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나능 그를 외 쓰느가?
지금은 새벽 4시쯤이고, 나는 꽤나 엉망이며, 눈에 뵈는게 없다. 방금까지 이 글쓰기를 애써 미뤄둔 채, 노래에 빠져 있었다. 정확히 말하자면 17년째 친구인 언니와 노래를 부르며 흥을 방출하는 중이었다. 음.. 윗집 아랫집에겐 층간소음이 좀 미안하긴하다. 암튼 나는 방금까지만해도 내 머리에 달린 말꼬리로 헤드뱅잉을 즐기던 참이었다. 매우 신나게 즐겨버린 탓에 지치고 피곤하지만 나는 또 기어코 글을 쓰겠다며 자판기를 붙들고 있다.
이번 글은 꽤나 자유분방하게 써내려갈 생각이다. 딱히 책을 읽고 쓰는 것도 아니고, 딱히 주제에 맞출 생각도 없으며, 딱히 글에 대한 설계 같은 걸 세우지도 않았다. 오늘은 완벽주의를 좀 내려 놓고 ‘대충’ 써볼 것이다. 아마 대충 쓰기 위해 노력을 다할 것이니 이것 또한 대충이 아니긴 할 것이다. 하지만 완벽하기 위한 노력 보단 대충하기 위한 노력이 좀 더 가볍지 않은가. 그런 의미에서 글의 제목도 ‘최선’을 다해 ‘대충’ 써보았다.
암튼 그리하여 먼저, 이 글을 읽을 사람들에게 양해를 구한다. 물론 이 글을 읽을 미래의 나에게도 양해를 구한다. 글의 전개가 뜬금 없을 수 있고 정신 없을 수 있으며 필요치 않은 말들로 넘쳐날지도 모른다. 또 이 글에는 사리분별을 잃은 새벽감성과 졸음이 다소 함유 되어 있다는 점, 미리 유감을 전한다.
언제부턴가 나는 글이라는 것을, 책이라는 것을 꽤나 중요하게 인식하고 있다. 물론 누군가 숙제를 주지 않으면 쓰지않고 읽지도 않지만 암튼 중요하다고는 생각하고 있다. 어려서부터 적지 않게 책을 읽어왔지만, 단지 이야기 읽기만을 좋아했을 뿐, 글에는 재능도 관심도 없었다. 글은 나에게 숙제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던 것이다.
하지만 최근들어 계속 느끼는 것이 있다. 글쓰기는 내가 할수 있는 가장 좋은 ‘사고’라는 것이다. 머릿속으로만 사고하는 것은 제대로 이뤄지지 않는다. 아무리 의식적으로 언어적인 사고를 한다 하지만 그 와중에 무의식의 흐름이 꺼지질 않는다. 무의식은 잡생각들로 의식을 계속해서 방해할 것이다. 또 우리는 방금 내가 무슨 맥락으로 어떤 생각을 했는지 잘 기억하지 못한다. 그것을 기억할 수 있게 하는 것은 단지 기록 뿐이다. 이러니 제대로된 합리적인 사고를 할 수 있겠는가? 표현되지 않은 사고는 그저 실체없이 머릿속을 둥둥 떠다니며 그저 내 안에 갇혀 거묵거묵 해질 것이다. 여기서 글쓰기의 가장 핵심 역할이 나오는 것 같다. 글쓰기는 나를 객관화 시킨다는 것이다. 내 속에 있는 생각을 읽는 것이 아니라 밖으로 꺼내놓은 나의 생각을 읽는 것은 훨씬 객관화가 잘 될 것이다. 물론 나의 것을 완전 제 3자가 읽듯이 할 수는 없겠지만 어쨌든 내 안에 있을 때보단 밖에 있는 것이 훨씬 더 다양한 생각을 해볼 수 있을 것이다. 이것만으로도 글은 사람에게 있어 많은 고민과 생각들을 정리시킬 것이고 해소시킬 것이다.
나는 사실 별로 생각이 없다. 선선한 바람 밑에 누워서 멍때리길 가장 좋아하고 하루 중 잠자는 일과를 가장 좋아한다. 불가피한 고민이 생기는 것이 것이 가장 힘들다. 진로나 누군가와의 갈등이나 뭐 그런 거 말이다. 이러한 것들만 빼면 나는 굳이 생각할 이유를 느끼지 못한다. 안하면 그만인 것이다. 하지만 이렇게 살다보니 어느순간 내가 세상 멍청이가 되어가는 것 같았다. 글과 책을 멀리하고 인터넷을 가까이 할 때가 있었을 것이다. 그저 불필요하고 쓸데없는 정보들만 무수히 내 머리를 스쳐가며 주입되었다. 뭔가 이상했다. 내가 주체적이지 못한 기분이었다. 어딘가 끌려다니며 기진맥진된 기분이 가장 컸다. 나의 가장 큰 불안은 이러다 몸만 큰, 생각은 크지 않은 그러한 어른이 되는 것이었다. 이렇게 가다간 홀로 아무 결정도 못하는, 주체적이지 못한 인간이 될 것 같았다. 사실 궁극적인 나의 불안함은 이렇게 살다 한 어른이된 어느날, 내가 우매하다는 사실을 인정하고 나 자신을 깨뜨려야 하는 날이 오는 것이었다. 그리하여 나는 가장 먼저 객관화가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지금부터 나를 조금씩 깨먹고 싶었다. 조금씩 말이다. 나에게 너무 큰 충격이 되지 않을 만큼 말이다.
그리하여 책을 집어들고 글을 집어드는 것이다. 사실 숙제라는 의무감이 제일 먼저이다. 하지만 그 숙제를 나에게 부여해야한다는 생각은 바로 그러한 이유에서 비롯되어 있을 것이다. 앞으로도 글을 나에게서 떼고 싶지 않다. 글을 잘 쓰겠다는 생각은 내려놓고 그저 쭉, 일기만이라도, 글을 쓰며 다시 펼쳐보고 나를 조금씩 조금씩 깨뜨릴 수 있었으면 한다. 그리하여 글이 나를 조금이라도 성장시킬 수 있을 것이라 믿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