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일설교. 사람에게 하듯 하지 말고 주께 하듯 하라 (골로새서 3장 18~25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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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월의 암송 말씀은 골로새서 3장 23절 말씀이며, 이 말씀은 2024년 우리 교회의 주제 말씀이기도 합니다. 올해 우리 교회를 향하여 주신 말씀이 뜻하는 대로, 인도하시는 대로 나아갈 수 있도록 오늘 말씀이 선포 되는 가운데 우리 모두에게 성령의 감동과 은혜가 충만하게 임하기를 바랍니다.
골로새서 3장에서 바울은 거룩한 성도로써, 그리고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이렇게 살아가라고 권면을 합니다. 권면 한 가지씩을 이야기 하면서 그에 대한 명확한 이유로 잘 설명을 해 줍니다. 하나님의 자녀가 된 우리가 살아가면서 추구해야 하는 삶의 방향과 가치들이니 잘 들어 보십시오.
첫째, “위의 것을 생각하고 땅의 것을 생각하지 말라”(3:2)고 합니다. 이유는, 우리는 이미 죽었고(죄에 대하여는 죽고 의에 대하여는 다시 살아남), 우리 안에는 그리스도와 함께하는 (부활영생의)생명이 깃들어 있기 때문입니다. 이미 죽어 버린 것(옛 사람) 붙잡지 말고 위에 속한 부활 영생과 하나님 나라를 붙잡고 살라는 말씀입니다. 당연하고 반드시 이렇게 살아가야 하지만 얼마나 단단하게 붙잡고 살아가느냐는 각자의 결단과 의지의 문제입니다.
둘째, “음란과 부정과 사욕과 악한 정욕과 탐심, 곧 땅의 지체에 속한 것들을 버리라”(3:5)고 합니다. 특히 탐심은 우상숭배라고 한번 더 강조 합니다. 이것들을 버려야 하는 이유는, 이것들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진노가 임하기 때문입니다. 진노, 징계, 멸망 원하는 분 없으시죠. 그러면 이런 것들과 반드시 죽기까지 싸워서 이기셔야 합니다.
셋째, “분함과 노여움과 악의와 비방을 버리고, 서로 거짓 말을 하지 말라”(3:8,9:고 합니다. 이런 것들은 부끄러운 일이며 옛 사람의 행위라고 말합니다. 이렇게 해야 하는 이유는, 우리 모두가 우리를 창조하신 이의 형상을 따라 지식(하나님을 아는 지식)에까지 새롭게 하심을 입은 자들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자녀라면 품위있고 고귀하고 정결하게 살아가려고 힘써야 합니다.
넷째, “긍휼과 자비와 겸손과 온유와 오래 참음을 옷 입고, 서로 용납하여 피차 용서하고, 평강이 너희 마음을 주장하게 하고, 감사하는 자가 되고, 말씀이 너희 속에 풍성히 거하게 하고, 감사하는 마음으로 하나님을 찬양하라”(3:12~16)고 합니다. 제가 말씀 드린 신앙의 기본(예배, 기도, 말씀, 찬양, 감사)이 바로 이런 것들 입니다.
이렇게 살아가야 하는 이유는, 우리는 하나님이 택하시고, 거룩하게 하여 주시고, 사랑을 받는 자녀가 되었기 때문입니다. 이건 의무라기보다 자연스럽고 습관적인 그리스도인의 삶이 이러해야 한다는 것을 권면한 것입니다.
이 네가지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어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갈 준비를 해 나가는 사람이라면,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은혜를 입어 믿음으로 살아가는 사람이라면, 성령으로 인하여 거듭난 거룩한 성도라면, 늘 고민하고, 습관으로 만들어 가고, 되지 않는 것들을 고치려고 애쓰고 노력해야 합니다.
이러한 네 가지를 한 줄로 압축해 놓은 말씀이 17절입니다. 우리 다같이 3장 17절을 읽어 보겠습니다. “또 무엇을 하든지 말에나 일에나 다 주 예수의 이름으로 하고 그를 힘입어 하나님 아버지께 감사하라” 아멘.
예수님의 이름을 앞세우며 살아가는 것, 이것 하나만 제대로 의식하고 살아간다면 언제 어디서나 내 말과 행동을 주의할 수 밖에 없습니다. 언제 어디서나 항상 예수님을 의식하며 존귀하신 예수님의 이름으로 살아가는 여러분들이 되시기를 축복합니다. 무엇을 하든지, 결과가 어떻든지 항상 예수님을 힘입어 하나님 아버지께 감사하며 살아가시기를 축복합니다.
