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드컵의 열기가 채 식지도 않은 2002년 7월..
여름 휴가를 이용하여 두 번째 해외원정산행을 나섰다.....
혼자라는 부담 땜에 더 열심히 준비를 한다고는 했지만
결국 야리카다케 종주는 실패하고 말았다.
다음해엔 마무리하러 갈수 있으리라 생각했지만
여러 가지 여건들이 맞지 않아 계속 미뤄 오기만 했다.
2006년 여름엔 다시 도전할수 있기를 바라며
일본 북알프스를 함께할 산오름 식구를 기대해 봅니다.
일본 북알프스는 동계올림픽으로 유명한 나가노 쪽에 있는 3000미터 이상의 연봉들이
늘어선 일본의 대표적 산군중의 한곳인데... 도야마,구로베, 다테야마로 잘 알려진곳이고,,
여름에도 만년설이 덮여있어,, 스키를 탈수 있는 동네고,,
다테야마코스는 관광과 산행을 겸하여 가이드 산행을 많이하고 있으며
가미코치에서 출발하여 야리카다케와 오쿠호다카다케를 거쳐
가미코치로 돌아오는 코스는 워킹과 릿지를 겸할수 있어
고산등반에 앞서 체력과 등반실력을 시험할수 있는 산행지라 할수잇다.
가미코치는 우리나라의 설악동 같은 곳으로 관광지로도 유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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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문제는 항상 너무 충동적으로 행동 한다는 것이지만..
천성이 그런걸 난들 어떡하나..
여름휴가를 일본으로 갈 것이라고는 생각도 하지 않았는데.......
동생과 무슨 이야기의 끝이었는지는 모르지만
갑자기 북알프스에 갔다 올거란 말을 하고 말았고,,
그렇게 말하고 보니 진짜 갔다오지 않으면 안될 것 같은 생각이 들었다....
북알프스 산죽밭에서 만났던 야생 원숭이 무리의 신기함과....
마쓰모토에서 길?O아 헤맬 때 오던길을 되돌아 가며 안내해주던 할머니랑,,,
시장에서 색소물감 들인 얼음과자를 거액을 들여 사먹은 이야기며,,,
나고야 역에서 나고야성까지 걸으며 보았던 온갖 일본 풍경과,,
조금이라도 싼 숙소를 ?O으려다 노숙자 신세가 될뻔한 야기...
칠석제 준비가 한창인 시장 지붕에 걸린 무수한 홀맨(?)들....
공항에 도착했을 때 비행기는 이미 떠나 버리고 국제 미아 되었을 때의 황당함,,
우여곡절 끝에 집에 까지 오게된 사연들....
이런 저런 뒷이야기는 다음으로 미루고
우선... 산에서 겪었던 이야기만 먼저 하도록 합니다....
지루할 만큼 자세히 적는 이유는 혹시 북알프스를 가신다면,, 참고가 되었으면 해서......
첫째날...10번의 교통편을 이용하여 도착한 가미고치
7월 17일 아침일찍 잠이 깨었다. 날씨는 구름 한점 안보이고 맑기만 하다.
하지만 먼길(?) 떠난다고 생각하니 그렇게 마음은 맑은 것만은 아니었나보다.
7시36분에 동대구를 출발하는 무궁화 기차를 타기 위해서 6시 반쯤에 집을 나섰다.
생각만큼 배낭이 무겁지만은 않다.
걷다보면 얼마나 무거워 지게될지는 모르겠지만...
아직은 힘을 하나도 쓰지 않은 상태고 얼떨떨한 기분으로 긴장이 되어 있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무게를 줄이기 위해 꼭 필요한 것만 넣었는데도 텐트하나, 침낭하나, 먹을 부식거리,등등..
대략 배낭의 무게는 20키로 정도(가장 많은 투자를 한 것이 배낭 무게줄이기였다.
침낭과 텐트를 새걸로 교체하고 나니 3kg을 줄였지만...500g당10만원씩 들었다.)
4박5일 동안 먹고 자고 견딜 수 있는 모든 생존수단이 들어있는 소중한 배낭이다.
시지동에서 남부정류장까지 버스를 타고 가서
동대구역까지 다시 시내버스를 이용했다. 2번째 갈아타는 교통수단이다.
제헌절 휴일 아침 이어서인지 버스는 밀리지 않고 생각보다 이른시간에 동대구역에 도착했고,
시간적 여유가 30분이나 있기에, 멍하니 앉아서 등반계획을 다시 한번 되새겨 보았다.
어느날 갑자기 북알프스에 가고 싶다는 충동을 느꼈고,
여름이 되도록 그 열정은 식지 않았고,
3년 전에 가려다 일정이 맞지 않아서 포기한 한풀이(?)도 할수 있는 기회이기에,
이번에는 무리가 될지는 모르지만 가이드산행을 하지 않고 혼자서 자유롭게 떠나기로 했다.
다음을 위한 준비라는 마음으로 나선 길 이었기에...
같이 가기를 희망하는 후배에게는 조금 미안하긴 했지만,
그쪽의 형편이 어떤지도 불확실하기 때문에 고생을 하더라도 혼자서 당하고 싶었다.
다행히 일본인 친구에게서 자세한 정보와 지도를 얻을수 있어서(붉은악마티랑 바꾼것임),
인도어 클라이밍만큼은 완벽하게 세울 수 있었다.
9시에 구포역에 도착하여 간단하게 시원 뜨끈한 재첩국으로 아침을 먹었다.
더운 여름날이지만 뜨거운 국물이 시원하게 느껴짐은 뭔 일일까...
구포역에서 육교를 건너서 307번 좌석을 타고 30분쯤 달려서 부산 김해 국제공항에 도착했다.
중국으로 가는 승객이 의외로 많고 일본행은 별로 없다.
그래도 한꺼번에 수속을 받았기 때문에 북적거리기는 마찬가지,,
배낭을 부치고, 좌석을 배정 받아 출국신고서를 작성하고 있는데, 방송에서 나를 ?O고 있다.
