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자 지인이 필자에게 한말이다. 그가 유투브에서 "명상 철학" 강의하는 곳에서 배운 거란다. 필자는 "틀렸습니다. 허나 말하지 않겠습니다. 잘 지내세요..._()_"라고 정리하였다. 필자가 아끼는 분인데 상처주기 싫었다.
그가 말한 생각의 요지는 "누구에게도 의지하지 않고 독립적으로 살겠다"는 뜻이다. 헌데 그 전제가 엄청난 오류로 가득이다. 혼자만의 세계에 사는 인간은 정신병자다. 즉 빙의된 인간이다. 인간은 누구도 혼자만의 세계에 살 수 없다. 우리의 의식과 생각은 모두 외부 세상에서 복제된 것이다. 인간이나 동물의 의식은 모두 경험과 학습에 의해 만들어진다. 불이 태워죽일 수있고 무서운 것이란 것은 보호자의 경고와 학습을 통해 이루어 진 생각이다. 동물은 무서운 것으로 끝나고 인간은 언어 학습을 통해 정보를 교환하여 불을 이용 음식을 만들고 쇠를 만들었다. 즉 모든 문명은 불을 통해 만들어졌다. 동물과 인간을 나누는 최초는 불과 언어다. 인간과 99.99% 동일한 유전자를 가진 침팬지도 불을 사용하지 않는다. 그리고 문자가 없다. 수백개의 단어를 사용 의사소통을 하지만 결국 문자가 없다. 그것으로 인해 하늘과 땅 차이가 났다. 언어는 단어를 다양하게 결합하여 성립한다. 수백개의 단어는 수만개의 문장을 만들 수 있다. 침팬지와 오랑우탕 등 영장류는 결국 언어와 불이 없었기에 인간의 유사종으로 진입하지 못했다. 즉 문화와 문명을 만들지 못했다.
자기만의 세계는 언어로 이루어진다. 인간은 언어로 사색한다. 자기만의 세계는 적어도 10대초반(천재)에서 20 중반(저능아)에 완성된다. 이른바 자아가 확립된다. 그런데 그 자아 혹은 자기 세계는 부모나 선생 어른 들의 교육과 문화 그리고 티비 라디오 등 미디어(요즘은 컴퓨터 포함)에 학습되어 이루어 진다. 고대 사회는 의식주라는 문명과 책이라는 문화에 의해 학습 교육되어 만들어진다. 이율곡은 6세에 사서삼경을 다 읽었다고 한다. 결론은 그 시대의 문화 문명을 학습한 후 만들어지는 것이 자아이며 자기세계다. 그렇다면 자아를 만들고 자기세계를 만든 건 자기 자신이 아니다. 경험이고 학습이다. 그 중 네가 만든 독창적인 건 무엇인가? 전무하다.
아놀드 토인비는 인류문명은 특출한 천재가 만든 것을 모방 학습하면서 만들어 진 것이라고 했다. 즉 미메시스다. 모든 문화 문명은 모방을 통해 이루어진다. 그리고 모든 정치 문화 사회 역시 동일하다. 위대한 인물은 부족장이 된다. 사람들은 모두 그를 따라한다. 그 최초의 인물들이 아브라함, 단군, 복희 등등 각 문명의 조상신이다. 인간은 끊임없는 모방을 한다. 미메시스를 통해 문명과 문화는 전승된다. 일본은 미국을 모방하여 선진국이 되었고 한국은 일본을 모방하여 선진국이 되었다. 중국은 한국을 모방하고 약탈중이다. 미개한 원숭이 쪽바리가 임진왜란을 일으켜 한국의 도공들과 기술자들을 죄다 잡아가 극진한 대접을 했다. 그 결과물이 메이지 유신이다. 조선을 모방하다 보니 외래문물의 위대함을 알게 되고 모방한다. 그러다가 더 나은 서구 산업혁명의 부산물들을 가장 빨리 수입하게 되니 메이지 유신이다. 모두 약탈을 통해 모방을 통해 이루어 진 것이다. 아랍의 선진문물을 약탈 모방하다가 이루어진 것이 르네상스라는 사실은 모든 역사학자들이 동의하는 불변의 진리다. 아랍을 모방하다가 아랍을 넘어선 유럽, 유럽을 모방하다가 유럽을 넘어선 미국, 미국을 모방하다가 미국을 넘어선 1980년대 일본, 일본을 모방하다가 일본을 넘어선 2010 이후의 한국, 한국을 모방 중인 중국....이다.
