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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규어(JAGUAR, 1922년)
영국의 자동차 회사. 현재는 랜드로버와 함께 인도의 자동차 회사 타타 모터스 산하의 재규어-랜드로버의 일원이다.
1922년, 영국의 오토바이광이었던 두 엔지니어, 윌리엄 라이온즈(William Lyons)와 윌리엄 웜슬리(William Walmsley)가 스왈로우 사이드카 컴퍼니(Swallow Sidecar Company)SSC?란 이름의 작은 제작소를 세우면서 시작되었다. 처음에는 오토바이를 위한 사이드카를 제작하는 조그마한 제조소에 불과했던 이 회사가 지금도 영국인들이 자부하는 럭셔리카 메이커가 되는 전환점이 된 사건이 있었다면, 1931년, 시험적으로 자체 제작했던 자동차의 차체(Body, 당시에는 지금과 같은 모노코크 섀시를 가진 차가 없었고, 프레임 섀시 기반의 자동차였기 때문에 이런 것이 가능했다)를 당시 영국의 국민차였던 오스틴社의 7(seven)에 물린 ‘SS1(SS는 당시 사명이었던 Swallow Sidecar의 이니셜)’을 그 해 열렸던 런던 모터쇼에 출품하면서부터이다. SS1의 성공 요인은, 예나 지금이나 킹왕짱 초호화 럭셔리카 메이커였던 벤틀리를 닮은 스타일링이였다. 게다가 가격은 벤틀리의 1/3에 불과했다.
SS1의 성공을 바탕으로, 라이온즈는 자동차 사업에 더욱 박차를 가하려고 했지만, 공동 창업주였던 웜슬리와 사이가 틀어져서 결별하고 만다. 하지만 신 모델 개발을 늦출 수는 없었기에, 라이온즈는 다른 곳에서 유능한 엔지니어들을 대거 기용하여 전적으로 자동차만을 제작하는 회사로 방향을 잡게 된다. 스월로우 사이드카 컴패니는 1935년 훗날 우리가 아는 그 재규어라는 이름의 원형이 되는 2.5리터 엔진의 ‘SS 재규어’를 출시했고, 그 이듬해인 1936년 100mph를 돌파한 ‘SS100’을 잇달아 출시하며 좋은 반응을 얻었다.
2차대전이 끝나고, 스월로우 사이드카 컴패니는 비로소 재규어(Jaguar Car Ltd.)로 사명을 바꾸게 되는데, 이유는 회사의 이니셜(SS)이 나치 독일의 악명 높은 전쟁범죄 집단 슈츠슈타펠의 그것과 똑같았기 때문이었다.
1948년 창업주인 윌리엄 라이온즈는 자신이 직접 설계한 ‘XK120’을 새로이 출시하면서 재규어의 역사에 한 획을 그었다. 1955년에는 세단형인 Mk 시리즈의 첫 차인 MkⅠ을 발표했는데, 2.4리터 엔진을 얹은 이 차는 최고속도 193km/h에 이르렀다. 이후 1959년 발표된 MkⅡ는 4등식 헤드램프를 가진 재규어 디자인의 효시로 2.4리터와 3.4리터 모델이 있었으며, 시속 201km까지 달릴 수 있었다. 게다가 이 MkⅡ 3.8모델은, 1960년부터 3년간, Tour de France의 Touring-car 부문을 싹쓸이 할 기세하여 다시금 성능을 입증해보였다.
그리고 1960년에는 재규어에 온갖 경사가 줄줄이 이어졌다. Tour de France의 Touring-car 부문에 대한 첫 승전보와 함께 재규어는 버밍행 스몰 암스(Birmingham Small Arms, BSA)라는 회사로부터 영국 최초의 자동차 메이커, 데임러를 인수하게 되는데, 이는 이후 재규어 고급 세단의 브랜드 네임인 ‘데임러(소버린)’의 유래가 되었다.
