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월20일 오후 2시부터 대학로 마로니에 공원에서 ‘장애인차별철폐의날’ 행사를 마친 ‘420장애인차별철폐투쟁공동기획단’과 참가자들은 오후 5시 마로니에 공원을 출발하여 종묘공원까지 가두행진을 시작했다. 그러나 가두행진은 순탄하지 않았다. 마로니에 공원에서 대학로로 행진단이 들어서려 하자 경찰병력은 도로 전체를 차단하고 전투경찰을 투입해 한 발자욱도 움직일 수 없는 상황이었다.
일부의 장애인들이 경찰들과 가벼운 몸싸움을 벌이는 상태에서 박경석, 이수호, 김혜경, 박영희 등 집행부가 도로로 진입하는 순간 경찰측은 2개의 차선만 비워줄 수 있다며 협조를 요청했다. 가벼운 실랑이 후 방송차량을 앞세우고 '장애인을 차별하지 말라'는 현수막을 앞세우고 가두행진이 시작되었다. 장애인의날을 장애인차별철폐의날로 선포한 참가자들은 ‘장애인차별철폐’ 구호를 외치며 거리로 나와, 지켜보는 시민들에게 홍보물을 건네기도 하고 투쟁 구호로 인사를 하기도 하였다.
대표단이 최전방에서 행진을 하고 있다.
이날 거리행진에는 장애인들뿐만 아니라 많은 대학생들과 비장애인, 노인들에 이르기까지 장애인의 차별을 이해하고 그들에게 힘이 되고자 하는 많은 시민단체들도 함께 했다. 마로니에공원 앞인 연건동에서 피가로안경점을 운영하는 오철원 씨는 장애인들의 행진 모습을 보며 "차도를 막고 행진을 하는 것이 바람직 한 일이라고는 할 수 없지만 오죽하면 저렇게 하겠습니까. 장애인들을 차별하면 안 되지요. 장애인만이 아니라 그 누구에게도 차별을 주는 것은 잘못된 일이라 생각합니다."라며 장애인들의 거리 행진을 이해한다고 했다.
“10년을 더 살아야 버스를 탈 수 있답니다”
효제동에서 중국 음식점을 운영한다는 한 시민은 “시민들이나 정부에 관심을 가지게 하기 위해서 거리 행진을 하는 것 아닌가요?” 라며 기자에게 반문했고. 가게 앞에 장애인이 구두를 닦고 있어 거의 매일 장애인을 본다면서 “장애인이든 비장애인이든 국민이니까 다른 국민들이 누리는 것은 같이 누리고 살아야지요” 라고 말했다.
600여명의 참가자들이 가두행진을 진행하고 있다.
효제동을 지나 종로5가로 접어드는 삼거리에서 가두행진 참가자들은 다시 경찰의 저지를 받았다. 8차로인 종로의 절반인 4차로를 사용 하겠다는 주최측과 2차로만 사용 하라는 경찰들과의 사이에 마찰이 빚어졌다. 현장에은 동대문경찰서 서장이 직접 나와 진두지휘를 하며 장애인들을 2차선으로 통과시키라는 강력한 지시를 하기도 했다. 이러한 마찰은 가두행진이 진행되는 동안 계속되었다.
참가자들이 종로5가 보령약국 앞에 이르렀을 때 다시 한번 경찰들의 저지가 있었다. 4차로 중 3차로만 사용하라며 미리 동원된 전경들로 경계를 지은 것이다. 가두행진 참가자들은 앞으로 나가지 못한 채 그 자리에 멈추었다. ‘420공동기획단’ 박경석 공동집행위원장은 즉석발언을 통해 장애인들이 왜 여기 나와 있는지 다시 한번 말했다.
박 집행위원장은 “건교부가 2013년 까지 시내버스의 10%를 저상버스로 하겠다고 발표했습니다. 앞으로 10년을 더 살아야 버스의 10%만 탈 수 있게 됩니다. 이게 말이나 되는 소리입니까?” 라며 정부의 대책이 얼마나 실효성 없고 무성의한 대책인지 다시 한번 일깨워 주었다. “우리는 우리의 속도대로 가면 됩니다. 이 자리에 나오기 위해 10년, 20년이 걸린 장애인도 있습니다. 우리 속도대로 갑시다.” 며 4차로가 열릴때 까지 기다리겠다는 말을 했다.
“나도 장애인이지만 이렇게 많은 장애인은 처음 봅니다”
종로5가 보령약국 앞에서 가두행진 참가자들이 잠시 멈추어 섰을 때. 근처 약국에 약을 사기위해 나왔던 한 지체장애인은 “나도 장애인이지만 이렇게 많은 장애인은 처음 봅니다.” 며 거리행진에 참가한 장애인들을 보았고, “괜히 미안하네요. 같은 장애인인데도 나는 이렇게 아무생각 없이 먹고 살기에만 급급해 있었는데 말입니다.” 라며 같은 장애인으로서 함께 하지 못함을 아쉬워했다.
경찰들이 방폐로 차로를 막고 섰을 때. ‘장애인이동권연대’의 이규식 투쟁국장은 전동휠체어로 저지선을 뚫기 위해 속력을 내기도 하였으나 방폐막을 뚫지는 못했다. 이 과정에서 다시 한번 경찰들과 작은 마찰이 있었다.
