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립 대전현충원 참배
일제침략과 6·25전쟁, 월남전 등에서 활약한 애국지사와 순국선열 및 호국영령을 추모하기 위해
1955년 7월 15일 서울 동작동에 설립한 국립묘지의 안장능력이 한계에 이르게 되자
박정희 대통령은 지방 국립묘지 설치검토를 지시하였고
1976년 4월 14일 충남 대덕군 유성읍 갑동리(현재 대전광역시 유성구 현충원로 251)의 현 위치에
대전국립묘지를 설치할 것을 결정하였다.
이에 국방부는 1976년 5월 11일 지방 국립묘지 설치준비위원회를 구성하고
1979년 4월 1일부터 공사를 본격 착수하여
1985년 11월 13일 전체 면적 약 322만㎡(97만 4천평)의 현 국립대전현충원을 준공하게 되었다.
공사기간 중이던 1982년 8월 27일부터 안장을 시작한 이래 지금까지
국립대전현충원은 조국과 민족을 위해 장렬히 산화하신 호국영령 및 순국선열을 모시고
그분들의 생전의 업적을 추모하고 있다.
이후 국립대전현충원은 2006년 1월 30일 ‘국립묘지의 설치 및 운영에 관한 법률’ 시행으로
소관부처가 국방부에서 국가보훈처로 바뀌게 되었다.
국립대전현충원은 문필봉을 조종산(祖宗山)으로 옥녀봉을 주산(主山)으로 하고 있으며
명산인 계룡산을 태조산(太祖山)으로 삼고 있다.
택리지에 의하면 태조산인 계룡산은 삼각산, 오대산, 구월산과 더불어
우리나라 4대의 역량 있는 큰 터 중 하나라고 한다.
문필봉은 형상이 붓끝같이 되어 있어 유래한 이름이며
우뚝 빼어난 봉우리는 불길이 이는 듯하고, 이 불빛이 성역을 두루 비치고 있는 듯하다.
이 문필봉에서 다시 솟구쳐 내려 이룬 옥녀봉은 마치 옥녀가 금반(金盤)을 대하고 있는 형상을 하고 있다.
이처럼 국립대전현충원의 지형은 명산인 계룡산의 맥을 이어 받은 문필봉과 옥녀봉을 정점으로
병풍처럼 둘러친 좌우능선이 좌청룡·우백호를 이루고 있어 묘역으로 아주 이상적인 명당(明堂)자리라 하겠다.
천마웅비상
순국선열과 호국영령의 넋을 기리며 세필의 천마가 힘찬 기세로
조국을 영원히 약진, 번영으로 이끈다는 의미이다.
호국분수탑의 조각인물상
호국분수탑은 1983년 12월에 준공이 된 것으로 전면에 대형화강석 좌대에
조형물과 좌우에도 4인의 조각인물상이 있으며,
중앙 제일 높은 곳에는 대형 청동 십장생 투조는 호국영령의 영생을 기원하는 위에 대형 조형물이 있다.
조형물 주변에는 분수대가 있으며, 주변에는 낮은 회양목이 심어져 있다.
대전현충원은 가장 많은 애국지사가 잠들어 있으며
국가원수, 장병·장군, 독립유공자, 국가사회공헌자, 순직공무원, 경찰관, 소방관, 의사상자, 독도의용수비대,
제2연평해전 전사자(서해교전 참수리호 전사자), 연평도 포격전 전사자, 천안함 46용사 묘역이 있다.
국가원수묘역에는 국가원수중 유일하게 《최규하》 전 대통령과 《홍 기》 여사 부부의 묘소가 있으며
국방과학연구원 폭발사고로 숨진 연구원,
제자들을 구하다 세월호에서 빠져 나오지 못한 안산 단원고 교사들의 묘소도 있다.
애국지사 묘역에는 백범 김구 선생의 모친인 《곽낙원》 지사,
매헌 윤봉길 의사의 도시락 폭탄 보자기를 만든 《연미당》 지사,
최초의 여성조종사 《권기옥》 지사,
'대한민국 임시정부 안주인' 이라는 별명을 가진 《정정화》 지사도 대전현충원에 잠들어 있으며
김구, 이동녕, 이시영 선생 등 임시정부 주요 요인 중
'《정정화》가 해 준 밥을 안 먹은 사람이 없었다'고 합니다.
2021년 8월 15일 봉오동 전투의 주역 《홍범도》 장군의 유해를 실은 특별수송기가
1920년 중국 길림성 봉오동 전투에서 승리한지 101년 만의 카자흐스탄에서 날아왔다.
《홍범도》 장군은 스탈린의 강제 이주 정책으로 카자흐스탄에서 광복을 못 보고 돌아가셨는데,
옛 소련 땅에는 아직도 고국으로 돌아오지 못한 애국지사들의 유해가 많다고 한다.
대전현충원에는 이름만 들어도 익히 알만한 인사들도 안장되어 있는데
영화 '아리랑'을 만든 독립운동가 춘사 《나운규 》
'사랑손님과 어머니' 작가이자 독립운동가인 《주요섭》
일제치하에서 아름다운 우리 노랫말을 만든 '동요의 이버지' 《윤석중》
1936년 베를린 올림픽때, 유니폼 일장기를 가리고 비통한 심정으로 시상대에 오른 마라토너 《손기정》
천안함 침몰 장병들을 구하기 위해 몸을 아끼지 않았던 《한주호》 준위
1983년 미그기 몰고 북한에서 귀순한 《이웅평》
대한민국이 가난했던 시절, 스포츠로 국민들에게 자신감과 자긍심을 심어주었던
'아시아의 물개' 수영선수 《조오련》 과 역도산의 제자인 '박치기왕' 《김일》 등이 있다.
현충문
현충탑에 입장하기 직전의 문으로 1982년 5월에 준공되었으며
현충문 현판이 예전에는 전두환 전 대통령 글씨에서 지난 5월에 안중근체로 교체가 되었다.
앞에는 대형 넓은 광장에서는 각종 행사시 이용 되는 곳이다.
현충탑
조국과 민족을 위해 산화하신 순굴선열과 호국영령의 충의와 위훈을 영구히 추앙하고자 세운 탑이다.
탑신의 3면에 투조로 되었으며 중앙에 승리의 영광상과 탑신에는 과거, 현재, 미래문화를 상징하는 조각이 있으며
좌, 우측에는 청동군상으로 애족, 애국, 호국의 의미가 있다.
탑 내부에는 시신을 찾지 못한 순국선열과 호국영령, 무명용사의 유해를 모신 위패봉안실과 봉안당이 있다.
탑의 높이는 43m, 폭은 110m이며, 제단 앞쪽 하단에 헌시비가 오석에 새겨있습니다.
앞의 버튼을 누르고 안내방송에 따라 참배행사 진행
묘역 전경
현충광장을 중심으로 좌측 묘역에는 장병 제1묘역, 소방공무원 묘역, 순직공무원 묘역
의사상자묘역, 독도의용수비대 묘역과 호국철도기념관이 있다.
후면에는 독립유공자 제1묘역, 국가사회공헌자 묘역, 국가원수 묘역, 장군 제1묘역이 있다.
우측에는 경찰관 묘역, 장병 제2~4묘역, 독립유공자 제2~5묘역, 제2연평해전 전사자묘역
연평도 포격전 전사자묘역, 천안함 46용사 묘역 등이 있다.
첫댓글 한달전에 다녀 왔지요~^^
다시 보니 반갑네요^^
지나는길 가끔 들려봅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