재규어의 최고 걸작이자, 가장 아름다운 차로 손꼽히는 ‘E-타입’은, 바로 이 때 탄생하게 되었다. 창업주인 라이온즈는 뒷부분을 마음에 안 들어했고 잘 팔리지 못할 거라고 했지만, 르망24시 레이스를 호령하던 선대 경주차들로부터 물려받은 걸출한 성능과 안락한 승차감, 거기다 경쟁모델이었던 페라리나 마세라티에 비교하면 반 도 안되는 합리적인 가격에 디자이너 말콤 세이어의 섹시한 스타일링까지 겸비한 E타입은 1961년 3월에 있었던 제네바 모터쇼에 출품되자마자 그야말로 대박을 터뜨렸다. 그리고 1974년 생산이 완전히 중단되기까지, E-타입은 총 72,500여 대가 생산이 되었다.
하지만 이렇게 잘 나가던 재규어에게 재정 위기가 닥쳐오기 시작했다. 1966년 브리티쉬 모터(British Motor Corporation, BMC)에 합병되어 수 차례 경영진이 뒤바뀌는 수모를 겪다가, 브리티쉬 모터 홀딩스(British Motor Holdings, BMH)로 창씨개명당했다. 브리티쉬 모터 홀딩스는 다시 1968년 리랜드(Leyland)와 합병하여 브리티시 레일랜드(British Leyland Mortor Company)가 되는 우여곡절을 겪었다. 이 때 생산된 모델이 XJ6 설룬인데 이 모델은 이후 30년이나(!!) 생산될 정도로 장수 모델이 되었고, 지금은 재규어 XJ 세단으로 내려오고 있다. 그리고 창업주인 윌리엄 라이온즈가 1972년에 은퇴하면서 재규어는 또다시 위기를 맞았다. 이를 극복하기 위해 XJ12, XJS 등을 부랴부랴 출시했지만, 브리티시 레일랜드 소속 메이커들의 고질적인 문제였던 조악한 품질과 신뢰성으로 명성을 깎아먹었다. 이후 재정 문제로 고전하던 브리티시 레일랜드는 라이더 보고서(Ryder Report)에 따라 1975년에 국유화되었으나, 1984년 마거릿 대처 정부의 민영화 정책에 따라 다시 재규어 자동차로 분리되면서 민영화되었다. 이 와중에 1985년 설립자인 윌리엄 라이온즈가 사망했고, 1989년 재규어는 포드에 합병되고 말았다. 그리고 포드 산하로 애스턴 마틴과 볼보가 들어오면서 프리미어 오토모티브 그룹(PAG)이라는 새로운 부문이 탄생했다.
이후 PAG의 일원으로 재규어는 신뢰성과 생산성을 향상시키기 위해 포드의 일부 차종들과 플랫폼을 공유하게 되었는데, 이렇게 해서 탄생된 차가 바로 ‘S-타입’과 ‘X-타입’이다. S-타입은 중형 모델로서 포드 산하의 링컨 LS의 후륜구동 플랫폼을 공유하고, X-타입은 유럽 포드에서 생산하는 몬데오의 전륜구동 플랫폼을 공용했다. 특히 S-타입같은 경우는 1999년 미국에서 올해의 상품에 선정되어 재규어의 재건을 돕기도 했다. X-타입은 재규어 역사상 유례없는 가로배치 전륜구동 베이스였지만, 막판에 출시된 2.2리터 디젤 모델만 전륜구동으로 나왔고 대부분은 AWD(트랙션 4)로 나왔다. 하지만 대중차인 몬데오의 전륜구동 플랫폼을 고급 브랜드인 재규어에 적용시켰다는 악평을 받은 후 2009년에 단종되었다. 이후 사실상의 후속으로 후륜구동 컴팩트 세단인 XE가 2015년에 나올 때까지 엔트리 모델이 비어 있었다.
