第 18 章 마궁의 불청객
오대산(五臺山).
동서남북과 중앙에 다섯 개의 높은 누대 형상의 봉우리를 갖고 있어
오대산이라 불리고 있는 거산(巨山). 그곳의 하늘은 지금 짙은 구름
에 가려 있다.
쏴아아 ―.
더위를 씻어 버리는 폭우.
굵은 빗줄기는 오대의 웅자를 비의 장막 안에 가두었다. 계곡은 이내
물이 불어 급류로 화했고, 암벽 사이 사이로 떨어지는 물줄기는 폭
포를 이루며 또 하나의 장관을 만들고 있었다.
가장 높다는 북대 아래쪽.
그가 나타난 시각은 빗줄기가 가늘어질 무렵이었다. 그는 산정을 향
해 빠르게 치달려 올라갔다.
소림사를 떠난 냉운이었다. 폭우를 뚫고 왔는데도 그의 옷은 조금도
젖어 있지 않았다.
"머지않았군."
냉운은 산중턱 즈음에 이르러 일단 걸음을 멈췄다.
그는 수라신궁을 찾는 중이었다.
수라신궁은 이제껏 금지(禁地)로 여겨지고 있었다. 그곳을 찾아 도전
했던 사람은 이제껏 단 한 사람, 신비마제뿐이었다.
수라신궁은 마도의 온상이었다.
수천의 거마들이 그곳에 운집해 있고, 백도인들은 마의 그림자를 피
해 오대산 삼백 리 일대에는 접근조차 하지 않는다.
"수라신궁이 십 리 안쪽에 있을 텐데…… 지키는 자들이 보이지 않다
니, 수라신궁을 보호한다는 세 가지 관문이 그리 뛰어난 것이란 말인
가?"
냉운은 주위를 둘러보다가 북쪽을 택해 발걸음을 옮겼다.
폭우로 인한 급류로 길은 아예 보이지 않았다. 천군만마가 날뛰는 듯
한 기세로 굽이쳐 흐르는 계곡수, 발을 잘못 디디면 물살에 휩싸여
그대로 나락으로 떨어질지도 모르는 일이다.
하나, 냉운은 평지를 걷듯 유유히 움직여 나갔다.
그가 북대 근처에 이르렀을 때는 빗줄기가 완전히 그친 후였다. 비가
사라지며 일대는 운무로 뒤덮였다. 어찌나 짙은지 한 치 앞도 내다
볼 수 없는 운무. 냉운은 밤을 꿰뚫어보는 안력을 지녔기에 조금도
방향을 잃지 않은 채 거대한 곡구를 향해 다가섰다.
악마의 아가리마냥 입을 벌리고 있는 곡구, 일 장 높이의 청석비 하
나가 그 위용을 과시하고 있다.
청석비 표면에는 여덟 자가 생겨져 있었다.
<무림금지(武林禁地) 침입자사(侵入者死)>
안으로 들어오는 사람은 죽음을 맞이할 것이라는 엄중한 경고문이었
다.
"후후……, 저 안에 틀어박혀 있는 모양이군."
그는 입가에 잔잔한 미소를 띠며 청석비를 넘어 들어갔다.
냉운이 양쪽의 깎아지른 절벽으로 인해 이루어진 좁고 긴 협곡 안으
로 날아드는 찰나, 여기저기서 호각 소리가 들려왔다.
삑! 삑!
고막을 찢을 듯 날카로운 호각 소리가 여운을 맺기 전.
우르르릉 ―!
벼락 치는 소리와 함께 양쪽 절벽이 뒤흔들렸다.
"고얀 놈들이군."
냉운은 절벽 꼭대기 위에서 돌덩이가 떨어져 내리는 것을 볼 수 있었
다.
'낙붕곡(落崩谷)이군. 침입자가 있을 경우 천 근 돌덩이를 수천 개
굴려보내 압사시킨다는…….'
냉운은 비웃음을 흘리며 신법을 돋우었다.
그의 몸뚱이가 흑연자(黑燕子)같이 빠르게 날기 시작했다.
삑! 삑! 삑!
그와 동시에 호각 소리도 급박해졌고, 떨어지는 돌덩이 수가 많아졌
다.
집채만 한 돌덩이가 폭우같이 쏟아져 내린다. 냉운이 골짜기 중간 부
분에 이르렀을 때, 길조차 이제는 보이지 않았다.
'죽음의 함정이군.'
냉운은 낙붕곡의 함정이 절정경신법을 완전히 무위로 돌릴 수 있는
현세지옥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순간, 만 근 돌덩이 하나가 바로 머리 위를 향해 유성(流星)같이 떨
어져 내렸다.
"이런 것을 두려워했다면 수라신궁을 찾지 않았을 것이다."
냉운은 중얼거리며 양 손을 합장하듯 했다가 머리 위쪽을 향해 활짝
벌려냈다.
"돌아가라!"
노한 목소리와 함께 두 줄기 폭풍 같은 장력이 일어났다.
