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르도가 자기들만의 등급체계를 갖는 것처럼 부르고뉴 또한 4등급으로 아뻴라시옹을 나누고 있다. 아뻴라시옹 레지오넬 (Appellation Régionale, 생산량의 56%), 빌라즈 드 부르고뉴 (Villages de Bourgogne 혹은 아뻴라시옹 코뮌 30%), 프르미에 크뤼 (Premier Cru, 12%), 그랑 크뤼 (Grand Cru, 2%, 꼬뜨 도르와 샤블리의 33개 그랑 크뤼)로 우리가 보르도에 비해 부르고뉴 프르미에 크뤼나 그랑 크뤼를 쉽게 접할 수 없는 이유는 바로 여기에 있다. 보르도는 워낙 포도밭 면적이 넓어서 그랑 크뤼급 와인들도 많이 생산되지만, 부르고뉴의 경우, 전체 재배 면적이 보르도의 1/3 정도밖에 되지 않고 그 중 그랑 크뤼 포도밭의 면적은 매우 작은 편이다. 예를 들면 보르도 1등급 중 하나인 샤또 라피트 로쉴드(Ch. Lafite Rothschild)의 재배면적이 100ha인 데 반해 샤블리 그랑 크뤼 밭은 7개를 모두 합쳐야 101ha가 될 정도다.
부르고뉴의 등급은 지역을 나누는 개념으로 뛰어난 와인에 등급을 부여하는 보르도의 등급 개념과는 차이가 있다. 많은 소유주들이 땅을 중요시 여기는 농부인 까닭일까 ? 등급은 포도밭의 위치, 자연조건 등에 따라 엄격하게 정해지고 한번 정해진 등급은 시간이 흘러도 변함이 없다. 훌륭한 떼루아르가 훌륭한 와인을 만든다는 개념이 깊이 깔려 있다.
그럼 부르고뉴의 단위별 지역 이름을 살펴보자. 보르도 만큼이나 많은 마을이 존재하는데, 앞서 말했듯이 품질 좋은 와인을 고르기 위해 기억해 둘 가치가 있다. 꼬뜨 드 뉘, 꼬드 드 본 등은 구역명이고 즈블레 샹베르땅(Gevrey Chambertin), 샹볼 뮈지니(Chambolle Musigny)는 마을 이름이다. 아므로제(Amoureuses)는 샹볼 뮈지니에 속한 프르미에 크뤼 밭이고 뮈지니(Musigny)는 그랑 크뤼 밭 이름이다.
<예> 꼬뜨 드 뉘 -> 샹볼 뮈지니 -> 아므로제(프르미에 크뤼), 뮈지니(그랑크뤼)
부르고뉴 와인에는 AOC 표시와 함께 그랑 크뤼 혹은 프르미에 크뤼 표시가 되어 있어 쉽게 알아볼 수 있다. 이는 꼬뜨 도르의 와인 생산지를 중심으로 적용하기가 편하다.
좁고 길게 뻗은 생산지역
샤블리는 부르고뉴에서 제일 북쪽에 위치해서 부르고뉴의 관문 역할을 하기 때문에 ‘부르고뉴의 골든 게이트’라는 별명을 가지고 있다. 샤블리는 쥐라기 시대의 석회질 토양을 가지는데 이 작은 굴 화석으로 덮인 지층은 샤블리를 세계적인 화이트 와인의 생산 지역으로 만드는데 일조를 했다. 그래서 샤블리 와인에서 미네랄 성분이 강하게 느껴지고 무엇보다 굴 요리와 잘 어울리는 것도 이 때문이다.
샤블리에서는 샤블리, 쁘띠 샤블리, 샤블리 프르미에 크뤼, 샤블리 그랑 크뤼 4개의 등급으로 와인이 생산되고 있다. 재미있는 점은 이 4개의 등급으로 포도밭의 위치를 가늠할 수 있는데, 샤블리 그랑 크뤼 포도밭은 사방에서 햇볕이 잘 받을 수 있는 언덕에 자리잡고 있다. 기억해 둘만한 샤블리 그랑 크뤼는 블랑쇼(Blanchot), 레 끌로(Les Clos), 발뮈르(Valmur), 그르누이유(Grenouilles), 보데지르(Vaudésir), 프뢰즈(Preuses), 부그로(Bougros) 모두 7개이다.
▶ 경사진 샤블리의 포도밭
‘황금의 언덕’으로 불리는 꼬뜨 도르는 중심 도시인 본(Beaune)을 사이에 두고 북쪽은 꼬뜨 드 뉘, 남쪽은 꼬뜨 드 본으로 나눠진다. 좁은 언덕으로 이어지는 꼬뜨 드 뉘는 레드 와인 지역으로 유명하고 29개 아뻴라시옹이 있는데 마을 이름이 곧 부르고뉴 와인의 명성과 통한다. 예를 들면 9개의 그랑 크뤼급 밭을 가지고 있는 즈블레 샹베르땅(Gevrey Chambertin), 유연하고 향기로운 와인을 생산하는 샹볼 뮈지니(Chambolle Musigny), 세계 최고의 부르고뉴 그랑 크뤼 와인을 생산하는 본 로마네(Vosne-Romanée), 뉘 생 조르쥬(Nuits ST. Georges) 등 이며 그랑 크뤼 포도밭인 샹베르땅(Chambertin), 끌로 드 라 로쉬(Clos de la Roche), 뮈지니(Musigny), 끌로 드 부조(Clos de Vougeot)는 그랑 크뤼급 밭 답게 240~320m정도의 언덕 위에 자리잡고 있다. 포도밭에 위치한 언덕배기에는 주로 석회질 토양이 넓게 퍼져 있어 피노 누아로 만드는 레드 와인의 구조를 만들고 장기 보관이 가능한 잠재력을 갖게 한다.
