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 과거와 현재의 그 사이에서 ---> 재회 [2]
사부와의 아주 아찔했던 재회를 뒤로 하고, 난 계속해서 길을 걸었다. 물론 토끼는 맛있게.... 먹지 못했다.
그러니까 그게... 어제였다. 이리저리 걷다가 꽤 깊은 동굴을 발견한 나는 자리를 잡고는 토끼를 구우려고 불을 피웠다. 그 순간 동굴 안으로부터 나오는 괴상한 소리를 들을 수 있었다.
스르르륵.... 스르르륵...
마치 비늘 달린 무언가가 기어오는 소리. 뱀이라면 이정도의 소리는 나지 않을 텐데, 하고 생각한 나는 [라이팅]을 외워 동굴의 속으로 던졌다.
동굴이 밝혀지는 순간 내 눈앞에 보인 것은 뿔 달린 뱀이었다.
천년독각망이라고 불리워지는 독사였는데, 그 크기가 무려 8미터는 되어보였다.
솔직히 말해서 그만한 크기의 뱀을 본 것은 처음이었다. 8미터 짜리 뱀이라니... 뭐, 용도 있고, 드래곤도 있는데 뭔들 없으랴?
하는 생각으로 스스로를 설득한 나는 토끼를 내려놓았다.
그리고....
"[라이션.]"
파란색의 구체가 녀석을 감싸는 순간, 녀석의 정신은 소멸 되었다. 그 일을 저지른(?) 나는 죽은 녀석의 내장및 내단, 뿔을 해체하고는 고기는 구워먹고, 피는 물주머니에 가득 모았다. 물론 토기 두 마리는 풀어주었고.
뭐, 기연이라면 기연이랄 수 있을까?
아무튼 맛있게 뱀 고기를 먹은 나는 그 녀석의 내공증진의 효과가 있는 혈과 내단, 그리고 피독의 기능을 가진 독각을 챙기고는 잠 잘자고 이렇게 일찍부터 일어나 마을을 찾아 걷고 있는 것이다.
<일찍은 무슨.... 아침 10시가 일찍인가?>
....시끄럿!!
<케엑!>
정신 충격으로 진을 떼려눕힌 나는 유유히 마을을 찾아 걸었다.
하아... 그나저나 마을은 왜 이렇게 안 나오는 거냐고..... 쯧...
하는 수 없지. 웬만하면 걷고 싶었는데, 이렇게 오래 걷는 것도 몸에 무리가 올 수 있으니....
"[레비테이션 윙.]"
우웅.... 공기가 몸을 감싼다. 그와 동시에 떠오르는 몸.
잠시 후, 난 하늘을 날았다.
슈우우우웅.....!!.. 하아... 기분 좋다.. 비록 바람의 결계로 인해서 불어오는 바람을 느낄 수는 없었지만, 그래도 하늘에 높이 떠서 날아가는 이 기분. 보통 사람은 당연히 느낄 수 없는 기분인 것이다. 하긴.... 무공의 최고수들도 나만큼 오래 날아갈 수는 없으니까!! 음하하핫!!!!
그렇게 10분 정도 날았을까? 저 멀리에 성이 보였다. 드디어 도착했군. 정말로 있기는 있었구만.
성 외곽의 숲으로 [워프]해서는 천천히 성으로 들어섰다.
도적과 만난지 나흘만의 일이었다.
이리저리 성안을 돌아다니던 나는 특별한 일없이 시간을 보내다가 저녁을 맞았다. 이런.. 숙소를 잡아야겠는걸.. 아까 객잔이 많았던 곳이... 저쪽이니까....
숙소를 잡기위해 객잔이 많은 곳으로 향하던 내 눈에 보이는 객잔의 이름.
소류객잔(笑流客잔).
'웃음이 흐르는 객잔'이라.. 이름 하나 잘 지었네. 좋아, 오늘은 저기서 쉴까?
"어서 오십시오."
점소이의 목소리를 들으며 안으로 들어선 나. 흐음.. 손님은 그리 많지는 않네. 하긴.. 이 근처에 기물(奇物)이라든지 하는 게 나타난 것도 아니니까.
음.... 빈자리가..... 아, 저?
네. 야경을 보고 싶지는 않지만, 그래두 빈자리가 저기 뿐이니까..
빈자리를 찾아 앉은 나는 점소이에게 물었다. 약간 귀여운 얼굴의 점소이. 흐음.... 이제 고작 17세정도 되었을까?... 아직 어린 티가 나는 소년에게 음식을 주문했다.
저녁을 창가의 자리에서 맛있게 먹고 있을 때, 내 귀에 들려오는 여자의 목소리 하나.
