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석초 시인은1909년 6월4(음력 4월17일) 서천군 화양면 활동리(옛지명:한산면 숭문동)에서 태어났다. 본명은 응식, 아호는 유인, 초석, ‘석초(石艸)’를 사용했다. 6세 때에 이미 한문공부를 시작하였으며, 사서삼경을 익힌 후인 13세 때 한산보통학교 3학년에 편입한다. 16세 때인 1924년 봄에 결혼하고 이듬해 경성제일고등보통학교에 입학하여 약 2년을 공부하다가 병으로 휴학한다. 그리고 금강산으로 여행을 떠난다.
1929년 그의 나이 21세 때 일본으로 건너가 일본 법정대학 철학과에 다니며 프랑스 작가 폴 발레리에 심취한다. 당시 유행하던 사회주의에 관심을 갖게 되고 안막과 박영희와 교류하면서 카프(KAPE)의 맹원으로 활약한다. 그러나 1925년에 박영희와 함께 카프를 탈퇴하고 다음해 병으로 귀국 한 후에 위당 정인보 선생의 소개로 이육사 시인과 교류한다.
1938년 이육사 시인과 함께 경주를 여행하며 그와의 우정은 깊어진다. 어려운 시기에 여행은 친밀한 관계를 형성한다. 이후 30년이 지난 1968년 5월에 신석초 시인은 옛 친구 이육사 시인의 시비를 세우는 일에 기여한다. 이육사 시인과의 옛 추억을 회상하며 1968년 4월 동아일보에 ‘육사(陸史)를 생각한다’ 라는 시를 발표한다.
첫댓글 좋은 시네요, 잘 읽었습니다.
깊이를 더하는 애닯은 시향에 젖어갑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