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마살

[초록구두]

 

지리산...

그 깊고 넉넉한 품이 늘 그립다.

해마다 두세 번은 어김없이 그곳에 가지만 아직도 난 지리산을 제대로 알지 못한다.

어쩌면 내가 알고 있는 지리산은 <태백산맥><토지><녹슬은 해방구>...같은 소설속

이미지가 더 강한지도 모르겠다.

아니면 아직 화엄사에서 출발하여 천왕봉에 이르는 종주산행을 하지 못해서 그런지도...

토요일 아침...

혼자서라도 지리산 한자락 올라보리라 맘먹고 학교에 가는 아이들보다 먼저 집을 나섰다.

골프하다가 갈비뼈에 금이간 남편...

현충일에 한나절 근무할테니 토요일에 쉬어주면 안되겠냐고

사장에게 건의했다가 여기가 무슨 놀이턴줄 아냐고 면박을 당했다는 후배...

직업상 몸매관리에 신경을 써야 하기에 제대로 먹지를 못하는

그래서 날씬하고 예쁘지만 지리산을 함께 오르기엔 무리인 후배...

중국 수출 물량이 쏟아져 휴무토요일에도 출근을 해야 한다는 친구...

결국은 혼자 나서지 않을 수 없었다.

지리산 가는길에 있는 '백장공원'

변강쇠가 조선팔도를 누비다 옹녀를 만나 이곳에 이르러 운우지정雲雨之情을 나누며

장승들을 뽑아 땔감으로 썼는데, 이에 대방장승이 대노하여 팔도 장승을 다 모아

변강쇠에게 벌을 내렸다하여 이곳을 백장골이라 불리운다 한다. 

바로옆 계곡의 그늘이 시원하다.

강쇠와 옹녀의 심볼이 익살스럽다.^^

백무동→가내소폭포→한신폭포→세석평전(왕복 13km)

 뱀사골로 들어가는중에 백무동 가는길이 있었던걸로 기억을 한다.(벌써 15년전 얘기)

그런데 뱀사골 매표소에 거의 다 이르도록 백무동 이정표가 눈에 띄질 않는다.

'혹시...아까 실상사 이정표 있었는데 그쪽으로...?'

아닌게아니라 매표소에서 물어보니 실상사 쪽으로 한참을 더 들어가야 한다고 한다.

'흠...실상사 이정표 밑에 백무동도 하나 더 걸면 안되남?

 실상사는 전라도고 백무동은 경상도라 그런가?'

암튼...

네비 조작법을 몰라 길눈 밝은 나 자신하고 이정표만 믿고 왔다가 혼자서 먼길

떠나 최대한 시간을 아껴야 함에도 불구하고 20분 이상을 길 찾느라 허비해 버렸다.

오전 10시 30분...

집을 나선지 2시간 45분만에 백무동에 도착,

주차솜씨가 서툴러 주차라인을 살짝 밟은채 주차를 하고 산을 오르기 시작한다.

(여러번 시도해서 반듯이 하고 싶었지만 주변에 사람들이 많아 창피해서 욕먹을 각오를 하고^^;;)

지리산 계곡은 깊고 울창하고 물도 풍부하다.

계곡을 따라 오르면서 들리는 소리는 오직 물소리 뿐이다.

새소리도 다람쥐가 이나무 저나무로 옮겨다니는 소리도 모두 계곡 물소리에 묻힌채

그저 눈으로만 바라볼 뿐이다.

'가내소 폭포'

백무동에서 세석평전에 이르는 한신계곡에선 단연 가내소 폭포가 압권이다.

폭포에 얽힌 전설이 재미있다.

혼자서...

나무와 들풀과 계곡의 물소리 그리고 산을 오르는 모든이와 친구삼을 수 있음은

결코 외롭거나 힘들지 않다.  하지만 혼자서 여행을 하거나 산행을 할때면 식욕이 떨어진다.

가족이나 후배들과 산행을 할때면 먹을걸 어지간히도 밝히건만 혼자일때는 베낭에 이것저것

챙겨간 먹거리들을 대부분 도로 가져오기 일쑤다.

12시가 되어가면서 배고픔을 느끼면서도 좀처럼 식욕이 생기질 않는다.

그래도 산을 오르는데 배고픔은 최대의 적 가운데 하나이기에 점심먹을 적당한 장소를

찾아보았다.

작은 소가 있고,

그 아래로 바위를 타고 두 줄기로 나뉘어져 미끄러지는 물줄기,

그리고 넓은 바위와 나무 그늘 아래서의 점심식사...

신선놀음이 따로 없는 풍경이지만 역시 입맛이 없다.

점심을 먹고 땀에 젖은 모자도 말리고 일어서는데

그네처럼 휘어진 소나무가 있어 카메라에 담아보았다.

한 번 앉아보고 싶은 충동이 일었지만 산에대한 나무에 대한 예의가 아닌것 같아 참았다.^^

계곡의 물소리가 끊기면서 가파른 등산로가 이어진다.

