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취한 대포항이 건들건들 파도에 흔들’린다 속초 대포항 낯선 곳을 여행할 때면 늘상 따라붙는 어줍잖은 객기에다 약간의 취기까지 더해지면 그 곳은 더 이상 낯선 곳이 아니다. 굳이 ‘살구꽃 핀 마을’이 아니더라도 ‘어디나 고향 같’고, ‘만나는 사람마다 등이라도 치고 싶’을 만큼 정겹고 반갑다. 이 곳, 강원도 속초시 대포동에 있는 대포항은 더더욱 그런 곳이다.
먼 거리를 달려 저물 무렵 대포항에 도착하면 파르스름한 이내가 신비롭게 하늘을 뒤덮고, 오색찬란한 네온사인 불빛이 나그네를 반긴다. 이른 취객 하나가 비틀비틀 걸어가는 뒤쪽으로 네온 불빛을 받은 물빛이 오색으로 일렁이면 시인 고창환이 노래했듯 마치 ‘만취한 대포항이 건들건들 파도에 흔들’리는 듯하다. 설악산과 가깝고 7번 국도변에 있는 까닭에 쉽게 찾아갈 수 있는 대포항은 설악산만큼이나 유명 관광지로 자리매김했다. 관광 성수기나 비수기에 관계없이 주말이면 대포항을 찾는 사람들로 좁은 골목은 발 디딜 틈이 없을 정도다. 2004년 해양수산부가 다기능 어항으로 지정했을 만큼 이제 대포항은 항구의 원래 기능보다 관광지로서의 면모가 돋보인다.
사실 대포항은 속초가 개항되기 이전부터 유명했던 항구다. 일제 때는 물론 6·25사변을 전후로 발행된 우리나라 지도를 보면 속초는 표시돼 있지 않지만 묵호항, 장전항, 원산항 등과 함께 대포항은 항구 표시가 된 걸 볼 수 있다. 그러나 1937년 7월1일자로 양양군 도천면 대포리에 있던 면사무소가 속초리로 옮겨 갔고, 이어 청초호 주변을 다듬어 속초항이 태어나면서는 대부분의 화물선과 어선들이 속초항으로 들르게 됨에 따라 1942년 무렵에 속초읍이 탄생했고, 대포항은 한낱 어선 몇 척이 드나드는 한적한 포구로 전락했다. 연평균 100만 명이 넘는 관광객들로 북적이는 지금의 대포항을 보면 인생사 새옹지마란 말이 새삼 실감난다. 주차장 옆길에서 시작해 500m 이상 계속되는 좁은 골목은 요지경속같다. 고소한 튀김냄새가 진동하는 초입에서부터 발목이 잡힌다. 싱싱한 새우를 사용해 즉석에서 만들어내는 새우튀김은 그냥 지나칠 수 없는 유혹이다. 대포항에서 20년째 튀김을 튀겨낸다는 가게 앞에는 길게 늘어선 줄이 가뜩이나 복잡한 길을 더욱 불편하게 만든다. 오징어를 통째로 다듬어 씻고, 그 속에 찰밥과 무청, 당근, 양파, 깻잎을 넣어 쪄먹는 오징어순대도 터질 듯한 뱃구레를 드러내고 드러누웠다.
뭐니뭐니해도 대포항의 명물은 활어난전이다. 가게마다 쭉 늘어 놓은 빨간 고무드럼통과 수족관에 갖가지 종류의 신선한 활어가 넘쳐난다. 이곳저곳을 구경하다가 맘에 드는 곳을 선택하고 가격을 흥정하면 도시 횟집의 반값도 안되는 가격에 광어, 우럭, 넙치, 방어 등을 배부르게 먹을 수 있다. ‘도시촌놈’이 “산오징어회는 어떻게 하냐”고 물으면 “하이고~ 그 건 입 아파 못먹을 정도로 서비스할 테니 얼른 들어오라”고 손님을 부른다. 오징어 집산지다운 인심이다. 까짓, 오늘 먹고 죽자며 허리띠를 푼 나그네가 성급히 소주잔을 비워낸다. 얼큰한 취기가 몸을 덮치면 고창환의 시 <대포항 근황>이 더욱 맛깔나게 읽힌다.
‘··· 긴 여행에서 돌아와 정박 중인 갈매기들이 / 저녁 하늘에 부리를 꽂고 / 끼룩끼룩 부푼 모험담을 풀어놓는데 / 횟집 좌판에선 비린 바람이 뼈째 썰린다 / 여기 퍼질러앉아 쥐치나 씹으며 / 막소주 한사발에 취해볼거나 / 할 말이 많은 듯 입술을 들썩이는 / 불빛 몇 개가 바다로 떨어진다···’ *가는 요령
영동고속도로를 탈 경우 강릉JC에서 빠져나가 동해고속도로(속초 방면)를 타고 종착지인 현남 IC에서 빠진다. 국도 7번을 이용해 양양을 지나면 설악산입구 - 3분 정도 더 가면 오른쪽이 대포항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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