일본 유학을 갔다온 이경규를 비롯한 필자 포함 50-60년대 생들에게 일본은 반드시 모방해야 할 나라였다. 심지어 서양철학 교수들도 일본 원서로 공부를 했다. 필자는 부산에 사니 일본 방송을 1970년대부터 보았다. 대마도를 거쳐 부산까지 일본 방송이 전파를 타고 날라왔다. 1980년에서 1990년 말까지 한국 드라마 코메디 예능은 죄다 일본 표절이었다. 1990년 중후반부터는 미드 표절 이었다. 예능은 2000년 초까지 일본 예능 표절이다. 한국의 성장에 일본 따라하기는 필수였었다. 1980년초에 일어일문학과 입학성적이 영어영문학과 보다 높았었다. 수많은 고졸 대졸 여성들이 일본에 유학가서 술집 창녀로 돈을 벌었다. 머리 좋은 제비족들도 일본으로 건너가 기둥서방으로 일본의 밑바닥을 주름 잡았다. 돈많은 집 자녀 년놈들도 일본 가서 어학당 학원 등록 후 술먹고 씹질 하면서 인생을 즐겼다. 큰 부자들은 유럽이나 미국 유학을 보냈다. 물론 빈 손으로 가서 성공한 놈들도 있었다.
말이 길어졌는데 결국은 모방이다. 모방은 성공의 어머니다. 축구선수는 메시나 호날두의 기술을 수만번 수천만번 모방하면서 성장한다. 특출한 인물이 하나 나오면 수천만명이 그를 모방한다. 모든 분야가 똑같다. 그것이 인류문명을 발전시킨 것이다. 화가는 10대부터 20년 가까이 모방만 하거나 그 모방을 통해 독창적 기술을 만든다. 십만명이 10년이상 모방을 하는데 자기만의 것을 하나 만드는 사람은 열명 남짓이다. 유명화가는 10만명 중 하나다. 그런 그도 전부 자기만의 것이 아니다. 그의 그림의 99%는 모방의 결과물이고 1%가 그만의 독창적인 것이다. 그 1% 때문에 한국최고 혹은 세계적인 화가가 되는 것이다. 그럼 그 천재화가나 예술가의 99%는 자기 것이 아니다. 그 예술은 자기만의 세계가 아니다.
인간은 자기만의 세계에 살 수 없다. 그건 존재할 수 없다. 그렇게 주장한 사람은 정신병자거나 빙의 환자다. 귀신에게 씌여서 세상에 대한 판단이 안생길 때, 사방팔방이 막혔을 때, 세상사람이 모두 증오의 대상이 되었을 때, 세상과 소통이 불가할 때 쓰는 말이다. 유투브를 보고 필자에게 이 말을 한 사람은 "나는 누구의 조언도 간섭도 없이 내 판단대로 간다"라는 뜻으로 했다고 본다. 그렇다면 그 전제가 엄청 잘못된 것이다. 우리는 매순간 조언과 갑섭 속에 산다. 그 조언을 잘 구분하고 쓸 데 없는 간섭을 지나가는 바람으로 여기며 취사선택을 해야 한다. 문제는 취사선택이다. 잘 구분하는 지혜가 있어야 한다. 이것을 불교에서는 반야( 般若)라고 한다. 한중일 삼국 불교에서는 이 반야를 엉터리로 해석한다.
『범어로는 프라즈나(prajna)이며, 인간이 진실한 생명을 깨달았을 때 나타나는 근원적인 지혜를 말한다. 보통 말하는 판단능력인 분별지(分別智, vijnana)와 구별짓기 위하여 반야라는 음역을 그대로 사용한 것이며, 달리 무분별지(無分別智)라고도 한다. 이 반야의 사상은 대승불교에서 확립된 것이다.
대승의 반야는 법(法, 진리)에 대한 새로운 자각에서부터 비롯된다. 소승불교가 가졌던 법에 대한 객관적 해석과 이론적 분석태도를 지양하고, 스스로의 체험과 실천을 통하여 주체적으로 법의 있는 그대로를 체득하는 자각[般若]이 강조되었던 것이다. 법이란 대상으로 보기보다는 선정(禪定)의 체험을 통하여 자각되어야만 하는 것이다. 이 반야의 자각을 통하여 인생의 근본 의혹이 해소되는 것이고, 인간과 만물의 진실을 꿰뚫어볼 수 있다.
