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집단사태를 통해서 본
한국사회의 병리 현상과 과제
최 승 부 상임고문
- 법무법인 CHL -
오늘 이 시간에 최근 우리사회에서 일어나는 일련의 사태들을 사회현상(社會現象)으로서 이론적으로 정리하면서 그 주요 사태들의 실상과 성격을 분석함으로써 이러한 사회현상이 일어나는 근본원인이 무엇이며 그것이 우리 국가․사회에 어떠한 영향을 미치는가를 파악하고 이에 대응하는 정부와 공직사회의 책무와 과제를 도출하고자 한다.
1. 사회구조(社會構造)는 어떻게 변화되고 전개되는가.
작금 우리 사회에서 일어나고 있는 일련의 사태들을 하나의 사회현상(社會現象)으로서 사회학적(社會學的)틀에 맞추어 규명하기 위해서 우선 사회 구조가 유지․변화되고 전개되는 과정을 살펴보겠다.
사람이 세상에 태어나면 최초로 가정이라는 사회에 속하게 된다. 그 아이는 가정에서 모유나 우유를 먹고 자라면서 가족으로부터 말과 행동양식(行動樣式)을 배우고 철이 들면서 가정교육을 받는다.
그리고 유치원․초등학교․중․고등학교․대학교를 다니면서 학교와 동창회라는 사회의 구성원이 된다. 학교를 마치고 직장을 구해서 공무원이나 회사원이나 대학교수가 된다든지 하면 각각 그 조직사회의 구성원으로서 살아가게 된다.
그렇게 살아가는 동안에 사람과 사람간에 교류관계를 맺게 되고 자기가 그 사회구성원으로서 살아가는데 지켜야 할 도리가 무엇이고 그 사회에서 생성되고 적용되는 문화와 규범 그리고 그 사회의 구성원들이 공통적으로 가지는 가치관이 무엇인가를 습득하게 된다.
그러므로 한국사회․일본사회․미국사회의 풍습이나 인종적 특성으로부터 시작해서 가족․직업․사유재산 등에 이르기까지 제도와 체제들이 형성되는 것이다.
그렇게 한 인간은 태어나면서부터 일평생 살아가는 동안 여러 중첩된 사회의 구성원으로서 존재한다.
사회학에서는 각급 사회의 구성원들이 상호작용하고 행동하는 과정에서 생성되는 규범․가치관․문화의식 그리고 그것들의 산물로서의 제도․계층구조․자산들을 한데 묶어서 사회구조(社會構造)라고 하는데 사회체계(社會體系, Social system)는 사회구조를 이루는 각 부분들이 뚜렷한 경계(境界)를 가지면서 그 부분간에 일정한 관계와 질서를 이루고 있는 전체적인 복합체를 말한다.
사회체계를 구성하고 있는 사회관계․집단이나 공동체의 조직․규범․제도․계층 등의 사회구조는 환경과 시간의 경과 등에 따라 항상 새로이 생성되기도 하고 그 내용과 기능이 변동되기도 한다.
사회변동(社會變動)이라 함은 이와 같은 사회구조와 사회체계에 본질적으로 내재하는 변동의 정상성(正常性, normality of change)으로 말미암아 기존의 질서에 대한 새로운 것의 도전과 위기의식(sense of crisis)속에서 예컨데 세대(世代)교체와 같이 그 사회의 구성원들이 교체되고 그들의 사회적 행동으로 이루어지는 모든 사회과정(社會過程) 그 자체를 뜻하는 것이다.
이처럼 사회변동은 언제, 어느 사회에 있어서나 보편적으로 일어나는 것임을 가리켜 학자들은 변동의 항시편재성(恒時遍在性, ubiquity of change)이라고 하며 어떤 학자는 사회변동을 ‘사회구조의 중대한 변화(significant alteration)’로 정의하기도 한다.
이러한 사회변동이 가져오는 결과를 역사적 실태로서 관찰해보면 사회변동이 어떤 사회에서는 보다 발전적인 변화를 가져오는가 하면 다른 어떤 사회에서는 정체되거나 쇠락하는 상태에 빠지는 수가 있다. 이 후자의 예로는 과거에 선진국의 반열에 올랐다가 2류․3류의 국가로 전락한 중남미 일부 국가에서 볼 수 있다.
그러면 우리는 과연 지금 어디로 가고 있는가. 이것이 오늘 이 시간 우리의 관심사항의 하나이다.
사회는 항상 변동한다고 했는데 이러한 사회 변동은 반드시 이를 주도하는 어떠한 주체세력에 의하여 진행된다. 즉 변동의 계기가 생기면 이것을 적극적으로 추동하는 주체가 있고 또 그것에 반응해서 나타나는 주체가 있을 것이다.
사회변동의 과정에서 사회구성원들에 의하여 행하여지는 행위로서 집합행동과 사회운동이 있다.
집합행동(集合行動)이란 대체로 일상적인 행위 규범에 의하여 통제되지 아니한 집합체의 자발적․비조직적인 행동으로 정의되고 있다. 즉 그것은 한 사회의 구성원간에 인정되고 있는 가치관․규범 또는 각 사람의 행위 동기 등에 자극이 주어지거나 문제가 생기면 그 구성원들이 그로 인하여 그 부위에 조성된 긴장상태를 완화하거나 반응하기 위하여 비제도화된 형태의 행위로 집중적인 공격을 함으로써 나타나는 현상이다.
예를 들면, 며칠 전에 노무현 대통령이 일본 중의원(衆議院) 의장을 만나면서 “대한민국도 공산당이 허용되는 나라가 되어야만 비로소 완전한 민주주의가 된다”고 얘기를 하였는데 이것이 언론을 비롯해서 상당히 큰 여론의 파장을 일으키고 있다.
물론 대통령의 그 말씀의 뜻이 따로 있을 것이고 또 여러 가지로 해석될 수 있을 것인데 우리 사회의 대부분의 구성원간에 공산당은 당연히 부정되어 왔고 실정법상으로도 부정되고 있으므로 이 발언은 굉장히 놀랄 만한 것이었다.
그래서 이에 대하여 찬동하는 반응이 있는가 하면 많은 사람들이 우려를 표명하고 때로는 반발심을 일으켜 신문에 기고를 하기도한 것이다. 그런데 사회학자에 의하면 이러한 집합행동은 군중행동(群衆行動)․대중행동(大衆行動)․여론(輿論)․공중(公衆) 등으로 나누고 있다.
군중행동은 어떠한 자극에 반응해서 일시적으로 사람이 한 장소에 모이는 것인데 이중에서 예컨대 길에서 교통사고가 나거나 그 때문에 양측이 싸우는 것을 구경하기 위해서 사람들이 모이는 것은 그들간에 공통적인 목표가 설정되어 있지 않기 때문에 이것을 우연적(偶然的)군중이라 한다.
상암경기장에서 한국 대표팀과 아르헨티나 대표팀간에 축구경기를 하면 구경하기 위해서 또는 예술의 전당에서 러시아의 유명한 발레단의 공연이 있으면 그것을 관람하기 위해서 사람들이 모이는데 이것은 일정한 규칙에 따라 모이는 것이므로 이를 인습적(因襲的) 군중이라 한다.
또 외부로부터의 자극이나 어떠한 이슈가 제기될 때 그것에 관련된 사람들이 같은 목표나 이해관계를 가지고 조직적․능동적․적극적으로 반응하는 경우, 즉 농민 시위나 화물운송업차주 내지 운전기사의 집단행동과 같은 것은 이를 능동적(能動的)군중이라고 하고 사람들이 축제나 종교적인 부흥집회와 같이 스스로 감정을 여과 없이 노출시키며 참여할 때 이들을 표출적(表出的) 군중이라 한다.
