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복의 품격
최 미 혜
세계적인 명작인 대지(大地)의 작가 펄 벅(Pearl S. Buck: 1892∼1973) 여사가 한국을 ‘고상한 사람들이 사는 보석 같은 나라’라고 표현한 것은 한국의 정취인 한옥과 잘 어울리는 한복, 국악, 소리, 고전무용에 연유하지 않았을까 싶다.
우리 전통의 오행사상은 만물과 신체에 적용하여 우리의 사상과 관념을 지배해왔는데, 문자로는 목화토금수(木火土金水)로 표시하고, 오방색은 동서남북중으로서 자연과 세상 사람들을 뜻한다. 오방 중 목(木)은 방향으로는 동쪽이고, 색깔로는 진한 남색으로서 인체에는 간과 쓸개를 의미하고, 화(火)는 방향으로는 남쪽으로서 색깔로는 붉은 홍색이고, 인체에서는 심장과 소장을, 토(土)는 동서남북중 중앙인 노란색으로서 인체에는 위장을, 금(金)은 서쪽의 백색으로서 인체에서는 대장과 허파를, 그리고 수(水)는 북쪽의 검정색으로서 인체에는 방광과 신장을 가리킨다. 그래서 음양오행을 상징하는 오방 옷을 입고 자연을 노래한다는 것은 한복이 한옥과 가장 잘 어울리는 정서와 기품이라고 생각한다.
내가 지천명의 나이가 되어서부터 한복을 입기 시작한 것은 고전공부를 하면서 천자문, 명심보감, 채근담, 공맹사상 등을 배우며, 동시에 고희의 어르신들을 가르치는 수업시간이기도 했으나, 나 스스로에게 당당해지고자 하는 뜻과 내용이 숨어있기도 했다. 누군가 형식은 내용을 낳는다고 말했듯이 나는 의상도 강의의 일부라 생각하고, 조용한 걸음걸이, 다소곳한 몸짓으로 내면에 깊숙이 숨어있는 먼지를 씻어내는 기분으로 오방색 치마, 저고리, 두루마기까지 입은 모습에서 근엄하고 숙연한 태도로 바뀌는 말씨와 행동, 손짓, 몸짓까지 새로워지는 느낌을 갖게 되기도 했다. 이렇게 어르신들과 함께 생활하면서 20년간 유지할 수 있었던 한복의 기운은 남녀노소 모두에게 활력이 되었다고 생각한다. 또, 다소곳이 앉아서 신호를 기다리는 나에게 차창으로 ‘멋있어요. 어머니’하며, 손을 흔들어주던 청년들이며, 장난꾸러기 꼬마들도 ‘안녕하세요?’하며 공손히 인사하는 광경은 우리 한복만이 주는 운치이며, 품격이 주는 공감이고, 은애함이 담겨있는 물결과 같은 평온함이라고 생각한다.
몇 년 전 서울의 S호텔에 초대받은 지인을 맞이하러 간 여인에게 한복 입은 여인을 입장시킬 수 없다며 출입을 거부했다는 이유로 세상을 떠들썩하게 했던 뉴스에 우리 모두가 경악했던 적이 있는데, 어느새 명절이나 회갑, 돌잔치 결혼식 하객들이 한복을 최고의 예복으로 여기던 상식이 사라지게 된 것은 참으로 안타까운 일이 아닐 수 없다. 손질하기 힘들고, 번거로워서 입기 어렵다는 단순한 생각에 외면 받게 된 한복이 동남아 각국에서는 우아하고 격조 높은 옷으로 평가받으며, 서로가 입어보고 싶어 한다는 사실을 우리는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지 모르겠다. 물론, 지금도 명절 때나 제사 때 한복을 입은 친척들이 방문하면서 한복 의상에 대하여 관심을 보이시면서 ‘역시 전통한복이 제일이지’ 하시는 말을 많이 듣는다. 그리고 자신이 없애버린 치마저고리를 못내 아쉬워하거나 미안해하는 어른들을 보게 된다. 더러는 자녀들의 결혼식 때 비싸게 장만한 고급 비단 치마, 저고리, 두루마기까지 내놓으면서 체격이 비슷하니 잘 맞을 것이라며, 입어보면서 흐뭇해하는 모습에서 아직도 살아있는 전통의 얼을 만나기도 한다.
그 한복을 헤어지도록 입고 살았으니, 어찌 세월을 거스를 수 있을까?
이렇게 두루마기를 비단, 본견, 명주, 주단 모두 100% 실크로 입었던 지난 20년은 어느 덧 동전달기, 치마, 저고리, 바지가지 만들 수 있었으니, 불편했던 것도 내게는 배움과 가르침이 되어주었다. 내가 교직을 퇴임하는 때에도 교사들은 한복을 입고 참석해줄 것을 바라는 교육청의 공지사항도 있었으나, 한복을 입고 온 사람은 단 두 명뿐이었으니 전통복식이 우리에게 얼마나 거추장스럽게 여기고 있는지를 잘 알 수 있다.
1970년대까지도 1년에 두 번 맞는 입학식, 졸업식 때 교사들은 한복을 입고 축하와 덕담을 주고받을 수 있었으니 지금 생각해보면 얼마나 숭엄한 분위기였던가?
여고시절에 영어회화를 가르치던 미국인 미스 버그먼이라는 처녀 선생님은 연분홍 치마저고리를 입고 학교에 출근했는데, 키가 크고 하얀 피부, 노란 머리에 무척 잘 어울리는 한복이었다, 처음 한복을 입었지만 우아하면서도 넉넉한 한복의 아름다움을 찬양하시던 미스 버그만 선생님의 표정과 수줍음까지 잊을 수 없는 추억으로 안겨주셔서 지금도 간직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2년~3년마다 한복의 깃, 섶, 동전, 소매넓이, 끝동, 등솔기까지 길고 짧게 혹은 넓고 좁게 바뀌고 있어서 기존의 한복을 입기가 오히려 쑥스러워지고, 때로는 옷 자체까지 바꿔지고 있어서 한복을 장만하거나 간직하는데 현실적인 어려움을 겪는 점도 있다. 하지만, 전통한복에 긍지와 자부심을 느낀다면 그런 불편쯤은 감수할 수 있어야 하는데, 무엇보다도 비교적 시간적 여유가 있는 60대 이상의 노인들이 먼저 명절이나 행사 때 한복을 입음으로서 후세들에게 전통의 얼을 뿌리내리게 해야 하지 않을까 싶다.
첫댓글 안녕하세요?
감사
고맙습니다
소중한 옥고
한복의 품격 ~~~♡
잘
감상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