앞서 말씀드린 네가지가 성도의 삶의 방향이라면, 오늘 본문은 사람과 사람의 관계 속에서 그리스도인이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지를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함께 읽은 17절에 말씀에 대응하는 말씀이 23절입니다. “무슨 일을 하든지 마음을 다하여 주께 하듯 하고 사람에게 하듯 하지 말라” 아멘.
17절이 성도로서 대 사회적인 삶의 압축판 말씀이라면, 23절은 성도로서 대인 관계에서 삶의 압축판 말씀입니다. 23절 말씀을 중심으로 우리가 한 해동안 직장과, 가정과, 이웃과, 교회 안에서 만나는 많은 사람들과 어떻게 관계를 유지 하면서, 어떻게 상대하면서 살아가야 하는지를 살펴 보겠습니다. 특별히 이번 설명절 주간에 잘 적용하시면 가정의 화목을 이루는데 큰 도움이 되실 겁니다.
1. 남편과 아내의 관계, 복종과 사랑으로.
가장 먼저는 남편과 아내로서의 관계를 말합니다. 18, 19절을 읽어 드립니다. “18. 아내들아 남편에게 복종하라 이는 주 안에서 마땅하니라 19. 남편들아 아내를 사랑하며 괴롭게 하지 말라” 아멘.
아내들은 남편에게 복종하라, 남편에게 복종하는 것이 주 안에서 마땅하다라고 까지 이야기 합니다. 성경이 이렇게 말하고 있으니 이 땅에서 살아가는 아내들은 남편에게 복종하는 것이 맞습니다. 그렇게 하셔야겠죠. 그런데 아내분들은 남편에게 복종하라는 말 자체가 매우 싫으실 겁니다.
“아니 남편이 뭐하나 이쁜 구석이 있어야 복종이든 순종이든 해 보려고 하지, 맨날 사고 치고, 화내고, 폭력적이고, 상처주는 말하고, 게으르고, 집안일도 안도와 주고, 술 안먹는 날이 없고, 잘 씻지도 않고, 살만쪄가서 병치레만 잦아지고..... 도대체 이런 남편에게 복종이라니 웃기지도 않네요”
인간적으로는 이런 마음들이 충분히 이해가 갑니다. 하지만 기본적으로 하나님의 말씀이 주(예수그리스도)안에서 남편에게 복종하는 것이 마땅하니, 복종하라고 명령하고 있음을 아셔야 합니다. 그러면, 실제 남편의 상황이 너무나도 미워보이는 일이 많다고 하여도 ‘복종하라’는 말씀을 어떻게 순종할지를 먼저 생각하는 것이 아내들의 기본 자세이어야 합니다.
아내들이 남편에게 이런 저런 불만이 산더미 같이 샇여 있겠지만, 남편이 아내에게 가지는 불만 역시 만만치 않습니다. 오히려 아내들이 더 잘못하는 경우도 분명히 있습니다. 부부간의 일은 일방적인 것은 없습니다. 지극히 상대적입니다.
그럼에도, “남편이 나보다 훨씬 더 잘못한 것이 많은데요, 남편과 나를 동시에 잘못했다고 하는 것은 나로서는 너무 억울해요”라고 말하신다면 하나님의 입장에서 생각해 보시라고 말씀 드립니다.
부부가 아닌 한 인간으로 우리가 하나님 앞에 섰을 때. 하나님은 남편과 아내들이 저지른 잘못과 과실과 죄의 경중에 따라, 누가 더 많이 잘못하고, 덜 잘하였는지를 판단해 보시고 너는 잘했다, 너는 잘 못했다 라고 말씀 하시지 않으실 겁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은 죄와 불순종과 불의와 거짓을 모조리 미워 하시는 분이시기 때문입니다. 작은 잘못이든 큰 잘못이든 정도의 차이가 있을 뿐 둘 다 흠이 있고 점도 있다면 하나님 앞에 서기에는 누구라도 온전하지 않은 상태라고 결정하시고 둘다 멀리 하실 겁니다.
