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베 신조 전 총리를 저격한 야마가미 데츠야(山上哲也)가 종교문제 때문에 일을 벌인 것으로 보도되고 있다. '어머니가 종교단체에 빠져 원한이 생겼다', '어머니가 많은 기부를 하는 등 가정생활이 엉망이 됐다', '아베 전 총리가 그 단체와 관계가 있다고 생각해 노렸다'는 취지의 진술이 나왔다.
구체적으로 어떤 종교단체인지는 아직 확실하지 않다. 일본 인터넷이나 SNS에서는 세계평화통일가정연합(통일교)와 함께 천리교·창가학회 등이 거론되고 있다. 시사주간지인 <슈간겐다이>의 10일자 기사는 통일교회를 구체적으로 거론했다. 통일교는 11일 야마가미 데츠야의 어머니가 과거 신자였으나 현재는 아니라고 밝히며 "일본 경찰에서 공식 발표를 하거나 조사를 요청해온다면 성실히 협조할 방침"이라고 했다.
아베 신조와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은 긴밀한 사이다. '아시아·태평양'을 어느덧 옛날 용어로 전락시킨 미국의 인도태평양전략도 아베와 트럼프의 공조 하에 기반을 잡았다. 트럼프가 당선인 시절에 이뤄진 두 사람의 만남은 세계적 이목을 끌었다. 한국에서 촛불혁명이 갓 시작되고 미국에서 대선이 막 끝난 2016년 11월에 트럼프 당선인이 가장 먼저 만난 외국 정상은 아베였다.
두 사람은 트럼프 당선 확정 2일 뒤인 11월 10일 전화통화를 하고 11월 17일 뉴욕 맨해튼 트럼프타워에서 회담을 했다. 트럼프 입장에서는 일본 총리가 미국에 와서 자신을 만났다는 점 때문에, 아베 입장에서는 미국 당선인이 자기를 가장 먼저 만나줬다는 점 때문에 의미 있는 회동이었다.
그런데 당선이 확정되기 전만 해도 아베 정권은 트럼프의 승리를 예상하지 못했다고 한다. 힐러리 클린턴이 당연히 될 줄로 알고 있었다는 것이다. 이 때문에 트럼프와의 접촉을 별도로 준비하지 않아 트럼프의 당선이 아베 정권한테는 당황스러울 수밖에 없었다고 알려져 있다. 그런데도 아베 정권은 트럼프와의 회동을 남보다 먼저 성사시켰다. 당선 확정 2일 뒤에 전화통화를 하고 확정 보름 뒤에 대면 회동을 했다.
아베 정권이 이렇게 할 수 있었던 것은 종교단체의 지원 때문이라고 알려져 있다. 신쵸사(新潮社)가 발행한 <신쵸 45> 2017년 2월호는 아베 측이 기민하게 대응할 수 있었던 것은 통일교 인맥이 아베와 트럼프를 중개했기 때문이라고 보도했다. 통일교 인맥이 양쪽 모두와 연결돼 있었기에 신속한 중재가 가능했다는 것이다.
아베와 트럼프가 통일교와 관련이 있다는 점은 지난해 9월 12일 통일교 행사 때도 나타났다. 천주평화연합과 세계평화통일가정연합(통일교)의 공동 주최로 경기도 가평군 청심월드센터에서 열린 '싱크탱크 2022 희망 전진대회'에서 두 전직 정상은 동영상 연설을 통해 이 행사에 함께했다.
아베 신조는 통일교와 관련을 가진 정도에 그치지 않았다. 깊은 인연을 갖고 있었다고 해야 정확하다. 2006년에 통일교 합동 결혼식에 축전을 보낸 일이 있었지만, 이 정도로는 아베와 통일교의 관계를 설명할 수 없다. 그의 정치적 스승이자 외할아버지인 기시 노부스케 전 총리를 거론해야만 이 인연을 설명할 수 있다.
통일교를 소개하는 초인류 네트워크(www.chojin.com) 사이트에 실린 '통일교회와 기시 노부스케 전 내각총리대신(http://www.chojin.com/person/kishi_uc.html)이라는 글에 사진이 한 장 담겨 있다. 1973년 11월 23일 통일교 본부에서 문선명·한학자 부부 사이에 기시 노부스케가 서 있는 사진이다. 이 사이트의 또 다른 페이지(http://www.chojin.com/history/kishi.htm)에는 기시 노부스케가 문선명을 올려다보며 악수하는 사진도 실려 있다.
