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을 위한 행진곡>을 노래하다
-스페인 밀레니엄 합창단-
박 남 용
전남대 수의대 명예교수
<스페인 밀레니엄 합창단>은 상임 지휘자 임재식 단장을 비롯하여 20여 명의 스페인 중년 남녀들로 구성되어 있다. 이들은 한국을 지극히 사랑하는 마음으로 주로 우리나라의 민요와 가곡을 연습하여 무대에 올리고 있다. 그들은 이미 스페인의 국가적인 여러 축제나 주요 연주회에서 널리 활동하고 있는데, 스페인은 물론 유럽에서도 잘 알려진 합창단으로 한국의 노래 레퍼토리가 80여 곡에 이른다고 한다.
수년 전부터 한국을 여러 번 방문하고 있는 이들은 지휘자의 열정적인 활동으로 스페인과 한국과의 문화교류에 큰 역할을 하고 있다. 우리 고장에서는 임택 (전남대 불문과 졸업) 동구청장의 초청으로 작년에 이어 금년에도 8월 18~19일 이틀간 조선대의 해오름관에서 열정적인 공연을 펼쳐 뜨거운 여름밤을 시원하게 만들었다.
이번 공연은 동구청에서 초청 비용을 후원하였으며, 공연 장소의 새로운 무대 영상, 조명 및 음향을 재설치하면서 완벽한 선율의 하모니를 이룰 수 있게 해주었다. 그동안 애를 써주신 박범순 협력관 등 여러 분들께 박수와 찬사를 보낸다.
이와 함께 특별 출연한 <광주 동구 합창단>(지휘자 박병국, 피아노 김혜원)은 노래 2곡과 앙코르송을 함께 불러주었고, 스페인 밀레니엄 합창단은 <임을 위한 행진곡>을 포함한 총 25곡을 연주하였다. 1부에서는 <베사메 무쵸>, <바로 너!>, <빵과 투우> 등 7 곡을, 2 부에서는 한복을 입고, <남촌>, <선구자>, <그리운 금강산>, <먹구름 흘러가는 곳>, <밀양 아리랑>, <새야새야 파랑새야>, <울릉도 트위스트>, <향수>, <엄마야 누나야>, <섬집아이> 등을 불렀다. 전문 성악가들의 아름다운 목소리는 감동의 선율로 청중들의 가슴을 울려주었다. 특히 각 연주곡마다 그들의 동작 하나하나에 재치있는 몸짓이 곁들여져 상쾌한 웃음을 자아내었다.
곡목에 맞추어 무대 배경 영상을 3 분할로 투영하여, 왼쪽은 큰 글씨로 가사가 비춰지고, 가운데는 악곡의 의미에 알맞은 배경영상을, 오른쪽은 솔로 가수나 일부 단원들의 확대된 영상을 비춰주었다. 또 지휘자 임재식씨의 모습이나 캐스터네츠 연주자 라이안 보르헤스씨의 위트있는 동작들이 나타날 때마다 수시로 관객들의 흥을 불러일으키기도 하였다. 무대에서 진지하게 일어나는 모든 동작들은 세계적 일류 엔터테이너들의 모습이었다. 양 손에 캐스터네츠를 쥐고 박자에 맞춰 무대를 휘저으며 분위기를 잡는 라이안씨는 라만차의 기발한 신사 <돈키호테>와 다름없었다. 피아니스트 알렉산드레 알깐따라가 벌떡 일어나 피아노 곁으로 접근한 지휘자 임재식의 양 어깨를 주무르다 둘이서 헐레벌떡 놀라 제자리로 돌아가는 모습도 신이 났지만, 앙코르송으로 우리나라 말과 스페인어로 부른 <임을 위한 행진곡>은 마지막으로 장내를 엄숙하면서도 격정의 도가니로 만들어버렸다.