역시나...걸렸구나..생각하고 화물쪽으로 가니까
배낭 속에 혹시나 하고 넣어둔 가스통 때문이란다.
일본에서는 가스가 너무 비싸기 땜에(6000원 정도),, 행여나 하는 맘으로
첨부터 안되는 줄은 알았지만 운이 좋기를 바랐는데,
우리나라 검색기관도 예전하고 달라서 공항 검사가 호락호락하지만은 않다.
불과 2년전만해도 휘발유가 가득든 버너를 좌석까지 들고 들갔는데......
이런 경우를 대비해서 가스통 넣은 코펠을 배낭 입구에 두었기에 쉽게 압수 당하고,
10시20분에 출국 수속장에 들어가려는데, 또 잡는다,
공항이용권을 사가지고 와야된다고 한다.
2층 부산은행에 가서 19000원을 주고 쪼가리 한 장을 사서 들어갔다.
출국수속과 검사는 쉽게 일찍 끝나서,
면세점 입구에 앉아, 무슨 물건이든 사들고 가면 짐만 되기에 구입은 생각도 못하고
이런저런 구경만 하다가..
11시30분에 나고야행 비행기에 몸을 싣고 출발하였다.
기내식으로 김밥2개와 샌드위치로 점심을 때우고 입국신고서를 작성 하였다.
남쪽으로 갈수록 구름이 많아지고 기류가 불안정하여 심하게 흔들렸고,
나고야에는 비가 오고 있고 기온은 22도라는 방송을 한다.
무사히 나고야 공항에 12시 50분에 도착하여 입국수속을 하는데, 이번에는 시간이 많이 걸린다.
더욱이 재수없게도 줄을 잘못서는 바람에 가장 느린 꼴찌줄에 걸려버렸다.
만일 10분만 더 일찍 공항을 빠져 나왔더라면
멋진 스케쥴이 될뻔 했는데(12000엔이나 되는 거금도 아끼고),
그런데 입국심사에서 안그래도 느려 터져서 초조한데
콧수염 기른 심사관이 내가 산에 간다니까, 그이도 등산 좋아한다면서
가미고치이야기랑, 자기가 옛날에 갔던 산이야기를 주절주절 늘어놓는다.
겨우 도망나와서 짐을 ?O으러 가보니, 내 배낭만 달랑 하나 남아있다.
짐 검사하는 사람이 어디가냐고 묻길래 가미코치라니까,
조심해서 잘갔다 오라며 곧바로 통과 시켜준다.
공항 앞에 나가니 비온 뒤의 후덥지근한 바람이 부는 곳에 나고야역까지 가는 버스가 기다린다.
870엔 표를 자판기에서 끊어서 버스에 타고나서 일단 한숨을 돌렸다.
옆에 앉은 할머니에게 역까지 갈려고 하는데, 언제 내리면 되냐니까, 끝까지 간다고 한다
무슨 소리인가 했는데, 알고보니 첨에 시내버스인줄 알았는데
알고보니까 공항에서 역까지 가는 무정차 메이테츠 리무진 버스였다.
버스는 시내고속도로를 달려서 25분만인 2시 정각에 역에 도착 하였다.
이시간.. 2시는 마쓰모토행 열차가 떠나는 시간이다.(공항에서 10분만 더......에구~~)
다음 열차는 3시에 있는데,
문제는 2시 차를 타게되면,, 마쓰모토에서 가미코치가는 막차를 탈수 있지만,
나고야에서 마쓰모토까지 2시간 걸리므로,
3시차를 타고 마쓰모토에 가면 5시가 되므로,,
4시20분 가미고치행 마지막 전차를 탈수 없다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공항에서의 10분이 그렇게도 아쉬울 수밖에.....
10분만 일찍 역에 도착 했더라면 하는 아쉬움은 계속 남아있다.
일본 4대 도시의 하나라는 나고야 역은 엄청난 규모에 비해서 쉽게 차를 탈수 있게 되어있다고 들었지만.
그런데도 마쓰모토행 표를 어디서 사야하는지는 잘 안보여서 물어보니까,
그곳에서 일하는 사람도 잘모른다며 역직원에게 데려다 준다.
말이 빨라서 잘 못알아 들었는데, 그아저씨가 다시 설명해준다.
자판기에서 팔지않고 서점 비슷한 곳에서 여행사 직원이 팔고 있단다.
지정석 좌석은 500엔 더 비싼 5870엔이다.
알고 보면 자리는 많이 비어있었지만 자유석 표를 사갖고 잘 알지도 못하는 동네에서
자리 ?O아 돌아 다니는 것 보다는,, 일단은 안정되게 500엔을 더 투자하기로 했다.
게다가 일본의 기차는 담배를 마음대로 피울수 있기 땜에 금연석에 앉으려면 지정석이 유리하다.
간드러진 목소리의 아가씨가 표에 줄을 쳐주며 자세하게 가르쳐 주는데,
나긋한 목소리 땜에 한참동안 귀가 간지러웠다.
플랫홈으로 들어가는 중간에 상가를 지나면서,
점심을 대충 먹은 탓인지 나고야역 상가의 카레 가게가 너무 좋은 냄새를 풍긴다.
700엔 정도 하는데 종류가 여러 가지라서 어느것이 입맛에 맞을지는 알수가 없다.
돌아올때는 꼭 한번 먹어야지 했는데 결국 일본 카레는 냄새만 맡는걸로 만족해야했다.
(돌아오는 날 아침에 그 식당에 가니까 10시30분에 문을 연다고 해서.. 어쩔 수가 없었다.)
나고야에서 출발하는 나가노행 시나노특급23호는 10번 홈에 3시 25분전에 들어왔다.
기다리면서 무심코 콜라 한 개를 뽑았는데 150엔...
바깥쪽 자판기는 120엔 이어서 비싸다고 생각했는데, 플랫홈 안에는 더 심하다.