2000년에는 르망24시 레이스를 마케팅에 이용한 선례를 참고하여 ‘재규어 레이싱(Jaguar Racing)’ 팀을 만들고 재규어 사상 처음으로 F1에 출전하는 등 제2의 전성기를 구가하기도 했으나 X-타입의 실패, 좀처럼 나아지질 않는 품질 문제, 판매 악화, 모기업인 포드의 위기 등으로 인해 랜드로버와 함께 인도의 타타에 인수되었다. 당시 품질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예로 이런 말이 있다. '재규어를 제대로 타려면 2대가 필요하다. 한 대를 타고 다니는 동안 다른 한 대를 수리 맡겨야 하니깐' 덕분에 고급 자동차의 이미지가 곤두박질쳐서 미국에서 인기가 없는 자동자 Worst 10에 랭크되는 굴욕을 겪기도 했다.
하지만 수석 디자이너인 이안 칼럼이 진두지휘하여 2007년에 발표한 컨셉트 카 "C-XF"의 디자인을 바탕으로 디자인을 싹 다 고치기 시작했다. 그 결과 S-타입의 후속으로 2007년에 출시한 XF와 5세대 XJ(X351)가 재규어의 부활에 불씨가 되고 있다. 평가도 굉장히 좋은 편. 수석 디자이너인 이안 칼럼의 디자인이 마지막 희망이다. 그리고 또 희망적인(?)것은, 현재 타타에게 넘어간 후에도 주요 기술이나 엔진 등의 주요 구성품은 앞으로도 계속 포드에서 제공해 준다는 것. 포드에서 다운사이징을 위해 개발한 243마력 직렬 4기통 2.0리터 에코부스트 가솔린 터보 엔진은 크고 아름다운 5세대 XJ의 롱 휠베이스 모델에도 달려 있다.
2007년 XF의 출시 이후 재규어의 디자인은 XF의 출시 이전에 공개했던 컨셉트카 C-XF를 바탕삼아 기존의 클래식한 디자인에서 탈피했다. 그리고 XF 이후부터 자동변속기 레버가 원형으로 나오며, 이거는 랜드로버에도 이어졌다.
승용 커먼레일 디젤 엔진은 포드 산하에 있었을 적에는 푸조의 커먼레일 디젤 엔진을 이용했다. 심지어 전륜구동밖에 없는 푸조의 207마력 V6 2.7리터 커먼레일 디젤 엔진을 들여와 S-타입과 XJ에 세로배치로 얹어서 이용한 적이 있다. 현재는 자체개발 디젤 엔진을 이용 중이며, 최근에는 "인제니움"이라고 불리는 신형 2.0리터급 커먼레일 디젤 엔진을 선보였다. XE와 레인지로버 이보크 등에 인제니움 2.0 커먼레일 디젤 엔진이 장착된다.
2013년형 XJ 시리즈 이후 카스테레오의 다운그레이드가 가해졌다. B&W 1,200W → 메리디안 825W. 이는 B&W와 재규어의 협업 관계가 끊긴 것으로, 이후 마세라티가 B&W를 탑재하게 되었다. 다만 B&W의 음은 재규어 시절이 더 깔끔한 느낌이다.(마세라티의 경우 조금 탁한 듯한 소리가 나온다.)
2015년에 서서히 연식이 차던 XF를 모델체인지 한 후 2016년에는 브랜드 최초의 SUV인 F 페이스의 판매를 시작했다. 각 자동차 관련 매체마다 터져나오는 찬사와 출시 즉시 절판이라는 성과는 재규어가 이 새로운 모델들에게 얼마나 많은 신경을 썼는지 알 수 있는 부분이다. 과거의 과오를 돌이키지 않겠다는 확고한 의지와 트렌드에 맞춰 SUV 세그먼트를 확장시킨 게 엄청난 성공요인이 되었다.
2017년에 XF 스포트브레이크를 출시하고 XJ를 제외한 전 차종에 SVR 뱃지가 달린 모델들을 내놓을 예정이다.