꽈르르릉 ―!
벽공장력이 일어나 냉운의 머리를 향해 힘차게 떨어져 내리던 만 근
거석을 휘감았다.
직후 난붕곡 전역이 으깨어지는 듯 굉장한 폭음과 함께 석우(石雨)가
뿌려졌다.
돌비를 뚫고 날아오는 흑의인영 하나가 있지 않는가!
도저히 믿어지지 않는 일이었다.
두 개 손바닥으로 천 길 벼랑 위에서 떨어져 내리는 만 근 거석을 산
산조각으로 만들 수 있는 무공의 소유자가 있다는 사실이.
호각 소리가 쉴 틈 없이 터져 나왔으나 이미 늦은 후였다.
일 리 길이를 갖고 있는 골짜기가 돌더미로 거의 다 메워졌으나 냉운
을 붙잡아 놓지는 못했다.
낙붕곡을 무사히 빠져나온 냉운은 돌무더기가 여기저기 흩어져 있는
난석군 앞에서 걸음을 멈추게 되었다.
사방에서 싸늘하게 살기가 번져 나온다.
냉운은 호신강기를 거듭 전개하며 성큼 난석군 안으로 걸음을 옮겼다
.
무질서하게 늘어서 있는 돌무더기들. 진식에 해박한 자라면 그것이
십방천멸진(十方天滅陣)에 의해 놓여져 있다는 것을 알게 될 것이다.
생문(生門)은 아예 없다.
들어서는 순간 죽음의 장막이 펼쳐질 것이고, 대라신선이라도 그 안
에서는 살아남을 수 없다.
'후후……, 이런 마도진식으로 무림기인전주를 가둘 수 없다.'
냉운은 진세를 이미 꿰뚫어본 후였다.
그가 안으로 들어선 것은 물리칠 자신이 있기 때문이었다.
냉운이 십방천멸진 안으로 들어간 직후, 돌무더기 뒤쪽에서 무수한
인영들이 날아올랐다.
푸른빛 무복을 걸친 자들, 그들이 진세의 요소를 점하며 떨어지자 십
방천멸진이 발동하기 시작했다.
우우웅 ―.
사방에서 살풍이 일어났으며, 그것은 이내 거대한 와류를 형성하며
냉운의 주변을 맴돌기 시작했다. 냉운의 옷자락이 찢어질 듯 펄럭거
린다.
와류를 견디지 못하고 몸을 날리면 어느 틈에 날아온 수십 자루의 장
검에 꼬치처럼 꿰이게 된다. 머무른다면 진세의 압박에 의해 진기의
고갈을 느끼며 죽을 수밖에 없다.
냉운은 여전히 태연했다.
풍차마냥 다가서던 와류는 그의 몸 근처 일 장 근처까지 다가왔을 뿐
더 이상 다가오지 못했다.
지금 그는 호신강기로 십방천멸진의 진세를 밀어내는 중이었다.
"수라신궁에 도전할 자격이 충분하다."
청의무사 중 흰 수염을 배꼽 언저리까지 길게 기른 노인 하나가 냉운
을 보며 날카롭게 외쳤다.
"낙붕곡을 무사히 빠져나온 게 우연만은 아니로군. 불청객치고는 자
격이 있는 놈이다. 하나, 수라위사(修羅衛士)들의 눈이 시퍼렇게 살
아 있는 한 수라신궁 안으로 들어가려는 꿈을 버려야 한다."
은염노인이 말과 함께 손을 흔들자, 위사들이 더욱 빠르게 회전하기
시작했다.
휘휘휙!
압박감이 더해졌다.
수만 마리의 악룡이 똬리를 틀며 날카로운 이빨을 드러내 보이는 듯
했다.
'백룡항세(白龍降世)의 오묘한 변화군.'
냉운은 수라신궁에 대해 다시 생각하게 되었다.
수라신궁의 이름은 허명이 아니었다.
그들의 무사 하나하나는 강호 어디에 내어놓아도 손색이 없는 절정고
수들이었다.
냉운은 백의위사들의 수가 삼백에 달한다는데 적이 감탄하며 같은 순
간, 염가장의 혈겁을 기억했다.
'천하의 악독한 놈들.'
냉운은 살계(殺戒)를 어길 수밖에 없다고 여기며 여지껏 잘 사용하지
않았던 무시무시한 강기무공( 氣武功)의 구결을 외웠다.
그러는 가운데 진세는 보다 맹렬해졌다.
이제는 숨쉬기조차 힘들 지경.
냉운의 모습은 피어오르는 흙보라에 가려져 보이지 않게 되었다.
진세를 주도하고 있는 은염노인은 수라신궁의 호법당주(護法堂主)이
자 총위사장(總衛士長)이다.
그의 별호는 은염마룡(銀髥魔龍). 살행을 저지르다 무림삼기에 의해
죽었다 알려진 인물인데, 이렇게 버젓이 살아 있는 것이다.