비가와서 인지 원래 깨끗한지, 샘이 날 정도로 깨끗한 일본의 마을을 여러개 지나고 지나고,,,,
강을 따라 계속 올라 가는데 곳곳에 작은 양수발전소가 보인다.
풍부한 수자원을 자연스럽게 잘 이용하고 있는 본보기다.
전체적으로 볼 때 일본은 자연을 억지로 개발하지 않고,
가장 자연스런 상태로 보존하면서 꼭 필요한곳만 손을 보는 것 같다.
무분별한 개발은 거의 ?O아보기 힘들고,
인공적인 구조물 조차도... 없다면 오히려 이상할만큼 꼭 그곳에 있어야만 하는 것 처럼 보였다.
철길은 깊은계곡으로 이어지면서 강의 물살은 점점 거칠어진다.
넓은 협곡마을을 지날 때 햇살이 잠깐 비친다. 좋은 징조인 것 같다.
날씨에 따라서 이번 등반이 성공할 수도, 실패할 수도 있으니까...
잘가꿔진 나무숲과 터널이 점점 많아지면서 마쓰모토는 차츰 가깝게 다가오더니 5시에 도착하였다.
한가지 재미있는 것은 아침에 비가 온탓인지
학생들이나 직장인 모두가 우산을 들고 다니는데 접는 우산은 거의 없고, 길쭉한 우산을 들고 다닌다.
바람이 많이 불기 땜에 접이식 우산을 사용하지 않아서 그런가 했는데,
나중에 산에서는 전부다 접이식 우산을 배낭에 넣고 다니는걸 보았다.
또 한가지는 일본 여학생들 교복치마가 너무 짧아서 아찔하게 보인다는 것.
아마 안에는 그냥 속옷만 입지는 않을거라는 쓸데없는 생각까지 해본다.
마쓰모토에서 혹시나 하는 마음으로
역무원에게 가미고치가는 방법에 대하여 이야기를 하니까, 기차시간표를 한 장 준다.
신시마시마까지 열차를 타고가면 가미고치가는 버스를 연결 해주는데,
이미 늦었으니 내일 아침차를 타라고 한다. 마쓰모토에서 열차와 버스를 번갈아 타는데
비용은 2500엔짜리 표 한 장으로 다 해결된다고 친절하게 이야기해준다.
하지만 나는 신시마시마까지 가서 택시를 이용할거라니까,
신시마시마까지는 늦게까지 열차가 다니니까, 자판기에서 표를 사오라고 한다.
5시 30분에 신시마시마행 전차를 타고 30분 거리의 신시마시마에 도착 하였다.
버스 한대가 있기에 혹시나 하고 물어보았지만,,, 역시...
그리고 가스 파는 곳이 어디있냐니까, 가게가 없다고 한다.
이때까지만 해도 까스 걱정은 하지 않았다.
택시는 가미코치까지 공식요금이 11,500엔이라고 적혀있기에
6시 5분에 결국 어쩔수 없다는 기분으로 하얀천으로 시트가 되어있는 택시를 타기로 했다.
합승할 수 있다면 엄청 절약되겠지만 그 시간에는 배낭 맨 사람은 전혀 없다.
택시기사에게 중간에 가게가 있으면 가스를 사가지고 가야되니까..가게앞에 잠깐 세워 달라고 해서,,
편의점을 비롯하여 3군데 가게를 들렀는데, 캠프용 가스는 없고, 전부 렌지용 부탄가스 뿐이다.
택시 아저씨도 버너용 가스통을 몰라서 달걀 반틈 자른 모양이라고 설명해도 이해를 못한다.
가스통이 2가지 있다는 것도 처음 알았다며 황당해 한다. 사실은 내가 더 황당한데...
마지막 가게의 주인이.. 가미고치에 가면 입구호텔에서 그런 가스를 팔기는 하지만
5시에 문을 닫는다고 알려준다. 여는건 아침 8시에 문을 열고...
지금 시간이 6시를 넘긴 시간이니 다 틀렸다.
그러고 보니 일본인 친구가 한국에 가면 가스통을 어떻게 구하느냐고 물은 기억이 났다.
일반 가게에서는 판매하지 않는다는 중요한 사실을 몰랐다.
만약 가스가 없다면 아침 4시의 출발 계획이 깨지면서 전체 일정이 조정되지 않으면 안되는 상황이다.
마지막 가게 아줌마는 남의 답답한 사정도 모르고
캠핑 할려면 필요한 부식거리 다 있으니까 뭐 필요한거 없냐고..그상황에서도 장사속을 보인다.
버스로 1시간 10분 거리를 택시로도 1시간이나 걸려서 어둑어둑한 가미고치에 도착했다.
중간에 수문을 열고 멋진 광경을 연출하던 댐도
비탈진 산길을 오르던 산돼지의 경이로움도
골짜기 안에서 피어오르던 신비한 온천수의 수증기도 가스통 걱정에 다묻혀 버리고,
아침 5시에 문열고 저녁 8시에는 문을 닫아버리는 교행식 가미고치 터널을 통과하였다.
터널 문만 닫아 버리면 가미고치는 외부세계와는 완전히 단절 되어 버린다고 한다.
미터기에는 11000정도 나오는데 12000엔을 달라니까 줘야지..어쩔수 없다.
마지막 친절인 듯 택시 아저씨는 가스 파는 호텔 매점 이름을 종이에 적어주었다.
하루 종일 걸려서 드디어 가미고치에 도착하였다.
시내버스까지 합하여 무려 10번이나 차를 갈아타고 도착한 곳이다.
근데 너무 조용하다. 버스터미널에서 숲길을 조금 올라가서야 처음으로 사람을 보았다.
어두워진 시간에 도착하는 나를 이상하다는 듯 쳐다본다.
저녁 시간...가미고치는 쥐죽은 듯 조용하기만 한데
가스가 없으니 불은 다 피웠고, 먹고살 궁리를 해야겠기에,
하동교 건너편 가게에서 저녁거리로 빵을 사갖고 텐트를 치려고 5분거리의 캠핑센타에 갔다.
