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위빠사나 명상에서의 알아차림
위빠사나 명상의 핵심을 간추려보면 몸과 마음에서 일어나는 일체의 현상을 있는 그대로 즉각적이고 분명하게 알아차리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경험에 대해 있는 그대로 알아차린다는 것은 경험에 대해 비교, 분석, 판단, 혹은 추론 등을 개입하지 않고 순수하게 관찰하는 것을 말한다(김정호, 1996). 즉, 경험에 대해 생각하는데 초점을 두는 것이 아니라, 경험에 대해 직접적이고 체험적인 자각을 하는데 초점을 두는 것을 말한다(Teasdale, 1999).
위빠사나 명상의 핵심적 요소는 사띠(sati)이다. 사띠의 사전적 의미는 자각(awareness), 주의(attention), 기억하기(remembering) 등의 의미를 담고 있다. 영어권에서는 mindfulness, awareness, noting, attention 등으로 번역되어 사용되고 있으며, 이 중 mindfulness가 가장 보편적으로 사용되어오고 있다. mindfulness는 마음챙김, 마음지킴, 알아차림, 마음집중, 주시 등의 한국어로 번역되고 있으나, 심리학계에서는 마음챙김이 가장 자주 사용되고 있다(김정호, 2004).
위빠사나 명상의 핵심이 사띠이므로 흔히 위빠사나 명상을 Satipatthana Vipassana Meditation이라고도 한다. satipatthana는 sati와 patthana의 복합어이다. 사띠는 ‘기억하다’라는 의미를 지닌 동사 어근에서 파생된 명사이다. 하지만, 마음의 기능으로서의 사띠는 ‘과거를 기억하는 기능’이라기보다는 ‘마음의 현전(presence of mind)', '현재에 대한 주의집중’, ‘분명한 알아차림’, ‘충분히 깨어있음’, ‘주의 깊음’ 등을 의미한다. patthana라는 말은 ‘긴밀하고, 확고하며, 흔들리지 않는 확립 혹은 적용’을 의미한다. 이 두 말을 결합해보면 satipatthana는 ‘관찰 대상에 대한 긴밀하고 확고하며 흔들리지 않는 알아차림과 주의집중의 확립’이 된다. 위빠사나 명상에서 오직 하나의 가장 중요한 본질은 ‘자연스럽게 나타나는 현상들에 대해서 마음을 챙기고 관찰하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김재성, 2002),
김정호(2004)는 마음챙김은 독특한(어떤 선입관이나 분별심이 없는) 방식의 주의이고 알아차림은 그러한 주의에 따른 의식이라고 지적한다. 김교헌(2008)은 마음챙김은 수용적 주의 과정이 핵심이 되고 동기와 상위 인지적 조절 과정이 선행 조건이 되며 그 결과로 알아차림이 수반되는 과정이라고 하였다. 즉 마음챙김의 과정은 수용적 주의 과정이 순조롭게 진행되도록 하려는 동기를 가지고 상위 인지적 기술을 구사하여 또렷한 알아차림이라는 결과를 얻는 과정이라는 것이다.
다시 말해서 사띠(sati)는 이렇듯 다양한 의미를 갖고 있는 바, ‘mindfulness’는 ‘유념(留念)하는 상태’를 말하고, ‘awareness’는 ‘알아채고[깨닫고] 있는 상태’를 말한다. 다시 말해 ‘mindfulness’는 마음이 대상에 붙어 놓치지 않는, 혹은 그 대상을 잊지 않는 상태를 말하고, ‘awareness’는 마음이 대상을 분명하게 알고 있는 것으로, 자각(自覺, self-consciousness)이나 인식(認識, recognition)이 진행되는 ‘앎’의 상태라고 볼 수 있다. 또한 심리학자들 사이에서 사띠는 때로 attention으로도 번역되는데 여기에는 사띠를 독특한 주의 양식으로 정의하려는 경향과 함께 현상에 대한 주의나 집중의 의미를 동시에 내포하고 있는 것 같다. Brown과 Ryan(2003)이 마음챙김 측정 도구로 개발한 ‘마음챙김 주의 알아차림 척도(Mindful Attention Awareness Scale : MAAS)’ 의 이름에서 볼 수 있듯이 마음챙김과 주의 그리고 알아차림을 혼용하여 사용하고 있다.
