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명기 16장 1~17절/시간을 구속하라(285/429)
유대인들이 지켜야 할 삼대 절기가 유월절, 칠칠절, 초막절이다. 절기라고 하면 우리는 먹고 즐기며 노는 것으로 생각한다. 그러나 이스라엘에게 있어서 유월절은 먹고 즐기며 노는 날이 아니다. 순례적인 절기라는 뜻이 있다. 왜냐하면 절기를 지키기 위해서 하나님께서 정하신 곳에 가서 절기를 지켜야 하기 때문이다(16,17). 하나님께서는 유대인들이 절기를 지킬 때 아무곳에서나, 자기가 살고 있는 그곳에서 지키라고 하지 않았다. 하나님께서 정하신 곳이 있다. 그곳은 성전이다. 그러니까 성전까지 가야 하기 때문에 절기는 순례적인 의미가 있다는 것이다.
1.이스라엘의 3대 절기는 유월절을 시작으로 하여, 칠칠절을 거치고, 초막절로 끝나게 된다. 유월절은 1월 14일로 오늘날 계산으로 하면 3월 말이나, 4월 초가 된다. 유월절 날은 애굽에서 해방된 날을 기념하면서 지키는 절기이다(3). 이 날에는 누룩없는 떡을 먹어야 하고, 또한 초실절이라고 해서 1월 16일에 첫 수확한 보리 이삭 한 단을 제단에 바쳐야 한다. 그리고 다음에 칠칠절인데 이 날은 유월절을 기점으로 하여 50일째 되는 날로 오순절이라고 하기도 하고, 첫 수확한 밀을 성전에 바치는 날로 맥추절이라고 하기도 한다. 하나님께서 풍성하게 복을 주신 것을 감사하며 드리는 절기이다(10). 이 날은 우리로 하면 5월 20일 경이 된다. 그리고 한 참 지나서 10월 말이나 11월 초에 추수한 것을 다 끝내고 지키는 절기로 초막절을 지키라고 하였는데 초막절은 광야 40년을 기억하며 하나님께서 인도하신 것을 감사하며 지키는 절기이다. 그런데 이때는 모든 추수를 마치고 저장할 것을 저장하고 지키는 절기이기 때문에 수장절이라고 하기도 한다.
2.그러고 보면 절기를 지키는 일에 있어서 크게 두 가지 중요한 것과 연결이 되어 있다. 첫째는 농사를 짓고 수확과 관계가 있다는 점이다. 유월절은 보리의 첫 수확을드리는 것과 관계가 있고, 칠칠절은 밀의 첫 수확과 관계가 있고, 초막절은 모든 것을 추수한 것과 관계가 있다. 이것을 통해서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가르쳐 주고 있는 것은 먹고, 마시고 사는 것은 모두 하나님의 은혜에 있다는 것을 잊지 않게 하시기 위함이다. 먹고 마시고 우리가 살아가는 모든 삶에 필요한 것은 하나님이 공급하시고 채워주신다. 우리는 수고하고 애쓰지만 그 모든 것들이 열매 맺게 하시고, 우리가 거두어 들이게 하시고, 누리게 하시는 것은 하나님의 복이다. 이것을 잊어버리면 우리는 세상에 살아가면서 세상의 물질의 노예가 되어 버린다. 그러기에 먹고 마시는 것이 사람에게 달려 있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 달려 있다는 것을 항상 기억하며, 하나님께 감사와 찬송으로 영광을 돌리는 성도가 되자.
둘째는 애굽에서 출애굽하여 가나안 땅에 들어가서 정착하는 것과 관계가 있다는 점이다. 유월절은 출애굽을 기억하고 기념하면서 지키는 절기이고, 칠칠절은 하나님께서 때를 따라서 광야 같은 세상에서 먹을 것을 공급해 주신 것을 감사하며 지키는 절이기고, 초막절은 광야 40년 동안 평안한 안식처가 되어 주심을 기억하면서 지키는 절기이다. 그래서 유월절로 시작된 출애굽의 역사는 초막절로 마무리가 된다.
이것이 영적으로 우리에게 큰 은혜를 준다. 유월절은 시작을 의미한다. 앱굽을 벗어나는 것이며, 젖과 꿀이 흐르는 땅으로 들어가는 것이다. 그래서 출애굽이 진짜 의미를 가지려면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땅인 가나안 땅에 들어가야 한다. 거기에서 하나님의 풍성한 복을 누리게 된다. 그러니까 다시 말하면 우리가 예수를 믿고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다면, 이제 우리는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그 가나안 땅의 풍성한 복을 누리는 자로 영적으로 성장하며 그 자리까지 가야 한다는 것이다. 예수를 믿고 구원을 받아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것은 신분의 변화다. 하나님은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 우리를 새 사람으로 만드셨다. 그러나 우리가 구원을 받았다고 해서 죄도 생각이 안나고, 하루아침에 거룩하게 되는 것이 아니다. 예수를 믿고 구원을 받은 자는 이제 신앙생활이 시작이 된 것이다. 그리고 그 신앙의 수준이 날마다 성장하면서 가나안 땅에 들어가서 안식의 자리에 서는 자리까지 가야 한다.
예수 믿는 사람들에게 제일 중요한 것은, 그가 하나님의 사람으로 거듭난 것은 불변하는 신분이지만, 그가 가진 신분에 걸맞게 살아가는 자리까지 가는 것은 상당한 과정과 시간이 필요하다(롬6:1,2-그런즉 우리가 무슨 말을 하리요 은혜를 더하게 하려고 죄에 거하겠느냐/ 그럴 수 없느니라 죄에 대하여 죽은 우리가 어찌 그 가운데 더 살리요). 이 말씀은 내가 구원에 관한 조건이나 원인을 제공하지도 않고, 노력하지도 않고, 요구하지도 않았는데 하나님의 은혜와 능력으로 구원을 받았다면, 이제 우리가 애쓰고 노력할 것이 무엇인가? 하나님께서 알아서 은혜롭게 다 좋게 해 주실 것인데, 그런데 그게 아니라는 것이다. 우리는 죄 가운데 살 수 있는 사람이 아니라는 것이다. 이제 신분이 바뀌었기 때문에 새 사람으로 옷을 입고, 새 사람으로 살아가야 한다는 것이다(롬6:14-죄가 너희를 주장하지 못하리니 이는 너희가 법 아래에 있지 아니하고 은혜 아래에 있음이라). 우리가 구원을 받았지만 여전히 우리에게는 죄를 짓고 싶은 욕망이 있다. 그런데 죄를 짓고 싶은 욕망이 있다고 해서 죄가 더이상은 너의 주인이 되지 못하게 하라는 것이다. 왜냐하면 죄가 더 이상 우리의 주인이 아니기 때문이다. 죄는 우리의 주인이 아니라, 우리가 배격해야 할 대상이고, 우리의 주인은 우리를 구원하신 예수 그리스도다. 그러니까 주인되신 그리스도가 명령하는 그 명령을 따라서 죄를 멀리하고, 구원의 큰 기쁨을 누리라는 것이다. 그것은 바로 그리스도의 사람으로 거룩해지며, 경건해지며, 사랑이 넘쳐 흐르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