그곳은 초등학생들의 단합훈련이 있는지 시끌벅적한데 셔터는 이미 굳게 내려져 있다...
그냥 텐트치고 잘까 생각하다가 문을 두드리니 열렸다..
텐트친다니까 자세한 기록을 적고 700엔을 달라고 한다. 혹시나 싶어 가스통이 있냐고 물어보았다.
아~ 구세주가 따로 없다.
2개 회사 가스통을 갖고와서 어느것으로 할거냐고 묻는다.
차이가 뭐냐니까 600엔 가격도 같고.. 어떤 차이가 있는지는 자기들도 모르겠단다.
드디어 8시에 텐트치고 저녁으로 참치넣고 김치찌개를 끓이고, 저녁밥을 지으면서
다음날 아침과 점심밥까지 같이 했다.
이동중에 밥할 시간도 없을거고 가스도 아끼기 위해서
저녁밥 할 때 아침과 점심을 같이 하기로 계획했었다.
야영장엔 텐트가 몇 개 보이지 않는다.
전부다 잠을 자는지 조용하고 9시가 되자 취사장의 조명도 꺼져 버렸다.
밥먹다가 얼마나 놀랐는지.,,,.갑자기 불이 나가버리니..
화장실은 계속 전등이 들어와 있는데,
전에 누군가 전에 화장실에서 잠잤다는 이야기를 들은적 있는데, 거짓말이 아니고 진짜 같다.
냄새도 없고 바닥도 너무 깨끗하다. 통나무벽 때문에 마치 산장 안에 들어온 듯하다.
더욱 이상한 것은 취사장에 붐비던 모기도 화장실엔 한 마리도 안보인다. 벌레도 없고..
어떤 특수 처리를 했을까....
9시50분에 대충 정리를 하고 잠이 든다.
다음날 부터는 힘든 일정이 계속되니까.. 푹 자두어야 할 것 같다.
7월18일 둘째날....만년설을 밟으며 야리카다케산장에 오르다.
길고 긴 차량이동으로 피곤한 탓일까.. 아즈사가와의 흐르는 물소리를 자장가 삼아,,
언제 잠이 든지 모르게 잠이 들었는데 눈을 뜨니 4시를 조금 넘긴 시간이다.
랜턴을 켜지 않더라도 사물은 똑똑히 잘 보일 정도로 환하다.
일본은 한국보다 동쪽에 위치하여 해가 일찍 뜨고 일찍 해가 지므로
산행도 5시전에 시작하고 4시 이전에 모든 산행을 마치는 것이 좋다고 한다.
혼자사는 살림살이가 뭐가 그렇게도 많은지, 주섬주섬 배낭에 챙겨넣고
아침 먹으면서 세수도 할 생각으로 배낭을 챙긴 후 텐트까지 철수하였다.
옆 텐트 사람도 일어나 물을 끓이기에
어제밤 늦게까지 부서럭 거려서 미안하다니까 전혀 상관없단다.
하지만 조금 신경 쓰이기는 했을거다.
길건너에서도 텐트를 걷고 출발 준비를 하는 사람이 보인다.
내가 가장 먼저 5시 23분 출발 했지만, 예정보다는 조금 늦었다.
잠을 푹 자고 나서인지 몸은 가볍다. 깍아지른듯 우람한 산세를 쳐다보며
전날 폭우로 불어난 강물을 따라 걷다보니 앞쪽에 코카콜라 트럭이 보인다.
벌써 산장인가 하는 의문과, 코카콜라는 안가는 곳이 없구나라는 생각을 하며 가보니
왠지 이상하다... 트럭의 반틈이 모래에 잠겨있는 것이 아닌가.
주변은 완전히 모래밭으로 변해서 폐허가 되어있었다.
어제 산사태가 나서 묻힌 것으로 보여지는데,,
만일 하루정도 일찍 왔더라면 이쪽으로 등산은 엄두도 내지 못했을 것 같다.
산사태 지역을 통과하며 가슴 졸인 것 이외에는
가벼운 몸과 상쾌한 날씨 덕분에 6시에 메이신(明神)에 도착하였다.
생각보다 시간적으로 빨리 진행되어서 기분이 좋다.
명신관에서는 아침 장사를 준비하는지 음료수랑 막걸리 비슷한 술인지 뭔지 모르지만 수조에 담고 있다.
여기에서 부터는 명신관에 숙박 한듯한 여자등산객 한명이 도쿠사와까지 줄곧 앞서갔다.
근데 가만히 보니 신발에서부터 배낭까지 고가의 외제품이다.
일본 등산객의 특징은 고산이 많은 곳이다 보니까,
등산장비는 확실한 것을 갖고 다니고, 도시락을 갖고 다니고, 혼자서 다니는 사람이 많고,
특히 여자 혼자인 경우가 의외로 많다. 또한 정정한 노인분들의 등산이 많다는 것이다.
젊은사람들관느 달리 노인분들은 대부분 단체로 움직인다.
차량이 다닐수 있을 정도로 넓은 등산로를 따라 계속이어진 산죽군락과
수백년은 된듯한 원시림이 절묘한 조화를 이루고 있다.
6시40분 야영장에 넓은 잔디가 깔린 시원한 도쿠사와(德澤)산장에 도착하였다.
여기서 아침을 먹기로 하고 버너불을 피우고 미역국을 끓였다.
앞의 여자분은 도시락을 꺼내서 삼각형 모양 김밥 2개로 아침을 해결해 버린다.
내 뒤를 따라오던 아저씨 두사람도
얇게 포를 뜬 생선(연어)으로 겉을 포장한 밥(마쓰스시)으로 아침을 끝내버리고 홀쩍 가버린다.
나는 여전히 국을 끓이고, 설거지를 하고, 녹차를 마시고, 온갖 호강을 다하고 있었다.