가두행진 참가자들이 다시 보령약국 앞에서 3차로로 이동을 시작하고 채 100미터도 못간 종묘공원 앞에 이르렀을 때, 다시 한번 경찰들은 2차로를 막고 2개의 차선으로만 행진을 하라고 제지했다. 종묘공원 앞 횡단보도를 기점으로 동대문경찰서와 종로경찰서의 관할이 바뀌는 지역으로 종로서 관할로 들어오자 분위기는 상당히 긴장되었다.
"우리들의 요구를 들어 보지도 않다니"
민주노동당 심상정 국회의원 당선자가 경찰의 저지에 막히자 도로에 앉아 기다리고 있다.
경찰과 대치상황이 계속되자 참가자들은 종묘앞 도로에 앚아 길을 열어 줄 때 가지 기다리겠다며 즉석 문화공연 등의 행사를 이어갔다. ‘420공동기획단’의 도경만 집행위원장의 사회로 종묘공원 앞 도로에서 행사는 이어졌다. 장애인참교육부모회 박인용 사무국장은 “종로경찰서는 우리들의 요구가 무엇인지 들어 보지도 않고 왜 길을 막느냐, 이동권이든 교육권이든 장애인들이 당당하고 떳떳하게 살아 수 있을 때 까지 힘을 모으자"고 발언했다.
이어 노래패 꽃다지의 거리 공연이 있었다. 다소 지치고 힘들어하는 장애인들과 많은 참가자들, 그리고 주변에 있던 시민들은 한마음으로 어우러져 흥겨운 노래에 맞춰 박수도 치고 어깨도 들썩였다. 이 때 민주노동당의 김혜경 부대표가 앞으로 나와 ‘사람이 꽃보다 아름다워’라는 노래에 맞춰 춤을 추었고 이 모습을 본 많은 장애인들과 참가자들은 박수로 환호했다. 노래가 끝난 뒤 김 부대표는 “저는 이 노래만 들으면 흥분합니다. 여기 꽃 보다 아름다운 그대들이 있습니다.” 며 인사를 했다.
한국장애인IL단체협의회 최용기 대표는 “장애인에게는 선택권도 없고 결정권도 없고 그저 집이나 시설에서 주는 밥이나 먹고 살아야했습니다. 이것이 우리 사회의 현실입니다.” 며 장애인들의 아픔을 이야기 했다. 이어 “이동권 쟁취를 그만 외치고 싶은데 저상버스를 2013년에야 준다니 앞으로 10년 동안은 줄기차게 싸워야 할 것 같습니다.”며 정부의 안이한 대책에 일침을 가했다.
“잔치 할 돈으로 저상 버스나 더 사지”
민주노동당 김혜경 부대표가 흥겨운 춤으로 참가자들을 격려하고 있다.
반대편 차로는 끊임없이 자동차들이 달리는 가운데 종로거리에서 행사를 진행 시킬 수밖에 없는 현실에 많은 장애인 참가자들은 정부를 비난했다. 일산에서 왔다는 한 여성 휠체어 장애인은 “오늘 올림픽공원에서는 정부가 주최하는 장애인의날 행사가 있었다고 하는데, 그런곳에 쓸 돈이 있으면 저상버스 한대 더 사고, 장애인 콜택시 한 대 더 사지요. 오늘이 장애인의 날이라면 이런 일은 없어야 하지 않나요?” 며 정부의 이중 잣대를 비난했다.
종묘 앞은 늘 복잡한 곳이다. 공원을 이용하는 많은 노인들과 세운상가를 이용하는 상인들, 퇴근 시간이라 거리로 나온 직장인들 까지. 그들의 눈빛에는 거리의 장애인과 이미 하나가 되어 있었다. 오히려 저지하는 경찰들을 나무라는 사람은 있었다. 종묘공원에 매일 나온다는 김명덕(78세,양천구 목동)씨는 비록 노인이지만 알건 안다면서 “몸이 불편한 것도 어찌 보면 억울한 일인데 이렇게 힘들게 살아서야 되겠냐.” 며 저지하고 있는 경찰들에게 고함을 질렀다.
한낮의 기온이 초여름 날씨라지만 해가 진 저녁의 아스팔트 위는 아직 차다. 많은 장애인들은 차가운 도로에 앉아 국민이면 누구나 누리며 사는 권리를 찾기 위해 찬 공기와 매연과 싸우며 투쟁을 외치고 있다. 이들의 요구사항은 대한민국 국민이면 누구나 누릴 수 있는 기본적인 권리들이다. 오늘이 장애인의 날인데 잔치의 주인인 당사자들은 차가운 거리에 앉아 잔칫날을 보내고 있다.
밤 8시 40분경 420장애인차별철폐투쟁의날 행사는 7시간만에 큰 무리 없이 마칠 수 있었다. 그러나 참가자들은 오늘이 마지막이 아니라 시작의 날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그들의 눈망울에는 결연한 의지와 연대의 빛이 앞으로의 길이 험난하지만 결코 혼자가는 길이 아니라는 새로운 희망을 발견할 수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