 마찬가지로 관기봉 방향을 향하면 수목은 일제히 허리를 굽혀 서로가 축지법(縮地法)으로도 만났다고 한다. 그래서 옛사람은 “서로 찾아 달을 밟고 운천(雲泉)을 희롱하나, 두 늙은이의 풍류 몇백년이 되었는가 구렁에 가득한 연기와 안개 옛 나무에 남아있어 구부렸다 일어섰다 찬 그림자 지금도 서로 맞는 듯 하네”라고 썼을 것이다.
느티골과 정수골을 사이에 둔 이 재는 그 생김생김이 다람쥐를 닮아 다람재로 불리는 데 고개를 넘어서자 눈앞에 나타난 ‘산불 감시초소’에는 그네 뛰는 이쁜 시악시가 그려져 있다. 다람재를 넘어 도동리에 이른다. 달성군 구지면 낙동강 변에 위치한 도동리에 김굉필을 모신 도동서원(道東書院)이 있다.
김굉필(金宏弼)은 1454(단종 2)~1504(연산군 10) 조선 전기의 문신으로 본관은 서흥(瑞興), 자는 대유(大猷), 호는 사옹(蓑翁)․한훤당(寒喧堂)이다. 아버지는 충좌위사용(忠佐衛司勇) 유(紐)이고, 어머니는 중추부사(中樞副使)를 지낸 승순의 딸이었다. 그의 선조는 서흥의 토성(土姓)으로서 고려 후기에 사족(士族)으로 성장하였으며 증조부인 사곤(士坤)이 수령과 청환(淸宦)을 역임하다가 아내의 고향인 경상도 현풍현에 이주하게 되면서 그곳에서 살게 되었다. 할아버지인 의영고사(義盈庫使) 소형(小亨)이 개국공신 조반(趙胖)의 사위가 되면서 한양에도 연고를 가지게 되었는데 할아버지이래 살아오던 정흥동에서 김굉필은 태어났다.
모통이를 돌아가자 나타나는 낙동강은 푸른 강물과 하얀 모래사장이 어우러져 한 폭의 그림이고 여정은 대암리에 이른다 낙동강 가에 대 바우가 있으므로 대바우 대방우 또는 대암이라 부른 대바우는 낙동강 가운데 우뚝 솟아 있다. 대(臺)처럼 평평하여, 그 위에 백여 사람이 앉을만 한데, 중종(中宗) 때 이상(二相) 이장곤(李長坤)이 이곳에서 놀았다고 하고 대바우에서 고령군 우곡면(牛谷面) 포동(蒲洞)으로 건너가는 낙동강의 나루터가 대바우 나루였다. 대암리 신당마을 입구에는 대암산맥이라는 이름의 가든이 있고 낮은 고개를 돌아가자 ‘상승불패’라고 쓰여진 비석 뒤편에 임진왜란 때의 의병장 곽재우의 묘소가 있다. 상승불패라는 비석은 적과 싸울 때마다 이겼던 곽재우 장군의 전공을 기리기 위해 이 지역의 군부대에서 세운 것이라고 한다. 신댕이 북쪽에 위치한 곽재우의 묘에는 망우당 곽재우와 그 아버지 보재(寶齋) 월(越), 그 할아버지 와성(와成) 지번(之藩), 그 증조(曾祖) 현감 위(瑋) 사위 아들들의 묘가 있는데, 묘마다 비석이 서 있다.
설마 사람들이 넘었던 그 고개를 못 넘을라고 비닐하우스 숲들이 끝나는 지점에서부터 산길은 시작된다. 산길은 적적하다. 한구비 돌아가자 험한 바위가 많아서 듬말이라고 불리는 마을의 빈집이 나타나고 조금 더 올라가자 칡넝쿨이 우거진 산비탈 너머로 내가 걸어온 낙동강이 꿈길처럼 깔린다.
벌초객들이 낫으로 베어논 길을 따라가다보니 옛길이 나타나고 그곳에서 나는 보았다. 나뭇가지 사이로 푸른강물이 흘러오고 그 강물 위로 또 하나의 강물이 접어드는 것을 그 강물이 대가천이다.
나는 강 건너 합천군 덕곡면 밤머리 일대와 현기리 일대를 내려다본다. 조선 중엽 이후 낙동강 중류의 최대 나루터였던 율지나루는 1960년대까지만 해도 이 지역 농산물의 집산지였다. 전국의 보부상과 장꾼들이 몰려들어 큰 장터를 형성했던 율지나루터에서 경상도 지역에서 성행하는 가면무극인 오광대 놀이가 시작되었다고 한다.