처음에 취사장에서 수도를 사용하려는데 어떻게 해야하는지를 몰랐다.
수도꼭지도 없고, 길다란 막대모양의 손잡이가 있기는 하지만 움직여 보아도 물은 나오지 않았다.
할수없이 컨닝을 하기로 하고 옆사람이 하는 것을 지켜보았는데, 그냥 수도가 아니고 펌프였다.
손잡이를 펌프질 하니까 물이 쏟아져 나왔다... 정확하게 쓸 만큼만..
어디를 가든지 버릇처럼.. 쓰지 않을 때는 멈추어 있는 것이 일본 문화의 한 면인 듯,
기차역뿐만 아니라 깊은 산속의 화장실일지라도
세면기 수도까지도 자동 타이머 방식으로 되어있어 사람이 없으면 작동을 멈추게 되어있었다.
또한 한가지 명심해야 하는 것은 가미코치를 지나면서 부터는 어디에도 휴지통이 없다.
자신의 쓰레기는 집에까지 가져 가야한다.
그리고 가미고치에서도 쓰레기를 그냥 버리면 안되고
통이 여러 개 있는데 음식물 쓰레기와 캔, 병, 플라스틱, 불에 타는 것, 불에 안타는 것, 등등 철저하게 분리해서 버리도록 만들어져 있다.
미리 그것을 알았기에 최소한의 쓰레기만 배출되도록 계획을 세웠지만
지고 가는 배낭 무게만 해도 엄청난데 그릇 닦은 휴지를 들고 가고 싶은 마음은 없기에
결국 세수하면서,, 화장실에 설거지한 휴지를 버리고 물을 내렸다.
그래도 여기까지는 화장실 사용은 무료다.
하지만 요코(橫尾)산장에서부터는 화장실 사용료가 100엔이다.
시설을 돈받을 정도로 잘해 놓기도 했지만 우리나라와 달리 일본의 산장은 전부 개인소유다.
관리도 개인이 하고 수입도 자신의 ??이다. 그래서 더 철저하고 깨끗한지도 모른다.
자판기 옆에 있는 휴지통은 오직 그 자판기에서 나오는 빈깡통만 버리도록 되어있다.
화장실에 쓰레기를 버린것에 대하여 조금은 양심의 가책을 느끼는척하며
7시 35분에 도쿠사와를 출발 하였다.
아무리 시간을 절약한다고 해도 식사시간이 1시간은 걸린다.
식사하면서 휴식도 취할수 있다는 장점도 있기는 하지만,
도시락먹고 떠나버린 팀과 비교하면 30분 이상 차이가 난다는 것은 생각해볼 여지가 있다.
도쿠사와를 떠난 지 50분만에 요코산장에 도착 하였다.
많은 사람들이 떠나고 도착하는 중심역 같은 분위기다.
사실 요코산장에서부터 야리카다케로 가거나, 가라사와를 거쳐
최단시간에 북알프스 최고봉인 오쿠호다카(3190m)로 올라가거나,
동쪽편의 조카다케로 갈수도 있다.
벌써 등반을 끝내고 요코산장 앞 다리를 건너 내려오는 사람도 있다.
날씨가 맑아서 시야가 넓기 때문에
서서히 모습을 드러내기 시작하는 오쿠호다카다케의 만년설로 덮힌 연봉들이 깨끗하게 눈에 들어온다.
산장에 있던 사람들까지 합쳐서 여기서 부터는 많은 사람들이 등반 대열에 합류하였다.
요코산장을 지나면서부터 등산로는 좁아지고, 차량은 더 이상 들어올 수 없다.
본격적인 오르막과 함께 등반이 시작되는 것이다.
8시 40분 화장실 사용하려면 알아서 100엔을 넣어달라는 정중한 문구를 무시하고
이번에는 조금의 양심의 가책도 느끼지 않고,
쉬하고 돈벌어 보기는 처음이라며 100엔 벌었다고 좋아하면서 화장실을 나와 출발 하였다.
9시15분 계곡을 따라 몇 개의 다리를 건너고,
이리저리 경사가 거의 없는 평탄한 길을 올라가는데, 쉼터 같은 곳이 나온다.
야리카다케가 처음으로 보이는 곳이란 설명이 되어있다.
나무가지 사이로 멀리 아득하게 뽀쪽한 창악(3180m)이 이름처럼 마치 손가락을 모아서 하늘을 찌르는 형상으로 버티고 있다.
작은 계곡을 건널때는 서늘한 냉기가 냉장고 문을 열어놓고 있는듯한 기분이 들게한다.
지금도 잊을 수 없는 것은
계곡의 물을 한모금 마셨을 때, 냉동실에 물을 넣어두었다가 반쯤 얼었을 때 꺼내 마시는
육각수같은 향과 맛이 그대로 살아 있었다는 것이다.
얼음이 녹은 물이니까 당연 한것인지도 모르지만,
무엇보다도 북알프스하면 떠오르는 것은 가슴이 시리도록 좋은 물맛이다
계곡의 물맛에 취하여 지겨운 줄도 모르고 가다보니
길은 어느새 조금씩 조금씩 오르막으로 변하고 있는데, 조그만 팻말 하나가 눈길을 끈다.
'야리사와에 곧 도착하니 힘내세요!'
그런데 もうすぐ라는 말이 어느 정도를 의미하는지 짧은 일어 실력으로는 언 듯 와닿지 않는다.
너무 작아서 귀여운 느낌을 주는 수력 발전기 앞에 있는 나무팻말인데,
아직 산장은 보이지 않고 급경사의 오르막 길이 기다린다.
2분정도 숨가쁘게 걸었을까.. 9시 56분에 야리사와(槍澤) 롯지에 도착하였다.
벤치에는 산더미만한 배낭을 앞에놓고 엎드려서 한사람이 졸고 있다.
안락의자 모양의 너무 편해 보이는 나무의자가 있기에 양말까지 벗고 휴식을 했다.