다음으로 대중행동(大衆行動)은 어떠한 자극이나 문제발생에 대하여 사회 구성원들이 한 장소에 모이는 것이 아니라 각자 흩어져 있는 상태에서 개별적 반응을 보이거나 행동하는 형태를 말하는데 이는 비교적 지속적으로 행하여지는 것이다.
예컨대 작년에 대통령 선거 결과 노무현 후보가 당선되었을 때 물론 유권자의 입장에서는 각자 지지하는 후보에게 투표하였을 것이지만 이는 계층에 따라서는 실로 놀라운 일이었다. 그래서 그 때 우리 사회의 한 쪽 귀퉁이에 갑자기 심리적인 패닉(panic) 현상 즉 공황이 왔다고 했다.
이제 어떻게 될 것인가? 대북정책은 어떻게 할 것인가? 기업에 대하여는 어떠한 정책을 펼 것인가? 노동정책이 급변하는 것이 아닌가? 등을 둘러싸고 많은 여론과 유언비어라고도 할 만큼 떠도는 이야기들이 많았다. 이처럼 대중행동의 형태로는 유언비어․열광․유행 또는 대중적 흥분과 공황 등이 있다.
집단행동의 또 다른 종류로서 공중(公衆, public)이라는 것은 있는데 이것은 어떠한 이슈에 대해서 한 장소에 모이는 것은 아니지만 지역적․공간적으로 흩어져 있으면서 공통의 관심을 표하는 구성원들의 총체를 말하며 여론(輿論, public opinion)이라는 것이 어떠한 이슈에 대하여 공중을 이루고 있는 개개인들이 가지는 같은 방향으로 일치하거나 비슷한 의사의 총체를 말한다.
넓은 의미의 집합행동이라고 할 수 있으면서도 이와 구별되는 것으로 사회운동(社會運動)이라는 것이 있다.
이것은 좁은 의미의 집합행동과는 달리 처음부터 어떠한 사회적인 변화를 촉진하거나 또는 어떠한 방향으로 변화되는 것을 저지하기 위해서 조직적․계획적․이성적이며 같은 이념적 목적을 추구하기 위하여 움직이는 운동이다.
예컨대 환경단체의 운동, 소비자단체운동이나 경실련(經實聯)활동 등을 생각하면 이해가 될 것이다. 이와 같은 사회운동도 여러 가지 요소에 따라 그 유형을 분류할 수 있는데 그 이념적 지향성에 따라 보수적이냐, 반동적 또는 진보적이냐, 복고적이냐 등으로 나누어진다.
지난 3․1절 기념 행사가 두 갈래로 갈라져서 열렸는데 그 한쪽은 보수적이고 다른 한쪽은 반동적이라고 까지 할 수는 없지만 전자와는 다른 성향의 새로운 세대가 주관한 것이었다. 그리고 사회 운동의 내용에 따라서는 종교적인 운동, 선거 캠페인과 같은 정치적인 운동 또는 노동운동이 있다.
또 행동의 태양에 따라 폭력적․비폭력적 운동이 있는가 하면 특히 사회체제의 변화를 추구하는 사회운동으로서는 1950년대에 세계적으로 전개되었던 도덕재무장운동(MRA)과 같은 가치 지향적 운동, 권력획득을 위한 권력 지향적 운동, 시민안전생활 실천운동과 같이 참여 그 자체로부터의 만족과 희열을 추구하는 참여지향적 운동 등이 있다.
뿐만 아니라 이러한 사회운동의 전개 과정을 보면 처음 시작을 할 때에는 선동운동으로 출발하여 제도화되는 단계로 가는 경우가 있는가 하면 당초의 운동 목적이 달성되면 스스로 해체되는 경우가 있고 혹은 그 목적이 달성되지 아니하는 경우에 그것을 비판하면서 새로이 반대 세력의 운동이 등장하기도 한다.
2. 최근 주요사태들의 내용과 양상을 분석하겠다.
첫째로 우리 사회에서 매우 복잡하고도 첨예한 쟁점들을 안고 제기되고 있는 과제 중의 하나가 공기업 민영화의 문제이다.
이 공기업의 민영화 문제는 작년 2월 25일 새벽에 철도노동조합, 한국발전산업 노동조합, 한국가스공사 노동조합이 연대하여 전격적으로 총파업에 들어감으로써 전국적으로 충격과 불안을 일으키면서 크게 부각되었다.
이 파업사태를 누가 주도를 했는가? 우리나라 노동조합의 세력에는 양대 산맥이 있는데 해방이후 우리나라 노동운동의 정통성을 이어 왔다고 자임하면서 비교적 보수 성향을 견지해온 ‘한국노동조합총연맹 즉 한국노총’과 진정한 의미의 생활임금 보장 등 근로조건과 노동기본권을 쟁취하기 위하여 노동자를 정치세력화하고 민주적․자주적 노동조합운동과 사회개혁적 노동조합주의 이념을 지향한다고 자처하는 ‘전국민주노동조합연맹 즉 민주노총’이 있다.
작년 2월 전력 등 기간산업의 공기업 민영화 반대 총파업을 총체적으로 주도 한 것이 바로 민주노총이다. 당일과 이틀 후에 각각 한국가스공사와 철도노조가 파업을 중단하고 정상근무에 복귀하였는데 한국발전산업노동조합만의 파업으로 38일 동안 지속되었다.
이 파업은 결국 2002. 4. 2. 정부와 민주노총간의 최종 합의에 의해 수습되었는데 그 합의문서는 4월 3일로 파업을 종식시키는 것으로 하되 민영화 관련 교섭은 논의 대상에서 제외한다는 등 몇 가지 애매한 표현을 내용으로 담고 있다.
이를 두고 당시 정부의 산업자원부 장관과 노동부장관은 민주노총이 정부의 발전 회사 민영화 방침을 수용하고 파업을 철회한 것이므로 앞으로 이 문제는 더 이상 논쟁의 대상이 되지 아니하는 것으로 해석하면서 이는 파업사태에 정부가 법과 원칙에 따라 확고한 의지를 가지고 대처하였기 때문에 가능하게 된 것이고 이제 어떠한 경우에도 불법파업은 결코 성공할 수 없으며 국민으로부터 불신만 받고 반드시 손해를 본다는 사례를 경험한 이상 노사는 물론 정부도 이것을 우리나라 노사관계의 새로운 틀을 짜는 시금석으로 삼아야 한다고 자평했다.
이에 반하여 민주노총과 발전산업노조 측은 노정간의 합의가 불만족스럽지만 전력산업 매각의 부당성이 부각되었고 앞으로 정부정책의 재검토와 국민적 합의과정이 필요하다는 것에 국민 각계각층의 지지를 확보할 수 있었다고 평가하는 동시에 이를 졸속처리하면 언제라도 국민적 저항에 부딪힐 것이라고 선언하였다.
한편 발전회사측은 894명의 조합원을 형법상 업무방해 등의 죄목으로 고소, 고발하고, 348명을 징계, 해고 조치함과 아울러 약 62억 원의 재산상 손실을 회사에 끼쳤다고 해서, 조합간부들이나 적극 가담한 사람의 재산에 대한 압류처분을 하기에 이르렀다. 다만 그 후 각급 쟁송(爭訟)과정에서 상당수의 조합원이 구제되거나 면책되기도 하였다.
참고로 전력산업의 구조개편과 민영화는 지난 2000년 말 정기국회에서 ‘전력산업구조개편촉진에관한법률’(안)이 통과되어 제정됨으로써 본격 추진되는 발판이 만들어졌고 이에 따라 민영화를 촉진하고 경쟁체제의 기틀을 마련하기 위하여 2002년 4월에 한국전력(주)의 자회사 형태로 6개회사로 나누어지게 되었다.