▶ 위대한 부르고뉴 그랑 크뤼 와인을 생산하는 로마네 꽁티 포도밭
화이트 와인 생산 지역으로 유명한 꼬뜨 드 본은 습기 찬 바람으로 포도 송이들이 좀더 빨리 익고 북쪽의 꼬뜨 드 뉘 보다 지질학적으로 비교적 균등한 토양을 가지고 있다. 특히 꼬뜨 드 본 남쪽은 석회암과 자갈로 이뤄진 토양으로 섬세하고도 장기 보관이 가능한 화이트 와인을 만들고 있다. 이곳의 화이트 와인들은 같은 샤르도네라도 샤블리의 화이트와 차이가 확실하고 우아한 특징을 가지며 프랑스에서도 가장 비싼 가격으로 팔린다. 특히 뫼르소(Meursault), 쁠리니 몽라쉐(Puligny Montrachet)와 샤샤뉴 몽라쉐(Chassagne Montrachet) 마을이 유명하며 그랑 크뤼 밭은 몽라쉐(Montrachet)와 슈발리에 몽라쉐(Chevalier Montrachet), 바타드 몽라쉐(Bâtard Montrachet)로 최고의 부르고뉴 화이트가 생산된다.
▶부르고뉴의 화이트 품종인 알리고떼
꼬뜨 도르의 연장선상에 있는 꼬뜨 샬로네즈는 로마네스크 교회와 오래된 지역 포도밭 등으로 관광객의 눈길을 사로잡는 곳이기도 하다. 쥐라기의 석회질 토양으로 포도밭도 동남쪽을 향하고 있어 여러모로 꼬뜨 도르와 닮은 구석이 많다. 메르뀌레이(Mercurey), 지브리(Givry), 륄리(Rully)에서 주로 피노 누아가 생산되고 몽따니(Montagny), 륄리에서 샤르도네가 생산되며 부즈롱(Bouzeron) 은 화이트 와인 품종인 부르고뉴 알리고떼의 재배지로 유명하다.
부르고뉴 남단에 위치한 마꼬네는 마꽁(Mâcon)시 주변에 위치한 구역으로 상큼하고 과일향이 두드러지는 샤르도네로 유명하다. 더구나 마꼬네의 화이트 와인은 꼬뜨 도르 와인의 반 값이면 충분하기 때문에 가격대비 좋은 와인을 쉽게 만날 수 있다. 뿌이이 퓌세(Pouilly Fuissé), 뿌이이 뱅젤(Pouilly Vinzelles), 뿌이이 로쉐(Pouilly Loché)는 화이트 와인으로 명성을 얻은 마을 AOC이다.
매년 11월에 출시되는 보졸레 누보로 유명한 보졸레는 부르고뉴 지방의 남쪽 끝으로 갸메(Gamay)라는 품종으로 레드 와인을 생산한다. 갸메로 만든 와인은 색깔이 아주 엷고 밝으며 향기가 아주 화려하다. 떫은 맛이 적고 신맛이 강한 것도 이 와인의 특징.
보졸레라고 해서 전부 보졸레 누보를 생산하지 않는다. 보졸레, 보졸레 슈페리에르(Superieur:알코올 도수가 1% 높음) 에서 생산되는 와인들은 신선하고 과일 주스 같은 느낌을 준다. 보졸레 북부에 위치한 보졸레 빌라즈(Villages), 10개의 보졸레 크뤼(Cru)에서 생산된 와인들은 좀더 깊은 맛을 낸다. 이 10개 보졸레 크뤼의 이름은 쌩따무르(St-Amour), 쥘리에나(Julienas), 쉐나(Chenas), 불래 아 벙(Moulin-a-Vent), 플뤠리(Fleurie), 쉬루블르(Chiroubles), 모르공(Morgon), 레니에(Regnie), 부루이(Brouilly), 꼬뜨 드 부루이(Côte de Brouilly) 으로 레이블이 컬러풀하고 예뻐서 언뜻 봐도 금방 알 수 있다.
Wine Spectator 에 나온 부르고뉴 레드 와인의 빈티지 가이드를 보면, 꼬뜨 드 뉘의 경우, 1999년 92점, 2000년 86점, 2001년 89점, 2002년 96점, 2003년 92-96 사이로 최근 해로 올수록 눈에 띄게 품질이 우수해지고 있다. 반면 꼬뜨 드 본의 경우, 1999년 90점, 2000년 81점, 2001년 84점, 2002년 92점, 2003년 90-94점 으로 꼬뜨 드 뉘와 큰 차이가 없음을 알 수 있다.
부르고뉴 와인은 엄격한 포도 수확량의 제한, 비싼 가격, 상속에 의해 조각난 포도밭(끌리마)와 생산자에 따른 품질의 차이, 편차가 심한 떼루아 등 여러 취약점을 가졌음에도 불구하고 그 마술 같은 매력에 빠지면 헤어나오기 힘들어진다. 오랫동안 잘 숙성된 부르고뉴 레드 와인은 강렬하면서도 복합적인 맛과 향이 입 안에 오래오래 남는다. 화이트 와인은 어떤가… 한마디로 사랑스러우며 섬세한 맛과 향으로 보관상태만 좋으면 과하지 않은 무게감과 바디감을 느낄 수 있다. 와인을 마시는 즐거움이 안다면 부르고뉴 와인도 빼놓지 말고 즐겨찾기에 꼭 넣어두시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