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 막 오월이다. 풀이 한창 자랄 때다. 마당에 잡초와 씨름하느라 몰랐는데 어느새 담 밖에도 잡초가 무성하다. 잡초 중에서도 억새가 제일 힘들다. 부드러운 은색의 꽃이 피는 풀에 왜 그런 안 어울리는 이름이 붙었는지 항상 의문이었지만 뿌리를 캐다 보니 납득이 갔다. 얼마나 억센지 강력한 제초제가 아니면 제거할 수가 없었다. 마당의 억새는 잔디와 함께 자라기 때문에 정말 처치 곤란이었다. 그러나 담밖의 잡초와 함께 자라는 억새에게는 제초제를 쓸 수밖에 없었다. 나는 이름을 외우기도 힘들거니와 이름을 안다쳐도 구별하기 힘든 잡초들에게 제초제를 뿌렸다. 제초제가 얼마나 독한 것인지 뿌릴 때는 잘 모른다. 그러나 사나흘 지나 풀이 시들다 못해 노랗게 타는 것을 보면 그 독성을 실감하게 된다. 그날 바람이라도 불라치면 주변의 화초까지 시들시들해지기 일쑤다. 며칠 지나면 뿌리까지 죽은 잡초들은 쑥쑥 쉽게 뽑힌다. 내버려두어도 왠만한 잡초들은 흔적도 없이 사라진다. 이제 막 오월의 시작이었다. 억새도 그냥 풀처럼 자랄 때이다. 꽃은 가을에나 핀다. 지금은 잔디보다 조금 키가 커서 겨우 구별되는 정도이다. 나는 담 밖에 제초제를 뿌린 잡초들을 언제 뽑을지 살펴보는 중이었다. 한 쪽 귀퉁이에 하얗게 핀 억새꽃을 보았다. 꽃이 필 시기도 아니려니와 며칠 전 제초제를 흠씬 뒤집어쓰지 않았나? 지금쯤 노랗게 말라있어야 할 주제에 무슨 꽃을 피운다는 거지? 작년에 피었던 꽃일까? 하지만 분명히 약을 뿌릴 때는 꽃이 없었고 주변 억새가 나는 자리에도 작년 꽃의 흔적은 찾아볼 수가 없었다. 다 자라지도 않은 억새가, 더구나 제초제로 타들어가고 있는 억새가 피워낸 하얀 꽃을 한참 동안 바라보았다. 그 곳은 작은 전쟁터였다. 전쟁 후의 폐허였다. 억새는 폐허의 담벼락 앞에 서 있는 한 어린 소녀의 영문모를 아름다움이거나 한 어린 임산부의 모습처럼 보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