원래 과거의 한국전력(주)의 노동조합은 전통적으로 보수적인 운동노선을 걸어왔고, 노사관계도 아주 협조적인 관계를 유지하여 왔다. 그러나 2001년도 민영화를 전제로 해서 분사화 되면서 그 각사의 노동조합이 전부 민주노총 산하조직으로 전향해 갔다.
작년도에 민주노총이 전력산업분야를 비롯한 공기업의 민영화를 저지하는 총파업을 주도한 것은 공기업의 민영화가 그 자체로서 근로자에게 있어서 중요한 이슈이기도 하였지만 그 당시 위원장이 수감되어 있는 상태에서 조직의 결속력이 이완될 수 도 있었기 때문에 이를 막기 위하여 대정부 및 대경영계 투쟁의 명분과 기선을 장악하려는 전략적인 고려가 있었다고도 보아야 할 것이다.
사실 전력 산업부분을 민영화하는 것은 대주주인 정부가 결정할 문제이지 노동조합의 카운터파트인 한국전력(주)나 6개 발전회사는 결정권이 없는 것이다. 그리고 민영화를 할 것이냐, 하지 않을 것이냐는 국가의 정책사항이지 근로조건결정에 관한 것은 아니라 할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이 문제를 쟁의행위의 수단으로 쟁점화하려는 것은 그 목적이 적법 또는 정당하지 않은 것으로 판단할 수 밖에 없는 것이다.
둘째로 2001년도와 2002년도에 있었던 의료대란과 대형병원의 노사분규는 국민의 건강과 생명을 볼모로 한 집단행동이라고 할 수 있다.
의료대란은 인술(仁術)과 국민건강관리에 종사하는 고학력의 의약업계가 각기 이익을 위해서 보여 줄 수 있는 극한의 투쟁 행태를 보여 주었다. 전국의 7개 대형병원에 걸친 최장 7개월 간의 노사분규는 노사문제가 아닌 사학연금(私學年金)의 개인부담금 문제와 보건의료노동조합이 요구하는 산업별 단체교섭의 문제 즉 전국차원의 보건의료 노조와 병원업계 또는 개별 병원간의 교섭방식을 요구한 것에 대하여 개별병원마다 사정이 다르다는 것을 이유로 이를 거부하는 병원 측의 입장간의 다툼이 핵심쟁점이었다.
세 번째로 작년에 이어 금년초에 발생한 두산 중공업 주식회사의 노사분규 사례를 살펴보자.
당초 이 회사의 노동쟁의는 두산그룹이 과거 공기업이었던 한국중공업주식회사를 정부의 민영화 방침에 따라 2000년 12월에 인수한 후 이를 완전한 민간 경영체제로 전환함으로써 경쟁력과 효율성을 제고하기 위해 법과 원칙에 따른 강력한 경영체질 혁신을 추진하는 과정에서 노사간에 긴장관계가 조성 되었던데다 노조측은 2002년에 들어 민주노총 계열의 전국금속노조로부터 지시를 받는 경남 제1지부를 중심으로 산업별 교섭의 토대를 구축한다는 방침하에 교섭에 임하면서 이를 둘러싸고 갈등이 장기화되어온 것인데 공교롭게도 두산그룹의 회장이 대한상공회의소 회장직을 맡고 있고 금속노조위원장이 두산중공업 노동조합출신이라서 마치 경영계와 노동계의 대리전과 같은 양상을 띠고 있었다.
그런데다 금년초에 느닷없이 두산 중공업 노조의 조합원이 분신하는 사건이 일어나면서 엉뚱하게도 사안의 본질을 벗어나 사회문제로 비화된 것이다. 더구나 두 달 동안 시신을 볼모로 하여 노사간의 대치상태가 풀리지 않자 결국 노동부장관이 현장에 가서 밤을 세워가면서 가까스로 타결하였다고 하는데 이 또한 그 방법과 내용에 있어서 좋지 않은 선례를 남긴 것으로 평가되고 있다.
무엇이 문제인가? 그 하나는 새 정부가 출범하면서 이제는 개별 사업장내의 노동쟁의에 정부가 일절 관여하지 않는다고 밝혔던 원칙을 정부 스스로가 깨뜨린 것이다.
이에 더하여 또 다른 심각한 문제점은 지금까지 이른바 no work no pay 라는 말로 알려진 것처럼 불법적인 것은 말할 것도 없고 적법․정당한 파업인 경우에도 그 기간에 대해서 임금 기타 어떤 급여도 지급되지 않는다는 원칙이 당연한 것으로 확산되어 왔는데 이번 두산중공업 노사분규 사태를 수습하면서 정부 스스로가 개입해서 무단 결근으로 삭감되는 임금의 50%를 생계보조비로 지급한다는 합의를 하게 한 것이다.
사실 공기업을 인수하는 민간 기업의 입장에서는 곧 바로 민간경영체제에 맞도록 뼈와 살을 깎는 철저한 구조조정과 경영쇄신을 단행하는 것이 지극히 당연하다.
극히 예외적이라고 할 수 있는 소수의 경우를 제외하고 과거부터 지금까지 누적되어 온 우리나라 공기업의 구조적 병폐를 요약하면 우선 경영마인드를 갖고 있지 못한 정치인이나 퇴출 경제관료가 조직의 장(長)으로 부임해서 보장된 임기동안 안일무사하게 재임할 수 있고 직원들은 정부의 업무를 위탁받아 수행한다거나 그 밖에 소관부처와의 업무상의 연관이 있음을 빌미로 공무원에 준하는 권한행사나 위세를 보이는가 하면 비대한 조직 안에서 대과 없으면 정년까지 신분이 보장될 뿐 아니라 소관부처의 묵인이나 방치에 힘입어 비교적 좋은 처우를 누리고 있다고 하는 점들이다.
그래서 공기업의 민영화 추진은 말할 것도 없고 민영화된 후의 체질 개선이 매우 어려우며 더우기 우리나라 민간기업의 노사관계에 좋지 않은 관례를 물려주는 뿌리가 바로 공기업의 노사관계라는 점을 지적하지 않을 수 없으며 이것은 저의 경험을 통한 확신이다.
내가 관련 자료를 기초로 두산 중공업의 노동쟁의 사태를 객관적으로 살펴 본 바에 의하면 회사는 구조조정에 착수하고 그것을 추진하는 과정에 서 노사간의 갈등에 대처하고 이를 수습하는 단계에 이르기까지 아주 냉혹하리 만치 철저하고도 치밀하게 법과 원칙에 따라 대응하였다.
이에 반하여 노동조합측은 두산중공업 자체의 노동조합조직인 지회(支會)를 이끌고 있는 집행부의 파업종식 의견과 조합원의 이탈정서를 모두 무시한 경남지역 지부 등 민주노총 금속노조 상층부의 밀어부치기식의 강압적인 강경투쟁 방침 때문에 스스로 한계에 봉착할 수 밖에 없었던 것이다.
네 번째 철도 노동조합의 파업 문제를 보겠다. 다행히 금년 2월 철도 노동조합이 파업 결의를 하였다가 이를 결행하기 직전인 4월 20일에 철도청과 타협이 이루어져서 파국에까지 이르지는 않았다.
철도 노동조합이 파업에 돌입하려고 했던 명분은 크게 세 가지였다. 즉 정부가 철도구조개혁 방침에 따라 철도 운영을 공사화(公社化)하는 것을 반대한다는 것, 지난 1988년이래 노사분규 과정에서 해고된 77명 중 45명을 노사정위원회의 권고대로 특별채용해서라도 원직복직 등 구제조치를 이행하라는 것 그리고 철도 운영을 민영화하겠다는 계획을 원천적으로 철회하겠다고 선언하라는 것 등이다.