그러나 본 논문에서는 게슈탈트 상담에서 사용하는 알아차림과의 비교 고찰을 위하여 사띠를 주의, 마음챙김, 알아차림이라는 영역을 포함하는 의미에서의 알아차림이라는 용어로 통일해서 사용하고자 한다.
위에서 언급했듯이 위빠사나 수행의 핵심은 사념처관(四念處觀)에 있다. 사념처관의 첫 번째 단계는 몸에 대한 관찰인 신관(身觀)이다. 몸에 대한 관찰을 하기 위하여 먼저 제시되는 수행법이 호흡관이다. 호흡관이란 말 그대로 호흡을 관찰하는 것이다. 이것은 요가나 단학의 호흡법과는 근본적으로 다르다. 요가나 단학의 호흡법은 호흡을 조절하거나 통제하는 것이지만 호흡관은 호흡이 짧으면 짧은 대로 길면 긴 대로 그냥 있는 그대로 알아차려야 함을 강조한다. 다음에는 ‘온 몸에 대해 느끼면서 숨을 들이마신다’라고 알아차리면서 숨을 들이마시고 ‘온 몸에 대해 느끼면서 숨을 내쉰다’라고 알아차리면서 내쉰다. 다음 단계에는 ‘신체의 반응을 고요하게 가라앉히면서 숨을 내쉰다’라고 알아차리면서 숨을 내쉰다. 이렇게 자연스러운 호흡을 유심히 관찰하고 호흡과 아울러 몸에서 일어나는 느낌과 사라지는 느낌을 관찰하면서 확연히 알아차릴 것을 강조한다.
그 다음 몸의 움직임에 대하여 관찰한다. 이것은 걸어갈 때 자신이 걸어가고 있는 것을 그대로 알아차리고, 서 있을 때 자신이 서 있는 것을 알아차리고, 앉아 있을 때 자신이 앉아 있음을 알아차리고, 누워있을 때 자신이 누워 있음을 알아차리는 것이다. 나아가 밥을 먹을 때나 대소변을 볼 때나 옷을 입을 때나 벗을 때나 말하거나 침묵할 때나 모든 상황에서 있는 그대로 깨어서 바라보는 것을 강조한다. 이렇게 꾸준히 관찰하다보면 ‘이것이 몸이다’라는 알아차림이 확실하게 서게 된다.
몸의 움직임에 대하여 깨어서 관찰하는 것 다음으로는 자신의 몸의 요소에 대해 관찰하는 방법을 제시하고 있다. '대념처경(大念處經)'에는 “비구는 이 몸을 위로는 머리 끝에서 아래로는 발바닥까지 여러 가지 깨끗하지 못한 물질로 피부에 담겨져 있는 것으로 관찰하여 “이 몸에 머리털, 몸털, 손발톱, 치아, 피부, 살, 힘줄, 뼈, 골수, 콩팥, 염통, 간, 늑막, 지라, 허파, 창자, 창자 내용물, 위, 위내용물, 똥, 담즙, 가래, 고름, 피, 땀, 지방, 눈물, 피고름, 침, 콧물, 관절액, 오줌 등이 있다라고 알아차린다”라고 말하고 있다. 이것은 몸을 더러운 것을 관찰하는 부정관(不淨觀)이라고 한다. 다음에는 몸을 이루는 사대요소, 地, 水, 火, 風에 대해서도 관찰할 것을 제시하고 있다(박석, 2004).
타웅푸루 사야도(Taungpulu Sayadaw) 선사는 우리가 몸에 대해 알아차림을 한다면, 다른 세 가지 부분에 대한 알아차림, 즉, 감각, 마음, 법에 대한 알아차림을 위해서 특별히 다른 노력이 요구되지 않는다고 하였다. 그는 몸에 대한 알아차림이 주된 명상이고, 그것은 다른 세 부분에 대한 알아차림을 자동적으로 일으킨다고 하였다(김열권 역, 1997).