기시 노부스케와 통일교의 인연은 어렵지 않게 확인할 수 있다. 일례로, 위에 언급된 지난해 9월 통일교 행사를 보도한 2021년 9월 13일자 <MAG2 뉴스> 기사 '아베 신조, 통일교회와의 밀월을 웃는 얼굴로 커밍아웃(安倍晋三、統一教会との蜜月を笑顔でカミングアウト)'은 트럼프에 뒤이어 행사에 등장한 아베 신조가 약 5분간 연설을 했다면서 "아베 씨는 통일교회의 실질적 톱인 한학자 총재를 치켜세움과 함께 천주평화연합(통일교회의 NGO)의 활동을 칭찬"했다고 보도했다.
그런 뒤 '표와 돈, 아베 신조 씨와 통일교회의 깊은 관계'라는 소제목 밑에서 "처음부터 아베 씨와 통일교회는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였다며 "아베 씨의 조부인 기시 노부스케 전 수상이 통일교회와 협력해 반공산주의 정치단체인 국제승공연합을 일본에 설립한 것은 유명한 이야기"라고 언급한다.
기시 노부스케가 통일교에 기울게 된 시점은, 반공노선 강화를 명목으로 미일안전보장조약을 미일상호협력안보조약으로 업그레이드시키던 때였다. 군국주의 전쟁에 동원돼 식민지 한국인들 못지않게 고난을 겪은 일본 민중들이 미일동맹 강화를 격렬히 반대하던 시기에, 기시 노부스케가 반공종교인 통일교의 일본 내 활동을 도왔던 것이다.
1992년 1월 29일자 <한겨례> 7면에 실린 워싱턴 특파원 기사는 "극우 보수주의를 여러 면에서 지원해온 통일교 교주 문선명 씨"가 미국의 각종 극우단체를 재정적으로 후원한 사실을 설명한 뒤, 통일교와 일본 정계가 밀착하게 된 배경을 '우파 학생조직 강화의 필요성'에서 찾는다.
"당시 일본은 미-일 안보조약 체결 후 극우와 좌파 사이의 대립과 충돌로 살벌한 분위기를 이루고 있었는데, 기시 당시 수상과 사사카와는 좌파 학생운동에 대항하는 우파 학생조직에 열을 올리고 있었다. 반공제일주의인 통일교의 대학생 조직인 원리연구회는 바로 안성맞춤의 조직이었다."
미·소 양군의 극동 주둔, 한반도 및 중국 분단, 한국전쟁 발발 등을 계기로 한·미·일 3국에서는 반공 이념이 확고하게 뿌리를 내렸다. 정치·경제·군사·교육 등의 분야에서 반공주의가 자리를 잡았다. 이로 인해 대중의 의식 속에 반공이 강렬하게 각인되는 분위기를 선교에 활용한 쪽이 한국 기독교 내의 극우세력과 더불어 문선명의 통일교회였다.
통일교는 탄탄한 자금력과 국제적 네트워크로 한·미·일 3국의 반공주의를 한층 강화하는 한편, 그에 편승해 교세를 신장시켰다. 통일교는 종교 분야에서 동아시아 냉전의 일익을 담당했다. 그런 통일교가 일본에서 뿌리를 내리도록 도와주는 동시에 이를 정치적으로 활용한 정치인이 기시 노부스케였다.
프레이저 보고서라는 별칭으로 더 잘 알려진 미국 의회의 <한미관계 보고서>는 통일교 문제에 대해 상당한 비중을 할애한다. 1978년에 나온 이 보고서는 기시 노부스케를 거명하지는 않았지만, 통일교와 일본 정치의 관계를 "반공주의라는 이름 아래 문선명의 추종자들은 일본의 강력한 우익 인사인 사사카와 료이치 같은 사람을 지지하고 드러내놓고 선거 캠페인에 참여"했다는 문장으로 설명한다.
경단련(게이단렌)으로 약칭되는 일본경제단체연합회도 자민당 정권에 자금 지원을 했지만, 통일교 역시 일본 정계를 금전적으로 뒷받침했다. 위의 <MAG2 뉴스> 기사는 "아베 씨뿐만 아니라 소속 파벌인 자민당의 호소다파에는 특히 통일교회와 친밀한 의원이 많다고 한다"라고 설명한다.
조 바이든 행정부가 복원하려고 애쓰는 과거의 냉전체제 속에서 아베 신조 가문은 반공 종교인 통일교와 손잡고 일본 사회의 반공화를 촉진했다. 그런 속에서 이 집안은 정치 명문가로 더욱 굳건해졌다. 종교 문제 때문에 아베 신조를 저격했다는 야마가미 데츠야의 진술은, 그가 언급한 것이 구체적으로 어떤 종교단체인지와 관계없이, 아베 가문과 통일교의 오랜 관계를 떠올리게 만든다.(김종성 동아시아 역사연구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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