사실 철도 사업의 민영화는 역대 정권마다 거론해왔던 과제이다. 정부는 1989년 12월에 “한국철도공사법”을 만들어 ’92년도부터 시행하기로 하였다. 문민정부가 이를 추진하려 했지만 노동조합의 저항이 심하고 철도 공무원으로 재직해 온 직원들에 대한 퇴직금을 정산․지급하기 위해 막대한 예산이 필요한데 그 재원 조달이 어렵다는 것과 그밖에 정치적 이유 등으로 1996년 말에 그 법 자체를 폐지하였다.
국민의 정부에 들어서 2001. 12. 17.자로 “철도산업발전및구조개선에관한법률”(안)과 “한국철도시설공단법”(안)을 국회에 제출하여 계류된 상태에서 철도 노동조합이 작년 2월 발전(發電)산업노조와 연대하여 민영화 철회를 요구하는 파업을 했고 금년 3. 14. 자로 “철도사업법”(안)을 입법예고 해놓고 있는데 바로 지난 2월 철도노동조합이 파업 결의를 하자 철도청이 4. 20.자로 민영화 방침을 철회하기로 합의해 줌으로써 파업을 모면하게 되었다.
다섯 번째로 바로 최근에 발생한 이른 바 ‘화물연대(貨物連帶)’파업이라는 집단시위 사태의 실상을 살펴보겠다.
이 사태의 성격을 엄정하게 정리하면 화물운송종사자의 집단행동이다. 왜냐하면 이들은 화물운송차량의 지입차주(持入車主)겸 기사이기 때문에 노동관계법상 노동조합을 조직할 수 있는 근로자라고 할 수 없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들이 2002. 10. 27. 자칭(自稱) ‘화물운송특수고용노동자연대’(‘화물연대’로 약칭)라는 것을 조직하였고 전국 11개 지부에 약 15,000명이 이에 가입되어 있는데 민주노총 산하의 ‘운송하역노동조합’은 이들은 “준(準)조합원”이라는 이름으로 받아들이고 있다.
이들은 지난 1월 운송하역노동조합을 통하여 노조와 똑같이 산업별 교섭을 제도화해라, 화물운송특수고용 노동자로서의 권리를 보장하라, 지입제를 철폐하고 지입차주 차량소유권을 보장하라, 다단계 알선관행을 시정해 달라, 사업용차량 경유에 부과되는 경유세를 인하하라, 산업재해 보상 혜택을 받게 해달라, 초과근로수당성격의 보수가 비과세 대상이 되도록 근로소득세 조항을 개정해달라 등 12가지 요구사항을 대통령직 인수위원회에 제출한 바 있다.
이들은 화주와 정부를 상대로 자기들의 요구 사항을 관철하기 위해 3월 말부터 집회․시위를 해오다가 5월 초부터는 운송거부․화주회사 출입문봉쇄․고속도로상의 준법운행 등 본격적인 실력행사에 돌입함으로써 물류대란을 일으켰고 결국 5월 15일 정부측 대표와 경유 교통세 추가 인상액 전액 보조금 지원 등 현안 사항에 관해서 합의함으로 집단행동을 그쳤다.
참고로 말씀드리면 화물운송 종사자의 문제는 레미콘 차주 겸 운전기사의 경우와 더불어 이번에 비로소 제기된 것이 아니고 이미 수년 전부터 논란되어 온 것이다.
여섯 번째로 공무원의 노동3권 보장문제와 관련하여서는 다행히 파업 찬반 투표에서 부결되기는 하였지만 앞으로도 공무원이 노동조합을 결성하고 단체교섭을 하는 것 뿐 아니라 단체행동을 할 수 있는 권리까지를 보장할 것인가를 둘러싸고 첨예한 논쟁과 대립이 거듭될 것이다.
왜냐하면 지난 1987년도에 개정된 현행 헌법에 의하면 근로자는 단결권․단체교섭권 및 단체행동권 다시 말하면 영어의 ‘or’에 해당되는 ‘또는’이 아니라 ‘and’를 뜻하는 ‘및’으로 되어있기 때문에 공무원들은 문자 그대로 노동조합을 조직하거나 이에 가입하고 직접 정부를 상대로 하여 단체교섭을 하여 단체협약을 체결하며 그것이 결렬되면 파업 등 단체 행동을 할 수 있는 노동3권이 모두 보장되어야 한다는 주장이고 행정자치부는 공무원의 신분과 임무의 특수성에 비추어 협의권만 가질 수 있어야 하며 단체 행동권은 인정될 수 없다는 것이 핵심적인 쟁점인 것이다.
끝으로 교육인적 자원부가 추진하고자 한다는 이른바 NEIS 즉 ‘교육행정정보시스템’과 관련된 사태를 보면 전교조(全敎組)가 교무․학사․입학․진학 등에 관한 사항이 정보인권침해의 소지가 있다하여 이의 시행을 반대하는 파업투쟁을 결의하자 장관이 그 시행을 보류하기로 합의하였고 이에 대해 시도교육감․교장단․한국교총(韓國敎總)등이 반발하자 다시 고(高)2이하 학생에 대하여서만 우선 시행하는 것으로 되돌리는 등 갈팡질팡하니까 전교조는 또다시 오는 6월 20일부터 연가(年暇)투쟁을 하겠다고 선언해 놓고 있는데 이 과정에서 장관이 보여준 무소신․무책임에 더하여 드디어 NEIS가 그렇게 중요하고 어려운 문제인 줄을 미처 몰랐다고한 고백에는 정말 놀라움을 금할 수 없다.
이상에서 거론된 것 이외에도 현재 민주노총과 한국노총 등 노동계는 4개 도시 지하철의 1인 승무제 폐지. 경제특구법(經濟特區法) 폐기, 주5일 근무제 도입을 위한 정부의 근로기준법 개정안 반대, 조흥은행 일괄 매각 반대, 철도구조개혁 관련 법안 반대 그리고 금속산업․건강보험․국민연금․보건의료․국민은행 등의 단체교섭을 둘러싼 6월 투쟁을 예고해 놓고 있다.
3. 우리 사회 현상(現象)에 숨어있는 병리적 증상(病理的 症狀)
첫째로 힘으로 밀어붙이면 모두 쟁취할 수 있다는 반사회적 의식과 행동이 뚜렷이 나타난다. 우선 노조의 파업 그 밖의 집단행동을 주도하거나 이에 적극적으로 동조․가담하는 사람들은 자신들의 행동이 일응 지역이나 국가 경제, 국민의 일상생활, 사회안정 등에 악영향을 미칠 수 있고 따라서 언론 기타 여론의 비판을 받을 것이지만 어차피 양시양비론으로 흐르는 여론의 속성상 정부나 이해관계자인 상대방도 더불어 비난받게 되는 것이기 때문에 크게 부담을 느낄 필요가 없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결국 정부가 직접 개입하게 될 것이 틀림없고 그렇게 되면 수습과정에서 얻어내는 것이 있다는 것이다.
둘째로는 국가의 법이나 그밖에 규범(規範)․질서를 어긴 행위에 대한 응징이 무력화되는 풍조가 만연되고 있다. 어떠한 불법․반사회적인 폭력․파괴 기타 다수의 위력과 파국을 수반하는 집단 사태가 있었다 하더라도 이를 정부나 정치권력이 개입하여 마무리하게 되면 그러한 행위에 대한 엄정한 민․형사상의 사법처리나 징계책임이 매우 가벼워지거나 불문에 붙여질 수 있다는 인식들이 널리 퍼져있다는 것이다.
