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왜 쓰는가 – 20240706
조지 오웰 “나는 왜 쓰는가”를 읽고 쓴 글입니다.
나는 글을 쓰고 나서 만족감을 느끼는 경우가 드물다. 내가 쓴 글이 읽을만하다는 생각이 들지 않기 때문이다. 글을 쓰는 것은 부담감과 감정 소모가 큰 행동이다. 그렇지만 나는 글을 많이 쓰거나 열정적으로 쓰지 않아도 놓지 않고 꾸준히 붙잡고 있다. 내가 글을 쓰는 이유는 4가지로 정리할 수 있다.
첫 번째는 글 쓰는 것이 의무이기 때문이다. 선생님이 내주시는 과제, 부모님의 권고 등을 말한다. 의무감과 강제성은 내가 글을 쓰는 큰 이유이다. 만약 내게 글쓰기를 권고하는 사람이나 글을 써야 하는 환경이 없다면 나는 글을 쓰지 않을 것이다. 노력과 감정을 소모하는 글쓰기는 더욱 급박한 과제나 재미있는 일에 밀려날 것이다.
강요받는 글쓰기를 하는 사람들은 두 종류로 나눌 수 있다. 하나는 의무감에서 쓰지만 내심 글 쓰는 것을 즐기는 부류이다. 둘째 온전히 강제로 고통스럽게, 억지로 글을 쓰는 부류이다. 나는 첫 번째에 속한다. 의무감이 없으면 글을 쓰지 않을 것을 알기 때문에 고의적으로 나 자신을 코너에 몰아넣는 것이다. 의무감은 내가 글을 쓰는 큰 이유이지만 온전한 이유는 아니다.
두 번째는 ‘글 쓰는 사람’의 분위기이다. ‘글을 쓰는 사람’이라는 지적이고 멋있는 분위기를 얻고 싶은 것이다. 나에게 ‘글 쓰는 사람’은 넓고 큰 창문이 있는 방에서 서가로 둘러싸인 의자에 앉아 주황색 조명 아래서 노트에 무언가를 적는 사람의 모습이다. 글을 쓰는 행위 자체보다 그 이미지가 매력적으로 다가오기도 한다. 나는 글 쓰는 사람이라는 멋진 정체성을 가지고 싶은 것이다. 이것이 나의 단점들을 보완할 것처럼 말이다.
이는 내가 좋아하는 저자 조지 오웰이 “나는 왜 쓰는가”라는 에세이에서 자신 글을 쓰는 이유 중 하나로 꼽은 것이기도 하다. 그는 이것을 '순전한 이기심'으로 표현하는데 똑똑해 보이고 싶은, 사람들이 이야깃거리가 되고 싶은, 사후에 기억되고 깊은, 어린 시절 자신을 푸대접한 어른들에게 앙갚음하고 싶은 등등의 욕구를 말한다. 나와 약간의 차이가 있지만 비슷한 결인 것 같다.
다행히도 나에게 이 이기심 혹은 분위기는 글을 쓰는 것에 그다지 큰 이유가 아니다. 공들였지만 마음에 들지 않는 글을 붙잡고 씨름하다 보면 꿈꾸던 이상적인 분위기는 내려놓게 된다. 하지만 마음속에서 아예 이 동기를 없애기는 어려울 것이다.
세 번째로 기록을 위해서이다. 일기를 쓰기로 자주 결심하지만, 작심삼일로 끝나는 경우가 대부분이기에 글을 쓰는 것은 나의 유일한 형태의 기록 수단이다. 기록을 위한 글쓰기의 필요는 2023년 겨울 아버지와 일본으로 여행을 다녀오며 느꼈다. 낯설지만 흥미로운 환경에서 아버지와 보낸 시간은 내 경험 중 가장 기쁘고 인상적이었다. 그런데 집에 돌아와 몇 주가 지나자 여행에서 무엇을 했는지, 아버지와 어떤 대화를 했는지 기억나지 않았다. 내가 매일 여행을 기록하지 않았더라면 이 소중한 시간을 기억하지 못하게 되었을 수도 있다.
더 나아가 나의 기록은 사건의 나열일 뿐 아니라 내가 어떤 사람인지, 어떤 정체성을 가졌는지 기억하게 해준다. 현재 영향력이 큰 자기 자신에게서 행복을 이루라는 “Be who you are”라는 키워드의 문화에 나는 그다지 공감하지 않는다. 정체성은 주체적으로 만드는 것이다. 내가 만들고 싶은 나의 정체성은 변할 수 있는 ‘내가 나를 어떻게 생각하나’에 뿌리를 두지 않는다. 계속해서 변하며 자신의 사상과 기준을 나에게도 주입하려는 문화 속에서 나에게는 나의 정체성을 잊지 않게 해주는 닻이 필요하다. 나에게는 글을 씀으로 남기는 기록들이 이 역할을 한다.
네 번째로 생각하기 위함이다. 생각에는 두 가지 종류가 있다. 첫째로 먹고사는 것에 관한 생각과 두 번째로 자기 삶에 관한 생각이다. 첫 번째 종류의 생각은 거의 무의식적으로 하게 된다. 이런 생각을 하지 않으면 살 수 없기 때문이다. 인간의 삶에서는 두 번째 종류의 생각도 무척 중요하다. 자기 삶에 관한 생각은 삶의 방향성과 이유, 주변 환경 등을 보게 만든다. 이런 생각을 하지 않는다면 삶은 주체성과 활력을 잃을 것이다.
하지만 삶에 대해 생각하는 것은 놀랍도록 어렵다. 이런 생각을 하기 위해서는 오락을 내려놓고 자신의 모습을 객관적으로 바라보아야 한다. 거울에 비치는 내 모습은 아름답기만 하지 않다. 또한 생각해도 먹고 사는 것에 충실해야겠다는 결론에 도달하기 쉽다.
나에게 글을 쓰는 것은 생각을 위한 도구이자 과정이다. 나는 글을 쓰는 과정에서 흐릿한 생각들을 뚜렷하게 바라보고 내가 살아야 하는 삶이 어떤 것인지 알 수 있다. 이때 나는 비로소 목적을 가지고 나아간다고 생각한다. 내 글쓰기의 가장 큰 이유는 생각하기 위해서라고 볼 수 있다.
조지 오웰은 자신의 에세이에서 글을 쓰는 여러 가지 이유 중 어떤 것이 가장 큰 이유인지 확신할 수 없다고 말한다. 나도 이에 동의한다. 하지만 때로는 목적과 이유가 분명히 보이는 것 같기도 하다. 나는 글 쓰는 것을 통해 쉽게 넘어지지 않고 넘어져도 일어날 수 있는 주체적인 사람이 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