야리사와 부터는 계속 오르막길이므로 각오를 새롭게 해야한다.
충분한 휴식을 하고나서 10시 15분 아직은 싱싱한 기분으로 산장을 출발하였다.
머리위로 헬기소리가 요란하여 쳐다보니 뭔가 짐을 잔뜩 매단 헬리콥터가 창악쪽으로 날아가고 있다.
산장에는 모든 물품을 헬기가 아니고는 운반할수 없기 때문인가 보다.
몇 개의 지곡을 지나는데 물은 흐르지 않았지만
계곡 사이에는 굵은 자일로 만일의 사태에 대비해 건널수 있도록 준비되어 있다.
가미코치(上高地)를 출발할 때 까마득히 멀리 보이던 기분 나쁜 붉은 바위산이 바로 눈앞에 있다.
주변의 푸르름과 전혀 어울리지 않게 붉은색의 바위산(赤岳)이 위협적으로 우뚝하게 서있었는데,
바로 밑에서 올려다보니 처음의 느낌처럼 그렇게 나쁘게는 보이지 않는다.
주변의 경치를 둘러보며 천천히 걷다보니 야영장으로 보이는 넓은 평지에 도착하였다.
깊은 계곡이 넓게 펼쳐지며 얼음으로 덮여있는 골짜기가 한눈에 들어온다.
시야가 멀리까지 보였지만 야리카다케는 계곡과 계곡사이에 숨어서 보이지 않는다.
미나미다케(南岳)로 추정되는 능선을 보는 것으로 만족해야한다.
빙하로 덮여있는 길을 지날 때 밑에서 세차게 흐르는 물소리가 위협적이다.
생각했던것 보다 눈길이 미끄러웠다.
11시20분 水保乘越 갈림길에서부터 경사가 급해지기 시작한다.
고소증세는 나타나지 않지만 2000미터 이상의 고도이기 때문에 걸음이 가벼울수는 없다.
이른 아침을 먹은 탓인지 배가 고파서 물가에 주저앉아 점심을 먹었다.
구운김과 김치, 장아찌, 멸치뽁음, 깻잎무침... 집 떠나면 잘먹어야 한다지만 너무 푸짐하다.
앞서거니 뒤서거니 하면서 같이 사진을 찍어주던 일본인 아저씨는
내가 밥상을 푸짐하게 차리는 것을 보고 조금 놀라는 눈치였지만 웃으며 지나갔다.
남의 일에 거의 참견하지 않는 것이 일본인의 매너니까...
나중에 보니까 그 아저씨는 점심으로 비스켓 하나가 끝이었다.
햇볕이 강했지만 간간히 구름이 지나가며 강렬한 햇살을 가려주었고,
바람이 불어와도 더운 여름바람이 아니고 늦가을 바람처럼 싸늘하다.
걷지않고 휴식을 취할 때 바람이 불면 반팔티로는 추위를 느끼게 된다.
점심 후에 앉아서 놀기에는 한기가 들어 춥기 때문에 빨리 출발하였다.
12시 40분 天狗原 미나미다케(南岳) 갈림길이다.
남악으로 곧바로 올라갈수 있는 곳인데
시기만 잘 맞춘다면 주변이 온통 꽃으로 덮이는 낙원을 구경 할수 있다고 한다.
많이 올라왔다는 안도감은
얼어있는 눈으로 덮힌 넓은 계곡을 가로지르는 눈길을 보면서 기가 죽어버린다.
눈길을 건너다, 만에 하나 미끄러지기라도 한다면... 전혀 가능성이 없는 이야기가 아니다.
스틱이라도 있다면 조금은 정신적 위안이나마 될 수도 있겠지만,
지금으로서는 조심하는 방법밖에는 없다.
수통에 물을 채울려고 물이 흐르는 골짜기로 가려고 작은 눈길을 건너다가
서너걸음 걷고는 얼어붙어 버렸다.
정해진 길이 아닌 곳의 눈은 얼어 있기 때문에
등산화로 몇번 걷어 찬다고 해서 길이 만들어지지 않는다.
꼼짝도 할수 없는 상황이 되고보니 아찔해온다.
한걸음만 잘못 움직여도 미끄러질 것 같기에 조심조심 뒷걸음으로 슬랩 눈길을 빠져 나왔다.
눈길 옆으로 올라가다보니 눈이 꺼진곳이 있기에 내려가서 물을 담았다.
크레바스 밑으로는 깊고 깊은 어둠이 끝을 알수없이 이어진다.
섬??한 기분이 들어 서둘러 빠져나와 길을 재촉하였다.
몇 개의 눈길 크레바스를 지나고 나서,
앞서가던 아저씨가 개스 속에 야리카다케가 숨어 있다며 손가락으로 가리키는 곳을 보니
주변은 다 잘 보이는데 유독 개스가 구름처럼 몰려있는 곳이 있다.
드디어 1시40분 야리카다케가 보이는 너덜지대에 도착하였다.
야리카다케 산장은 검은 실루엣으로 멋지게 능선위에 자리잡고 있고,
지척에는 샷쇼(殺生)산장이 보인다.
창악 1.25km이라는 표지판에 도착 하였다.
그동안 시그널 하나 보지 못했고, 등산로 이외의 길 흔적은 전혀 보지도 못했다.
갈림길에는 표지판이 잘되어 있고, 등산로 외에는 길이 없으므로 표식을 달 필요가 없다.
수목한계선을 넘으면서 나무가 없으므로 달고 싶어도 달곳도 없다.
하지만 너덜지대에는 바위에 페인트로 길표시를 계속해 두었다.
너덜지대여서 낙석도 많고 지그재그로 길을 만들었기 때문에
페인트 표시를 보면서 왔다 갔다 하다가
지루한 느낌이 들어 조급한 마음에 너덜지대를 가로질러 올라갔다.
그런데 갑자기 내가 잡고 올라선 바위가 큰소리를 내며 무너지면서
작은 냉장고 크기의 바위가 떨어져 나가며 밑으로 구르기 시작한다.