또 그와 같은 실례는 얼마든지 들 수 있다. 국민의 정부 당시인 지난 2000년 7월 현대자동차 주식회사가 약 8천명의 근로자를 근로기준법에 정하여 진 요건과 절차에 따라 정리해고 할 것을 추진하자 원래 법상 요건과 절차를 갖춘 정리해고에 대하여는 파업을 하지 못하게 되어 있음에도 불구하고 노조가 거세게 반발하면서 극심한 파업을 자행하니까 당시 노사정위원회의 위원장이 울산 현장에 내려가서 수습하면서 결국 정년 등 자연 퇴직인력까지 포함해서 불과 270여명 정도를 해고하는데 그치는 등 나쁜 선례를 남겼다.
그 영향으로 정리해고 제도가 법으로 규정되어 있는데도 지금은 사실상 제대로 시행되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그 뿐 아니라 불법집단 행동에 대하여 관계 공무원이 직무책임과 소신에 따라 원칙대로 처리하려다가 이해집단으로부터 압력을 받거나 오히려 신상관리상 불이익을 받게 되는 날벼락을 맞는 수도 있다는 것이다.
위법 행위에 대하여 적법․정당한 권한에 따라 공무집행을 하거나 사태를 처리하는데 느닷없이 위로부터 제동이 걸리거나 비공식적인 경로로 견제를 당하는 경우도 있는데 이에는 대개 공권력집행의 대상과 관련이 있는 단체가 작용하는 경우가 많다는 것은 이미 오래전부터 알려져 왔으며 특히 새 정부가 들어선 후에 노무현 대통령이 나이가 젊기 때문에 많은 사람들의 의견을 듣기 위해서 여러 형태의 측근 참모를 두고 있다는 것은 일응 충분히 이해가 되지만 문제는 이들 권력 측근이라고 하는 이들로부터 공무수행이 간접적으로 간섭받는 경우가 있다는 것이다.
4. 이러한 증상이 심화된 근원적(根源的)인 원인
첫째로 정부와 정치권력의 행태가 급속한 환경변화와 국가발전단계에 따라 제기되는 과제들에 대한 근본적인 검토와 접근노력을 하지 않은데에 상당한 책임이 있다는 점을 지적한다.
앞에서도 말씀드린 바 있거니와 철도 및 전력사업 등 공기업 민영화 문제만 보아도 적어도 6공화국 이래로 역대 정권을 거쳐오면서 대국민 과시용으로 거론하고 추진하다가 보류하기를 거듭해 온 것이다.
공기업의 민영화는 일차적으로는 당해 기업에 몸담고 있는 종업원의 고용유지와 근로조건 보장 등 노사문제일 수도 있지만 그보다 더 근본적으로는 수요자인 국민의 경제생활과 국가 산업 구조에 관한 문제인데 어째서 이 문제가 단순히 노동쟁의의 차원에서만 다루어지고 있느냐 하는 것이다. 이 막중한 사안에 관하여는 거국적으로 소비자인 국민 각계각층이 참여하는 폭넓고 실질적인 공론화 과정을 거쳐야 함에도 정부나 정치권은 흔히 답습해 온 탁상공론의 방식에 따라 대학교수나 출연 연구기관의 연구원이나 학자 몇 사람 중심으로 주제 발표를 하고 토론을 하는 등 세미나를 거쳐 소관부처의 담당공무원이 정책자료를 만들고 관련 법률안을 기초하여 추진하다가 노조로부터 저항을 받으면 이를 중단해 온 실정이다.
사실 내가 기억하기로는 과거의 정권하에서도 철도사업의 공사화․민영화를 거론하면서도 그에 따른 인력의 소요규모․고용 및 근로조건의 승계의 범위 그리고 소요 재원 확보 방안 등에 관하여는 관계부처 간에 실질적이고 구체적으로 깊이 있게 논의해 본 바가 없다.
화물연대파업이라는 것도 엄밀한 의미에서 노사문제라고 할 수 없을 뿐만 아니라 그 요구사항이라는 것에 대하여도 전문적인 검토를 거쳐서 받아들여 질 수 있는 것과 그렇지 않은 것을 엄격히 구분하여 단호하게 대처하였어야 함에도 이미 알려진 바 같이 주무부처인 건설교통부가 사전에 산업자원부나 노동부와 신속하고 적극적인 협의과정을 거치지 않고 있다가 파국의 사태를 겪고 나서야 세(勢)에 밀려 허겁지겁 다 수용해 주는 꼴이 되고 말았다.
시대가 바뀌었는데 아직도 우리의 관료사회에는 어떤 문제가 생기면 이것은 우리 소관업무니까 우리부처 단독으로 처리해야한다든가 또는 어렵고 복잡한 문제에 끼여들어 봤자 득 될 것이 없다 그래서 우리 소관업무가 아니면 적극적으로 응할 필요가 없다는 풍조가 남아 있다. 그러니 이번과 같은 사태가 일어나도 즉각 공식적인 부처간의 협의와 참여를 통하여 대책을 강구하기에 앞서 비공식적인 협의 정도로 대처하려 했던 것이다.
의료대란(醫療大亂)도 당초 정부가 착수한 의약분업이 가져올 이해관계 집단의 반발과 그에 대한 대응책을 충분히 예측하지도 못하였고 결국 그 사태가 가져온 해악(害惡)의 원인과 책임도 밝혀지지 않았을 뿐 아니라 새로이 제기되고 있는 의료계와 의약계의 불만 그리고 국민부담의 문제들만이 아직 앙금으로 남아 있는 실정이다.
다음으로 노동법제와 정책상의 현안 문제에 대한 정부의 인식과 이것을 다루는 방법에도 문제가 있다. 근로시간 단축을 위하여 정부측이 마련한 근로기준법 개정(안)의 내용에 대하여 노동계와 경영계가 모두 마음에 안 든다고 반대하고 있는데 정부의 개정(안)의 내용 중에는 노동법의 법리나 경제논리에 어긋나는 부분이 분명이 있다.
정부는 이 문제에 대하여 재계와 노동계의 눈치를 보면서 원리에도 맞지 않는 타협안을 마련할 것이 아니라 정론에 입각해서 이를 바로 수정 보완하여 확고한 의지를 갖고 추진해야 한다.
그리고 오늘날 중요한 사회문제로 대두되고 있는 이른바 비정규직 근로자의 문제도 이제는 옛날처럼 한번 회사에 들어가면 정년까지 직장이 보장되고 봉급도 호봉에 따라 자동적으로 올라가는 종신고용(終身雇傭)이나 연공서열(年功序列)의 시대가 아니라 노동시장이 훨씬 경쟁적이고 유연화되고 있는 추세이므로 이에 맞는 고용정책과 제도를 제대로 시행하여야 한다. 즉 시장의 수요(需要)에 맞추어 비정규직 근로자가 존재할 수 있는 법적 근거를 마련하고 나아가서 학력이나 직무능력이 동일하면 임금기타 처우에 있어서도 정규직 근로자 보다 불리한 대우를 받지 않도록 하여야 할 것이고 특히 건강보험․고용보험․국민연금 등 각종 사회 보험의 적용대상에서 누락되는 일이 없어야 하는 것이다.
그런데 한국노동연구원의 조사에 의하면 우리나라의 임시직․일용직․계약직 등 명칭으로 고용되고 있는 비정규직 근로자의 30% 정도만이 사회보험의 적용을 받고 있는 실정이고 나머지는 그 적용을 받지 못하고 있다고 하니 이는 매우 심각한 사회문제이다.
또 하나의 과제는 이른 바 ‘특수형태의 취업자’의 문제이다. 내가 굳이 ‘취업자(就業者)’라고 표현하고 있는 것은 이것이 노동경제학에서 쓰는 용어로서 남에게 고용되어 급여를 받는 임금 근로자와 자기 책임하에 스스로 사업을 경영하여 수입을 벌어들이는 자영업자(自營業者)를 포함하는 개념이기 때문이다.