"흐흐흐……, 철부지 애송이에게 수라신공의 절학(絶學)을 사용한다
는 것이 못마땅하나, 규칙이 그런 것이니 하는 수 없지."
은염마룡은 흰 수염을 쓰다듬으며 소매 속에서 붉은 소기(少旗) 하나
를 꺼냈다.
깃대가 황금으로 되어 있는 홍색 소기는 장난감같이 귀여워 보이는
물건이었다. 하나, 그것은 수백 위사들의 일거수일투족을 지휘할 수
있는 신위(神威)를 갖고 있는 물건이었다.
<수라영기(修羅令旗)>
수라신공의 호법을 책임지고 있는 총위사장의 권위를 상징하는 물건
이자 수라신궁에서 두 번째 권위 있는 물건이었다.
가장 무서운 물건은 수라신부(修羅神符)였다.
그것은 네모난 황금패(黃金牌)였고, 표면에는 기이한 도형(圖形)이
그려져 있다고 전해지고 있다.
그 도형은 한 곳의 위치를 알린다고 했는데, 그 위치는 바로 사대마
경(四大魔經) 중 하나인 수라마경(修羅魔經)이 감추어진 장소라고도
했고, 그 도형 자체가 오묘한 마공구결이라고도 했다.
어느 것이 진실인지 아는 사람은 희귀했다.
수라신부는 수라신궁의 궁주령부였고, 동시에 강호를 혈풍에 감기게
했던 사대마패 중 하나였다.
수라신부는 십만 명의 생사를 좌우할 수 있는 존귀한 물건이었다.
천하에 흩어져 있는 백스물다섯 개의 분타(分舵)와 분곡(分谷), 그리
고 이백 개의 비밀 장원(莊院)이 수라신부에 굴복하는 중이었다.
은염마룡이 들고 있는 수라영기는 수라신부 다음으로 존귀한 것이니,
그 가치는 더 말할 나위 없는 것이리라.
은염마룡은 수라영기를 꺼내 번쩍 쳐들며 일천 장 안에 있는 사람이
라면 충분히 들을 수 있을 정도로 크게 말했다.
"천검발섬진천지(天劍發閃震天地)!"
그의 말이 떨어지는 순간, 진세의 맨 앞줄을 구성하고 있는 삼십팔검
(三十八劍)이 냉운의 머리 위로 날아오르며 수중의 장검을 빗발치듯
쳐냈다.
스스슥 ―.
검푸른 빛이 근처를 물들였다.
하나같이 독이 발려진 검. 스치기만 해도 살이 썩고 피가 썩게 된다.
흙보라 속에 감추어진 냉운의 영준한 용모가 독검의 검광으로 인해
중인의 눈 안으로 들어왔다.
지금 그의 손바닥 하나가 명치 부근에 반듯이 펴진 채였고, 다른 손
은 힘없이 내리어져 있었다.
윙! 윙!
회오리바람을 가르며 짓쳐 드는 수십 자루 독검의 빠르기가 극에 달
하는 순간이었다.
"이것을 사람에게 사용하게 될 줄이야……."
냉운이 나직이 말하며 손바닥을 위로 쳐드는 찰나 아주 무서운 일이
벌어졌다. 그의 몸뚱이가 적색(赤色)으로 물들어 손바닥이 다섯 배로
부풀어올랐다.
우르르릉 ―!
검붉은 기류가 구름같이 피어올랐다가 적룡(赤龍)같이 꿈틀대며 육합
(六合)을 에워싸는 것이었다.
"어엇?"
일진의 삼십팔검이 기이한 수법에 흠칫 놀라 검세를 멈칫했다.
신기한 요술(妖術)에 접한 듯 눈이 휘둥그래 뜨여져 있는 삼십팔검의
고막이 은염마룡의 호통 소리로 뒤흔들렸다.
"뭣들 하느냐? 얼이 빠졌느냐?"
은염마룡이 노해 외치자 삼십팔검이 찬물을 뒤집어쓴 듯한 기분을 맛
보며 잠깐 늦추었던 검세를 더욱 강하게 쳐냈다.
파파팍!
서른여덟 자루 장검이 적무(赤霧) 속으로 파고들었다.
거의 같은 순간, 적무 중앙에서 대갈일성이 터져 나오며 붉은 기류가
소용돌이 모양으로 모여들었다가 다시 사위를 휘감았다.
우르르릉 ―!
핏물이 폭포수를 이루며 떨어져 내리는 듯한 착각이 일어났다.
삼십팔검은 찰나지간 손이 가벼워짐을 느꼈다.
서른여덟 자루 독검이 거의 동시에 부식되어 붉은 쇳가루로 변해 분
분(粉粉)히 날리지 않는가!
"마, 마법(魔法)이다!"
누군가 크게 소리치는 순간, 천마(天魔)의 노성(怒聲) 같은 파공성과
함께 서른여덟 개의 시체가 고무공 튀기듯 십 장 높이 퉁겨 올랐다.