우리나라 민주화 운동의 상징 <임을 위한 행진곡>을 스페인어로 부른 무대는 창단 이래 처음이라고 한다. 이틀간에 걸쳐 공연을 관람한 2,000여 명의 광주 시민들에게는 벅찬 감동의 순간이 아닐 수 없었다. 합창단과 함께 관객들이 한마음으로 <임을 위한 행진곡>을 따라 부르며 장엄한 무대를 만든 것은 요사이 곧 터질 것 같은 대한민국의 시류와도 같아서 이를 예언하는 듯 했다.
“사랑도 명예도 이름도 남김없이
한평생 나가자던 뜨거운 맹세”
<임을 위한 행진곡>은 대한민국에서 가장 잘 알려진 민중가요로 <5·18민중항쟁>으로 거룩하게 산화한 <전남대> 정외과 출신 윤상원 님과 노동 운동가 박기순 님의 넋풀이 영혼결혼식을 위하여, 1981년 김종률(현재 세종시 문화재단 대표이사)에 의해 최초로 작곡되었다. 그는 그 당시 <전남대> 경영학과 4학년 학생이었는데 이미 민주화 운동에 적극 참여했었다. 유명한 재야 운동가 백기완 선생의 <묏비나리> 시를 황석영 작가가 다듬어 가사로 만들었다. 해외에서는 1982년 홍콩에서 처음 불리었고, 이어 일본, 중국 등 동남아시아로 퍼져나갔으며, 스페인의 전문 성악가들이 한국어 합창으로 부른 것은 작년 8월 <아시아 문화전당> 예술극장에서가 처음이었다. 금년 8월엔 스페인어로도 불려 졌으며, 스페인어로 번역된 첫 악보가 이번에 임택 동구청장에게 전달되었다. 이 노래는 지난 날 <5·18 민중항쟁> 기념식에 참석한 이명박, 박근혜 씨들이 한사코 함께 부르는 제창을 마다하는 넌센스도 있었다.
<스페인 밀레니엄 합창단>은 60년 역사를 지닌 스페인 최고의 <RTVE 합창단>의 80명 단원 중 24명을 선발하여 24년 전 1999년에 창단되었다. 34년 전 스페인으로 건너간 임재식 단장이 화려한 경력을 쌓은 후 초인적인 노력으로 수도 마드리드에서 300여 명의 스페인 사람들이 <비내리는 고모령>을 부르게 하고 100여 명의 어린이들이 <반달>과 <과수원길>을 부르게도 하였다. 드디어 <아리랑> 노래가 스페인 초등학교 5학년 교과서에 등재되었다니 임재식 단장의 한없는 노고에 경의를 표한다.
<한국콘텐츠진흥원>과 광주시 당국이 각각 30억 원씩 투자하여 <조선대> 캠퍼스 내 <해오름관>을 e-스포츠관으로 2년 전 리모델링하였는데, e-스포츠란 컴퓨터통신이나 인터넷을 통해 온라인상으로 이뤄지는 게임을 통틀어 이르는 말이다. 지방에서도 프로 게이머들의 경기를 응원하면서 리얼하게 볼 수 있는 시설인데, 부산, 대전, 및 광주 3곳 중 규모면에서 광주가 가장 크다고 한다. 주경기장만도 1,731㎡ 크기에 1,005석 규모로, 국제대회 메이저급 경기를 치를 수 있는 전국 최대 규모를 자랑한다. 무대는 가로 15.5m, 세로 4m 크기의 4K 고해상도 발광다이오드 LED 디스플레이가 무대에 구축되어, 어느 좌석에서든 2,000 WT 이상의 고출력 스피커로 생생하게 직관할 수 있는 무대이다.
이번 합창단의 공연을 위해 영상 조명 및 음향시스템을 재구축했다는 <경북대 및 단국대> 출신 전병은 총감독이 제공한 정보 자료도 간략하게 요약한다.