낙석이라고 소리지르며 밑을 보니까 사진사 아저씨가 놀란 눈으로 떨어지는 바위를 보고 있다.
다행히 바위는 멈췄지만 또 문제가 생겼다.
발을 움직일려니 발밑의 자갈이 마구 흘러내리며 미끄러진다.
길이 아니면 가지말라는 선인의 충고가 새삼 가슴 저리게 와닿는다.
2시30분 마지막 힘을 모으기 위해 살생산장(殺生山莊) 앞에서 사과 한쪽을 먹었다.
머리가 멍하면서 아파온다.
갑자기 땀을 많이 흘린 탓인지, 어쩌면 고소 때문에 더 아픈지도 모른다.
눈앞에 바로 보이는 곳이지만 풀한포기 자라지 않는 바위투성이의 등산로는
지겹도록 지그재그로 올라가며 급경사를 이루고 있어 오르기가 쉽지않다.
특히 5일간의 식량과 텐트가 든 배낭의 무게도 만만치 않은데,
힘이 빠진 상태에서 숨차고 다리 아프고 배도 고프고,
해발 3000미터에 이르는 곳인만큼 고소도 한 몫을 하고 있는 것 같다.
오늘 오르는 구간중 가장 힘이들어 천천히 한걸음 한걸음 옮기고 있다.
남악쪽 능선으로 짙은 구름이 몰려오고 있다.
비가 올지도 모르지만 그것은 이미 각오를 하고 있는 일이다.
오른쪽 살생산장 뒷편 능선은 조카다케에서부터 쭉 이어지는 릿지인데,
몇명의 등산객은 살생산장 뒤로해서 릿지길을 올라간다.
릿지길을 한번 가보고 싶은 욕심은 있지만 쳐다만 볼뿐
너무 지친 상태이므로 감히 엄두를 내지 못한다.
3시 20분 야리카다케 산장에 도착했다.
5시20분부터 지금까지 10시간을 걸어 올라왔다.
산장에서 500엔을 주고 캠프사용증을 받았다.
산장의 숙박객은 식수가 무료지만 야영객은 1리터에 200엔 물값을 내고
단지같은 물통에서 국자로 물을 퍼담는다.
1.5리터 병을 내미니까..뭐라고 중얼중얼 거리다가 300엔을 달라고 한다.
급경사 비탈에 마련된 캠프지에 텐트는 나를 포함하여 3동, 5명이 전부 다였다.
나머지 사람들은 산장에서 숙식을 해결하는 모양이다.
텐트를 치고 저녁을 준비하는데 바로 옆에 텐트를 친 사진사 아저씨가 창악에 안갈거냐고 물었다.
야리카다케(槍岳 3180m)는 야영지 바로 뒤에 우뚝 서있다.
하지만 머리도 아프고 지친 상태이므로 내일 아침에 올라갈거라고 했다.
창악은 지도상으로 왕복 1시간 이지만 그렇게 걸리지는 않아 보였고,
실제로 그 아저씨도 30분만에 돌아왔다.
내가 창악에 안올라가는 것이 이상한지 자꾸만 얼마 걸리지 않더라면서 지금이라도 갔다오란다.
그때 그말을 들었어야 했는데.... 기회는 왔을 때 잡아야 하는 것이다.
결국 창악을 코앞에 두고 못 올라가 보았다.
옆텐트에서 식사준비를 하길래 맛있는 것 있으면 나눠달라니까, 웃으면서 봉지 두개를 보여준다.
물을 많이 소비하는 우리의 식사와는 달리 물만 조금 끓이더니
하나는 저녁인 카레밥 봉지에 붓고, 하나는 내일 아침인 두부 봉지에 붓는다.
아주 간단하게 식사준비가 끝나버린다. 봉지 2개뿐이니 설거지도 필요가 없어 보인다.
5시20분에 식사도 끝나고 내일 아침 일찍 출발 예정이므로 짐정리도 대충 하고 잠자리를 준비하였다.
야영지에서 마주 보이는 中岳은 지척인 것 같지만 지도로는 2시간20분 거리이다.
일본에서 가장 표고차가 큰 길이란다.
엄청 골짜기로 내려갔다가 창악 올라오는 것 보다 더 가파른 산길을 올라야한다.
일단 아침 3시에 일어나 창악에 올라가서 일출을 보고 출발하면
오후 3시전에 내일의 야영지인 오쿠호다카다케에 도착 할수 있을 것이다.
6시에 잠을 잘려고 누웠지만 잠이 오지 않는다. 이시간에 잠을 자본적이 없으니....
그런데 바람이 점점 거세어진다.
텐트사이로 바람소리가 엄청나게 들려오고 후라이가 심하게 펄럭인다.
밤이니까 그런가보다 했는데 어느새 비가 오기 시작한다.
잠깐 밖을 쳐다본다고 일어나는데 코끝이 시리고 한기가 엄습한다.
기온도 급격하게 떨어지고 있었다. 여름에도 밤에는 영하의 날씨가 보통이라나...
조금도 쉬지않고 내리던 비는 12시를 넘기면서 폭우로 변했다.
바람도 엄청 세어지면서
온세상은 후라이를 때리는 빗소리와 윙윙거리는 바람소리로만 가득채워진다.
폭풍속에 들어온 것 같다.
세째날.....하산을 결심하고,
시끄러운 소리 때문이 아니더라도 심적으로 부담을 느낀 탓인지..좀처럼 잠을 이룰수 없다.
시간은 왜 그리도 더디게 가는지,
거의 뜬눈으로 지새우다가 4시에 등반을 시작해야할 것 같아서...3시에 화장실에 가려고 일어났다.
캄캄한 밤중에 누가 볼것도 아니니까(설령 본다고 한들....)
텐트 주변에서 쉬~할까도 생각했지만...