" 이 코스는 20대나 30대나, 언제와도 힘들어."

이마에 줄줄 흐르는 땀을 닦으며 몇 걸음 못떼고 휴식을 취하는 50대로 보이는 등산객,

"아이고, 하필이면 이 험한 코스로 올라오십니까?"

하산중인 교수진으로 보이는 단체 등산객들,

"얘들아, 위에 쳐다봐 하늘 보이지? 다 왔으니까 조금만 힘내"

후배들과 함께 온듯한 산악인처럼 보이는 등산객,

" 혼자 오셨습니까?  몇 시간이나 걸렸나요? 올라오기엔 무척 힘든 코스인데요. "

" 세 시간 정도 걸린거 같은데요."

" 완전 다람쥐시네요. 보통은 네 시간에서 네 시간 반정도 걸리는데요 "

ㅎㅎㅎ

날더러 다람쥐랜다.

하산할때 스피드를 낼겸 오르는길에 쉬어갈겸 사진을 백 장도 넘게 찍으면서 올랐는데 말이다.

암튼 우쭐^^

세석평전...

해발 1,600 고지에 이토록 넓은 평원이 펼쳐있다.

세석평전의 매력포인트인 연분홍 철쭉이 아직 피어있었다.

그토록 이곳에 오고싶어 몇날며칠 오매불망 그리워한 보답이라도 되는양...

수용인원 300명의 세석대피소는 지리산 일곱개 대피소 가운데 가장 크고도

건물 또한 무척 멋진곳이다.

이곳에서 천왕봉 가는길이 그다지 멀지 않건만...침만 흘리다가 하산했다.

돌아오는길...

다행이 예정보다 빠른 5시간 30분의 산행으로 쫒기던 시간에 여유가 조금 생겨

실상사에 들렀다.

실상사 일주문...

절 입구에 절과는 다른 방향으로 세워진 여느 절과는 다른 독특한 일주문.

사천왕문을 통과하면서 눈에 들어온 탁트인 실상사 경내모습에 눈이 번쩍 뜨인다.

기와로 쌓은 탑위에 작은 소망탑들이 줄지어있다.

한 층 보태려다가  아는건 없지만 볼거리가 많아 보이는 그곳에선 굳이

소원을 빌지 않아도 마음의 평안을 얻을 수 있을것 같아 조용히 거닐어본다.

산속이 아닌 마을에 있어서 그런가?

수많은 절집을 다녀봤지만 말로만 듣던 실상사 경내에 들어서는 순간 들었던

편안하면서도 시원한 느낌이 좋아서 그랬는지 집에 가려면 마음이 급해질법도 한데

하루종일이라도 지루하지 않게 보낼 수 있을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한 시간 가량을 이리저리 거닐다가, 소나무 그늘아래 앉아 탑을 바라보다가,

연못에서 노니는 물고기들을 바라보다가...그렇게 한참을 그곳에 머물렀다

국보급 쌍탑과 석등...

전형적인 통일신라시대 양식의 석탑이라 한다.

아담한 극락전은 조금 멀찌감치 떨어진 별채에 있다.

극락전앞 연못...

여름이면 수련이 장관이겠다.

절집앞에는 감자꽃이 흐드러지게 피어있다.

머지않아 알 굵고 파근거리는 하지감자를 수확하겠지?

생각만해도 군침도네~

남편에게 지리산 지도가 그려진 손수건을 선물했더니 거실 벽에 붙여놓는다. ㅎㅎㅎ

혼자서...

아직은 팔팔한 역마살을 풀어내느라 지리산에 다녀왔다.^^

[데미안]

다시 찬찬히 봅니다.. 혼자만의 산행,.. 참 부러워집니다..장승의 익살스러움에,,..'아직은 팔팔'이란 글에 절로 소리내어 웃습니다.. 왜 초록구두일까 했더니,..그야 말로 망망대해 초록바다입니다..볼 수록 좋은데요..승일님 말씀대로 혼자 다니는 것은 위험부담이 클듯,..지리산 지도의 손수건으로 멋지게 벽장식을 하시는 대장님도 멋쟁입니다..^^*

[윤승일]

지리산엔 오래전 여름에 뱀사골계곡으로 피서간적 밖에 없습니다. 그러나 책을 통해 지리산 등산로중 백무동코스가 험난하다고 알고 있습니다. 그런 코스를 혼자서 날다람쥐처럼 오르셨다니 참 대단합니다. 아마도 여러해 산행의 경험으로 숙달된 동작의 결과가 아니였나 생각됩니다..... 혼자서 산행을 감행하시는 용기도 부럽습니다. 그렇지만 산행길은 늘 위험이 따르니 조심하십시요. 산행이야기와 사진, 즐겁게 보았습니다.

[산여울]

야 대단 하십니다 산행을 즐기는 모습이며 사진 솜씨 글 솜씨와 젊음에 찬사를 보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