"어머... 소협. 여기서 만나는군요."
순간 경직되는 나의 몸. 하지만 다음 순간 나는 아주 태연한 얼굴로 계단 쪽을 돌아보며 말했다.
"누구신지요?"
그러자 그 여인.. 이라기보다는 소녀가 내게 말했다.
"호홋... 기억하지 못하시나요?"
'모르는 체 하는 거냐? 후훗.. 걱정 말거라. 혈문은 이미 대장로에게 넘겼으니 난 더 이상 혈문과 관계가 없는 사람이란다.'
음... 그러신가요? 요즘 무림에 신경을 쓰지 않았더니, 그런 일이 있는 지도 몰랐군. 하지만 그런 소리를 들었다고 해서 '아, 그래요? 반갑습니다.'라고 할 정도로 난 바보가 아니다.
"무슨.... 소리신지요? 소저."
정말로 모르겠다는 눈으로 소녀의 탈을 쓴 30대의 아줌마에게 '소저'라는 말까지 써대는 나. 비굴해..... 비굴해..... 으윽...
"너무 하시네요. 끝까지 모르는 체 하실 거예요?"
'모르는 척 말거라. 네 몸에 뿌려둔 만리추종향의 냄새로 널 쫓아온 것이니까.'
으윽... 그랬구만... 그래서 겉모습을 바꾼 나를 쉽게 알아보았던 거로군. 끝까지 잡아떼려던 나는 어쩔 수 없다는 얼굴로 그녀를 바라보며 말했다.
"훗.... 죄송합니다."
"호호... 괜찮아요, 그나저나 여기서 만나다니, 세상 참 넓고도 좁네요. 그죠?"
"하하하... 그렇군요. 누가 일부러 좁혀놓은 것 같다는 기분도 들지만....."
"어머, 그건 피해과다망상증(避害過多望想症)이라구요. 후훗. 더구나 여기서 만난 건 하늘이 점지해 준 운.명. 아니겠어요?"
"하하하.. 그.런.가.요.?"
나와 그녀 - 전대 혈문의 문주 - 는 서로 겉으로는 웃으면서도 언중유골(言中有骨)이라는 말이 왜 생겨났는지에 대한 이유를 몸으로 표현하고 있었다.
서로 상대방을 말로 비꼬며.. 으음.. 비꼬는 건 나 뿐일지도..
아무튼 서로 대화를 주고 받던 나와 그녀는 잠시 후 한 식탁에 앉아 밥을 먹게 되었다.
나야 당연히 거부했지만, 갑작스럽게 들이닥친 손님들로 인해서 자리가 없었기에 어쩔 수 없었다. 아는 체를 하고 대화를 하던 나와 그녀를 바라보던 주인의 배려(?)였다.
아무튼 같은 자리에 앉아 밥을 먹고 있던 나는 내 맞은편에 앉은 그녀를 잠시동안 바라본 나는 딱 한 가지를 발견해냈다.
그건 바로.... 그녀가 정말로 동안(童顔)이다. 어째 저렇게 어려보일 수가 있는 거지.. 그것도 저렇게 예쁘게..
옆에서 밥을 먹던 손님들이 흘낏흘낏하고 그녀를 쳐다보는 모습이 보였다. 하지만 그녀는 이미 만성이 된 듯, 신경도 쓰지 않으며 밥을 먹고 있었다.
어째 30대의 아줌마가 저렇게 어려보일 수가 있는게 말이나 되는 거냐고!!
물론 지금 내 나이를 생각하면 사돈 남 말하고 있는 중이었지만, 난 어디까지나 드래곤이고 저 여자는 인간이었다. 그러니까 말이 안 된다는 거지. 음........
왠지 횡성수설한 듯.... 그러다 문득, 의문이 든 나는 그녀를 바라보며 물었다.
"그런데 여기는 어쩐 일로 오셨습니까?...."
질문을 하고 이름을 말하려던 나는 마땅한 그녀의 이름이 생각나지 않아서 어색하게 말을 끊었다.
"아아, 당신이 이곳에 왔다는 이야기를 들어서요."
'백수린이라고 부르거라.'
응? 저게 무슨 소리야? 아, 물론 전음말고다. 내가 여기에 왔다는 이야기를 듣다니.... 도대체 누구에게서....
"호홋.... 그건 저 뒤에 서있는 할아버님께 여쭈어 보세요."
에? 뒤를 돌아보자, 객잔의 입구에 서있는 한 노인이 보였다.
흑의의 남루한 옷. 지극히 평범한 얼굴의...... 어제도 보았던 그런......
"허허허.. 소협. 또 만나는군. 저 아가씨가 자네에 대해 묻기에 어차피 자네도 이곳에 오지 싶어서 데리고 왔는데.. 잘 됐군, 그래."