현재 논란되고 있는 것은 보험회사의 보험모집인, 골프장의 캐디, 학습지 방문지도 교사들의 문제로서 이들이 회사에 고용되어 지배종속관계에서 임금을 받는 근로자로서 근로조건과 노조활동의 보장 등 노동법에 의한 보호를 받아야 한다는 주장과 반대로 이들은 회사로부터 직접 업무상의 지시 감독을 받거나 임금을 지급 받는 고용계약 관계에 있는 것이 아니라 일종의 도급 또는 업무위탁과 같은 계약관계에서 자기 책임하에 달성한 실적에 따라 보수를 받는 것이므로 근로자로 볼 수 없고 노동법의 보호대상이 아니라는 주장이 첨예하게 대립되고 있다.
이에 관해서는 대법원의 판례가 보험 모집인이나 학습지 방문지도 교사들에 대하여 원칙적으로 근로자의 신분을 인정하지 않고 있는데 이 문제에 관하여도 정부가 마땅히 입법으로든 행정지침으로든 보편타당한 판단기준을 정하여 시행하여야 하는 것이다.
그 다음에 새만금 문제를 둘러싸고도 정부와 지방자치단체는 딜레마에 빠져 있다. 새만금 사업은 ‘91년도 최초의 착수 당시부터 경제성을 비롯한 타당성의 문제가 끊임없이 논란되어 왔다. 그리고 시화공단의 전례 때문에 지난 정권에서나 문민정부에서도 환경문제가 심각하게 제기되어왔던 것인데 그것이 지금까지 국가적인 중요한 이슈로 논쟁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사업을 중단해야 된다는 측은 주로 환경문제를 걱정하는 36개의 사회단체와 종교단체들인데 이들은 삼보일배(三步一拜)행진 운동 등 여러 가지 캠페인을 벌이면서 사업중단을 촉구하고 있다.
이에 반해서 빨리 사업을 추진하라는 측은 주로 전북도민과 공무원이다. 그런데 이해할 수 없는 것은 먼저 새만금 사업과 환경영향 문제에 관하여서는 지금까지 수 없이 많은 연구와 전문가 회의 등을 통하여 검토하고 토론하여 왔고 노무현 대통령이 환경에 문제가 생기지 않는 방향으로 추진하겠다는 뜻을 분명히 하고 있는데 이제 또다시 신구상기획단이라는 것을 만든다고 하면 기획단을 구성하는데 시일이 걸릴 것이고 그 후에 이 기획단에서 논의를 하는데 또 시일이 걸릴 것이 뻔하므로 정부와 정치권은 계속 이 문제를 질질 끌고 갈 수밖에 없을 것이라는 점이다.
또 더 안타까운 것은 전라북도 공무원들이 집단사표를 낸 것이다. 만일 향후에 또 다른 집단 민원문제가 나와서 민원인들이 정상적이 아닌 방법으로 집단행동을 할 때 그 공무원들은 뭐라고 그들을 설득할 것인가?
5. 우리 사회의 현 실상(實相)이 가져올 결과 전망
첫째로 이대로라면 사회적 불안 심리와 계속되는 경기위축으로 인한 경제와 침체 등 국가와 사회의 기강이 흐트러질 수도 있다.
얼마 전에 노대통령이 취임 100일에 즈음하여 26명의 대기업 총수들과 오찬을 하면서 이제부터 경제를 살리는데 특별히 관심을 가질 것이고 노사문제가 경제성장의 걸림돌이 되지 않게 하겠다고 다짐하였다.
그 날 오후에 그 총수들도 이에 화답(和答)하여 사업에 수십 조원을 투자하겠다는 뜻을 밝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수(內需)위축과 재고 누적으로 산업현장이 아주 냉각되어 있고 이라크 종전(終戰)후에 이어지는 현지의 불안정과 사스(SARS)의 확산, 북핵 문제 등을 둘러싼 남북관계와 외교 안보정책의 방향, 새 정부의 노동정책의 변화 가능성 등 내외의 새로운 위기 또는 불안요인이 누증되고 있는데 과연 우리 경제가 활로를 찾을 수 있는 것인지 많은 경제 주체들이 회의를 가지고 있다. 뿐만 아니라 지난날 현대 하이닉스의 경우처럼 아직도 정치 논리가 경제에 개입하는 한 일을 그르칠 소지가 있다고 우려하는 사람이 많다.
또 앞에서도 말씀 드렸지만 우리 기업의 구조조정이나 노동개혁의 걸림돌이 되는 대표적인 섹터(sector)가 바로 공기업이다.
국민의 정부에서 기획예산처가 부문별․일정별 계획에 따라 공기업의 구조개혁을 추진하였지만 이번에도 과거와 거의 마찬가지로 경영진과 노동조합간에 임금 등 근로 조건에 관해서 이면계약을 맺는 등의 편법을 쓴 사례가 적지 않은 것으로 알고 있다. 즉 개혁은 반드시 실행되어야 하는데 아직도 지금까지 안주해 온 의식과 관행 그리고 기득권을 깨지 못하고 개혁조치로서 도입되는 새로운 시스템과의 괴리가 여전히 남아 있는 측면이 적지 않다.
둘째로 계층간․세대간의 갈등과 노동운동의 ‘정치화’(政治化)는 참으로 우려되는 수준을 넘어 심화․확산되고 있다. 노동시장도 이제는 과거 일본이나 독일식의 연공서열․평생 고용의 안정이 아니라 냉혹한 시장경제의 논리와 개인간의 경쟁으로 작동되고 있다.
경쟁의 결과에 따라 소득의 격차가 생기고 과장급 팀장 밑에 부장급 팀원이 있게되며 조직에 대한 기여가 없으면 언제라도 퇴출 될 수 있다. 제도나 정책이 경쟁의 기회균등은 보장하여야 하지만 결과의 균등까지를 보장하여야 하는 시대는 이미 아니다. 그 결과 계층간의 격차와 갈등이 생기는 것이다.
국가 통치권력과 노동운동세력과의 역학 관계에 있어서 지나친 정치화가 오히려 노정간 또는 노사정간의 서로 다른 이념과 목표를 조화하고 타협하는 것을 어렵게 하고 자칫 이데올로기적인 대치관계에서 힘으로 밀면 된다는 투쟁의식만을 심화시키는 결과를 가져 올 수 도 있는 것이다.
이와 관련하여서는 과거에 진보적이고 친 노동자적인 경제학자로 알려졌고 새 정부출범을 위한 인수위원회에 참여하였던 김대환 교수도 금년초에 우리나라의 노동운동이 너무 정치화되고 있다고 지적한 바 있다.
셋째로 많은 사람들이 한국사회의 총체적 위기론을 제기하면서 이 나라의 교육이 실종되고 공공의식(公共意識)이 혼란에 빠져 있다고 우려하고 있다.
어떤 학자는 지난번 대통령 선거를 계기로 우리나라가 놀랍게도 세계에서 텔레테모크라시(TELEDEMOCRACY) 즉 전자민주주의의 시대를 여는 선구적 역할을 하였음을 자부할 만 하다고 평가하였는데 다른 한편으로는 이것이 자칫 세대간의 이념적 차이가 아닌 대립․분열․갈등을 초래하고 있음을 크게 우려하는 시각도 있다.
이미 법과 공권력은 그 권위를 상실해 가고 있고 정치는 좋게 말해 부재(不在)이지만 좀더 적나라하게 표현하면 부정․부패․불신의 덩어리로 희화화되고 있으니 이 모든 상황을 가리켜 사회심리적 공황(panic) 상태라 하지 않을 수 없다.