남편의 잘못은 잘못 대로 판단하시고, 아내의 잘못은 그 역시 잘못대로 판단하시고, 남편의 완악함을 꺾으시면서 아내의 상처를 싸매 주시고, 남편의 포악한 언행은 잠재우면서 아내의 잔소리까지 다스려 주시려고 하실 겁니다.
둘다 관심과 사랑과 치유와 회복의 대상으로 보아 주십니다. 그래서 둘다 온전한 모습으로 하나님 앞에 제대로 설 수 있도록 고쳐 주시려는것이 하나님의 일관된 마음 이십니다.
남편에게 복종하라는 명령이 하나님이 하신 말씀이신데 뭐가 그리 문제가 됩니까? 나의 상황이 어쩔지라도 하나님이 명령하셨다면 그 말씀 앞에 순종하려는 마음과 자세를 갖는 것이 곧 믿음입니다.
남편에게 복종하라는 것은 창조 질서의 원형의 회복이 가정에서부터 일어나야 한다는 대 전제입니다. 싫든 좋든 내가 가장 가깝게 살아가는 사람, 내 인생의 시간 중에 가장 오래 대화하고 마주했던 그 사람에게 집중하고, 그 사람과의 관계를 제일 우선해서 화목의 관계, 평안의 관계로 만들라는 명령입니다.
복종하라는 명령은 남편에게 복종하기 이전에, 아내들이 하나님에게 먼저 복종하는 마음으로 단단히 준비되어야 한다는 말씀입니다. 하나님에게 복종하지 않는 아내는 남편에게 절대 복종의 마음을 품지 못합니다.
남편에게 복종하려는 자세와 마음으로 잘 견뎌내는 사람은 하나님 앞에서 가장 큰 복종을 잘하는 믿음의 사람으로 성장해 나갈 겁니다. 하나님에게 복종하는 것이 자연스럽게 남편에게 복종하는 것으로 이어지고, 이것이 주 안에서 마땅한 질서의 회복이라는 사실을 우리 아내 분들이 꼭 명심하시기 바랍니다.
아내가 남편에게 복종해야 하는 명령이 주어졌다면, 남편들에게는 “남편들아 아내를 사랑하며 괴롭게 하지 말라”는 명령이 주어졌습니다. 사랑한다는 말과 괴롭게 한다는 말은 완전히 대조적입니다. 남편들이 아내를 사랑해 주지는 못할망정 괴롭게 하며 사는 경우가 너무나도 많습니다.
저도 그 범인 중에 한명입니다. 저부터 아내를 무척 괴롭게 한 것을 깊이 반성합니다. 아내를 사랑하지 않으면 아내는 외롭게 됩니다. 혼자 있게 됩니다. 그러면 반드시 문제가 생깁니다. 아내 혼자 있을 때 발생한 대표적인 사건이 원죄 사건, 선악과 사건입니다.
뱀은 부부가 함께 있을 때 유혹하지 못했습니다. 둘이 있을 때는 유혹할 틈이 생기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둘이 떨어져 있는 시간을 노려서 남자보다 연약한 여자에게 유혹을 하였고 성공했습니다.
사랑 받지 못하고 괴롭힘을 당하는 아내는 혼자 있으면 어둠에 갇히게 되고, 죄의 유혹에 빠지기 쉽습니다. 아내가 죄에 흔들리면, 남편도, 자녀들도, 가정도 완전히 무너지게 됩니다. 남편의 사랑의 부재가, 그리고 괴롭힘의 대가가 얼마나 큰지 알 수 있습니다.
남편분들, 아내를 사랑해주어라, 괴롭게 하지 말라는 것도 명령임을 명심하십시오. 남편들의 사명이며 가정을 지키는 질서의 원칙입니다. 에덴 동산의 창조 질서의 원형이 남편이 아내를 사랑하고 아내를 괴롭게 하지 않고 혼자 놔두지 않는 것이었음을 기억 하십시오.
미국의 유대교 신학자이자 랍비인 마빈 토케이어가 탈무드에서 전하는 부부 이야기를 하였습니다. “착한 부부가 이혼을 하였다. 남편은 곧 재혼을 했지만 불운하게도 악한 여자를 만나 그 남자는 새 아내와 마찬가지로 악한 인간이 되었다. 아내도 곧 재혼을 하였는데 남자의 행실이 좋지 않았다. 그러나 그 새 남편은 착한 사람이 되었다. 언제나 남자는 여자에 의해 조종되는 것이다.”
