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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장 소 : (주차장)고양시 덕양구 원당동 201-2
* 일정 & 코스 : 대중교통편 불편, 승용차 이용
일삼아 ‘한국스카우트 중앙훈련원’만을 보기 위해 찾아 갔던 것은 아니다.
주 목적은 철종왕릉이 있는 서삼릉을 보러 갔던 것인데 실지로 관람할 수 있는 내용이 별로 없어 30분 정도에 관람은 끝났다.
점심식사 시간으로도 너무 일러 바로 입구 옆에 있는 ‘말목장(승마장)’을 들어가 볼까했더니 코로나19 사태로 개방을 하지 않는
다고 한다.
그래서 40년도 더 전에 ‘보이스카우트 지도자 상급훈련’을 받기 위해 와서 6박7일간 야영훈련을 받았던 중앙훈련소가 바로 가
까이에 있으므로 들러봐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혹시 문 닫았을까 우려도 있었지만 문 닫았으면 돌아가면 되지 하는 마음으로 찾아 가봤다.
나이를 먹으면 고향을 그리워하는 수구초심(首丘初心) 비슷하게 옛날에 머물렀던 추억이 서린 곳을 다시한번 찾아가 보고 싶
은 생각이 많이 들게 된다.
꼭 아름다운 추억이 깃들어 있는 곳만이 아니다. 크게 힘들었던 곳도 인상 깊게 남아만 있으면 가보고 싶어 진다.
옛날 짤짤이 고생을 했던 군대생활을 한 부대도 마찬가지로 가보고 싶다!
1975년 10월 군에서 만기전역을 하고 나와 충남 아산의 시골초교에 복직발령을 받았다.
서슬이 시퍼렇던 군사독재 시절 관공서, 학교 할 것 없이 공식 업무는 국가 시책과 관련된 것이 많고 공직기강 확립을 빌미로
출퇴근 시간 이외에는 가까운 곳 외출도 자유롭지 못했다.
사회보다 더 자유분방한 카투사병으로서의 군생활을 했던 나로서는 좁은 방에 갇힌 듯 답답하고 암담했다.
이 나라가 어디를 향해 가고 있는 것인지?
그렇다고 분연히 박차고 일어나 민주화운동에 뛰어 들기는 용기도 부족하고 똑똑하지도 못했다.
해외에서 곱지 않은 시선으로 바라보는 우리나라의 독재적 정치 현실에 그래도 교류가 필요했겠는데 누구로부터 정보를 얻었
는지는 모르나 미국에서 청소년기 뭘 좀 안다는 사람들의 자녀들은 대개 보이스카우트 대원으로 활동을 했다.
발생한 곳은 영국이지만 전국적으로 일반화 된 나라는 미국을 따를 나라가 없다.
세계적인 청소년사회교육활동 조직체인 보이스카우트는 각 지역별로 우리나라가 소속된 아시아태평양지구를 비롯하여 유럽지
구, 미주지구 등과 별도로 미국만 한나라로 지구를 구성할 수 있을 정도로 활성화 되었었다.
미국과 사이가 좋아야할 우리나라에서 이점을 간파했는지 박정희대통령 스스로 총재가 되어 전국적으로 초중등학교에 단체
를 조직하도록 지원을 했었다.
또한 신과 지도자에게 순종을 요구하는 보수적인 이런 청소년 단체활동이 마음에 들기도 했었을 것이다.
다음에는 김종필 국무총리가 바톤을 이어받아 총재가 되었고, 그 때 지금의 서삼릉 부지에 ‘한국보이스카우트 중앙훈련소’를 건
립한 것으로 알고 있다.
갓 제대한 팔팔한 나는 처음에는 어른들이 유치하게 군대처럼 제복을(그것도 반바지를) 입고 다니면서 꼬맹이들을 모아놓고
는 노래와 율동을 하고 게임을 하고 하는 것이 먹을 것, 입을 것도 제대로 구하기 어려운 우리나라에서 부잣집 도련님들 데리고
노는 것 같아서 못 마땅했었다.
그러다가 2년 쯤 지난 여름, 우리 학교 스카우트 담당교사가 여름방학 때 대전으로 3박4일간 지도자 기본훈련(야영)을 가야 하
는데 다른 교육연수와 중복되어 참가 할 수가 없었다.
그분 다음으로 제일 젊은 나에게 ‘한 학교에 한 사람은 의무 참가인데, 자기가 갈 형편이 안 되니 미안하지만 대신 좀 가주면
어떠냐?’고 의사를 타진해왔다.
