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밤, 속옷가게 앞에서/김경미-
마음의 길들이 다 아프다 덜어내고 싶은 마음 흐려지는 시야……
세상에서 상처받은 날이면
밤의 정류장 속옷가게 앞에 서서
내의만 입고 선 마네킹들을 오래도록 지켜본다
그들 몸 속으로부터 솟아 나오는 나비빛들,
유리 건너 눈부시게 날아들 때마다
견뎌다오 나여, 한 번만 견뎌다오.
무엇이 그리 대단히 슬프고 아플 것인가
혹은 짐작지 못한 고통도
혹은 있지 않았으면 싶은 어둠도
몸빛을 돋우려는 저 검정 슬립 같은 것
그 가슴 한가운데에 놓이는 작은 꽃 장식 같은 것
밖은 아무래도 괜찮다
몸 속 거기, 아름다운 것들 거기 다 모여
불빛 켜들고 몸 밖까지 나가는 나비색 불빛 켜들고
가슴 안에 다, 거기, 모여 있으면
무엇인들 아플 것인가
밤 속옷가게 앞에서 문득 눈물 고이니
그렇게 세상을 또 한 번 건너가라고
신호등도 비로소 푸른 빛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