으으윽... 속에서 무언가가 끓어오른다. 하지만 참아야하느니..
"하하하.... 그러셨군요. 본의 아니게 패를 끼쳐서 죄송합니다."
에? 왜 그렇게 날 쳐다보는 거지? 사부에게 대답을 하고 백수린을 돌아본 순간, 나를 빤히 바라보고 있던 그녀와 눈이 마주쳐버렸다.
그 때 들리는 사부의 말 소리.
"아, 괜찮네. 그런데, 둘은 무슨 사이인가? 혹시 예비 부부?"
윽... 무슨 그런 망발을!!!! 난 아니라고 말하려고 했지만, 그보다도 백수린의 말이 더욱 빨랐다.
"네. 그래요. 할아버지."
그 말과 동시에 주위에서 터져 나오는 한숨소리. 이 사람들아, 정신차려!!
30살 먹은 노처녀란 말이닷!!!! 쯧쯧... 겉모습에 현혹이 되어서는......
그렇게 생각하던 나는 그녀에게 전음을 날렸다.
'무슨 생각으로 그러시는 겁니까?'
'이러지 않으면 서로 불편할 게 아니냐? 더군다나 난 너와 지금부터 함께 다니려고 생각중인데.'
에엑!! 함께 다닌다니, 그게 무슨 소리?!
"허허.... 이거, 늙은이가 두 사람 사이를 방해하고 있었군. 난 이만 가볼 테니, 그럼 그동안 밀린 이야기나 나누시게."
"저, 저기...."
"호홋.. 네, 그러겠습니다. 할아버지."
으윽..... 씹혔다... 빙긋이 웃고는 멀어져만 가는 사부. 아아..
난 이대로 30대 아줌마의 마수에 걸리고 말았다(?).
다음 날 아침. 일찍 일어난 나는 백수린 아줌마와 함께 밥을 먹었다. 덤으로 사부님까지 해서.
"허허... 어제는 그래, 잘 잤는가?"
"예. 덕분에."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며 아침을 해결한 나는 방값을 다 계산하고 그곳을 떠나려했다. 그러자 따라나선다는 백수린. 참 이해가 되지 않는 여자다. 뭐 얻어먹을게 있다고 그러는 걸까?
주위의 의자에 앉아 우리를 바라보는 사람들의 시선이 느껴진다.
정확하게는 백수린이라는 아줌마를 바라보는 것이였지만.
'정녕 따라오실 겁니까?'
'그렇다네. 천무황제 위지승의 모든 것이 담긴 곳을 자네가 알고 있는데, 무림인으로서 포기할 수가 없네.'
음... 얻어먹을 게 있었군.
'칫, 맘대로 하십시오. 전 절대로 그곳에 가지 않을 테니.'
"호호호....."
의미심장하게 웃는 그녀를 뒤로 하고 난 사부를 바라보았다.
"그래, 떠나려는가?"
"예. 가봐야겠습니다."
"허허... 나도 따라가고 싶지만 지금 어디 급히 가야할 곳이 있으니 참 아쉬울 따름이구먼."
저어~언혀~! 하나도! 안 아쉬워!!
"나중에 인연이 있다면 만나겠죠."
"허허. 그렇겠구만. 그럼 이만 가보게나."
"예, 그럼."
그렇게 사부와의 인사를 끝마치고 객잔을 벗어나는 나.
휴우..... 드디어 무사히 벗어나는구나. 그렇게 생각하며 마악 객잔의 현관을 나서는 순간,
"같이 가요!"
그렇게 외치며 달려와 내 왼손을 잡는 백수린. 그 순간 아주 약간 비틀어진 왼손에서 벗어나버리는 만년한철환.
쿵!!
작은 팔찌가 떨어진 것치고는 무척이나 소리가 컸다. 그 결과 우리에게 모아진 사람들의 시선. 지금은 그게 중요한 게 아니었다.
왜냐하면.......
"저건... 만년한철환? 그렇다면.. 넌!"
"우아아악!!"
나는 그렇게 소리를 지르며 왼손에는 백수린 아줌마를 매달고 객잔을 벗어났다. 원흉인 그녀를 놔두었다가는 사부에게 무슨 소리를 듣게될 지 몰랐기에.
"네 이놈! 서라!!"
"사부라면 서겠어요?!"
뒤에서 들리는 말소리에 그렇게 대답한 나는 그대로 마법을 사용하여 날아올랐다. 그 와중에도 재밌다는 듯이 노래를 흥얼거리고 있는 백수린.
우아아악!! 누가 이 아줌마 좀 말려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