[네이버 지식백과] 반야 [般若] (한국민족문화대백과, 한국학중앙연구원) 』
이 해석의 근본은 철저히 조사선이다. 한국불교가 조계종단 쓰레기들이니 백과사전도 엉터리 해석이다. 반야(Prajñā (प्रज्ञा) or paññā (𑀧𑀜𑁆𑀜𑀸)는 이해하고 분별한다는 의미이다. 즉 무엇이 고통이고 미망인가를 잘 이해하고 구분한다는 뜻이다. 이 세계가 고통이며 그 고통은 집착(욕망) 때문이고 그걸 통해 집착을 만드는 자아라는 것이 존재하지 않음을 구분한 후 모든 것이 공이며 텅비어 있다는 것을 이해하는 것을 의미한다. 즉 고통은 집착 때문이고 그 집착과 윤회는 아트만에서 나온다. 반야는
1. 모든 세상살이는 고통이다.
2. 무아(無我: 아트만=진아가 없다)라는 것을 이해한다-諸法無我(어디에도 진아=아트만은 없다)
3. 모든 것은 텅비어 아무것도 없다 空=영 zero 이다
이 세가지를 잘 이해하는 것이 반야다. 조사선은 이 반야를 무분별지라고 곡해하고 번역하였다. 대반야경 및 모든 반야경의 핵심은 이 세가지를 이해하는 거다. 학자들은 반야경을 읽지않고 조사선의 시각으로 견강부회 한다. 동국대와 조계종단이 그 종지가 조사선이기 때문이다.
Prajñā (प्रज्ञा) or paññā (𑀧𑀜𑁆𑀜𑀸), is a Buddhist term often translated as "wisdom", "intelligence", or "understanding". It is described in Buddhist texts as the understanding of the true nature of phenomena. In the context of Buddhist meditation, it is the ability to understand the three characteristics of all things: anicca ("impermanence"), dukkha ("dissatisfaction" or "suffering"), and anattā ("non-self"). Mahāyāna texts describe it as the understanding of śūnyatā ("emptiness"). It is part of the Threefold Training in Buddhism, and is one of the ten pāramīs of Theravāda Buddhism and one of the six Mahāyāna pāramitās.
Etymology[edit]
Prajñā is often translated as "wisdom", but according to Buddhist bioethics scholar Damien Keown, it is closer in meaning to "insight", "non-discriminating knowledge", or "intuitive apprehension". The component parts of the word are:
* 왜 반야가 필요한가?
우리의 삶은 숱한 유혹과 거짓이 난무하기 때문이다. 언급했듯이 나의 세계는 수많은 외부 정보들이 쌓여서 이루어져 있기 때문이다. 그것을 취사선택을 잘하면 성공한 인생이 되고 못하면 미망에 빠져 나락으로 가기 때문이다. 악마의 메세지와 신의 메세지는 구분이 아주 힘들다. 혼자 힘으로 취사선택이 안되면 전문가를 찾아야 한다. 몸에 병이 생기면 병원에 간다. 아니면 소발에 쥐잡기로 민간요법에 의지한다. 10명 중 하나만 요행수를 얻지만 나머지 9명은 죽는다. 반야는 생사 고통의 삶에서 살아남아 극락에 가고 나중에 부처가 되는 여정을 약속하는 것이다. 반야에 의지한다는 말은 지혜를 통해 고통바다를 항해하여 피안에 도달한다는 것이다. 무분별지는 고통의 바다에 빠져 심연 속에서 똥오줌 구분 못하는멍청이로 산다는 것이다. 그것이 조사선이다.
자기만의 세계는 조사선이다. 외부의 모든 것을 다 막고 그동안 굴러들어온 온갖 정보를 지맘대로 취사선택하고는 무분별지 無로 모든 것을 방하착(모두 다 내다버림)하여 무화(無化)시켜 이모꼬를 화두로 잡다가 활연관통하여 우주의 제왕은 나라고 외친다. 이른바 진아를 발견한다. 그것을 부처라고 한다. 진아는 아트만이며 결국 브라만교다. 3천년전 우파니샤드 철학과 유사한 2천5백년전 노자의 無를 무아라는 엉터리 경전 번역을 통해 진아로 변모시키자 조사선의 진아는 결국 우파니샤드의 아트만이 되었다. 종교의 퇴화다. 인도 대승불교는 중국에 들어온 지 700-800년 만에 브라만교가 되었다. 진아(眞我)의 탄생은 아트만의 세계다. 오직 참나가 있다는 주장을 한 청담과 성철 그리고 최근의 혜국 등등.... 혜국이란 중놈이 "우주가 참나로 가득하다"고 했을 때 그건 우파니샤드에서 "우주에 아트만(진아 참나)이 가득하다"고 한 말에 동의어가 되었다. 이 조계종 중놈들은 죄다 브라만 교도가 된 것이다. 3천년을 후퇴한 불교다. 돌고돌아 브라만교다.