어떤 진보적인 생각을 가진 사람조차도 지금 이 나라가 시대변화에 맞추어 국민의 의식 수준을 한 단계 높이고 각 부문의 많은 개혁과제들을 추진해가야 하는데 새 정부가 이러한 책무와 기능을 수행해 나갈 수 있겠느냐 하는 의문을 제기한다. 단, 내가 이러한 언급을 하는 것은 새 정부와 그 역량을 비판하려는 것이 결코 아니라 이 나라 이 사회가 그만큼 어려운 과제들을 안고 있다는 것을 뜻한다.
스위스에 있는 국제경영개발원(IMD)이 발표한 2003년도 인구 천만 이상인 30개국의 경쟁력 비교자료를 보면 우리나라는 국가 경쟁력이 15위․노사관계 30위․기업경영의 효율성 20위․외국기업에 대한 시장개방 정도가 30위에 위치하고 있는데 세계경제포럼(WEF)의 자료를 보아도 이와 비슷한 평가를 하고 있다.
6. 우리사회의 심각한 질병 치유를 위한 처방(處方)과 실천 과제
를 사회․문화적 관점에서 찾아보자
가. 한국인․한국사회에 시민의식이 있는가?
첫째, 많은 전문가들의 진단에 의하면 우리의 국민의식은 우리사회의 근대화역사가 짧아서 아직도 촌락공동체․원초공동체사회의 사인주의적(私人主義, personalistic) 사고와 생활양식의 수준을 크게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고 한다.
내가 필요로 하고 나에게 이해관계가 있는 문제로서 필요하다면 공동체안에서 정하여진 소정의 규범이나 절차상의 원칙에 따라 다루어질 것이 아니라 사적(私的)․비공식적인 경로나 방법으로 처리하려고 한다.
전문적인 말로 표현한다면 공공가치배분(公共價値配分)의 공정성과 당위성을 인정하려 하지 않고 공(公)적인 제도나 지위가 나에게 있어서만은 사(私)적으로 이용되거나 적용될 수 있다는 사고방식을 가지고 있다. 내가 공직에 재직하고 있을 때의 경험에 의하면 직급이 올라갈수록 헤아릴 수없이 많은 청탁을 받았고 때로는 나 자신도 청탁을 하게 되는 경우가 적지 않았는데 그러다 보니 가끔 ‘우리나라는 청탁으로 해가 뜨고 청탁으로 날이 저문다’는 우스게 말을 하면서 쓴웃음을 지은 적이 있다.
정치인출신이 공기업사장으로 재임하는 경우를 보면 주말이면 공용승용차를 타고 때로는 판공비까지 써가면서 다음선거에 대비한 자기의 지역구 관리를 위해 귀향하는 예를 우리는 많이 보아왔다.
마찬가지로 공동체의 공동선(善)을 위해 합리주의․보편주의원칙에 따라야 할 공공의 의사결정과정이 사적인 이익을 위해 왜곡되는 풍조로 말미암아 결국 공적 규범의 타락을 가져오게 되는 것이다.
우리사회에 만연된 N․I․M․B․Y 현상이 그 대표적인 예라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래서 지금 우리사회에는 법적 질서는 힘없는 사람․약한 사람에게만 적용되는 것이고 법은 지켜야 하는 것이 아니라 이용하는 것이라는 냉소적인 어휘가 유행하며 사회의 지도층․기득권층․기존질서에 대한 불신과 적대감이 고조되고 있는 것이다.
둘째, 우리사회는 가령 서구의 프로테스탄트윤리나 미국의 중산층(中産層)의식과 같은 시민공동체의 구성원간에 공유할 수 있는 중심가치체계를 갖고 있지 못할 뿐 아니라 민주적이고 세련된 공론화(公論化)와 여론(public opinion) 형성의 기능이 제대로 작동되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철도․전력산업을 비롯한 공기업의 민영화문제가 그 수요자인 전 국민의 생활과 직접 관련되는 것인데 어째서 마치 개별 기업내 노사문제처럼 노동조합의 파업이나 노정대립이라는 차원에서만 다루어지고 있는가?
결국 우리사회가 이 수준에 와 있는 것은 5․16군사혁명 이후 민주주의 정통성이 결여된 강권적․권위주의적 통치체제를 유지하고 경제의 압축성장정책을 추구하는 과정에서 누적되어 온 억압의 반작용과 지역파벌주의․보스(boss)중심의 오우너(owner)식 정치행태의 소산이라고 할 수밖에 없다.
셋째로 이상에서 분석 해 본 우리의 사회․문화적 의식구조의 후진성은 결국 한국인 그리고 한국사회에는 근대시민정신의 기본 덕목인 자율정신․공공정신 그리고 근검정신이 함양되어 있지 못한 것으로 귀결된다.
저는 작금 우리 사회의 혼미한 현실을 지난 1987년 6․29민주화 선언 이후 이른 바 노동자 대투쟁을 비롯한 각계각층의 욕구분출․여소야대와 3당합당의 정치상황․아파트 값 폭등과 주택공급 부족사태․좌우이념 논쟁의 가열․원전(原電)건설반대 시위 그리고 각종 범죄의 폭증 등 혼란스러웠던 1980년대 말부터 ’90년대 초에 이르는 당시의 세태를 상기하면서 그 때‘아산사회복지사업재단’이 주관한 한국의 시민윤리에 관한 심포지움(symposi-
um)에서 관계 전문가들이 내린 진단과 처방을 오늘의 실상에 비추어 재조명 해 보았다.
놀랍게도 그 때에도 총체적 위기론이 제기되었는데 오늘의 상황이 그때보다 나아진 것이 아니라 오히려 더 우려할만한 것으로 느꼈을 때 저는 두려움을 금할 수 없었다. 그들 전문가의 견해에 의하면 공공정신이란 한 개인이 자신이 속한 사회의 안정과 발전을 위해 지녀야 할 최소한도의 질서의식과 협동정신이라고 한다.
자율정신은 개인이 자신의 모든 행위와 의사의 주체로서 외부의 간섭이나 구속을 받지 않고 스스로 책임질 수 있는 능력의 범위내에서 임의로 선택하고 스스로를 통제할 수 있는 자질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런데 우리사회의 많은 사람들은 정치․경제․행정․사법․언론․교육․문화 등 사회체제의 모든 분야에 걸쳐 불공평․부정의․불신․그리고 규범에 대한 혼란과 불확실성 때문에 나는 아무런 힘도 없고 누구도 나를 알아주지 않는다는 식의 심각한 무력감과 사회적 고립감 그리고 나 자신의 행동과 신념에 대한 판단기준을 찾지 못하는 무규범성에 빠져 있다.
이를테면 사회학자들이 말하는 이른바 구조적 소외․아노미현상에 처하여져 있는 것이다. 뿐만 아니라 성실하고 업적지향적인 근로정신과 합리적이고 건전한 물질 생활보다는 비자율적인 과잉욕구 그리고 과정보다는 결과를 중시하는 편의와 탈법주의․과소비․금전만능․이기주의․퇴폐주의 사고 속에서 살고 있다.
법과 징벌은 사직 당국의 권력이 아니라 마땅히 지켜야 하는 집합적 감정이고 사회적 압력 장치이어야 하는데 이를 조금도 두려워하거나 부끄러워 해야하는 것이 아닌 것으로 여기게 되었다.
나. 중증 병리현상의 처방과 실천과제
이제 중증(重症)의 병리(病理) 현상에 빠져 있는 우리 사회를 치유하기 위한 처방과 핵심적 실천과제로서 내가 생각하는 바를 말씀드리는 것으로 마무리 짓고자 한다.
2000년대에 들어서면서 우리가 맞고 있는 환경 변화와 그러한 상황하에서 현재와 같이 집합행동의 행태, 집단적 요구가 분출하고 있는 사태는 과거 ’80년대나 ’90년대에 겪어 왔던 것과는 근본적으로 다르다고 생각한다. 오늘의 우리 사회의 현상은 어느 시대에 있어서나 볼 수 있는 하나의 사회변동(社會變動)의 과정이라고 보기에는 그 증상(症狀)이 너무나 심각하다.