사념처관의 두 번째 단계는 감각에 대한 관찰인 수관(受觀)이다. 감각이란 몸보다는 섬세한 것이다. 그래서 일단 몸을 먼저 관찰하고 난 다음에 감각의 단계로 나아가는 것이다. 즐거운 감각을 느끼면서 ‘나는 즐거운 감각을 느낀다’ 라고 알아차리고, 혹은 괴로운 감각을 느끼면서 ‘나는 괴로운 감각을 느낀다’ 라고 알아차리고, 혹 괴롭지도 즐겁지도 않은 감각을 느끼면서 ‘나는 괴롭지도 즐겁지도 않은 감각을 느낀다’ 라고 알아차리는 것을 말한다. 계속해서 관찰하다보면 ‘이것이 감각이다’라는 자각이 확립된다(박석, 2004).
아찬 담마다로(Achaan Dhammadaro) 선사는 명상에서 감각(혹은 감정)에 대한 알아차림을 강조한다. 변화하고 있는 감각에 대해 끊임없이 마음을 집중함으로써 우리들의 모든 체험이 순간순간 일어나고 사라진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는 이것을 분명한 사실이라고 말한다. 왜냐하면 형상(色)과 감각은 모든 오온(五蘊)의 기본이 되기 때문이다(김열권 역, 1997).
세 번째 단계는 마음을 관찰하는 단계인 심관(心觀)이다. 마음이란 감각보다 훨씬 범위가 넓고 복잡한 것이다. 예를 들어 탐욕이 있는 마음을 ‘탐욕이 있는 마음이다’라고 알아차리고, 탐욕이 없는 마음을 ‘탐욕이 없는 마음이다’라고 알아차리고, 화가 있는 마음을 ‘화가 있는 마음이다’라고 알아차리고, 화가 없는 마음을 ‘화가 없는 마음이라고 알아차린다. 다시 말해서 마음이 어떠한 상태에 있어도 있는 그대로 알아차려야 한다는 것이다. 이렇게 꾸준히 관찰하는 가운데 ’이것이 마음이다‘라는 자각이 확립된다.
마지막 단계는 법에 대한 관찰인 법관(法觀)이다. 이 법을 관찰한다는 것은 마음을 관찰하는 것보다 더 미묘한 단계이다. '대념처경'에서는 이 법의 종류에 대하여 이렇게 나열하고 있다. 먼저 수행의 다섯 가지 장애인 탐욕, 나태, 걱정, 근심, 의심을 관찰하고, 불교에서 말하는 인간 존재를 구성하는 다섯 가지 요소인 색수상행식(色受想行識)의 성질과 일어남과 사라짐을 관찰해야한다. 색수상행식은 각각, 물질, 감각작용, 이미지와 개념을 형성시키는 작용, 의지작용, 헤아리고 분별하는 작용을 가리킨다. 다음에는 눈, 귀, 코, 혀, 몸, 마음이라는 여섯 가지 인식기관과 형상, 소리, 냄새, 맛, 촉감, 사념이라는 여섯 가지 인식 대상과 이 양자 사이에서 발생하는 번뇌를 관찰한다. 그밖에 일곱 가지 깨달음의 요소(七覺支)와 사성제와 팔정도 등을 관찰해야한다고 한다(박석, 2004).
이렇듯 위빠사나 명상을 수행하는 방법은 위의 네 가지에 대해서 아무런 가치판단을 하지 않고 이들이 의식에 나타나고 사라지는 것을 그대로 알아차리며 머무는 것이다. 가장 기본이 되는 것은 몸에 대한 관찰 특히 호흡을 관찰하는 것이다. 아무런 생각 없이 그냥 호흡이 들어오고 나가는 것을 관찰한다. 생각이나 이미지가 일어나면 그것을 쫒아가거나 혹은 몰아내려 하지 않고 그냥 알아차리고 놓아버리고 다시 호흡으로 돌아온다. 또한 신체를 이완한 채 의식에 떠오르는 것들을 아무 평가 없이 그냥 바라보아야 한다. 어떤 것이 나타날 지에 대해서도 아무런 기대를 하지 말아야 한다. 단순히 나타나고 사라지는 것들을 그냥 그대로 알아차리며 바라보는 것이다. 즉, 의식에 나타나고 사라지는 것들에 대해 ‘단순한 주의(bare attention)'를 기울이는 것이다(Kabat-Zinn, 1990).