재미있는 이야기입니다. 남편이 아내의 말을 잘 들어야 존경 받는 아버지와 남편으로서 잘 세워지고, 가장으로서 권위를 가지고 회목과 평안을 이끌어 갈 수 있습니다. 이것은 시대와 역사가 증명하는 말입니다.
남편들은 아내가 말하는 것을 들어주고 공감해 주려는 자세만 가져도 절반은 성공입니다. 저도 조금 정신차려서 이 정도까지는 하는 것 같습니다. 부부이야기를 처음으로 하였으니, 올 한해 여러분 모두가 남편과 아내로서, 그리고 내가 가장 가까이에서 마주하고 있는 사람과의 사이에서 복종과 사랑의 마음이 아름답게 융화되는 평안의 관계를 만들어 가시기를 축복합니다.
2. 부모와 자녀 관계, 순종과 사랑으로
부부 다음으로 말씀하는 대상은 부모와 자녀의 관계입니다. 20, 21절을 읽어 드립니다. “20. 자녀들아 모든 일에 부모에게 순종하라 이는 주 안에서 기쁘게 하는 것이니라 21. 아비들아 너희 자녀를 노엽게 하지 말지니 낙심할까 함이라” 아멘.
자녀는 부모에게 순종하고, 아비들은 자녀를 노엽게 하지 말라는 명령입니다. 남편과 아내가 서로 해야할 일이 있듯이 부모와 자녀 간에도 서로 해야할 의무와 책임이 분명이 있습니다.
아내의 역할이 남편을 잘 세워 줄 수 있듯이 부모가 자녀를 어떻게 대하는가에 따라서 자녀가 순종으로 살아가느냐, 낙심으로 살아가느냐가 결정 됩니다. 자녀의 진로에 있어서 부모의 역할은 백번, 천번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습니다.
앞서 남편에게 복종하는 것이 주 안에서 마땅하다라고 하면서, 복종(질서와 회복)을 강조하였듯이, 자녀가 부모에게 순종하는 것은 주 안에서 기쁘게 하는 것이라고 하면서, 순종을 강조 합니다. 부부 관계에서는 복종, 부모 자녀 관게에서는 순종이 일어나게 하는 것이 하나님이 뜻하시고 기뻐하시는 올바른 관계 형성입니다.
순종하는 자녀를 만드는 방법은 단 하나, 아내가 남편에게 복종하고, 남편이 아내를 사랑하는 모습을 자녀들에게 보여주는 것입니다. 부모가 먼저 이것이 안 되면 자녀들은 보고 배운 것이 없기 때문에 왜 순종해야 하는지 알지도 못하고, 순종해야 한다는 체질 개선이 전혀 이루어지지 않습니다.
자녀 교육은 부모가 언행으로 모범을 보이는 것 뿐입니다. 윽박지르고 힘으로 누르려고 하면 어린 시절에는 통할 수 있으나 자녀들은 자라면서 점점 삐뚤어지고 가치관과 인격이 왜곡되어져 갑니다. 순종의 자녀를 만들고 싶다면, 부모 답게, 아버지 답게, 엄마 답게, 존경 받을 만한 언행과 행실을 보여 주는데 최선을 다하여야 합니다.
21절에서처럼 자녀들은 부모에게 상처를 받으면, 특히 권력자인 아버지에게 폭력이나 폭언을 들으면 낙심에 빠집니다. 청소년, 청년들에게 많이 발생하는 ‘히키코모리’라는 병이 있습니다. 방 안에 들어가서 문 닫고 몇 년, 몇 십년이고 나오지 않고 혼자 지내는 병입니다.
이 병의 최대 원인은 부모의 학대, 폭력, 폭언으로 인하여 자포자기한 자녀들이 혼자 있는 공간을 도피처로 삼는 경우가 대부분입니다. 부모와 함께 있어도 부족한 젊은 날의 귀중한 시간을 좁은 공간 안에 갇혀 지내는 것이 얼마나 불행한 일입니까?
부모가 자녀를 노엽게(괴롭게) 하면 언제나 자녀는 지옥 같은 어둠에 갇혀 있는 다는 것을 잊어서는 안 됩니다. 그렇게 사신 적이 있는 분은 진심으로 참회 하시고 다시 새로운 모습으로 자녀 앞에 서셔야 합니다.