그렇다면 이와 같은 세태(勢態)를 향하여 지금 이 나라의 정치권이나 언론권은 말할 것도 없고 심지어는 종교계․대학․시민․사회단체가 과연 당당하게 나서서 쓴소리․바른 말을 할 수 있는지 묻고 싶다. 비정부(NGO)시민단체들이 또 다른 권위주의․권력화되고 있다는 지적은 이미 오래 전부터 있어 왔다. 요즈음 등장하고 있는 새 집권층의 친위 그룹에 속해 있는 사람들은 정확한 현실 인식과 균형된 시각을 가져야 한다고 본다.
정부․기업․정치권 모두가 개혁의 대상이 되고 있는데 어째서 노동계는 개혁의 치외법권에 있는가? 세계화․정보화 시대에 이 나라․이 사회를 품격(品格)있는 공동체로 만들기 위해 국민 각 개인으로부터 가정․지역사회 나아가 국가 전체에 이르기까지 각계 각층 모두가 하나같이 부패․아세(阿世)․관료화․권력화로부터 탈피하고 폭력과 범죄를 일소하는데 앞장서서 자기정화(淨化)를 위한 일대 국민 운동을 전개해야 한다. 그리하여 우리 사회에 개인성(個人性)과 집합성(集合性)을 조화시킬 수 있는 시민윤리와 가치체계를 확립하여야 한다.
이를 위해서 무엇보다도 선행하여야 할 구체적 실천과제로서 저는 두 가지를 강조하고자 한다.
첫째 관료사회에 책임행정의 기초를 확립하는 것이다. 모든 공직자가 투철한 국가관과 공직관을 가지고 청렴해야 한다는 것은 너무 많이 들어 왔기에 이제 더 말할 필요도 없다. 그 중에서도 참으로 중요한 것은 공직의 임무를 수행하는 최고의 지위에 있는 국무위원을 임명함에 있어서 인사권자는 그 전문성과 자질문제를 깊이 생각해야 한다는 것이다.
도대체 NEIS문제를 처리하면서 그렇게도 혼란을 불러일으키고 표류했던 주무장관이 그 문제가 ‘그렇게 중요하고 어려운 문제인줄 몰랐다’고 하니 이것이 과연 있을 수 있는 일인가?
아무리 국무위원이 정치적인 직책이라 해도 국세청장으로 일했던 사람을 건설교통부장관에 임명하고 경제부처 공무원이면 특수한 분야라고 할 수 있는 건설교통부나 노동부장관등 아무 부처의 일이든지 맡겨서 과연 제대로 잘해왔다고 볼 수 있는지 의문이다. 뿐만 아니라 박사학위를 받고 일류대학을 나왔다던가 학자 출신이면 무조건 참신하고 유능하다고 보는 인식도 문제이다.
소관분야에 관한 전문지식과 현실을 파악하여 인식할 수 있는 경험과 경륜을 가지고 국민과 이해집단을 진솔하게 설득하고 이해시키며 정책의 추진과 문제해결의 방향으로 이끌어 갈 수 있는 양식(良識)과 조직장악력을 갖춘 인물이 기용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리고 모든 직업공무원이 정책을 개발하고 책임행정을 구현할 수 있도록 자질과 능력을 향상시키는 동시에 공정한 인사질서를 확립해야 한다.
요즈음 흔히 말하는 다면평가에 대하여 현직공무원의 생각을 들어보면 그것이 최선의 인재를 발굴하는 것이 아니라 가장 나쁜 인물을 들춰내는 것이어서 자칫 경쟁자를 음해하는 방향으로 악용되는 부작용이 있다고 한다.
일본의 “사까이야다이찌”라는 한 평론가가 ‘일본관료 무능․무용론’을 폈는데 그에 의하면 대체로 관료의 자질로서 결정된 것을 열심히․정확하게․효율적으로 집행하며 기획․창조하는 “실무능력”, 나쁜 것인 줄 알면서 사리사욕을 채우는 부패를 멀리하고 나쁜 것인줄 조차 모르는 퇴폐를 경계하는 “윤리성” 그리고 장래를 정확하고 치밀하게 전망할 수 있는 “예측능력”을 들면서 일본의 관료는 이 세 가지 점에서 일본의 발전을 저해하고 있다고 하였는데 그러면서도 그는 그러나 일본의 공무원은 상대적으로 다른 나라의 공무원에 비하여 덜 부패하였으니 그것만이라도 다행이라고 하였다.
물론 우리나라의 공무원 모두가 똑같은 비판을 받아야 하는 것은 아니지만 현직 장관급 공직자가 대기업에다가 자신이 다니는 절에 10억 원을 시주하라고 한 사례를 보면서 이 나라의 공직사회를 어떻게 보아야 하는지 또는 공무원에 대한 국민들의 일반적인 인식이 어떠하겠는지 여러분에게 문제를 던진다.
둘째로 신상필벌(信賞必罰)의 사회적 기반이 확립되어야 한다. 사회지도층에 대한 규제와 문책은 그의 인격적인 규제와 병행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데이빗 리스만(David Riesman)이라는 사회학자가 말한 것처럼 사회의 질서가 제대로 바로 서려면 개인의 인성(人性)속에 그 사회의 규범에 대한 동조(同調) 즉 다시 말하면 규범을 인정하는 심리적 강제수단이 작동되고 있어야 하는데 그것은 죄 짓는 것에 대한 수치심과 죄의식을 가져야 하고 죄 지은 것에 따른 불안의식 좀 속된 표현으로 쉽게 말하면 죄를 지으면 왕따 당하는 것에 대한 두려움을 가져야 한다는 것이다.
요즈음 같이 죄를 범하고도 잠깐 들어갔다 나오면 그만이고 떳떳이 다닐 수 있다고 한다면 사회기강이 서지 않는다는 것이다. 다음으로 신상필벌이 이루어지기 위해서는 공권력이 엄정하고 독립적이며 일관성있게 동원되고 집행되어야 한다. 그래야 공권력에 대한 신뢰와 권위를 확보될 수 있는 것이다.
이번 우리나라의 화물운송업무 종사자의 집단사태와 유사한 농민과 트럭 운전사간의 유류세 인하문제를 둘러싼 시위사태가 2000년도에 영국에서 일어났다. 이때 토니 불레어 정부는 시위에 밀려 양보하지 않고 철저히 법질서와 원칙을 지켰다고 한다.
수상이 직접 운송업자와 정유업자를 불러 사안의 배경과 실태를 점검 분석하고 잘못된 문제를 바로 잡도록 하는 동시에 결코 노동조합측의 모든 요구사항을 받아들이는 것이 아니라 유류세 인하 요구는 들어주되 이를 당장 시행하는 것이 아니라 연말에 예산부수법안을 개정해서 다음해부터 3%를 인하하여 준다는 절차상의 원칙까지도 분명히 지켰다는 것이다.
7. 마무리 말
열린사회, 그래서 자유롭고 성숙한 민주주의가 창달되는 사회를 만들어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강력한 정부가 힘의 논리가 아니라 논리의 힘이 통하는 사회가 되도록 국민을 위한 질(質) 높은 행정서비스를 제공하여야 한다. 깨끗한 정치로 서로 믿고 더불어 사는 건강한 사회를 만들어야 한다.
그리고 우리가 부르짖고 추구하는 동북아중심국가를 이룩하기 위하여 우리 사회 공동체의 경제활력을 촉진시켜야 할 것이다. 이 막중한 과업을 수행하는데 바로 여러분 공직자가 앞장서서 이를 선도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