검붉은 기류는 그 순간 거두어졌고, 적피혈안(赤皮血眼)의 괴형(怪形
)으로 화신했던 냉운의 몸뚱이도 원래대로 영준한 모습이 되었다.
주위가 절간같이 고요해졌다.
감히 입을 열어 말하는 자는 하나도 없었다.
온염마룡이 쥐고 있던 수라영기는 그의 발밑에 뒹굴고 있었다.
손아귀에 힘이 풀려 수라영기를 계속 쥐고 있을 수 없었던 것이다.
"마, 마인(魔人)이다."
십방천멸진은 한순간 지리멸렬되었다.
냉운이 보인 살수(煞手)는 백 년 이래 가장 무서운 살수로 기록될 것
이다.
'천마인(天魔印)의 위력이 상상보다 더하군.'
냉운은 서른여덟 백의위사를 거의 동시에 피떡으로 만든 수법을 다시
사용하지 않으리라 결심했다.
그것은 무림기인전의 심장부 안까지 들어갔다가 오보단장산에 죽고
만 요지천마의 비급에서 전수된 천마인 수법이다.
천하의 이대마공(二大魔功) 중 하나로 불리우는 수법이 천마인이다.
그 이름은 수백 년 전 무림인들의 뇌리 속에서 잊혀졌고, 다시는 출
현하지 않으니라 여겨졌었다.
― 천마인이 나타나면 천하가 피로 씻기우리. 혈화천지참(血化天地斬
)이 천마의 손도장에 뒤따르리! 사마공(四魔功)이 일 인(人)에게 주
어지고, 천수혈마(千手血魔)가 부활한다!
그것은 오백 년 전 강호에서 떠돌던 소문이자 저주였다.
지금 그 노래를 기억하고 있는 사람은 없고, 그런 노래가 있었다는
것조차 알지 못하는 사람이 대부분이다.
천수혈제는 신마(神魔)와 천마왕(天魔王)의 사조(師祖)가 되는 사람
이었다.
그는 수천 가지 마공을 익혀 천하제일인으로 군림하다가 최후 순간
마성(魔性)을 이기지 못하고 자신의 천령개를 박살내 죽은 사람이었
다.
그의 마공은 한동안 실전되었다가 천마와 신마라 불리우는 천하쌍마(
天下雙魔) 손에 재현되었었다.
천하쌍마 중 천마왕은 요지천마에게 절기를 남기고 죽었고, 신마의
절학은 절전되었다고 소문났다.
하나, 그의 절학은 절전되지 않았다.
그의 절학은 요지천마의 천마인이 냉운의 손에 의해 나타나기 이전,
강호에 나타나 있었다.
그것이 바로 사대마경의 마공이었다.
사대마경의 창시자(創始者)는 바로 신마였다.
그것을 아는 사람은 하나도 없었다. 냉운도 그것을 몰랐고, 그 사실
은 아무도 알지 못하는 일로 영원히 잊혀지기 쉬운 비밀 중 비밀이었
다.
사대마경이 한 사람에게서 나왔다는 것은 의미심장한 비밀이었다. 왜
냐하면, 사대마경이 만에 하나 한 사람에게 모여질 경우 과거 신마와
같은 절세마두가 나타난다는 것을 뜻하기 때문이다.
사대마경의 주인도 그것을 모르리라.
그것을 알고 있다면 마경을 한 권 갖는 것으로 만족하고 있지는 않으
리라.
자신이 시전해 낸 천마인의 위력에 경악해하던 냉운은 수라신궁의 위
사들이 무기를 내던지고 후퇴하는 통에 냉정을 되찾게 되었다.
이제껏 후퇴란 말을 몰랐던 수라신궁의 위사들은 한순간 썰물 빠지듯
사라졌고, 텅 빈 난석군만 남았다.
"더 이상 피를 부르는 일이 없었으면 좋겠다."
냉운은 씁쓸히 중얼거리며 수라신궁 쪽으로 다시 무영신법을 시전해
나는 듯 달려가기 시작했다.
냉운이 사라진 직후, 난석군 사이로 백의인영 하나가 유령처럼 스르
르 모습을 나타냈다.
파르르 떨리는 시선.
그 눈은 냉운이 사라진 방향에서 움직일 줄 몰랐다.
"천하를 제패하는 뜻밖의 방해자가 생겨났군. 강호 천지에 저런 놈이
있을 줄이야……."
그의 흰 복면이 식은땀으로 젖어 있었다.
'나보다 고강한 놈이 있다니…… 나보다 고강한 놈이 있을 줄이야…
….'
복면인은 이를 갈며 주먹을 불끈 거머쥐었다.
"흐흐……."
그의 입술 사이로 괴소(怪笑)가 흘러나왔다.
아주 잔혹한 웃음소리였다.
"나는 이미 천하를 다 얻은 것으로 생각했거늘, 새파란 놈 하나 때문
에 그 꿈이 산산이 깨지고 마는군. 하나, 그 누구도 나의 꿈이 이루
어지는 것을 막지 못한다. 무슨 수단을 써서라도 놈을 제거하겠다."
