머나먼 설렁탕의 기원 ![](https://img1.daumcdn.net/relay/cafe/original/?fname=http%3A%2F%2Fncc.phinf.naver.net%2Fncc01%2F2012%2F1%2F19%2F187%2F7px.jpg)
설렁탕은 조리법이 단순하다. 소의 여러 부위를 솥에 넣고 물을 부어 끓이기만 하면 된다. 한반도에서 소는 선사시대 때부터 가축으로 키웠고 무쇠솥은 삼국시대부터 있었으니 한민족은 먼 옛날부터 설렁탕을 먹었을 것이다. 그러나, 그렇게 흔히 먹을 수는 없었다. 한반도의 소는 일소였기 때문이다. 조선만 하더라도 소를 못 잡게 단속을 하였다. 병들거나 늙어 죽은 소, 다쳐서 일을 부릴 수 없는 소는 잡아 먹었다. 그때 가장 쉽게 할 수 있었던 음식이 설렁탕이다. 조리법만 단순한 것이 아니라 적은 양의 고기로 많은 양의 탕을 만들 수 있으니 쇠고기 음식 중에 설렁탕이 가장 많았을 것이다. 그런데, 옛 문헌에서 설렁탕에 대한 기록은 볼 수가 없다. 근대 이전의 기록이란 대체로 그 당시 권력집단에 관한 것만 적을 뿐이기 때문이다. 설렁탕은 평민의 음식이었을 것이다. 1800년대 말엽의 책인 [시의전서]에 고음(膏飮)이란 음식이 나온다. "다리뼈, 사태, 도가니, 홀때기, 꼬리, 양, 곤자소니, 전복, 해삼을 큰 솥에 물을 많이 붓고 넣어 뭉긋한 불에 푹 고아야 맛이 진하고 뽀얗다"고 하였다. 전복에 해삼까지 들어간 화려한 음식이다. 이 고음을 두고 곰탕의 한 종류로 해석하기도 하는데, 현재 한국에서 팔리고 있는 곰탕과는 다른 음식으로 보아야 한다. 고음이라는 이름만으로 곰탕과 관련지을 것은 아니다. 1940년에 나온 [조선요리]라는 책에는 곰국과 설렁탕을 구별하여 적고 있다. 곰국은 지금의 곰탕과 비슷하다. "사태, 쇠꼬리, 허파, 양, 곱창을 덩이째로 삶아 반숙이 되었을 때 무, 파를 넣어 간장을 조금 넣고 다시 삶는다. 무르도록 익으면 고기나 무를 꺼내어 잘게 썰어 열즙(熱汁)에 넣고 후추와 파를 넣는다"고 하였다. 설렁탕은 "쇠고기의 잡육, 내장 등 소의 모든 부분의 잔부를 뼈가 붙어 있는 그래도 하루쯤 곤다"고 하였다. 곰국은 고기와 내장을 넣고 그리 오래 끓이지 않으며, 설렁탕은 고기와 내장 외 뼈까지 넣어 장시간 끓이는 것이 다르다 할 것이다. 소가 흔해지니 설렁탕도 번창하였다 ![](https://img1.daumcdn.net/relay/cafe/original/?fname=http%3A%2F%2Fncc.phinf.naver.net%2Fncc01%2F2012%2F1%2F19%2F187%2F7px.jpg)
한민족의 밥상은 밥과 국, 반찬으로 구성되어 있다. 밥 한 그릇을 맛있게 먹기 위해 국과 반찬이 함께 놓이는 것이다. 식기가 부족하거나 많은 사람들이 한꺼번에 밥을 먹게 되어 일손이 달릴 경우 한 그릇의 밥에 반찬을 올리거나 국을 더하기도 한다. 밥에 반찬을 올리면 비빔밥이고, 밥에 국을 더하면 국밥이다. 한민족의 패스트푸드인 셈이며, 근대 이전 장시 등에서 파는 음식은 대체로 이 비빔밥과 국밥이었을 것으로 추측할 수 있다. 2012년 현재 재래시장에서 가장 흔히 파는 음식도 비빔밥과 국밥이라는 사실이 이 추측의 근거가 될 수 있다. 설렁탕도 국밥이다. 한국 외식산업 역사에서 그 시초의 음식에 설렁탕을 놓아도 무방할 것이다. 설렁탕이 한국 외식시장에 크게 번진 것은 일제강점기 때의 일이다. 잡아먹을 소가 많아졌기 때문이다. 일제는 한반도의 소(그 당시에는 '조선우'라 하였다. '한우'라는 이름은 1950년대에 작명된 것이다)를 일소에서 고기소로 만들었다. 고기가 맛있고 번식을 잘하며 가죽의 질도 좋다 하여 적극적인 소 사육 정책을 폈다. 1930년대 말 한반도의 소는 180만 마리에 이르렀으며, 그 당시에는 쇠고기가 돼지고기보다 쌌다. 그러니 설렁탕 값도 쌌다. 1930년 동아일보 기사에 보면 경성 시내 음식점 조합이 음식 가격을 일제히 내리기로 하였는데, 냉면, 장국밥, 어복장국, 떡국, 대구탕반 등은 15전으로 정한 데 비해 설렁탕은 10전으로 하였다고 보도하고 있다. 2차세계대전과 한국전쟁을 거치면서 소 사육 기반이 무너졌다. 쇠고기 가격은 올랐고, 설렁탕 값도 올랐다. 설렁탕이 몸에 좋은 음식인양 포장된 것은 이때부터의 일이라 할 수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