수락했을까? 그렇잖아도 부정적인 시각을 갖고 있었으므로 나는 당연히 싫다고 했다.
입장이 난처한 그분은 이런 사정을 교장, 교감선생님에게 하소연 했고, 난 또 그분들에게 심한 압박을 받아 결국은 싫지만 인상
을 잔뜩 찌푸린 채 갈 수밖에 없었다.
‘아, 정말 유치하고 싫다.’ 이런 반바지 제복을 입은 나를 누구 아는 사람이 볼까 무섭다.
처음부터 교육 대상자를 모두 대전 탄동(숯골) 야영장에 모아놓은 후 중간에 작은 통나무를 늘어뜨려 입구를 낮게 만든 ‘입소문
(入所門)’을 만들어 놓고 그 밑으로 들어가라 한다. 스카우트 지도자 기본훈련에 임하면서 모든 명예나 지위를 내려놓고 자신을
낮추라는 상징이라 한다. 참, 나!
그 이후에도 웬 놈의 상징이 그렇게 많은지 남들은 교육내용을 나누어 준 ‘훈련일지’라는 공책에 열심히 받아적고 그림을 그
리고 쓰고 했다. 나중에 수료 시 검사를 통하여 점수화 한다고 한다.
‘점수를 주거나 말거나!’ 나는 별로 쓴 것 없다!
정말로 유치하다고 생각하는 노래와 율동 게임 같은 것을 억지로 따라 하면서(물론 스카우트의 역사, 정신, 텐트설치, 취사, 독
도법, 구급법 등 야영기능 등등도 익혔다) ‘제길, 선생이 교과서 가지고 아이들이나 열심히 가르치면 되었지 왜 이런 게 필요
해?’하면서 그렇게 2박3일이 지나고 마지막 날 저녁이 되었다.
이제 하룻밤만 지나면 이 지겨운 야영훈련은 끝나게 된다!
그 숲속 야영장에서 어떻게 마련했는지 마지막 날이라 ‘만찬의 날’이라고 삼계탕을 한 그릇씩 주었다. ‘어라, 이것 봐라?’먹을
것이 귀하던 시절 이것은 대단한 대접이다.
늦은 시간이 되어 어두워졌다.
야영장내 모든 조명시설을 끄고 어둠 속을 한 줄로 이어서 작은 횃불을 든 담당강사를 따라 캠프화이어장으로 이동을 한다. 모
기들은 쉴 새 없이 물어 뜯고....!
갑자기 인솔강사가 횃불을 끄더니 숨소리도 크게 내지 말라고 주의를 준다.
‘이게 무슨 상황이지? 모닥불이 활활 타오르는 곳으로 데려 가는 줄 알았더니 불씨조차 보이지 않는 캄캄한 숲속에 데려다 놓
고 숨도 크게 쉬지 말라니?’
잠시 후 좀 떨어진 숲속에서 적막을 뚫고 고함 소리가 들린다!
“음~ 하하하하, 나는 동방의 신이다. 너희에게 평화의 불을 가지고 왔노라!”
이런 식으로 동서남북 사방에서 고함 소리가 들리고 횃불에 불이 붙더니 서서히 산신령 차림을 한 사람 넷이 든 횃불 4개가 거
리를 좁혀 우리들이 마제형(말발굽모양, ⊂자형)으로 서 있는 한 가운데 마련한 장작더미에 모여 횃불을 위로 들어 모아 높이 들
었다가 내리며 각 방향 아래에 불을 붙였다.
고요한 숲속에 하늘을 찌를 듯이 불꽃이 타오르자 우리는 전원 ‘와!’하며 요란하게 환호를 하고 손뼉을 쳤다.
이 순간부터 마지막 밤의 캠프화이어 의식과 오락이 이어졌다.
그때까지 군대생활을 빼고는 아웃도어 활동을 해본 적이 없는 나에게 이 캠프화이어는 충격으로 다가온 사건이었다.
그동안 부정적이었던 시각이 ‘음? 아이들한테 이런 것도 한번 경험시켜 주면 좋겠는데?’하는 긍정으로 서서히 돌아서기 시작했다.
교육이 끝나고 집으로 돌아가는 열차 안에서 나는 그동안 교육받은 내용을 변변히 기록해 놓지 않은 자신을 심하게 나무랐다.
그 후 내 스스로 보이스카우트 관련 책을 구해 읽어보고 이미 경험을 쌓은 경력자에게 물어보기도 하면서 관심을 갖고 부족한
부분을 보충을 했다. 그리고 훈련받은 내용과 스스로 익힌 내용을 스카우트 대원은 아니지만 반 아이들에게 적용을 시켜 보았다.