백의복면인은 중얼거리다가 냉운이 사라져 간 방향을 택해 한 줄기
백색 호선을 그으며 일순 자취를 감추었다.
냉운의 무영신법을 무색케 하는 절세신법이었다.
마도의 경신법 중 가장 뛰어나다는 천마비행술 (天魔飛行術)이 아닐
까?
그것은 구절마제(九絶魔帝)를 끝으로 강호에서 절전되었다고 소문난
상고절학이거늘, 어찌해서 백의복면인에 의해 재현되고 있는 것인지
…….
수라신궁은 수십만 평의 규모를 자랑하고 있었다.
그 안은 아방궁보다 더한 별세계였다.
수라신궁이 지난 삼사 년 사이에 이룩한 재력(財力)은 황궁(皇宮)을
능가하는 것이었다. 고루거각(高樓巨閣) 하나하나가 걸작이고, 일만
명 이상 되는 사람이 살아도 불편함이 없었다.
그곳은 곡(谷)과 진(陣)과 독림(毒林)이라는 세 가지 무서운 함정으
로 보호되고 있었다.
나는 새도 들기 힘들었고, 길을 아는 사람이 아니라면 백 날을 헤매
도 찾을 수 없는 장소였다.
하나, 삼백 년 전 세워져 수만 명의 목숨을 앗아갔던 무림기인전의
두 번째 주인이 되어 강호로 나온 냉운을 막지는 못했다.
냉운은 십방천멸진을 격파한 후 반시진이 못 되어 수라신궁이 바라보
이는 곳에 이르게 되었다.
그가 거쳐 온 길은 지옥도(地獄圖)보다 무섭다는 수라신공의 삼관(三
關)이었다.
그러나 냉운에게는 시시한 것으로밖에 여겨지지 않았다.
그는 무림기인전의 칠관(七關)을 거친 사람이었으니 수라신궁의 삼관
정도는 눈감고도 거뜬히 넘을 수 있는 것이다.
둥! 둥! 둥!
냉운이 수라신궁을 향해 가는 중 사방에서 고성이 터져 나왔다.
수라신궁은 거대한 절벽 면 아래 세워진 천연의 요새였다.
절벽은 안쪽으로 활같이 휘어져 있고 수라신궁의 성곽이 일직선으로
적벽을 가로막고 있다.
수라신궁 안으로 들어가는 문(門)은 단 하나, 폭이 오 장 높이, 칠
장에 달하는 거대한 철문(鐵門)이었다.
<수라천문(修羅天門)>
거대한 문 위에 걸려 있는 거대한 편액 위의 글씨가 그것이었다.
철문은 활짝 열려져 있었다.
둥! 둥! 둥!
수백 개의 북이 일제히 울리고 있었으나 눈에 뜨이는 사람은 단 하나
도 없었다.
모두 숨어 북을 치고 있는 것이다.
냉운의 입가에 비웃음이 역력했다.
"일컬어 통천마고(通天魔鼓)라는 것이군. 보통 사람이라면 북이 열
번을 울리기 전 피를 토하고 죽겠으나, 내게는 듣기 역겨운 소리일
뿐이다."
냉운은 지축을 뒤흔드는 북 소리 속에서도 태산같이 태연자약하기만
했다.
냉운이 수라천문에서 십 장 떨어진 곳으로 이를 때였다.
"멈춰라!"
창노한 목소리와 함께 문 안에서 나는 듯 달려나와 냉운 앞으로 다가
서는 은포노인 하나가 있었다.
그의 얼굴빛은 썩은 돼지간 빛깔이었다.
은포노인은 몸을 뒤집어가며 수십 장을 훌훌 날아 냉운에게서 일 장
떨어진 곳에 사뿐히 내려섰다.
냉운은 노인의 모습이 나타나는 순간 걸음을 멈추고 있었다.
은포노인은 냉운의 위아래를 훑어보고 더듬더듬 말했다.
"수라신궁의 삼관을 거뜬히 통과한 것을 보면 절세고수임에 틀림없는
데…… 어느 누구인가?"
"하하……, 냉운이란 사람이다."
냉운이 담담히 말하자, 은포노인이 상반신을 휘청였다.
"옥, 옥면살성자란 말이냐?"
"강호 친구들이 나를 그렇게 부른다는 것을 들었다."
냉운이 긍정하자, 은포노인이 이마에 땀방울을 매달았다.
"옥, 옥면살성자! 수라신궁은 강호동도들과 공존(共存)하기를 원하고
있다. 어찌 무림의 질서를 깨뜨리려 하느냐?"
"질서?"
"그, 그렇다. 수라신궁이 무림의 위계질서를 세우고 있는 것이 현실
이 아니냐?"
"흥! 이제까지는 그랬겠지."
냉운은 차갑게 말하며 왼손바닥으로 미끈한 턱을 쓰다듬었다.
