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사에서 나와 걷기를 한참.
내 눈에 포착된, 빨간글씨의 '피씨방 알바생 구합니다.' 라는 문구,
그 피씨방은 내가 주말마다 가는 '크로커스' 라는 피씨방이였고,
컴광. 피씨 광. 인 내가 그곳을 그냥 지나치는건
상식적으로 말이 안돼는 일이였다.
어차피, 일도 잘린데다, 개학식까진 약 1달 이라는
기나긴 시간이 남았다.
나는 유난히 긴 우리 방학을 칭찬하며
입가에 싱글벙글한 웃음을 걸치고는 피씨방으로 들어섰다.
초반부터 어두운 분위기를 힘껏 강조하는 피씨방과는 대조되게
상당히 밝은 빛으로 큰 공간을 밝혀주는 이 피씨방은
금연일 뿐만 아니라, 모든것이 컴퓨터로 바로바로 작동되기에
심심풀이나, 돈을 벌기엔 딱 좋은 알바자리였다.
"저…알바생을 구한다고 하길래 왔는데요."
"아, 알바생요? 알바하시게요?"
"네."
그 여자는 한참을 어떤 남자와 중얼거리더니
아까의 나보다 더 활짝 웃으며 나에게 다가왔다.
갑자기 온몸에 소름이 다다다다 돋은건 무슨 이유때문일지…
"저기요~ 지금부터 할수 있으세요?"
"네? 지금…부터요?"
"네!"
지금 시각 약 8시 30분.
지금부터라니? 그럼 언제 끝난다는 얘기지?
"시작은 평소엔 아침 7시에 오면 되고.
끝나는 시간은… 음. 아마 대략 10시? 그쯤 될꺼예요."
"10시요? … 그럼 오늘 부터 할께요."
어차피 집에 컴퓨터도 없고,
반겨주는 이도 없으니.
10시까지는 이상한 사람도 안오겠고,
딱이겠다.
"그럼 나 가볼께요~. 아, 이름이 뭐죠?"
"……임."
"네?"
"윤다임…."
"아~! 그럼 다임씨. 조심하세요. 어떤 남자가 들들 볶을껄요~?"
"네? 무슨……"
"그럼 안녀어엉~"
혹시 이런말 들은적이 있나?
'바람처럼 사라졌다.'
딱 그거다.
하이힐에다, 미니스커트까지 입고서
저 높은 계단을 훌쩍훌쩍 올라가는 저 여자…
심히, 정상이 아닐듯 하다.
아무튼, 그딴건 상관없으니 일이나 해야겠다.
근데…
그 여잔 누구지?
여기 책임자 아닌가? 그런데 왜 가는거지?
달랑-
문에 걸려있는 종이 울리자,
난 반사적을 고개를 돌리며 인사를 했다.
"안녕하세요."
"열시간."
"……네?"
"열시간."
처음엔 잘못들었겠지 싶어서
다시 물었지만, 모자를 푹 눌러쓴 그 남자손님은
연신 열시간 을 외쳐대고 있었다.
하지만 열시간이라니…
딱 보아하니 학생같은데.
아 … 맞다.
여긴 10시 이후에 19세 이상 반입금지…
그딴게 없었지?
근데 그거 불법 아닌가 몰라.
"열시간요?"
"열시간."
"……네."
아무말도 하지 않고 열시간만 해대는걸보니,
좀 정신이……
아 이건 됐고,
한시간에 천원이니까. 열시간이면 만원인가.
"저기 51번 컴퓨터구요. 만원입니다."
"……."
"저… 안들어가세요?"
"……34번 컴퓨터."
"네?"
"34번 컴퓨터로 해달라고."
"아…. 네."
처음일하는건데,
처음부터 이게 뭔 일이래 …
에효. 그나저나 34번…
비어있네?
대충 띡띡 눌러서 34번컴에 열시간을 넣어줬고,
그 사람은 인사를 꾸벅 하더니, 카운터 바로 앞에 있는 34번 컴에 앉았다.
그 뒤로도 달랑 거리는 소리와 함께
여러 손님이 들어왔고,
난 그 손님들에서 하나하나 대꾸하느라.
앞쪽 컴퓨터에 앉아서 '누나, 물~', '누나 포테토 칩~'
이라며 손을 흔들거리는 사람들 시중 까지 드느라,
아직 일을 시작한지 1시간 밖에 안됐는데
온 몸이 피로에 쌓여버렸다.
아직 30분이나 남았는데…
"휴……."
혼자 한탄의 한숨을 내쉬고 있는데
들어온 뒤부터 한마디도 안했던 34번에 앉아있는 남자가
손을 휙휙 저으며
"여기 새우깡."
이라고 말하는게 아닌가.
힘들어 죽겠는데 저렇게 손만 흔들며 시키는 사람을 보니,
열이 팍팍 받는게, 저 남자를 한대 쥐어 패고 싶은 심정.
이 알바. 그리 쉬운게 아니네……
"네…"
힘없게 대답하고는 새우깡 하나를 들고 그 사람에게 다가갔다.
"여기요. 600원 인데요."
"……"
"저… 600원 안주실꺼예요?"
"……."
"여기는 선불젠데…"
"……"
"저… 손님?"
"이름 뭐야?"
뜬금없이 이름이 뭐냐니?
저 새끼가 장난하나. 돈이나 주지, 이름은 왜 쳐 묻는거야.
"윤다임이요."
그래도 척척 대답해 주는 날 보면,
가끔씩은 나도 참 착한 여자라고 느낀다
좀 이상한가?
"윤다임?"
"네."
"지랄하지마."
"…네?"
"아니야."
"네…… 저 600원…."
"육백원 안줄꺼야. 니가 내 줘, 아시다 시피 만원을 쏟아부어서,
내가 돈이 없거든. 니가 돈이 있을진 모르겠지만, 아무튼 육백원만 꿔주라."