대한민국에서의 재규어
대한민국에는 인치케이프를 통해 랜드로버와 함께 재규어를 판매했다. 이후 포드 산하로 들어오면서 포드세일즈서비스코리아로 이관되었고 2000년 PAG의 출범에 따라 2001년에 PAG코리아로 다시 이관되었다.
2003년 재규어와 랜드로버 브랜드의 통합 운영이 결정되면서 PAG코리아 산하 부서인 재규어&랜드로버코리아 부서로 발족했고, 타타의 인수 이후에는 2008년 재규어랜드로버코리아 부서가 분리됨과 동시에 독립 법인으로 출범하여 현재 대한민국에서 직판을 맡고 있다.
중고차 시장에서 감가상각이 심한 브랜드 중 하나다. 보배드림 내의 자료에 의하면, 가격이 나와 있는 재규어의 차량 중 2010년식 XJ가 4천만원대인 경우가 있을 정도고, 2009년 XF 디젤 중고 모델은 2천만원대가 나올 정도. XF의 전신인 S-타입은 2007년식이 2천만 원대로 더 낮다. 2012년식 XJ V8 5.0P는 2년도 채 되지 않았을 때 반값이 되었다. 이는 재규어의 종특인 잔고장(특히 구 모델) 때문으로 보인다.
종이접기로 유명한 김영만 선생님의 차량이 5세대 XJ인 것으로 알려져 화제를 모았는데, 본래는 제네시스를 타고 다녔다고 한다. 친구가 이민을 가게 되어 XJ를 처분하게 되자, 본래 몰고 다녔던 제네시스를 처분한 후 친구의 XJ를 중고로 사서 타고 다닌다고 한다. 당시 3,000만원대에 XJ를 중고로 샀는데, 신차 가격(1억 이상)은 나중에 알았다고 한다. 개이득 또한 XJ가 잔고장이 많다고 언급한 바 있다.
감가상각이 심각한 이유 중 또 다른 하나로는 낮은, 아니 최하위 수준의 보험 등급이 손에 꼽힌다. 재규어는 프리미엄 브랜드라도 중저가 차량 브랜드인 포드, 푸조와 함께 수입차 보험 등급 최하위인 1등급에 자리잡고 있는데, 같은 집안 식구가 된 고급 SUV 브랜드인 랜드로버의 보험 등급이 벤츠, 포르쉐와 어깨를 나란히 하고 있는 와중에 엄연히 프리미엄 브랜드인 재규어가 중저가 브랜드이자 국내 A/S가 답이 없는 수준이기로 정평이 난 포드, 푸조와 동급 취급을 받는다는 건 심각한 문제다. 당장 XF는 같은 조건일 때, 경쟁 모델인 벤츠 E클래스의 두배 가량의 보험료가 나오고, F-타입은 슈퍼카인 아우디 R8과 보험료가 동급인 수준.
이를 종합하면 높은 가격에 비해 잦은 잔고장과 비싼 수리비 + 비싼 보험료 = 높은 유지비 = 중고차 시장에서 단점으로 작용 = 물건이 빨리빨리 팔리질 않음 = 팔리지 않은 기간동안 차량 가치는 계속 하락...감가상각의 늪에서 헤어나올 수가 없는 구조인지라 제조사와 수입사의 개선 노력이 시급하다.
2015년에는 슈퍼스타K7의 스폰서로, 우승자에게 차량이 지급되며 4명의 심사위원이 앉아 있는 의자에 재규어의 로고가 박혀 있다.