은포노인은 겁먹어하며 뒤쪽을 지적했다.
"하여간 여기까지 온 것을 환영한다. 궁주께서 만나고자 하시니 안으
로 들어가는 것이 어떠냐?"
은포노인은 수라신궁의 총관(總管)이었다.
별호는 귀면마존(鬼面魔尊)이고 오십 년 전, 황하 근처를 장악하며
악행을 일삼다가 삼기 중 비룡신군에 의해 호되게 당해 수십 년간 은
거했던 자였다.
귀면마존이 들기를 청하자, 냉운이 단호히 거절했다.
"노괴 정도의 예우를 받고 안으로 들 수 없는 신분이다. 수라천마가
나오지 않으면 들어가지 않는다."
"뭐, 뭐라고?"
귀면마존의 얼굴이 검게 물들었다.
냉운의 말투가 너무도 당돌했기 때문이었다.
"하하하……."
냉운의 웃음 소리가 수라신궁의 기왓장을 들썩였다.
귀면마존은 웃음소리에 실린 진기에 피가 역류되어 세 걸음 뒤로 물
러나서야 겨우 신형을 안정시켰다.
냉운이 그 순간 웃음을 끊고 또박또박 말했다.
"나는 수라신궁을 멸망시키기 위해 왔다. 내가 원하는 것은 수라천마
의 수급이다. 들어가서 그렇게 전하라."
"미, 미친놈!"
귀면마존은 참을 수 없는 분노로 인해 욕을 해 대며 양 소매를 거칠
게 휘저었다.
츠측 ―.
섬뜩한 파공성이 일어났다.
귀면마존의 특기 일백팔 개 수리독침(袖裏毒針)이 시전되어 나가는
파공성이었다.
독침 하나의 무게는 먼지보다 가벼웠고, 거기 발려 있는 독은 열 마
리 황소를 즉사시킬 수 있는 맹독이었다.
수리독침이 일 장 거리를 나는 데는 탄지지간이 걸릴 뿐이었다.
냉운은 귀면마존이 무슨 수법을 시전하는지 전혀 모르는 듯 손끝 하
나 까딱하지 않았다.
"으흐흐……!"
귀면마존은 웃음을 참을 수 없었다.
"이제 보니 바보였군."
그는 수리독침이 냉운의 살 속으로 파고들었음을 믿어 의심치 않으며
냉운을 향해 걸음을 크게 내디뎠다. 공포에 젖어 있었던 주름살 가
득한 얼굴에 환한 미소가 떠올라 있었다.
"으하하하……!"
귀면마존은 냉운에게서 두 걸음 앞에까지 걸어가 다시 한 차례 앙천
대소를 터뜨렸다.
냉운은 그가 웃기를 마치는 찰나 기다렸다는 듯 손을 내밀어 땅바닥
을 가리켰다.
"노괴가 흘린 것이 저기 있는데, 왜 하늘을 보고 웃는지 모르겠군."
"뭐, 뭐라고?"
귀면마존은 눈을 화등잔만하게 뜨고 냉운이 가리키는 지면을 내려봤
다.
검게 변한 땅바닥, 맹독이 떨어지며 타 버린 자국이 분명했다.
귀면마존은 그제서야 자신의 추측이 완전히 빗나갔다는 것을 알고 다
시 공포를 느끼게 되었다.
'수라독침이 어떻게 땅으로 떨어졌단 말인가? 그것은 호신강기를 능
히 격파할 수 있는 것이거늘…….'
귀면마존이 사색이 되어 뒷걸음질 치자 냉운의 입술 끝이 조금 일그러
졌다.
"겁쟁이군."
중얼거리는 듯한 소리와 함께 그의 오른손 중지(中指)가 가볍게 오므
려졌다.
"에잇!"
귀면마존은 주위가 지옥으로 변한 듯 겁먹어하는 가운데 혼신공력을
다해 일학충천(一鶴 天)의 신법을 시전했다.
그의 몸뚱이가 은 화살같이 날아올라갔다.
냉운은 그가 칠 장 날아오르기를 기다렸다가 오므렸던 중지를 아주
가볍게 퉁겨냈다.
무형(無形)의 강기( 氣)가 명주실같이 가늘게 뽑혀져 허공으로 폭사
되어 갔고, 직후 단말마의 비명과 함께 혈우(血雨)가 촉촉이 흩날렸
다.
귀면마존의 등판에 오리알 만한 구멍이 생겼고, 그 구멍에서 피비가
뿜어져 나왔다.
귀면마존의 시체는 돌덩이같이 떨어져 내렸고, 근처가 핏물로 벌겋게
채색되어 갔다.
냉운은 냉혈한(冷血漢)으로 변화한 듯 잔혹한 미소를 짓고 있었다.
'일벌백계다.'
냉운은 내심 그렇게 위안했으나 숨어 지켜보고 있는 자들에게는 사신
(死神)의 왕림으로 여겨질 뿐이었다.
