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 어머니는 봉순이 언니를 시집보내려고 결심을 했다고 했다. 모래내 사는 이모네 집에 다녀온 어머니는 어느 날 아침 아버지의 넥타이를 챙겨주며 그렇게 말했다.
출근하는 아버지에게 아침에 아버지 들으라고 피아노를 친 값 5원에다가 구두를 닦아놓은 돈 5원 해서 모두 10원을 받으려고 안방으로 건너와 있던 나는 말을 꺼내는 어머니의 얼굴을 멍하니 바라보았다.
" 벌써 동네에 소문이 다 난 것 같아요. 어제는 시장 갔다오는데 반장집 아줌마가 넌지시 봉순이 어떻게 할 거냐고 묻지 않겠어요. 자기가 그러잖아도 우리집에서 일할 좋은 아이를 하나 구해주려고 했다면서,
봉순이를 그냥 집에 둘 거냐고 묻잖아요. 그 얘기를 듣는데 어찌나 낯이 뜨겁던지.... . 이러다가 사춘기 다 된 영아나 준이가 알면 어쩔까 정말 걱정이에요. 애들 교육도 그렇고, 아무래도 시집을 보내버리는 게 낫지 않을까 여보? 더 데리고 있다가 정말 소문이 퍼져버리면 그때는 시집도 못 보내고 우리가 잴 내내 데리고 있어야 할 거 아녀요?"
그 무렵 늘 통행금지 시간인 12시가 땡, 치면 용케도 대문에 달린 벨을 정확히 누르고는 집으로 돌아오던 아버지는 집안일에 대해 관대하다 못해 거의 무심해져 가고 있었다.
" 니 아버진 아마 대문 앞에서 기다리고 있다가 시계가 열두시 누르면 요비링을 누르는가 보다."
어머니는 농담 반 비아냥 반으로 이렇게 말하기도 했다. 우리들을 태우고 손수 운전을 하고 다니길 좋아하던 아버지는 이제는 일요일에도 거의 얼굴을 볼 수 없었다. 그런 아버지는 어머니에게 ' 그건 당신이 알아서 하구려'라는 말을 했고, 실제로 집안에서 일어나는 모든 일에는 어머니의 의견이 가장 중요했다.
아버지에게는 봉순이 언니를 시집 보낼까 말까 보다 중요한 일들이 많았던 것이다. 국제 회의가 있었고, 해외 출장도 잦았으며 바이어들의 접대로 눈코 뜰 새가 없다고 했다. 다른 집의 아버지들도 거의 다 늦게 들어오는 것 같았으므로 특별히 이상할 것은 없었다.
더구나 아버지는 나를 곯리던 앞 줄의 지붕 낮은 집의 아버지들과는 달리 돈도 못 벌어오면서 날마다 세간을 때려부수는 소리를 내지도 않았고, 봉철이네 아버지처럼 술에 취해 버스 정류장 뒤 목포집 앞에 널브러져 있지도 않았다
아버지는 달마다 더 많은 월급은 가지고 돌아와 어머니를 기쁘게 해주었던 것이다. 어머니 역시 한동안은, 애초부터 그러기로 아버지의 약속이라도 하고 결혼한 사람처럼 계를 붓고 새로 나온 냉장고를 사고, 새로 나온 선풍기를 사는 일이 더 즐거운 것 같았다.
물론 때로는 전화기가 날아가 창호지가 찢어지는 싸움도 밌었다. 그럴 때면 건너편 안방에서 어머니의 울먹이는 소리가 들려온 날도 있었다.
" 당신은 변했어! 예전의 당신이 아니야. 대체 아이들이 어떻게 크는지 집안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 돈? 이러자고 생기는 돈이라면 싫어! 차라리 예전으로 돌아가자구. 차라리 그 셋방살이 하던 때로!"