폭풍속에서 비맞으며, 그러기엔 별로 모양새도 좋지 않을것 같고 ,
화장실도 10미터 거리니까 쉽게 갈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비람이 조금 약해지는 틈을 골라서 밖으로 나왔는데...
사방은 캄캄한 어둠이고 랜턴에 비치는건 자욱한 개스뿐....
겨우 발바닥만이 보일 정도로.. 시계는 1미터 정도 밖에 되지 않는다.
텐트 옆으로 돌아서 바위를 잡고 더듬거리며 화장실 방향으로 가는데,
자칫하다간 텐트로 못돌아갈거란 생각에 한걸음씩 때마다 나침반으로 위치를 확인하였다.
우여곡절 끝에 소각장 내려가는 계단을 발견하였다.
소각장에서 화장실은 대여섯걸음 정도.....
하지만 랜턴불빛에도 화장실은 보이지 않는다. 3미터 남짓한 거리인데도.....
겨우겨우 화장실에 도착하여 두꺼운 나무문을 열고 들어가니...천국이 따로 없다.
이제 돌아갈 일이 더 큰일이다 싶었지만...
그래도 다행히 비는 조금 멎었고, 한걸음 걷고, 멈추고 하면서 돌아올 때,
한치 앞도 안보이는 개스 속이었지만
옆쪽 텐트에 희미하게나마 불이 켜져 있어서 이정표가 되었다.
긴장이 풀어지면서 추위가 몰려와서 침낭속에서 한참을 웅크리고 있다가, 아침을 먹었다.
버너 피우기도 마땅치 않아서 차가운 밥과 밑반찬만으로의 서글픈 아침 식사였다.
대충 짐정리를 하고나니 4시30분.....
하지만 밖은 캄캄 하기만 할뿐..도저히 밖으로 나갈 엄두가 나지 않는다.
아직 갈길은 멀기만 한데 날씨는 전혀 도움을 주지 않고 방해만 하고 있으니....
그래도 갈길은 가야겠기에 마음을 단단히 먹고 텐트를 철수 하였다.
사진사 아저씨는 자고 있는지 조용하다.
인사도 없이 가는것이 미안했지만 깨우고 싶지 않았다.
어김없이 날은 밝아오기에 사방이 조금씩 흐릿해 지기 시작한다.
혹시나 산장에 가면 길동무라도 구할지도 모른단 생각에 일단 산장으로 들어갔다.
넓은 산장 식당엔 전신주를 한토막 잘라 옆으로 눕혀 놓은 모양의 대형 버너에서
시뻘건 불길이 뿜어져 나오며 난방을 하고 있었다.
물에 빠진 생쥐모양의 내 모습을 보고 종업원이 반갑게 맞아준다.
일본의 산장엔 여름철에 아르바이트를 하는 젊은이들이 많은데,
비장한 내 신세와는 달리 태평스런 모습으로 일하는 귀걸이와 콧수염이 잘 어울리는 청년에게
날씨에 대해 물어보니 내일부터는 비가 그친다고는 하지만
산악 날씨는 누군들 알수 없지 않느냐는 실망스런 대답이다.
몇 명의 사람들이 김이 모락모락 올라오는 따뜻한 밥으로 식사를 하는 것을
부러운 눈빛으로 물끄러미 바라보다가, 지금 등반하려는 사람도 없고,
비바람 속에서 바위를 오르기는 힘들기에 창악은 포기하고
5시를 조금 넘긴 시간에 미나미다케(南岳)로 출발하였다.
남악은 2시간 정도의 내리막길을 지난후 2시간 정도 오르막이다.
남악으로 가는 길고 긴 하산길에 들어서는데 빗줄기가 거세어진다.
나무 한그루 자라지 않는 거친 고산에서 불어온 강한 바람과 빗줄기가 합쳐지며
세차게 뿌리는 물방울이 얼굴을 따갑게 때린다.
마치 세차장에 들어 온 것 같은 느낌이다.
방수 우의도 금방 젖어버려 소용이 없어졌다.
무엇보다도 견디기 힘든건
바지를 타고 내려온 물줄기가 신발로 들어가 버려 질퍽거리기 시작 하는 것이다..
탁월한 방수 기능으로 오랜 사랑을 받아오던 친구같은 등산화였지만 이런 경우에는 속수무책이다.
걸음을 멈추고 비를 맞으면 고민에 빠졌다.
만일 이틀을 더 이런 상태로 견뎌야 한다면 힘들 것 같다.
더욱이 오늘의 등반은 리지등반으로 낙석이 심한 지역을 통과해야하고,
오르락 내리락 해야하는 고도차가 많은 곳이므로 시간을 예측 할수 없고,
다음 야영지까지 가는동안 탈출로도 없다.
내가 생각하는 등반의 원칙은 안전이 최우선이고, 그 다음이 즐거움인데,
하이포서미아와 조난의 공포를 느끼면서 까지 무리할 필요가 있을까...
만일 야리종주를 못하더라도 내년에 한번 더 도전할수도 있지 않을까...
한기를 느끼며 한참을 서서 생각한 후에,
하산하기로 자신이 내린 결정에 대하여 절대 후회하지 말자고 스스로 다짐하면서
내려오던 길을 다시 올라가기 시작했다.
첫댓글 아~하는 탄성이 절로나옵니다. 야리카다케란곳과 고산등반을 혼자 시도하신 야호님에게서...
야호님의 나홀로 일본 북알프스 종주기 차질은 있었지만 생생한 후기 즐감합니다~기회는 왔을때 잡아야 한다는말 공감합니다~담번엔 꼭 소망이루시길~~
상세하게 쓴 길글 읽으면서 제경험인냥 스릴을 느꼈습니다...용기에 박수를 보냅니다..
음, 역시 젊은 전문 산악인이 다르군요. 산오름 창립 때 가입했더라면 북알프스 종주 다녀올 자신이 있을 건데...
대단한 용기와 도전정신이 베어나네요. 우리와는 차원이 다르군요..늘 안전한 산행 하시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