인간은 자기만의 세계에 산다. 그건 조사선의 세계며 정신병자의 세계다. 미망의 세계다. 조사선에서는 깨달음을 얻으면 세상 모든 것을 알게 된다고 사기를 친다. 전문용어로 박대진인(博大眞人)이다. 이유는 자기의식에 복제된 세계가 참된 세계라고 생각하고 그 복제된 세계의 주인인 참나(진아 아트만)를 발견하니 우주의 주인이 된다. 온 우주가 내 것이며 내가 주인이다. 해서 천상천하 유아독존(온 우주에 오직 아트만 만이 홀로 존재한다=오직 아트만이 있다는 우파니샤드 철학. 이 석가모니 탄생설화로 인해 중국 조사선에서 아트만(진아眞我=참나)이 탄생한다.)이라는 우파니샤드의 진리가 나타난다. 천상천하 유아독존은 불교가 석가모니 사후 얼마 지나지 않아 이미 우파니샤드에 오염(우파니샤드 철학에 물든제자들의 배신 조작 -브라만교로 돌아감. 부파불교는 결국 우파니샤드와 석가모니 사상의 결합이다.)되었다는 사실을 나타낸다. 석가모니 사성제 십이연기 교리에 정면으로 반대되는 우파니샤드 철학이다. 우주를 깨달아 우주의 주인공이 된 진아=진인= 박대진인(博大眞人)은 그런데 현실 세계를 보니 나는 바보 멍청이다. 나무에 못질도 못한다. 이유는 그가 평생 치열하게 싸우고 이겨서 깨달은 그 우주가 전생과 금생에 학습과 경험을 통해 만들어진 가상공간=복제된 우주이기 때문이다. 이것을 독단적 관념론이라고 한다. 진아와 우주의 주인공은 결국 "우주소년 아톰"이라는 만화 한편에 지나지 않게 된 것이다. 미친놈의 자가당착이 조사선과 명상가들의 대각(大覺)이며 조잡한 음란소설이거나 만화 한 편이다.
사람들이 칸트철학을 이해하지 못하는 것은 심지어 칸트를 평생 전공한 노교수들도 머저리 소리를 하는 것은 칸트의 시간과 공간이 물리적 시간과 공간이 아니라 복제된 시간과 공간이기 때문이다. 필자는 이것을 20대에 깨달았다. 그리고 결국 불교철학도 칸트가 말한 복제된 시공간 속에서 벌어지는 인식철학이란 사실을 발견하게 된다. 모든 명상수행과 조사선은 복제된 시공간 속에서 이루어지는 것이다. 거기서 깨달음은 복제된 시공간 속의 깨달음이다. 결국 까르마를 벗어나지 못한다. 해서 경허선사는 깨달음을 얻은 후 전생의 습기(까르마)에서 못 벗어나 고통에 몸부림치다가 알콜중독자로 여생을 보내며 평양에서 서당선생을 하다가 객사하였다.(필자가 쓴 불교학 방 글들 참고 혹은 경허선사 검색하면 다수의 글들 있음)
< https://cafe.daum.net/Wahrheit/LpDV/20 경허선사 >
< https://cafe.daum.net/Wahrheit/LpDV/127 조사선 사기를 고발한 경허선사>
인간의 정신세계는 전생의 인연과 금생의 인연으로 구성되며 그 인연은 끊임없이 그 누군가와 주파수(기운)를 교환하며 상호 교류를 한다. 인간의 정신세계는 자기만의 세계가 아니다. 그 모든 통신을 차단하고 자기만의 세계를 구축해도 결국 그 문앞에 편지가 산더미처럼 쌓이듯 그의 정신은 쓰레기로 가득하게 된다. 외부의 경험 세계와 정신세계를 강제로 단절한 독단론적 관념론을 자기만의 세계라고 한다.
경허선사는 필자와 동시대에 태어나지 못한 것을 땅을 치고 한탄할 것이다.
2014년 1월 25일...紫霞仙人 遊於世間
첫댓글 말씀하신 내용을 옳바로 꿰뚫어알면 그야말로 그들이 좋아하는 활연대오가, 가짜가 아닌 진정한 활연대오가 되어 선재동자의 마지막이자 또다시 첫출발의 공덕이 되리라생각됩니다()
예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