‘세상에! 아이들은 하나도 유치하게 생각을 하지 않고 즐겁게 따라하며 재미있어 한다.’ 뿐만 아니라
“선생님, 다른 건 또 없어요?”
하면서 채근을 하기도 했다. 나는 월말고사 성적을 얼마 올리거나 말을 잘 들으면 해주겠다고 핑계를 대기도 했는데 어쨌든 이
런 덕분에 아이들과 관계가 훨씬 더 좋아지는 결과를 가져왔다.
나는 2년 뒤 이번엔 서울(진짜는 ‘고양시’)에서 6박7일간 실시하는 상급지도자 훈련에도 자발적으로 신청을 하여 교육을 받게
된다. 그곳이 바로 이곳 ‘한국스카우트 중앙훈련원’이었던 것이다.
-그 당시는 ‘한국보이스카우트 중앙훈련소’였다.-
스카우트 지도자가 되어 제일 좋았던 것은 학교생활을 답답해 하던 나에게 합법적으로 근무시간 중에도 아이들을 교육상 필
요하다는 이유로 인솔하고 들로 산으로 돌아다닐 수 있게 되었던 것이었다.
스카우트 활동은 지도자 부족으로 초, 중, 고 연합으로 이루어지는 경우가 많은데 때로는 주중에도 보통 2~4일 정도 배낭을 둘
러메고 야영을 나갈 수 있는 것이다. 그것도 적잖은 출장비를 받아 가면서....!
지금은 이런 준거집단활동 단체에서 아이들에게 야외 경험을 시켜 주지 않아도 가정에서 물놀이, 여행, 야영 등을 많이 데리
고 다니기 때문인지 이런 청소년사회활동 단체들이 많이 쇠퇴하여 각 학교에서도 없어졌거나 유명무실해 진 것 같다.
이곳 중앙훈련원에서도 거의 일 년 내내 각종 스카우트 지도자 훈련과 연수, 행사 등을 추진하느라 쉴 틈이 없었다.
지금은 와서 보니 스카우트 활동내용은 기미가 거의 보이지 않고 일반인들의 야영, 오토캠핑, 드론 교육 등으로 시설을 놀리
지 않고 적으나마 수익 사업도 하고 있는 것 같았다.
입구에 ‘한국스카우트 중앙훈련원’이라 새긴 돌이 좌측에 있고 우측에는 ‘서삼릉청소년야영장’이라 새긴 돌이 세워져 있으며 안
에 들어오면 일반 야영객들과 같이 온 어린이들만 돌아다니고 있었다.
♣ ‘서삼릉청소년야영장(한국스카우트 중앙훈련원)’의 위치와 이용 요금 등 자세한 내용을 알고 싶으신 분들은 아래 링크를 클
릭하시길!
https://www.5gcamp.com/?c=camp&m=camping&page=view&uid=3400&page=view#tabs
▼ 진입로 변에 있는 조형물 : '천둥새토템' 이라 함.
▼ 운동장에서 올려다 본 중앙훈련원 본관건물 전경. 외형은 40년 전 내가 교육 받던 때와 거의 같아서 반가웠다!
▼ 본관동 건물 우측의 조철호 선생 흉상 : 1922년 우리나라 최초로 '조선소년군'이라는 이름으로 보이스카우트를 창설.
다소 군대식으로 엄격하게 대원들을 지도했다 함.
▼ 본관동 건물 우측의 정성채 선생 흉상 : 1922년 우리나라 최초로 '조선소년척후대'라는 이름으로 위의 조철호 선생과는
별도로 보이스카우트를 창설. 민주적 방식으로 대원들을 지도했다 함.
▼ 중앙훈련원 본관 Main Lobby의 전시물들
▼ 베이든포웰 경(Lord Baden Powell)의 초상화 : 1907년 영국에서 세계 최초로 '보이스카우트'를 창시한 분이다.
영국 육군 중장 출신으로 아프리카 '마페킹 전투의 영웅'으로 칭송됨.
▼ 본관 사무실 입구
▼ 보라색의 한국스카우트연맹 휘장 조명등 - 호랑이상이 한국스카우트 상징
▼ 놀리는 시설을 이용하여 드론 교육, 야영, 오토캠핑 등으로 대여하는 모양
▼ 원래의 안내도
▼ 현재의 안내도 : 똑같은 안내도인데 위는 '한국스카우트 중앙훈련원'의 입장이고, 이 안내도는 '서삼릉청소년야영장'의
입장
▼ 야영장 풍경
▼ '스카우트 대장(隊長)' 시비(詩碑) : '에드가 A. 게스트'의 시로 아래 내용과 같음
보수나 댓가도 없이 거저 봉사하는 그대
함께 오솔길을 걷던 소년들은 그대에게 줄 것이 아무것도 없다.