위빠사나 수행을 통하여 관찰의 대상이 뚜렷해질수록 관찰하는 마음도 뚜렷해진다. 알아차림이 깊어지면 이에 따라 자연스럽게 제행무상, 제법무아, 일체개고의 삼법인을 알게 되고, 알아차림이 더욱 명료해지고 이렇게 될 때 알아차림의 속도와 대상의 사라짐의 속도는 더욱 빨라진다. 즉 어떤 대상이 떠오르면 그 즉시 알아차리고 알아차림과 동시에 그 대상은 즉시 사라져버린다. 이 속도가 점점 빨라지다가 어느 순간 알아차리는 마음과 알아차림의 대상이 갑자기 동시에 사라지는 것을 체험하게 된다. 위빠사나 수행의 궁극적인 목표는 바로 이와 같은 열반의 경지를 증득하는 것이다(박석, 2004).
그러나 이러한 위빠사나 수행 과정에서 주의해야할 사항들이 있다. 즉, 1) 과거(분별심, 판단력 포함)에 머물지 말라, 미래에도 머물지 말고 현재 현상의 당처에 집중하라. 2) 게으름, 방일에 빠지지 말라. 3) 균형을 잃은 과도한 노력도 방해가 된다. 4) 유혹, 감각적 집착에 빠지지 말라. 5) 나쁜 마음은 갖지 말고 대원력을 세워라. 이렇게 할 때 삼매가 이루어질 수 있는 바, 일상생활 속에서 이러한 계행이 철저해야한다. 그리고 자비관이나 진정한 참회를 할 때 선정은 향상된다.
위빠사나 수행의 다섯 가지의 선정 요소는 다음과 같다((김열권 편저, 1995, p. 214-211).
첫째, 위타카(vitakka, 尋, 주의 aiming, directing mind)이다. 대상을 향하여 겨냥하는 마음이며, 대상에 순간적으로 머물게 하는 마음이다. 둘째, 위짜라(vicara, 何, 고찰, investigation, reflection, sustaining mind)이다. 위타카가 대상을 겨냥하여 대상에 자리잡게 한 후 위짜라는 마음을 대상에 계속 집중하여 머물도록 한다. 청정도론에서는 위타카와 위짜라를 종과 새에 비유한다. 처음 종을 칠 때가 위타카이고 계속 치는 것이 위짜라이다. 새가 처음 하늘로 나래를 펴 오르는 것이 위타카이고 하늘에 오른 뒤에 나래를 계속 젖는 것이 위짜라이다. 셋째, 피티(piti, 喜. 기쁨, rapture)이다. 넷째, 수카(sukha, 樂. 행복감, 즐거움 happiness comfort)로 수행에 대해 만족감으로 흠뻑 젖게 된다. 피티와 수카는 다섯 가지 장애, 즉 1) 탐욕, 2)성냄, 악의, 3) 해태, 혼침, 무기, 4) 불안과 걱정, 5) 회의적 의심으로부터 피난한 곳에서 오는 환희와 행복감이다. 위타카와 위짜라가 현전함으로써 마음이 다섯 가지 장애로부터 보호된다. 즉, 마음이 정확하게 대상을 겨냥하여 대상에 밀착하여 계속 집중되어 나갈 때 마음은 다섯 가지 장애로부터 안전하게 보호되고, 마음이 다섯 가지 장애를 극복할 때 환희, 행복감, 편안함을 느끼게 된다. 이와 같은 네 가지 선정의 요소들이 현전할 때 마음은 저절로 고요하게 평화로워지고 산만하거나 흩어지지 않고 일어나는 대상에 집중된다. 이렇게 한 곳에 대한 마음의 집중이 다섯 번째의 요소인 사마디(samadhi, 一念, 집중상태 concentration)이다. 사마타 선정은 여기 설명한 다섯 가지이고 위빠사나 선정은 사띠가 포함된다.