누가 잔혹한 마음씨와 함께 절세적 무공을 지닌 냉운을 제압해 수라
신궁의 평온을 돌이킬 것인가?
수라신궁의 무리들은 수만에 달하는 고수들을 일일이 기억해 보았으
나 자랑스레 내세울 사람이 떠오르지는 않았다.
있다면 열 손가락으로 꼽을 수 있을 정도이나 설마 그들이 신진 고수
를 맞이하기 위해 수라신궁 밖으로 나갈 것 같지는 않았다.
침묵이 흘렀다.
냉운은 아무도 나타나지 않자, 조롱의 웃음을 흘리며 수라신궁의 하
늘을 올려다보았다.
"수라천마란 위인은 듣거라!"
천리전음으로 인한 말소리가 수라신궁을 뒤흔들었다.
바람도 침묵하는 순간이었다.
"몇 마디 묻고 네 목을 자르기 위해 먼 길을 왔다. 어서 나와 지난 죄
를 속죄하고 목을 바쳐라!"
그의 말이 끝나기 전, 인기척이 보이지 않던 수라신궁 안에서 갈가마
귀 떼같이 쏟아져 나오는 열여덟 황삼노인이 있었다.
"쥐새끼 같은 놈!"
"천방지축 날뛰는 꼴을 더 이상 볼 수 없군. 이곳이 청성산 정도일
줄 아느냐?"
"흐흐……, 십팔천마(十八天魔)에게 번거로움을 끼치다니 네놈을 능
지처참해 살 조각을 들개에게 먹이겠다."
노인들의 신법은 구대문파 장문들을 능가할 정도로 쾌속했다.
냉운은 그 자리를 떠나지 않고 십팔천마라 자칭한 노인들이 자신을
빙 둘러싸기를 기다렸다.
십팔천마의 눈빛은 벽록색(碧綠色)이었다.
마공의 도가 남달리 뛰어났기 때문에 안광이 벽록색을 띠고 있는 것
이다.
"흐흐흐……!"
그들의 웃음소리는 진기를 흩트리는 힘을 갖고 있었다.
"옥면살성자라고?"
"네놈이 네 어미 뱃속에서부터 무공을 익혔다고 해도 우리 늙은이들
의 발가락 하나를 능가할 수 있느냐?"
"밟아 가루로 만들리라!"
십팔천마는 거대한 원형진을 이루고 두 팔을 넓게 벌렸다.
손끝이 서로 맞닿아지며 무형의 장벽이 형성되었다.
호신강기로 벽을 쌓는 것이다.
"흠, 제법이군."
냉운은 그들의 몸놀림을 지켜보다가 예의 냉막하고 낭랑한 말소리를
토해냈다.
"흐흐……, 네놈이 뭔가 느끼는 게 있는 게로구나!"
십팔천마 중의 괴수가 대표로 말했다.
나이 구십에 이른 흉측스럽게 생긴 노마(老魔)였다. 냉운은 그렇다는
듯 고개를 끄덕거리며 새빨간 입술을 가볍게 벌렸다.
"수라신공의 특징은 합벽하는 데 있지. 진원진기를 한데 모은다면 아
주 무서운 힘을 발휘하지."
"흐흐……, 눈썰미가 있군."
"좋다 하긴 이르다. 허점도 있으니……."
"허점은 없다. 네놈이 내공이 십팔천마의 내공을 한데 모은 것보다
강하기 이전에는 뚫지 못한다."
"어리석은 생각이군."
냉운은 비웃음을 흘리며 허리춤에서 은빛 보따리를 풀러냈다.
보따리가 풀리며 아주 두꺼운 도신을 지닌 핏빛 계도 하나가 나타났
다.
냉운은 계도의 도신을 손가락으로 훑으며 천천히 말했다.
"노괴들이 모르는 것도 무리는 아니다. 합벽진을 깨뜨리는 방법은 중
원의 무공이 아니고 천축무공이니까!"
"네놈이 천축국의 시시한 무공을 조금 아는 모양이구나!"
십팔천마는 가소롭다는 듯 말하며 오히려 포위망을 좁혔다.
그들은 냉운이 꺼내는 것이 전설적 신병(神兵) 백관계도(百貫戒刀)라
는 것을 알지 못했다.
너무 오래된 이름이고, 중원에는 잘 알려지지 않은 천축의 보도였으
니 알지 못하는 것도 무리는 아니리라.
"천축무공 중 한 가지 신기한 것이 있다."
냉운이 옛날 이야기하듯 말했다. 듣기 좋은 목소리였으나 듣는 사람
은 피부에 소름을 돋워야 했다.
살기가 짙기 때문이었다.
"그것은 점천혈마도(點天血魔刀)라는 것이다!"
"금시초문이군."
"생소한 이름이겠지. 하나, 한 번 겪어 보면 평생 추억으로 삼을 수
있을 것이다."
냉운은 수만 근 압력이 이는 곳에 서 있으면서도 옷자락 하나 흔들지
않았다.