재규어 랜드로버의 퍼포먼스 디비전, 즉 재규어의 M 혹은 AMG역할을 맡은 부서다. 비교적 최근에 만들어진 부서로, 원래 재규어는별도의 디비전 없이 회사 내에서 자차들의 고성능 버전을 만들었지만 라이벌 사들과 지속된 경쟁을 하기 위해선 재규어도 퍼포먼스 디비젼을 창립해야하는 상황이었고,결국 SVO는 재규어와 랜드로버 2사의 퍼포먼스 튜닝 목적으로 창립되었다. 현재 이들이 손 댄 모델은 재규어 내에선 F-타입 SVR 하나로 F-타입을 포르쉐 911 터보 S와 경쟁하는 괴물로 만들어내었다. 추후 XE, XF, 그리고 F-페이스도 SVR 버전이 발매될 것이라고 한다. 2017년 발매 예정인 XF 의 왜건 버전이 첫타자일 듯.
• 영국산 고성능 자동차를 대표하는 회사는 애스턴 마틴이라고 흔히들 알고 있으나, 역대 재규어의 고성능 스포츠 모델들은 XK나 XJS를 제외하면 애스턴 마틴처럼 운동성능에서 상당히 불리한 GT카로 나온 자동차가 없다. 죄다 하나같이 날렵한 운동성능과 날카로운 손맛을 추구하는 정통의 경량 퓨어 스포츠카나 슈퍼카로 출시되었던 관계로, 의외로 90년대 까지만 해도 차량의 전반적인 성능 면에서는 애스턴 마틴을 훨씬 뛰어넘어 당대를 대표하는 슈퍼카들과 나란히 어깨를 같이 할 정도로 인정 받았었다. 대표적으로 1990년대에 나왔던 재규어 XJR-15와 뒤이어 그 후속으로 나온 재규어 XJ220이 바로 그것이다. 덕분에 이런 초고성능 이미지가 아직은 유효하게 남아있던 시기에 애스턴 마틴을 재치고 재규어의 이름으로 F1팀이 꾸려지게 된것. 하지만, 안타깝게도 이 두 자동차들이 판매되던 시기인 90년대 초에는 슈퍼카의 2차 세계대전이 일어났었던 시기 였던 지라, 하필이면 항상 재규어의 슈퍼카 출시 시기를 전후로 강력한 라이벌들이 끊임없이 쏟아져 나와버려, 잠깐 반짝 하다가 소리소문없이 잊혀지는 운명을 맞이하는 경우가 대부분 이었다. 특히 재규어 XJ220 같은 경우에는 원래 220mph, 그러니까 약 350km/h 이상의 속도로 달릴 수 있는 차를 의미하는 것이었는데, 당시 최고의 슈퍼카의 쌍두마차로 꼽히던 포르쉐 959와 페라리 F40을 잡으려는 발상으로 만들게 되었다. 당초 계획에는 530마력의 출력을 발휘하는 6.2리터 V12 엔진을 리어 미드십 베이스로 얹고 AWD가 적용된, 납작한 디자인의 제대로 된 슈퍼카였다. 그러나 정작 차체 문제 및 배기가스 문제로 계획과 달리 엔진이 3.5리터 V6 터보로 교체되어 버렸고, 이에 따라 출력과 토크는 소폭 증가했지만 어째선지 목표한 톱 스피드인 220mph에는 못 미쳤다고 한다. 게다가 휠씬 빠른 맥라렌 F1도 나온 상황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당초 판매 목표인 220대를 채우고도 남은, 총 275대를 생산했다고 한다. 한편 그 슈퍼카들의 후손이라 할수 있는 C-X75 역시도 선대 모델들 처럼 출시 시기가 매우 안좋아 개발은 했으나, 경제불황등을 이유로 5대만 생산되고 양산조차 하지못했다.
• 포드에서 타타로 넘어가기 전에 현대자동차가 인수한다는 설이 나오기도 했었다.
• 알람 포 코브라 11에서 주인공의 BMW와 벤츠 못지않게 재규어 차들이 자주 부서진다. 다만 재규어 측의 공식적인 지원이 없었는지 구형 모델을 쓰고 있다. 초기 에피소드에서는 구형 XJ를 주로 썼으나, 2010년대 이후에는 S-타입도 쓰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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