무대 배경 영상을 위해 LED 총길이 21×4m, 총 168장의 LED를 쌓았고, 신호선으로 연결하여 화면을 3분할, 노트북과 스위처로 다양한 영상을 띄웠다고 한다. 조명을 위해서는 LED 무빙조명 16개를 합해서 다양한 종류 40개, <해오름관> 자체조명을 사용하지 않고, 이렇게 외부에서 반입된 조명을 사용했다고 한다. 음향은 합창단 뒷줄에 콘덴서 마이크 4개가 천정에서 내려오는 것 포함 18개, 객석 스피커 등 6개, 그리고 무대 전체 촬영용 카메라 외에 3개가 더 동원되었다. 이런 규모의 합창단 공연을 위해서 이런 정도의 많은 장비가 운영되었다니 놀라운 일이다.
이어서 또 다른 여담을 소개하고자 한다. 2부 10번째에서는 그 어려운 노래, <향수(鄕愁, 정지용 작사⦁김희갑 작곡)>를 부른 두 가수를 임재식 지휘자가 특별히 청중에게 소개했다. 한 가수는 정치 지도자를 잘못 만나 아주 가난해진 베네수엘라에서, 또 다른 가수는 브라질에서 스페인으로 이민을 온 성악가인데, 발음이 어렵고 부르기도 어려운데 가능하겠느냐고 몇 번이나 다짐했더니, 기어이 해내더라는 것이다. 그 노래에 얽힌 이야기는 우리들에게도 흥미진진하다. <향수>는 충북 옥천 태생인 <휘문고> 출신 정지용 시인이 일본에서 유학생활을 할 때 고향을 그리워하며 쓴 시로서 발음하기도 부르기도 어려운 노래이다. 우리나라에서는 최초로 성악가 박인수와 대중가요 가수 이동원이 불렀는데, 박인수 교수는 처음 이 노래를 부른 뒤 클래식계에서 상당한 비난을 받았고, 국립오페라단에서 제명을 당하기도 했었다. 당시만 해도 대중가요와 클래식의 거리감이 매우 컸는데, 박교수가 과감하게 크로스오버를 시도하여 그 충격이 상당했다고 할 수 있다.
내 광주사범학교 동기생 10여 명이 <목요산우회>를 조직해서 정기적으로 무등산 산행을 하면서, 매주 금주의 노래를 선정하여 부르고 있다. 그런데 김모 친구는 몇 년 전에 충북 옥천에 있는 정지용의 생가를 방문하였다가 시비(詩碑)에 새겨진 <향수>의 시가 너무 좋아서 그 자리에서 그 시를 암기하였다는 것이다. 진짜인가 확인하였더니, 그 긴 노래 5절 모두를 처음부터 줄줄 잘도 외우고 있었다. 그러한 그가 요즘 시류나 정서에 역행하는 생각을 가지고 있어서, 우리 회원들을 매우 힘들게 하고 있다.
마지막으로 이번 공연을 되돌아보면, 서울과 부산 공연들은 모두 유료였어도 만석(滿席)을 채웠다고 들었는데, 우리 광주에서는 동구청의 예산으로 공연을 이틀간 유치하여 광주 시민들에게 무료로 제공하였는데도 첫날에 빈자리가 약간 있어서, 공연을 주관한 <광주 동구청>과 <스페인 밀레니엄 합창단>에게 광주 시민의 한 사람으로서 미안하고 안타까운 마음을 금할 수 없었다. 특히나 우리나라 국민들의 정서에 부응하려고 공연 곡목 리스트에 올리지 않고 감추고 있다가 즉석에서 마지막으로 발표한 곡인 <남행열차>와 <임을 위한 행진곡>의 흥겨운 공연은 이번 공연의 대미(大尾)를 장식하는 비밀무기로 쓰기에 충분하였다. 그토록 세심하게 준비한 임재식 단장님과 단원들의 노고에 다시 한 번 찬사와 감사를 드린다.
“얼씨구나, 아름다운 스페인 사람들!
올래, 에르모소스 에스빠뇨레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