아무런 방어도 하지 않는 듯 보였으나 사실 불사파해공(不死破解功)
을 사용하고 있는 냉운이었다.
그렇지 않다면 십팔천마가 만들어 내는 무시무시한 잠력(潛力)에 오
장육부가 터져 죽고 말았으리라.
냉운은 백관계도를 가볍게 들어올리며 도의 끝 부분을 콧날과 평행하
게 했다.
"도법(刀法)의 특징은 정신을 한 곳에 모으는 데 있다. 말하자면 낙
수(落水)가 바윗돌에 구멍을 뚫는 식이다."
"무, 무슨 소리를 지껄이느냐?"
십팔천마가 조금 당황하기 시작했다.
냉운이 말하는 것은 상승도법의 구결이기 때문이었다.
"정신일도하는 데서 무서운 위력이 나는 여러 가지 수법 중 가장 무
서운 것이 점천혈마도다. 그것을 시전하려면 천축비전 운도결(運刀訣
)을 터득해야 한다. 운도결을 터득한 후 도신(刀身)과 정기신(精氣身
)을 합일(合一)해 하늘과 땅을 몸 안으로 섬기며 아주 천천히 내민다
. 하나, 사실 도가 나아가는 속도는 번개같이 빠르다. 그러나 도법을
시전하는 사람은 그것을 느끼지 못한다. 왜냐하면 그의 정신이 도와
합해져 있어 망아(忘我)의 상태이기 때문이다."
냉운은 말을 마치며 눈을 지그시 감았다.
"조심해라!"
"무서운 놈이다."
십팔천마는 서로 용기를 북돋워 주며 진세를 바짝 압축시켰다.
순간, 이제껏 둔하게만 보이던 백관계도의 도신에서 섬망(閃芒)이 일
어나며 도강(刀 ) 한 줄기가 형성되어 있었다.
핏빛 도강이었다.
혈홍(血虹)이 일어나는 것 같은 착각이 드는 순간, 핏빛 도막(刀幕)
이 혼천혼지(渾天渾地)하며 오 장 이내를 거대한 그물같이 사로잡아
갔다.
그것은 펼쳐지는가 하는 순간 다시 사라져 흔적도 남지 않았다.
눈 깜박할 사이의 일이었다.
도강이 사라진 후, 많은 것이 변해 있었다.
서 있는 사람은 진중(陣中)의 냉운뿐이었다.
십팔천마는 이제 십팔천마라고 불릴 수 없는 반 도막난 인육(人肉)에
불과했다.
점천혈마도법의 결과라지만 그것의 창시자 천축혈마마저 몸서리치지
않을 수 없이 끔찍하지 않는가!
냉운은 백관계도의 도신에 피 한 방울 묻어 있지 않다는 데 야릇함을
느끼며 다시 은빛 보따리로 둔중해 보이는 도신을 둘둘 말아 허리춤
에 갈무리했다.
옥면살성자의 이름이 천하제일로 부각되는 순간이었다.
수라신궁의 십팔천마가 단 일 도(刀)로 몰살했다는 소문이 퍼지면 어
느 누구도 옥면살성자를 찾지 않을 것이다.
냉운은 무림의 상식을 깨뜨리며 다시 수라신궁을 향해 걸음을 내디뎠
다.
다섯 걸음 걸었을까.
조용하던 수라신궁 안에서 대갈일성이 터져 나왔다.
"쏴라!"
말소리의 여음이 끝나기 전.
핑! 핑! 핑!
허공을 찢는 파공성이 요란한 가운데 수천 발 철전이 담을 넘어 냉운
근처로 소나기처럼 떨어져 내렸다.
쇠화살의 길이는 세 자였고 끝 부분에 죽통(竹筒)이 묶어져 있었다.
화살이 지면에 닿는 찰나, 폭음이 일며 근처가 화염에 휩싸였다.
꽈르르릉 ―!
수천 발 화살이 폭음과 함께 대폭발을 일으켰다.
반경 오십 장 지면이 일 장 깊이로 훌렁 뒤집혔고, 백 장 이내가 숯
으로 화했다.
폭발의 여파가 극심해 수라신궁의 거대한 담장이 절반 이상 허물어졌
고 삼 리 이내의 건물이 균열되어 비스듬히 되어갔다.
초토(焦土)가 이런 경우를 두고 하는 말이리라.
펑! 펑!
폭발은 일각(一刻) 동안 끊이지 않았다.
수라신궁이 오 년 간 천하의 장인(匠人)을 붙잡아 공들여 만든 화탄(
火彈)의 구 할이 한 군데서 폭발하는 셈이었다.
궁수(弓手)의 수는 오백, 그들은 삼백 장 밖에서 강궁(强弓)에 철전
을 메겨 힘껏 쏘아대고 있었다.
아주 정확한 궁술이었다.
비록 헛수고에 지나지 않는 것이긴 하나…….
첫댓글 감사합니다
재미있게 읽었습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