‘말뚝이’라는 마부가 살고있는 이곳 초계는 양반의 세력이 드세어 상놈, 하인들은 그들의 무시와 천대 때문에 하루 하루의 삶이 힘들기 그지없었다. 힘든 세월을 보내던 말뚝이는 어느날 꾀를 내어 마을 사람들을 불러모은 뒤 탈을 쓰고 양반들의 온갖 비리와 위선을 폭로했다. 탈을 쓴 사람이 누구인가는 모르지만 양반들로부터 당한 온갖 수모를 후련하게 씻어낸 그 행사 뒤에 사람들과 상인들은 오광대 놀이를 발전시켰고 1900년대에는 경상남도 전역으로 전파되어 나갔다.
마을 큰담실 마을에 안개는 아직 걷히지 않고 새로 길을 만드느라 포크레인이 광음소리를 내는 길을 따라 창아지 마을에 이른다. 남쪽 골짜기가 되므로 앞실 또는 납곡마라고 부르는 아지리(阿支里)의 창아지와 양아지 마을에도 가을이 깊어간다. 양아지 마을 입구에 의령군 지정면 성산리로 건너가는 창마리 나루가 있었다는데,
그러나 나룻배는 보이지 않고 낚시질을 하는 사람에게 가는 길이 있느냐고 묻자 길은 없단다. 양아지 마을로 해서 가는 고갯길이 있으니 그 길을 따라가란다.
마을사람들이 한 이십년 전만 해도 남지장을 보러 다녔다는 산길은 사라지고 어쩔 수 없다. 양아지 마을 뒷길을 따라갈 수밖에 양아지 마을에 도착하여 마을 가운데에서 깨를 터는 할머니에게 창날까지 얼마나 걸리느냐고 묻자 차로 가면 한 20분 걸릴 것이란다. 걸어가면 두어 시간이면 되지 않겠느냐고 이제 방법은 없다. 구부러진 산길을 휘돌아가는 수밖에 가다보면 창날 마을에 닿지 않을까?
산길은 초입부터 숨이 가쁘다. 고갯길에는 우윳빛 구절초가 무리지어 피어있고 한구비 휘돌아가자 내가 지나온 낙동강이 그림처럼 펼쳐진다.
1. 어디로 모이나요: 서울 양재역 8번 출구 서초구청 방향 : 2009년 9월 25(금) 밤 9시 30분 출발
전주 지역은 25일 밤 7시 전주 진북동 우성 아파트 출발.
현풍. 우포늪. 관룡사. 박석진교. 도동서원. 율지나루. 남지나루 등
2. 참가비 납부와 참가신청 방법 : 서울 일반 90,000원
계좌번호 : 국민은행 754801-01-479097 사단법인. 우리 땅 걷기
* 입금자와 참가자의 이름이 다를 경우 게시판에 댓글을 꼭 남겨주세요.
* 참가비를 납부하여야 참가신청이 최종 확인됩니다. 미납 시에는 자동 취소됩니다.
(2)안내 도반: 신정일(우리 땅 걷기대표. <신정일의 낙동강 역사문화 탐사. 다시 쓰는 택리지)
(3) 참가신청방법
- 기행안내 글 맨 밑에 댓글을 아래와 같이 달아 주세요.
- (예) 홍길동/ 016-218-4888/ 입금자명 : 홍길동/ 서울 출발 또는 전주 출발
* 처음 참가하시는 분은 주민번호를 운영위원에게 알려 주셔야 여행자보험 가입이 됩니다. 개인 신상정보이므로 전화나 문자로 알려 주세요.
(4) 참가취소와 환불안내
출발 3일전 참가취소 : 100% 환불
출발 1일전 참가취소 : 50% 환불
출발 당 일 참가취소 : 환불 불가
* 참가 취소 시 참가비 환불을 위한 은행계좌번호를 꼭 남겨 주세요. 기행 종료 후 7일내에 송금처리합니다. 기간이 초과될 경우, 참가비는 우리 땅 걷기 공동사업비로 자동 적립됩니다.
* 이미 참가비를 납부하신 신청자에게는 통장이체나 현장에서 현금으로 환불하고 이번 달부터는 입금자 순으로 참가를 하실 수 있습니다.
참가문의 : (사)우리 땅 걷기 운영위원 (유재훈) 011 9449. 3776
주의사항:
1. 우리 땅 걷기에서는 단체 여행자보험을 들고 있습니다.
2. 하지만 모든 걷기의 안전에 대해서는 참석자 본인이 책임을 지셔야 합니다.
(카페나 진행자는 안전사고에 대하여 어떠한 책임도 지지 않습니다.)
보시고 꼭 필요할 때에만 연락 주십시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