이러한 위빠사나 선정과 다섯 가지 장애와의 관계를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1) 사마디(선정 삼매, samadhi)는 감각적 욕망을 극복한다. 2) 피티(환희심, piti)는 성냄을 극복한다. 3) 수카(행복감, sukha)는 불안정을 극복한다. 4) 위타카(겨냥하는 마음, vitakka, 尋)는 해태와 혼침(무기)을 극복한다. 5) 위짜라(고찰, 유지시킴, vicara, 何)는 회의적인 의심을 극복한다.
위빠사나 선정의 단계별 특성은 다음과 같다.
첫 번째 단계는 알아차림(sati, awareness)이 예리하게 되어 현상의 사라짐이 분명해지는 단계이다. 수행자는 직관적으로 현상에 내재해있는 무상, 고, 무아를 간파한다. 삼법인에 대한 직관적인 이해는 ‘현상의 바른 이해에 대한 지혜’를 포함한다.
두 번째 단계는 순간순간 급속하게 일어나고 사라지는 현상을 포착할 수 있다. 지속적으로 예리한 알아차림으로 인하여 산만한 생각은 조금도 없고 몸과 마음의 무상에 대한 의심이 조금도 일어나지 않는다. 이때는 노력 없이도 수행이 저절로 되어간다. 첫 번째 선정에서는 위타카, 위짜라가 충만하지만 두 번째 선정에서는 현상의 생, 멸을 뀌뚫어보기 시작하고, 명료함, 환희, 신심, 안온함 등이 현저하게 나타난다.
세 번째 단계는 환희가 점차 줄어들고 알아차림과 집중력이 계속 깊어진다. 현상의 본성을 꿰뚫어보는 통찰력이 점점 깊어진다. 칠각지 중 평등각이 나타난다. 마음은 순경계(즐거움)과 역경계(불쾌함)에 흔들리지 않고 몸과 마음에서 깊은 평온함이 일어난다. 행복감(sukha)과 일념(samadhi)의 요소가 현전하며, 현상의 생, 멸을 꿰뚫어보는 통찰력은 더욱더 깊어진다.
네 번째 단계는 일어나고 사라지는 현상의 지혜가 성숙되어 평등심(uppekkah, equanimity)과 일념(samadhi)만이 현전한다.
이러한 선정의 각 단계는 행복감(sukha)으로 특징지을 수 있다. 초선정에서는 다섯 가지 장애를 떨쳐버리고 보호되어있는 즐거움이다. 두 번째 선정에서는 집중의 행복감으로 환희의 형태로 일어난다. 세 번째 선정은 평온한 행복감으로 알려져 있다. 네 번째 선정에서는 지혜의 행복감을 경험한다(김열권 편저, 1995).
요약하면 위빠싸나 명상에서의 알아차림은 사념처, 즉, 몸, 감각, 마음, 법에 대해 있는 그대로의 현상을 알아차림으로써 삼법인을 철견하는 것을 목적으로 한다. 그리고 그 과정은 1) 일어나는 현상에 단순히 주의를 기울이고, 2) 그 대상에 머물고, 3) 상황이나 현상에 대한 분명한 알아차림이 일어나고, 4) 현상의 일어나고 사라지는 현상에 대한 알아차림이 지속될 때 마음은 저절로 고요하게 평화로워지고 산만하거나 흩어지지 않고 일어나는 대상에 집중되는 집중상태(사마디, samadhi, 一念)가 되고, 그리고 더 나아가 5) 지혜(paññā, 慧, Wisdom)를 얻게 되는 과정으로 구분할 수 있다. 이 과정에서 다섯 가지 장애를 극복하는 것이 수행의 주요 과제가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