하지만 아침이 되면 어머니와 아버지는 시침을 뗀 채로 아침을 준비했고 안방의 찢어진 창호지만이 지난밤 내가 들은 소리들이 꿈이 아니라는 걸 말해주고 있었다. 어머니는 그런날이면 화장을 곱게 하고 어딘가로 전화를 건 후 집을 나갔다.
그런 어머니의 얼굴은 조금씩 더 지쳐가는 듯 보이기도 했고 다른 한편으로는, 삶에는 생기가 있어야 한다고 굳게 믿는 사람이 날마다 바꾸어 쓰는 가면같이 점점 더 꾸민 듯이 보이기도 했다.
봉순이 언니는 이런 사실을 아는지 모르는지, 어머니가 외출을 하기를 기다렸다가 미자 언니네 집으로 갔다. 둘은 예전보다 더 낮고 은밀한 소리로 속살거렸다. 나는 여전히 그 집에 굴러다니는 주간지들은 읽었다.
' 감동수기.' 남자와 여자의 직업과 나이를 조금씩만 바꾸어놓는다면 앉은자리에서 1백 편도 만들어낼 수 있는비숫한 이야기들이었지만 이상하게도 그것은 매회 재미있었다. 어쩌면 인간들은 이렇게 가지가지 슬픔과 가지가지 상황들을 가지고 이렇게 가지가지 사랑을 하다가 일제히 넘어서는 안 될 선을 넘는지.나는 저녁이 다 되도록 돌아오지 않는 어머니와 간밤의 싸움의 징표로 남은 찢어져 너덜거리는 안방의 창호지를 잊고 그저, 책에 몰두했다.
39 내가 그런 것들을 읽고 있으면 가끔 봉순이 언니는 미자 언니가 피우던 담배도 몇 모금 피우고 , 또 때로는 격한 감정을 이기지 못하겠다는 듯이, 그래도 난 진정 그 사람을 사랑했어! 소리치며 엉엉 울기도 했다.
" 그러기에 사랑은 무슨 사랑, 사랑도 다 돈이 있어야 하는 거야! 그렇게 한푼 없이 따라갔으니 어떤 남자가 좋아했겠니? 병식 씨는 네가 정말 다이아라도 하나 갖고 나온 줄 알았던 거지. 그러길래 이것아, 면사포 씌위줄 때까지는 몸은 절대 안된다고 버터야야지."
눈물을 찔끔거리는 봉순이 언니에게 면박을 주며 그러나 미자 언니도 따라 울었다. 두 처녀는 겨울이 가고 새 봄이 오는 대청 마루에 걸터앉인 내가 있는 것도 아랑곳하지 않고 그렇게 울음을 터뜨리곤 했다.
아마 미자 언니에게도 아픈 사랑의 과거가 있는가 보구나 나는 생각했다.그랬을 것이다. 두 젊은 처녀는 야속한 사랑 때문에 울었을 것이다. 그리고 그 야속한 사랑은 아주 복잡한 과거를 가지고 있었을 것이다. 따뜻한 손길 한 번 주지 않았던 부모와,
오로지 입 하나를 덜기 위해 보따리 싸가지고 먼지나는 신작로에서 버스 타고 서울로 올 때까지, 그렇게 가슴속에 빨갛게 조롱조롱 맺힌 사랑, 이상한 일은 두 처녀의 울음소리를 들으며 주간지를 보고 있던 나도 공연히 따라 울었다는 것이다.
" 얼라, 짱아, 넌 또 왜 우니?"
미자 언니가 울다가 물었다. 나는 대답을 하지 못한 채로 더욱 흐느껴 울었고 그러면 두 처녀는 쟤가 왜 저런다니, 응? 하며 웃다가 둘이 눈이 마주치면 또 흑흑 느껴 울었다.