이 시대의 모든 자녀들이 더 이상 슬픔과 낙심 속에 빠져 불행해지지 않도록 함께 기도해 주시고, 내 자녀부터 넘치는 사랑의 마음으로 품어 주시는 부모님들 되시기를 축복합니다.
3. 사회와 이웃, 눈가림만 하지 말고 성실한 마음으로
“22. 종들아 모든 일에 육신의 상전들에게 순종하되 사람을 기쁘게 하는 자와 같이 눈가림만 하지 말고 오직 주를 두려워하여 성실한 마음으로 하라 23. 무슨 일을 하든지 마음을 다하여 주께 하듯 하고 사람에게 하듯 하지 말라 24. 이는 기업의 상을 주께 받을 줄 아나니 너희는 주 그리스도를 섬기느니라 25. 불의를 행하는 자는 불의의 보응을 받으리니 주는 사람을 외모로 취하심이 없느니라” 아멘.
누가 나의 사적 공간에 훅 하고 들어오면 누구라도 불편을 느낍니다. 직장이나 이웃과의 관계는 사실 진심의 관계로 발전하기가 매우 어렵습니다. 22절에서 보듯이 사람을 기쁘게(기본 예의만 갖추는 정도)하려고 눈가림 식으로 응대하는 경우가 대부분입니다. 우리는 그저 업무적인 관계, 아는 척 하고 지내는 정도의 관계를 맺으며 살아기는 것이 적당하다고 생각합니다.
제 페이스북 친구 중에 감리교 목사이신 문병하 목사님이 올린 글을 소개 합니다.
“우리 사회를 어둡게 하는 세 마디 말이 있다. “다 그런데 뭐!”, “나 하나쯤이야”, “다른 사람 하는 대로”, 그럼에도 세 마디 말 때문에 희망이 있다. “다 그래도... ”, “나 하나만은...”, “다른 사람 하지 않아도 나는...”
사람은 누구나 입에 두 말을 키우고 있다. 살리는 말과 죽이는 말이다. 살리는 말은 생명의 길로 인도하고 죽이는 말은 사망의 길로 인도한다. 그런데, 사망의 길로 달리는 말은 열 종류가 있다. "잘 해봐라"는 비꼬는 말. "난 모르겠다"는 책임없는 말. "그건 해도 안된다"는 소극적인 말. "네가 뭘 아느냐"는 무시하는 말. "바빠서 못한다"는 핑계의 말. "잘 되어가고 있는데 뭐 할려고 바꾸느냐"는 안일한 말. "이 정도면 괜찮다"는 타협의 말. "다음에 하라"는 미루는 말 "해보나마나 똑같다."는 포기하는 말. "이제 그만 두자"는 의지를 꺽는 말.
음식은 잘 씹어서 먹어야 자기 속이 편하고 말은 잘 씹어서 해야 듣는 이의 속이 편하다. 우리는 날마다 순간마다 살리는 말과 죽이는 말, 이 두 말 앞에 선다. 선택은 자신의 몫이며 결과도 자신이 거두어야 한다. 어느 말을 더 많이 타고 있는지 살펴보는 하루가 되었으면 한다.
공감 가는 글입니다. 우리는 너무나 많은 말과 행동 속에서 그리스도인으로 살아간다는 의식 자체가 없이 무감각하게 살아가는 시간이 많습니다. 그렇다 보니 누구를 상대 하더라도 내 성격 대로 말하고, 무슨 일을 하더라도 내 스타일 대로 밀어 부치고 우기고 따지려고 합니다.
한 성격 안하는 사람이 어디 있겠습니까? 성격 대로, 성질 대로 하려고 하기 때문에 불화와 부조화가 일어나는 겁니다. 바울 사도는 사회적인 관계를 하면서 “사람에게 하듯 하지 말고 주께 하듯 하라”는 말씀을 앞세울 것을 가르쳐 주었습니다. 이 말씀은 꼭 사회적인 관계 뿐이 아니라 앞서 말씀드린 모든 관계 속에서 적용되는 말씀입니다.
① 아내가 남편에게 복종하려면, 사람에게 하듯 하지 말고 주께하듯 마음을 다하여 복종하면 됩니다.
② 남편이 아내를 사랑하려면, 사람에게 하듯 하지 말고 주께 하듯 마음을 다하여 사랑하면 됩니다.