그러나 누가 이 위대한 보수, 금을 캐내는 것보다 더 값비싸다는 걸 알랴?
소년들의 구릿빛 얼굴을 보라!
거기 그대에게 주어질 보수가 그려져 있다.
그대가 무아의 정신으로 봉사한 5년 동안은
인디언의 외침과 부엉이 울음소리를 더듬은 발자취였다.
그대가 캠프파이어로 밝힌 5년 동안은 미래에 있을
아니 꼭 실현될 소년들의 가슴 속에 빛을 간직했던 것이다.
저들이 지금은 가진 것이 없지만 그대 삶이 원숙해질 무렵
저들은 바로 그대에게서 배웠던 그 방법으로 그대에게는 큰 뿌듯함과
가슴 저리도록 순수한 긍지를 안겨줄 것이다.
그날이 오면 그대는 최고의 명예를 만끽하면서
환희에 찬 미소를 머금는다.
▼ 치프 스카우트 김용우(1912-1985) 흉상 : 스카우트 대원 중 최고의 명예는 '범(타이거) 스카우트'이다. 김용우씨는 인명
구조장을 소지한 우리나라 최초의 타이거 스카우트이자 치프 스카우트라고 한다. 국방부장관, 적십자사총재 등 요직 역임.
▼ '필국 영지' - '필국'이란 분이 땅 기증?
▼ 1980년 6월 보이스카우트 지도자상급훈련 중. 가운데가 나! 양쪽 두분은 나의 고교 15년 정도 선배님. 교육생 중
우리 반(팀)의 막내로서 궂은 일은 도맡아 함.
▼ 개척물 제작 교육 중. 머리에 손댄 사람 오른쪽 본인
▼ 위-기본훈련(1978년 8월 3박4일간) 57기 수료증, 아래-상급훈련 62기(1980년 6월 6박7일간) 수료증
▼ 좌-세계연맹 휘장, 중-우드배지(상급훈련 전과정 수료 목걸이) 우-가죽 조임, 우드배지와 마찬가지로 상급훈련 이수
후 항건(목에 매는 스카프) 조임으로 사용 가능
▼ 제8회 아시아, 태평양지구 잼버리 행사 참가 중(1982년 8월 무주 덕유대 야영장). 어벙벙한 것은 그때나 지금이나
마찬가지! ㅎㅎ
▼ 우리나라 설악산 신평벌에서 열렸던 '제17회 세계잼버리' 지도자로 참가 중 한 과정을 마치고 나오는 외국 대원들과
함께(셔틀버스 안내로 봉사)
▼ 세계잼버리장 영국 야영지를 친선방문하고 영국 지도자들과 ....
▼ 설악산 울산바위를 배경으로 세계 각 국의 야영지
▼ 제17회 세계잼버리 참가봉사증
▼ 1980년대초 온양온천초교 대장 시절 안면도 안면초교 교실을 대여하여 '임해수련학교' 행사 실시 중 아침 점호.
스카우트 활동에 빠져 있던 시기로 이런 활동을 10년을 했고, 그 후로도 10년을 더 지도자 생활을 하다가 나이가 많아지면서
아이들과 하는 직접적인 활동보다 성인들 상대가 많아지고 후방 지원을 해야할 일이 많아져서 재미가 없어졌다.
거기다가 직장을 경기도 포천으로 옮기는 바람에 손을 떼고 말았다.
'한번 스카우트이면 영원한 스카우트!' 그래도 마음은 항상 스카우트에 있다. 비록 지금은 많이 쇠퇴해졌다고는 하나!
▼ 물놀이활동 : 하루 2시간 정도 씩 이루어 짐. 나머지 시간은 학교 교정에서 오락, 기능 교육, 이론 교육, 안전 교육 등
실시.(안면도 두여해수욕장. 유리를 만드는 모래 규사가 깔려 있어 잘 달라붙지 않으며 흙탕물도 일지 않고 깨끗함)
뒤에 성인 여러 명(교사+학부모)이 안전을 위하여 로프를 잡고 아이들이 일반 피서객들과 섞여 통제가 안 되거나 깊은
곳으로 못 가도록 막고 있으나 자꾸 빠져 나가려 하여 힘이 많이 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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