다른 이야기지만 지난 가을인가 신문사에서 주최하는 독후감 모집에 당선된 독자들 이십 명과 사이판엘 간 일이 있었다. 간담회 시간에 한 여자가 일어나 내 소설의 여주인공 이야기를 하면서, 사실은 그 여자주인공의 어린 시절이 어쩌면 그렇게 자신과 비슷한지, 저희도 아버지가 딴 살림을 차리셨거든요 소설에 나오는 것처럼 그렇게 나쁜 아버님은 아니었습니다만, 어머니하고 저 그리고 제 여동생은 그것 때문에 그후 참많은 아픔을.... . 이라고 말하며 목이 콱 막혀 했다.
내 왼편에 앉아 사회를 보던 여성학사가 '그러셨군요. 진정하시고 말을 해 보세요. 그래서 이번 소설에는 어떤 문제를 느끼셨는지' 까지 말하다가 갑자기 마이크를 내려놓더니 눈물을 주르르 흘리는 것이었다. 그러자 사회자의 말처럼 진정을 하고 다시 의견을 발표하려던 그 여자가 입술만 달싹이다가 끝내 참지 못하겠는지 두 손으로 얼굴을 가리고 울기 시작했고,
어떻게 하면 좋을까, 하는 표정으로 내가 오른편에 앉아 있던 진보적 잡지의 편집장을 바라보자. 그녀는 벌써 손수건까지 꺼내 흘러내린 눈물을 닦고 있었다.당황스러운 마음에 정면을 바라보니, 앞자리에 앉은 여성독자들 스무남은 명이 모두 눈물을 글썽이고 더러는 손수건을 꺼내들고 있었다.
아니 참 이상하네 . 별로 슬픈 일도 아니고 흔한 이야기인데 왜들 이래요. 대단하게 울 일이 뭐 있어요. 어서 진행하시죠, 하고 말하려던 내 눈에서도 눈물이 금새 흘러내렸다. 우리들은 한 삼 분여 동안 그렇게 각자 울었다. 이유는 없었다 물론 이유는 많았겠지만.
그건 남자들은 잘 이해할 수 없는, 하지만 우리들 여자들에게는 흔한 풍경이리라, 아마 함께 운다는 것은, 여자들이 함께 운다는 것은 그렇듯, 합리로는 설명해내기 힘든 그런 신비스런 풍경 중의 하나였을 것이다..그런데 바로 그렇게, 우리가 제각기 이유 없이 울고 있을 때, 대문이 열리는 소리가 들렸다. 누구 올 사람이 없는데 기웃거리며 미자 언니가 천천히 일어서려는데 낯익은 목소리가 들렸다.
" 우리 봉순이 혹시 여기 있니?"
어머니였다. 후다다닥, 재떨이를 치우고 미자 언니는 입에 달고 있던 담배를 비벼껐지만 대문을 연 어머니가 중문을 밀고 들어오는 시간이 그보다 좀 더 빨랐다. 내가 주간지를 뒤로 감추었음은 물론이고 어머니의 시선에 비껴가며 봉순이 언니가 재떨이를 치웠지만,
마루에 놓인 술병과 술잔은 그대로였다. 커다란 들국화 문양만 비로도로 도드라치고 나머지는 연한 색깔인, 그 당시 유행하는 감색 춘추비로도 한복 차림의 어머니는 가가 막히다는 듯, 그 자리에 잠시 서 있다가,
" 짱아 데리고 얼른 집에 와라!"
한마디만 하고는 나가버렸다. 봉순이 언니와 나는 난감한 표정으로 주섬주섬 신을 신고 집으로 돌아갔다. 어머니는 평상복으로 갈아입고 안방문을 밀면서 우리가 들어어는 것을 물끄러미 보다가, 한숨을 내리쉬고는, 짧게 말했다.
첫댓글 버림받고 유산까지 했는데도 봉순이는 병식이를 못잊어 울고 있군요.
남자 때문에 아픈 가슴은 남자로 치유가 된다고 하지요.
봉순이도 새로운 사람을 만나서 행복해졌으면 좋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