③ 자녀가 부모에게 순종하려면, 사람에게 하듯 하지 말고 주께 하듯 마음을 다하여 순종하면 됩니다.
④ 부모가 자녀들을 노엽게 하지 않으려면, 사람에게 하듯 하지 말고 주께 하듯 마음을 다하여 자녀를 품어 주면 됩니다.
⑤ 직장에서 상사와 동료들과 좋은 관계를 유지 하려면, 사람에게 하듯 하지 마로 주께 하듯 마음을 다하여 겸손하면 됩니다.
⑥ 교회에서 성도들과 좋은 교제를 이루어 가려면, 사람에게 하듯 하지 말고 주께 하듯 마음을 다하여 헌신하면 됩니다.
⑦ 맡겨진 삶의 자리에거 거룩과 경건을 이루어 가려면, 사람에게 하듯 하지 말고 주께 하듯 마음을 다하여 묵묵히 충성하면 됩니다.
언제, 어디서, 무엇을 하든지, “사람에게 하듯 하지 말고 주께 하듯 하라”는 말씀이 적용되고 실천 된다면 우리 모두는 빛과 소금의 역할을 감당하는 칭찬 받는 그리스도인으로 거뜬하게 살아낼 수 있습니다.
우리 주님이 성도와 교회와 가정에게 요구하시는 명령은 “사람에게 하듯 하지 말고 주께 하듯 하라”는 명령임을 명심 하십시오. 특별히 이 말씀이 올 해 우리 교회에게 주신 말씀이고 우리가 붙잡고 살아가야 할 말씀임을 꼭 기억 하십시오.
십자가 은혜로 구원 받은 그리스도인 이라면, 사람들과 경쟁하고, 비교하고, 평가하고, 판단하고, 뒷담화 하는 못된 습관을 끊어내야 합니다. 우리는 오직 예수님이 기준이 되고, 예수님이 모범이 되고, 예수님이 대상이 되고, 예수님이 목표가 되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누가 무엇이라고 말하든, 나에게 무슨 일이 생기든, 남편과 아내가, 자식과 이웃이, 직장 동료와 지인들이 나를 아무리 흔들어 대도, 나는 오직 “사람에게 하듯 그들을 상대하지 않고 마음을 다하여 주께 하듯 하며 내 갈 길을 가련다”이렇게 결단하고 실행 하시면 됩니다.
이렇게 살아가는 것이 올 한해 우리의 목표입니다. 당장 이번 추석 명절에서부터, 남편과 아내에게, 자녀에게, 가족과 지인들에게 마음을 다하여 주께 하듯 하는 이 말씀을 잘 녹여서 실천하시기 바랍니다. 그러면 평안으로 인도하시는 화목과 평강의 은혜가 넘치는 복된 시간을 보내시게 될 것입니다.
“사람에게 하듯 하지 말고 주께 하듯 하라”는 말씀 대로 살면 24, 25절에서와 같이 기업과 상급을 받을 것이지만, 내 멋대로 불의를 행하는 자는 불의의 보응을 받게 될 것입니다. 당연한 결과입니다. 칭찬 받는 일은 주님 앞에서 벌어지는 결과이기에 너무 먼 이야기입니다.
우리는 당장 현실에서 내가 받은 은혜, 내가 주인으로 모시는 예수님만 생각하며 마음을 다하여 주께 하듯 한다는 마음 자세 하나만을 굳게 지켜 가려고 최선을 다하면 됩니다.
여기 계신 남편분들은 어깨 쭉 펴시고 굳센 믿음으로 더 당당해 지시는 아빠들이 지시고, 아내 분들은 잠언에 나오는 현숙한 여인들처럼 가정을 세워가는 신실한 엄마들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우리 모두가 “사람에게 하듯 하지 말고 주께 하듯 하라”는 말씀이 올 한 해 나의 마음과 생각과 말과 행동을 지켜 주는 말씀이 되어서, 어디를 가서 누구와 관계를 맺든지, 평안을 전파하는 화목의 주인공으로 살아가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하고, 축복합니다.
첫댓글 설교에 많은 도움을 받고 있습니다. 감사드립니다.
건강하시기를 기도합니다.
대저 여호와께서 그 사랑하시는 자를 징계하시기를 마치 아비가 그 기뻐하는 아들을 징계함 같이 하시느니라(잠 3:1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